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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수의 근원 (렘 17: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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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근원 (예레미야 17:5-14)

미 항공우주국 NASA에서 화성에 물이 흐르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증거가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물이 있으면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말이니 화성에 물이 있다면, 그것도 흐르는 물이 있다면 화성에 정말로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일까 하는 기대감이 더 커집니다.  정말 물이 흐르는지 아직까지 단언할 수 없지만 과학자들은 이 발표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고 합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물을 생명의 근원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물가에 모여 살며 촌락을 이루기 시작하였고, 고대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큰 강을 끼고 있는 지역이며 오늘날 산업도시와 대부분 국가의 수도들이 강을 끼고 있습니다.  사람 몸의 70%가 물이고, 지구 면적의 70%가 물이라고 하니 물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이 얼마나 될까요?   2010년에 발표된 모 연구소의 통계에 의하면, 365리터로 독일보다 3배나 많이 사용한다고 하니 우리 국민들의 물낭비가 상대적으로 심한 편입니다.  참고로 프랑스와 영국은 우리보다 적은 281리터, 323리터이며 이탈리아는 우리보다 조금 많은 383리터라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물 공급이 중단된다면 물 없이 과연 몇일이나 견딜 수 있을까요?   오늘 아침에는 이처럼 중요한 물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교훈하신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다고 합니다 (13절).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있는가 하면 사막 건조한 땅에 뿌리를 내린 떨기나무가 있습니다.   이 떨기나무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유대 민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2장13절에서도‘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유대인들은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제 힘으로 물 웅덩이를 파고 거기 물을 저축하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이 귀한 팔레스틴에서는 물을 얻는 세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물은 지하 깊은 곳 암반에서 터져나와 흐르는 신선한 물입니다.   조금 후에 지난 번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 찍은 사진 몇 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요단강의 발원지 네 곳 중에 가장 큰 수원지가 이스라엘 최북단 레바논과의 국경지대 단(Dan)이라는 곳입니다.   북쪽 헤르몬 산 정상의 만년설이 녹은 물과 빗물이 지하로 침투하여 산자락 끝 바위 틈에서 시원하게 물이 솟아 흘러나오는데 거기가 단이라는 곳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물을 ‘생수 living water’라 부릅니다.  이 물은 우리가 가게에서 사먹는‘에비앙’처럼 바위 밑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와 흘러넘치는 최상급 생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여행할 때 반석에서 솟아나는 이런 물을 마시며 40년간 생명을 보존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땅을 파서 얻는 일반적인 우물물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 등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유목민 생활을 하며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습니다.   마지막으로, 석회암을 뚫어 웅덩이를 만들고 거기 받아놓은 물입니다.   이 물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낭비되지 않도록 배수로를 만들어 커다란 웅덩이에 모이도록 저장했다가 비상시에 사용하는 물입니다.   

지난 3월 성지순례를 하며 사해 바다 서쪽에 있는 맛사다 요새지를 방문했을 때 엄청나게 큰 물 저장 탱크를 보았습니다.   헤롯 대왕이 백성들의 반란을 대비하여 사해 서쪽 광야에 요새를 건설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비축해 놓았던 곳인데 그 중에 대단한 것이 바로 물 저장 탱크입니다.   겨울철 우기에 모아진 계곡의 빗물이 요새로 흘러들어오도록 수로를 만들어 저장 탱크에 모이게 설계하였습니다.  요새 정상과 절벽에 굴을 파고 상부 8개, 하부에 4개의 저장고를 만들었는데 거기 저장된 물은 400명의 군사들이 무려 100년 동안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라고 합니다.   요새에 헤롯과 왕비들의 목욕탕과 사우나 시설이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물이 귀한 지역에 사는 팔레스틴 사람들은 가뭄에 생존하기 위하여 이런 물 저장고가 필수적이었습니다.   팔레스틴의 이런 배경 때문에 성경에는 물 또는 샘물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으며, 요한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물을 길러 갔다가 예수님을 만난 곳은 야곱의 우물이었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자랑스런 유산이었고 수가성 온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과 같은 물을 공급하는 소중한 공동재산이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물과 물 저장고가 이처럼 중요한데 힘들게 만든 물 웅덩이가 깨어져 틈이 생기면 물이 다 빠져나가 진흙 구덩이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슬러그나 모기 애벌레 등이 서식하는 쓸모 없는 웅덩이가 되고 맙니다.   석회암 구멍을 뚫어 아래쪽은 넓게 파고 위쪽 입구는 최소한 작게 만들어 수분 증발량을 가능한 적게 하도록 만든 웅덩이라 사람이 실수로 그곳에 빠지면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감옥이 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전했을 때 그를 미워했던 시드기야 왕과 다른 선지자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가두었는데 그런 곳이 바로 물이 없는 터진 웅덩이였습니다.    

예레미야 2장13절을 읽어봅시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바벨론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애굽과 앗수르에게 손을 벌린(렘2:18) 유대 백성을 가리켜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지만 애써 판 그 웅덩이는 깨진 웅덩이였습니다.   애굽과 앗수르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벨론에게 패하고 말았으며 유다 왕국도 멸망을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가리켜 남편으로 혹은 아버지로 그리고 생명의 근원으로 묘사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남편과 아버지와 생명의 근원을 버리고 떠났던 방탕한 백성이었습니다.    부부는 결혼이라는 계약을 통해 한 몸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굳은 언약을 맺은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방탕한 삶에도 불구하고 수도 없이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만 백성 가운데 맏아들로 삼으신 하나님은 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세상에서 방황하고 타락의 길을 걸을 때 언젠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불결하며 오염된 웅덩이 물을 마시고 질병 가운데 죽어가고 있을 때 불쌍히 여기며 치료의 샘물로 초청하신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영혼이 병든 이스라엘은 구원의 샘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물을 길어 마셔야 삽니다. 이사야 선지자는‘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12:2,3) 하였습니다.    

이사야 55장 1절-3절에서,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사55:2,3) 하십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외면하고 헛된 것을 위하여 수고하며 비싼 값을 치르고 있습니까?   영혼이 살고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여기 있는데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며 헛된 일과 무익한 것에 일생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스 8장11절) 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사람들이 거짓되고 헛된 것을 찾느라 분주하고 그 영혼이 기근과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당합니다.     
  
이스라엘은 생명수 강가에 심은 하나님의 나무였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 감람나무 또는 무화과나무와 종려나무로 비유되었습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복이 있는 나무입니다.   가뭄이나 뜨거운 해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된 나무들입니다.  시편 1편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하였습니다.    

그와 반대로 사막의 떨기나무가 있습니다.  물이 없는 건조한 땅에서 겨우 생명을 이어가는 가시나무들은 물가에 심기운 나무에 비하면 저주받은 나무와 같습니다.   사해 부근의 바닷 소금기가 있는 땅에는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고 그래도 민물이 고인 곳 주변에는 풀과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나마 물이 있으니 그 정도로 자라지만 물이 없는 광야에는 거의 식물을 볼 수 없고 간혹가다 엘리야가 지쳐 쓰러져 잤다고 하던 로뎀나무와, 법궤를 만드는데 사용된 조각목이라는 싯딤나무와 소돔 사과라는 나무들이 보였습니다.   특히 오늘 말씀과 관련하여 소돔 사과에 대한 말씀을 드립니다.   왜 하필 소돔 사과라 부를까요?  사진 몇 장을 보며 말씀드립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유황불로 심판하신 도시들이다. 이 두 도시의 이름은 먹음직스럽지만 만지면 터져서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는 소돔 사과의 열매에 그 상징성이 남아 있다.  히브리대학 식물원을 만든 성서식물학자 하루베니 부부는 이 소돔 사과를 가리켜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사막의 떨기나무’ 라고 했다.  ‘광야의 저주 받은 레몬’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돔 사과는 줄기에 상처를 내면 우유처럼 희고 끈적끈적한 진액이 줄줄 흘러나온다.  이 진액은 워낙 독성이 강해 아프리카에서는 화살촉에 이 독을 바르거나 적군의 우물에 넣었다고 한다.  (정정숙, 세계기독교 박물관)

소돔 사과는 여리고 들판에서도 자주 눈에 뜨였는데 동물들이 이 열매를 따먹으려다 열매에서 풍기는 독가스에 기절하거나 죽기도 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사막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이 식물은 자신을 보호하는 이런 무기가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나무 주변에 머물고 있으면 지나가던 유대인들이 가다 멈추고 손과 얼굴을 잘 씻으라고 주의를 주고 간다고 한다.  소돔 사과는 쉴 만한 그늘을 만들기도 하지만 독성 때문에 아무도 찾지 않는 나무이며, 베두인들도 ‘하늘 향해 기도하는 외로운 나무’라고 부를 정도이다. (정정숙, 세계기독교 박물관)  

거친 땅에서 생존하는 나무인지라 스스로 생존하기 위하여 그만큼 독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나무를 사람의 삶에 비유하니 그 인생이 참으로 거칠고 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의 뿌리를 거칠고 물이 없는 사막에 두고 있으며 나를 스스로 지키고 살아남으려고 독한 모양을 하고 살 수 밖에 없다는 슬픈 생각입니다.   거친 사막과 같은 세상에서 내 힘으로 나를 지키고 성공하며 살아보겠다고 독을 품고 살다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고 외로운 인생을 삽니다.   누군가 친해지고 싶어 다가가면 독가스를 품고 독가시로 찔러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달아나게 하며 심하게는 죽게 만들기도 합니다.   

얼마나 외롭고 가련한 인생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제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사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헛된 것들을 따라가는 백성들을 가리켜 사막의 떨기나무라 하셨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내 삶의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를 입고 살면 가물고 건조한 때라도 걱정없이 살며 철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고 삽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은혜 가운데 사는 성도들이 누리는 특별한 혜택입니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살아보겠다는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님 대신 인간의 힘을 의지하고 살겠다는 절교선언입니다.  애굽과 앗수르라는 힘 있는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군사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님을 귀찮게 해드리지 않고 내 힘으로 자립하리라는 좋은 뜻의 독립선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거절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내 노력으로 얼마든지 세상에서 잘 나가는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만심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부정하는 불신앙입니다.   

그런 사람의 결과는 사막의 가시나무처럼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의 마른 곳, 소금기를 가득 머금은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사는 불행한  운명입니다.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스스로 물웅덩이를 팠지만 얼마가지 못하여 마르게 될 것이며, 그 웅덩이가 틈이 생기고 무너지면 물이 없는 죽음의 구덩이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의지했던 애굽과 앗수르는 터진 웅덩이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났던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의 심령은 물댄 동산 같을 것이며 다시 근심이 없으리라 하십니다(렘31:12).   물댄 동산이라는 표현이 참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 없는 내 삶의 영역은 물 없는 메마른 땅이지만 물의 근원이 그 땅으로 연결되면 즉시 물댄 동산이 됩니다.   거기에 곡식과 새포도주와 기름이 풍성하며 어린양의 떼와 소떼가 가득한 곳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삶의 기초를 두고 살기로 작정하는 교우 여러분의 가정과 학업과 생업이 물댄 동산이 되는 풍성한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근원이시며 구원의 생수와 샘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반석이신 당신의 몸을 깨뜨려 갈한 심령들에게 생명의 물을 나눠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갈증난 인생을 시원하게 채우지 못하며 살던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그분을 만났고 생명의 물을 얻었습니다.   그의 삶 속으로 생명수가 들어오자마자 그의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곧장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난 생명의 주인,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렸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에도 이 생수를 얻지 못하여 사막같이 건조한 세상에서 떨기나무처럼 살며 갈증나고 주린 영혼이 있습니까?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누군가 목마른 자들이 찾고 부르기 전에 벌써 그 사람의 마음 문 앞에 와서 기다리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 하십니다.   그분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내 잔이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그분께 나의 메마르고 거친 삶을 맡겨드리시기 바랍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생수의 근원이신 주 안에 삶의 뿌리와 근거를 두고 사시사철 선한 열매,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바랍니다.   나에게로부터 나오는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로 가족과 이웃과 이 사회에 기쁨을 나누는 복된 나무들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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