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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가정(2) (벧전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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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리스도인의 가정(2) (벧전 3:7) 

크리스챤치유상담원 정태기 교수, 서울 강남지역의 중산층 부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중에 60%가 - 몸은 한 방에서 같이 지내지만 마음은 구만리처럼 멀다고 답했고, 68.5%가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53%가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해 봤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결과 이면에는 남편들의 횡포가 주 원인이 된다. 가부장적 태도는 일방적으로 아내의 희생을 요구해 왔다. 그 결과 근래에 들어 황혼 이혼이 증가하고 있고, 노후에 남편은 불편한 존재로 푸대접 받는 현상들이 비일비재하다. 
예)60대의 어느 집사님 부부.

남편들의 일방적인 주도권 행사는 고대로 올라갈수록 심했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여성관, 집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남편에게 소속 되어 있는 존재, 지참금만 돌려주면 언제든지 이혼 가능. 여성의 역할은 남편의 뒷바라지, 성적 쾌락의 도구, 자손 번식, 집안 일이었다.

항거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탄식, 아내들의 원성이 하늘까지 닿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여성들의 행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세상 말로 ‘팔자려니’하고 체념하고 살아왔다. 

오늘 본문을 기록하고 있을 당시에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은 어떠했는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여성들은 피해자요 약자였다. 눈물을 감추며 참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메시지는 여성 지위에 관한 혁명적 선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파격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벧전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지난 주일 ‘남편에 대한 아내의 도리’는 ‘순종하라’는 것이었다. 베드로의 권면은 아내의 복종만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어서 남편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권면은 그동안 굳어져 왔던 남편들의 일방적 횡포를 완전히 깨뜨리는 폭탄적 선포인 것이다. 그리고 이 권면은 적어도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는 지켜져야 할 사도적 권위를 가진 명령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내용이 무엇인가?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란 말씀에 대하여 쉬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마찬가지로 남편들도 아내를 잘 이해하고...’ 
왜 아내를 이해하라고 명령하고 있는가? 그 목적이 무엇인가? 물론 행복한 부부 관계를 위해서이다. 그러나 사도의 목적은 일반적 부부의 행복을 초월하고 있다. 그 목적이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 비밀이 있다. 

벧전 3:1-7의 결론적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아내에게는 순종을 요구하였다. 목적은 불신 남편의 구원을 위함인 것이다.
2) 남편에게는 아내를 이해할 것을 요구하였다. 목적은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원만한 부부관계, 행복한 가정의 비결이 남편의 기도생활과 직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남편의 기도가 막히게 되면 남자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단절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가 남편을 통해서 아내에게 전달되는데 그것이 막히게 되면 축복의 통로가 막히게 되는 것이다.
예)금슬 좋은 황집사 부부

그리스도인 가정이라고 다 행복한 것이 아니다. 화목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가정의 열쇠는 남편이 쥐고 있고 그 열쇠는 기도라는 것이다. 가장인 남편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는 것이다. 아내가 불순종할 때 관계가 악화되서 기도가 막히기도 하지만 첫 번째 원인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무지라는 것이다. 무지로 인해 기도가 막히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남편들을 향하여 아내를 이해하는데 힘써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1.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열 여자가 싫어하는 사내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여자는 한 남자에게만 집중한다. 부부관계가 금이 가는 이유는 남편이 아내 외의 다른 여성에게 마음을 두기 때문이다. 야곱을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아내 레아와 라헬 사이에 불꽃 튀기는 질투로 늘 시달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일부일처를 가르치고 있다.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이 말은 아내 외의 다른 여자와 성적 관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의미도 된다. 요즘도 유부남을 사랑하는 불륜 드라마가 유행하는 것은 타락한 세태를 보여 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세상은 쾌락을 따라 불륜을 조장해도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아내에 대한 바른 도리를 지켜야 한다. 남의 부인에게 지나친 친절은 조심해야 한다. 불화의 원인이 된다.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말라. 아내가 분노하면 기도가 막히게 된다.


2. 더 연약한 그릇이요.

여성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남성보다 약하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

결혼 전에는 걸을 때 차도쪽으로 걷고, 추우면 겉옷 벗어서 덮어주고, 차 탈 때 먼저 문도 열어주고... 지금은 어떤가? 타지도 않았는데 출발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정서적으로 남성들은 좌뇌, 여성들은 우뇌가 발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감성적이고 세밀하고, 직관적이고, 관계 지향적이다. 반면에 남성들은 사실적이고 분석적이고 목적 지향적이다. 
예)퇴근해 들어온 남편에게 아내가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주욱하면..., 남편의 반응은 어떤가? ‘그래서, 결론만 말해 피곤하단 말이야!’

이런 현상들이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이유는 아내에 대하여 여성에 대하여 너무 무지한 까닭이다. 그릇이란 용어는 문자적으로는 컵이나 접시와 같은 용기를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돌릴 기구’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 아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구로 나에게 보내셨다라는 사실을 안다면 함부로 마구 대하지 않을 것이다. 


3. 신앙의 반려자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구약의 성전에는 여인들의 뜰이 있었다. 그 이상은 들어가지 못했다. 정통파 유대교인들 중에 는 여성들을 회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당시에 종교적인 면에서도 남성들의 우월주의가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리스의 스토익학파 철학자 세네카는, ‘여인에게 도 영혼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여성을 비하 무시하였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 메시지는 여성들과 남성들과 똑같이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심지어 지성소 안에까지 들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적 동반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이 없다.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임을 알아야 한다. 

부부의 영적생활은 결혼생활의 고차원적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부부가 함께 생명의 은혜를 나누며 서로 신앙을 독려하며 성장해 가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예)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만약 부부 간에 영적 수준이 맞지 않으면 많은 의견 충돌이 있게 된다. 남편은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홀히 하는 것은 스스로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허무는 것이다. 일과 생업에 열심을 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부부관계, 가정보다 앞서지 못한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의 영적 성장을 위해 도와야 한다.가정은 부부가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다. 아내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함께 할 영적 동반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귀히 여기라
몰랐을 때는 자기 마음대로 주장해서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 그 상처는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아내에 대하여 여성에 대하여 알게 되면 귀히 여기게 된다. 

‘귀히 여기라’는 말의 의미는 ‘존중하라’는 뜻이다. 아내가 남편에 대하여 존경해야 하듯 남편도 역시 아내에 대하여 존경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다. 

엡 5:25-30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1) 희생적인 사랑(25)
본문에 사용하고 있는 “사랑”이란 용어는 “아가파오”, 곧 아가페 사랑을 뜻하고 있다. 아가페 사랑의 특징은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인 사랑을 말한다. 그 사랑은 예수님께서 갈보리 언덕에서 자신을 희생하시므로 성취하신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일시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사랑해야 한다.

2)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가꾸어 주는 것(26-27)
아내의 얼굴은 남편들이 만든다는 말이 있다. 마음의 상처는 얼굴로 나타난다.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성결하고 성숙한 모습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아내에 대하여 폭행하는 것은 스스로 가정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폭행이란 여러 가지가 있다. 언어폭행, 물리적 폭행, 물질적 폭행, 정신적 폭행 같은 것들이다. 

3) 책임지는 사랑(28-30)
남편들은 본문을 유심히 잘 보아야 한다. 28절의 말씀을 보면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찌니..”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30절에서는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28절의 말씀은 부부라는 존재가 엄연히 두 몸이지만 한 몸처럼 생각하라는 의미이고 30절의 말씀은 부부는 한 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과 교회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는다. 교회와 예수님은 한 몸이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보호하시며 자라도록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 예수님과 교회가 한 몸이듯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입장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촬스 브론딘이라는 줄타기 곡예사가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서 줄타기에 성공.
2차 시도, 한 사람을 그의 어깨 위에 올려 놓고 건너는 것이 었다. 그의 매니져 헨리 콜코드가 자청함. 어떤 도박사가 기둥을 받치는 줄을 칼로 끊어버렸다. 줄타기를 중단하고 이렇게 말했다. 
-헨리씨 당신은 콜코드가 아니고 부론딘이 되었으며 나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내가 흔들릴 때 당신도 흔들리게 될 것이므로 당신은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잘못하면 둘 다 죽을 것입니다.

아내를 귀히 여긴다는 말은 희생적 사랑, 성결케 하는 사랑, 책임지는 사랑이다. 부부는 끝까지 함께 가야할 동반자이다. 베드로는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기도생활과 연결시켰다.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 행복한 가정

F.비까르란 분이 말하기를, 
“부부란 이미 요리된 행복의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둘이 서로 합심하여 행복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라고 했다. 

부부의 행복을 위한 책임이 남편에게 더욱 강조되어 있다. 이런 책임의식을 가질 때 아내에 대한 복종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 메시지

1.그리스도인 부부의 기초는 구속적이다. 영혼구원, 영적성장.
2.상호보완적이다. 아내는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잘 이해하며 귀히 여겨야 한다.


* 가정예배, 기도회.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 서점으로 가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남자입니까. 부부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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