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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을 통한 성도의 하나님 됨 (고전 11: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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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을 통한 성도의 하나님 됨 (고전 11:17-22)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성도 간의 애찬과 성찬의 중요한 의미와 이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 고린도 시에는 친한 사람들이 서로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이것을 ‘에바노스’(Evanos)라고 불렀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이러한 관습에 따라 교회 안에서 애찬을 통하여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나는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모습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함께 모여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안식일 다음 날 ‘떡을 떼러’(행 20:7) 모였다는 기록을 보면 아마도 그들은 주일날 각자가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교회에 모여 함께 식사한 후, 예배를 드리고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여 성찬식을 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꼭 지키라고 명령하신 예식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들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친히 성례를 제정하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정하신 성찬식을 행할 때마다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죽음만 기억하고 슬픈 마음으로 예식에 참여하는 장례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그 기쁨을 나누는 식탁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된 것처럼, 이 성찬을 통하여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며 그 사랑을 확인하는 공동식사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서 애찬과 성찬을 통하여 성도 간에 귀한 사랑을 나누며, 하나 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이것이 예수 이름으로 모였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가진 독특하고 파격적인 새로운 사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하나님 나라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나면 다시 모이는 그날까지 그 고달픈 삶의 현장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용기 있게 살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벅찬 삶의 자리일지라도 내일에 대한 소망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견디고 살아야지 하는 결심이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을 소유하였기에 폭력적인 주인의 온갖 학대를 견디면서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용기도, 복음을 전할 용기도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전교인체육대회를 통해 우리 교회의 성도 간에 이러한 기쁨의 교제가  있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애찬을 통해 성도 간에 식탁의 교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성례주일입니다. 성례는 세례식과 성만찬입니다. 그래서 다음주일에 입교 세례식을 베풀고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특별히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된 것처럼, 이 성찬예식을 통하여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며 하나 되는 귀한 예배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잘못된 애찬과 성찬을 통하여 사도 바울에게 심한 책망을 듣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이러한 아름다운 관습이 시간이 흐르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성도 간의 화합과 교제를 도모한다는 애찬의 본래 의도가 상실되고, 오히려 교회의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을 보면 부한 자도 있었지만 가난한 자들이 더 많았고, 자유인도 있었지만 노예들이 더 많았습니다. 부자들은 부요한 생활을 했고 자연이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준비해 올 때도 많은 음식을 준비해 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음식을 가지고 올 수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음식을 준비해온 부자 교인들은, 일과를 마치고 늦게 만찬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성도들을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먼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배부르고 취했습니다. 그러나 일에 지쳐서 늦게 도착한 가난한 성도들은 시장하고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은혜롭게 서로 양보하면서 음식들을 잘 나누어 먹었으나 차츰 그 정신이 변질되어 극심한 빈부의 격차가 생기게 되었고, 애찬의 자리가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결국 성도 간의 화합과 교제를 목적으로 세워진 좋은 풍습이 오히려 성도 간의 화합과 결속을 파괴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주안에서 하나입니다. 신분도, 계급도, 경제적인 것도, 학력도, 신앙의 경력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구원 받은 한 가족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어떠한 기준으로도 서로를 차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런 기막힌 모습을 보고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17절에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20절에서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다”까지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만찬의 의미를 모르고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애찬과 성찬을 통해서 한 몸 된 교제를 이루어야 할 예배가 오히려 갈등과 소외감으로 얼룩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린도교회의 모습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악한 태도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강한 어조로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를 책망한 후에 바울은 성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그 말씀이 23-26절까지입니다. 주께서 제정하신 성만찬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다음 시간에 자세하게 생각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구약과는 전혀 다른 새 언약공동체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모일 때마다 성만찬예식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제뿐만 아니라 한 몸 된 지체간의 교제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성찬에 참여하고 있는 지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며 한 지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찬에 바르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애찬과 성만찬은 성도 간에 하나 됨을 확인하는 의식입니다. 

부모님의 살과 피를 받아서 태어난 자식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아서 새롭게 태어난 우리 성도들은 한 형제자매가 됩니다. 한 가족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고전 10:16-17절에 “우리가 축복 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몸을 나누었기 때문에 한 가족이란 말씀입니다. 한 가족이 되면 가족의식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생각해보십시오. 한 가족은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함께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형제들을 위해서 자신의 배고픔도 참고 절제해야 했는데 가난한 자들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 앞에 범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7-29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신다’는 말은 성찬의 의미를 모르고, 한 몸의 의미를 모르고 먹고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성찬을 자기 만찬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교회를 이루는 자세가 없이, 형제를 생각함이 없이 자기 욕심으로 먹고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살피고’라는 말은 자기의 죄와 허물을 살피고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조그만 죄와 허물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자기를 살피고’라는 말은 남의 허물보다는 자기의 허물을 크게 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남을 판단하지 않게 되고, 결국 주님의 판단을 받지도 않게 됩니다. 

성찬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없이, 한 몸 된 성도간의 친밀한 교제가 없이, 주의 상에 참여하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라고 바울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교회의 지체들이 자신과 한 몸이라는 의식을 가진다면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이런 성만찬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권면합니다. 

33-34절입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 잡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에서 ‘서로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혹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고 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성만찬은 단순히 식사하는 식사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로 모여서 주의 성만찬을 하는 것은 주의 죽으심과 피 흘리심을 기념하는 자리입니다. 주의 교회가 한 몸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연합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찬의 또 다른 의미는 교회 지체간의 하나 됨을 확신하는 자리이며, 한 몸 된 교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면서 주의 교회가 더욱 하나 되고, 한 몸 된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애찬은 성도 간에 사랑과 하나 됨의 표시입니다. 오늘 체육대회를 통해 구역별로 애찬을 나누시며 성도 간의 귀한 교제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잘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온 성도 간에 주안에서 하나 됨과 가족애를 느끼시고 회복하시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귀한 예배와 체육대회, 애찬을 통해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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