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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힘써 알자 (호 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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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힘써 알자 (호세아6:1-6 )

잠언 9장10절에‘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씀입니다. 공부를 많이 못해 학문적 지식이 부족하면 세상 사는데 혹시 불편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영생을 얻는 삶에 중대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의 미천한 지혜와 지식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어찌 다 알 수 있으며 또 감히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조금 아는 지식으로 자칫 영적인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을 우리의 좁은 지식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두는 어리석음을 범할 위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꼭 알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며 스스로 나타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Knowing God 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역설하며 이런 예화를 들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부족민 한 사람을 비행기에 태워 런던으로 데려와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트라팔가 광장에 내려놓고, 그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영어나 영국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남겨둔다면, 그것은 매우 무자비한 일이 될 것이다.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이 세상을 운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채로 이 세상 속에서 살려고 애쓴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무자비한 것이다.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이상하고 미친 듯하며 고통스런 장소가 되고, 삶은 실망스럽고 불쾌한 일이 된다.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하는 것은 눈가리개를 하고서 아무런 방향감각이 없이 그리고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아마도 당신은 사는 동안 내내 비틀거리고 머뭇거리게 될 것이며, 이렇게 해서 인생을 낭비하고 영혼을 잃어버릴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 문답의 네 번째 질문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이며 이에 대한 답은 ‘하나님은 영이시며,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그 존재가 변치 않으시는 지혜와 능력과 거룩함과 정의와 선하심과 진리이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조직 신학자 찰스 핫지는 이 진술을 ‘이제까지 인간이 쓴 바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정의’라고 말하였습니다. (제임스 패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성경을 묵상하거나 혹은 깊이 연구할 때 독자들이 던져야 할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은 ‘오늘 내가 읽은 이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이 누구신가 드러내고 있습니다.하나님이 누구신가 바로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 말씀을 받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뒤따르게 됩니다.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오게 되고 거기에 대한 바른 답을 얻게 됩니다.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지식은 이처럼 나와 우리의 삶에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제임스 파커의 말을 다시 빌립니다.만일 우리가 신학적 지식 자체를 위하여 신학적 지식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나쁘게 작용할 것입니다.그것은 우리를 교만하고 우쭐하게 만듭니다.주제의 위대함 자체에 도취되어 내가 그것에 관심이 있고 그것을 파악했다는 것 때문에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내가 보기에 미숙하고 부적절한 것 같은 신학적 개념을 가진 사람들을 경멸하고 가련한 사람들로 치부해 버릴 것입니다. 

신학적 지식 자체를 목적으로 지식 얻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나, 단지 정답을 모두 알려는 열망만으로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곧장 자기 만족과 자기 기만 상태에 이르게 합니다.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며, 잘못된 기준에 의해 그것을 평가한다면 신학적 지식을 탐구하고 교리를 연구하는 것이 도리어 영적 생활에 위험스러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교리적 지식이 없이 영적으로 건강할 수 없지만 교리적 지식을 옳지 않은 목적으로 얻거나 사용한다면 그것 역시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성경과 신학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한 이유와 목적이 무엇일까요? 내가 알고 이해하고자 힘썼던 그 진리의 소유자 바로 그 위대한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일입니다.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곧장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으로 이어지게 합니다.진리의 주인이신 그분을 알게 되면 그분의 위대함과 영광을 바라보게 되며, 나 자신의 하찮음과 죄성을 묵상함으로 겸손해지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묵상함으로써 격려받고 평안을 얻게 됩니다.존 뉴튼이 노래했던 것처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랍다’는 감사와 기쁨의 찬양이 저절로 나옵니다.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주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속에서 보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의 평화, 힘, 기쁨도 더해갑니다.그리하여 그 말씀 속에 보여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 받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자녀의 삶을 힘쓰게 됩니다.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 받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참 목적과 이유입니다.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앎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변화가 따라옵니다.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나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합니다.  

성경과 기독교의 진리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왔지만 그것들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않았다고 말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이 성경의 메시지를 통해 나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고,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이 매우 낮아지는 것을 발견합니다.나의 죄와 죄책과 연약함과 무지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말씀하셔서 나 스스로 절망적이고 무력하다고 판단하며 그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십니다.  그리고 겸손히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십니다.이것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첫 걸음입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은 나에게 그분의 마음을 열어보이시며 나와 친구가 되시고 나와 교제를 나누십니다.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언약의 대상자로 삼으셨고 친구가 되어주신 것처럼, 나를 어두움과 두려움의 세상에서 불러내어 평안으로 인도하며 내 인생의 여정에 늘 함께 동행하는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이처럼 좋은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은 그들의 역사 속에서 너무나 많은 세월 동안 그리고 셀 수도 없이 많이 하나님을 오해하며 살아왔었습니다.하나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던 이스라엘의 영적 교만은 도리어 하나님을 슬프게 하였고 분노하게 하였습니다.자녀가 아버지를 알고, 아내가 남편을 알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되 겉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속속들이 알고 믿고 순종해야 마땅했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수시로 아버지를 떠났으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들을 찾아갔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댐이라’(호4:1-2)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이스라엘의 영적인 교만은 이처럼 큰 오해를 낳고 도리어 두려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여러 예언서를 읽으며 또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이스라엘은 줄기차게 하나님을 등지고 다른 신을 찾아 떠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오해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아니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조차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무섭게 벌주시는 분이며, 죄인들을 무자비하게 지옥에 던져넣는 공포의 신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만 알고 있습니다.혹시라도 벌 주실까  두려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멀찍이 거리를 두고 따라가고 있습니다.그러다 보니 교회를 오래 다녔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체험할 기회도 없습니다.과연 하나님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무조건적인 사랑의 신으로만 이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만 아는 것도 불행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여 내가 어떻게 살든 상관이 없이 하나님은 결국 나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용서하신다는 오해는 더 위험한 지식이 되고 맙니다.한 번 예수를 믿으면 그 다음에 어떤 죄를 범해도 사랑으로 용서하신다는 잘못된 지식은 하나님의 사랑을 오용하고 남용하게 만듭니다.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무시하며 삽니다.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이스라엘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교만하고 버릇이 없는 백성으로 전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편애하는 분, 불공평한 신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사랑하고 타민족은 미워하시는 분으로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아 마땅하였습니다.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선택하셨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모델로 보여주시며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겔33:11)  우리가 에스겔서를 읽으며 찾아보았던 하나님의 사랑입니다.세상을 위해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일까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천국에 있는 의인 열 사람을 보시는 것보다 더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과거의 죄를 잊으시며 그 의를 보고 구원하시지만, 의롭다 하는 사람이 의를 버리고 죄를 범하면 그 사람은 그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라도 하나님을 버리고 죄를 범하면 그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이며, 이방인들이라도 그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움이며 사랑입니다.여기에 하나님의 불공평함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평함을 불평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신 말씀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잘 나타난 구절입니다.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은 죄가 없이 깨끗하고 완전한 세상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멸망하게 될 세상이었습니다.사람의 노력이나 스스로의 선행으로는 구원을 얻을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셨고 그 아들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이것은 한 없이 마음이 넓은 하나님의 공평함이지 죄인들이 불평하는 불공평일 수 없습니다.하나님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의 불평입니다.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자에게 ‘너는 음란한 아내에게 장가들어 음란한 자식들을 낳고 살아라.네 아내가 너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가거든 찾아가 데려오고, 또 달아나면 다시 찾아가 값을 주고 데려와 사랑하며 살아라’ 하셨습니다.하나님의 명령대로 호세아 선지자는 고멜이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비극적인 결혼생활을 하였습니다.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생활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장가들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음란한 고멜처럼 다른 신들을 찾아가 음란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되찾아오시며 ‘너는 내 백성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내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나와 어떤 관계를 가지시는 분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나를 보호하고 필요할 때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 나의 필요를 채우시는 신들 중의 한 분이신가?하나님을 오해했던 이스라엘은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쉽게 떠났고 또 다른 신들을 찾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찢으심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고난을 받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말하기를, 1절-3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어려울 때 앗수르에게 찾아가고 애굽에게 손을 벌렸던 이스라엘이 비로소 하나님만이 진정한 치료자이심을 깨닫고 돌아가자 하는 고백입니다.이 사람들이 전에는 하나님을 잘 몰랐다가 이제야 하나님이 변함없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고난을 허락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픔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이제까지 그들은 하나님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주시는 분인 줄 오해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더 많이 아플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병든 자리를 정확하게 진단하시고 깨끗하게 치료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자 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4절-6절을 또 읽어봅시다.‘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리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고난을 당할 때 정신이 들어 하나님을 찾고 돌아오겠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을 힘써 알자고 외치는 백성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못미더우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자는 외침이 있지만 잠시 보이다 사라지는 아침 구름이나 이슬처럼 언제 마음을 바꾸고 돌아설지 알 수 없는 백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받아주십니다.  깨달음을 위해 따끔한 징계로 벌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치료하시고 싸매시며 살리시고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입술로만 아니라 마음 깊이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알고 진심으로 돌아오며 그 사랑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자기 마음에 편한 대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도 만족하실 것이라는 자기 중심적 신앙은 하나님의 마음과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만 갖추고 속 열매가 없는 제사를 드리고도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생각했습니다.하나님은 그것보다는 인애(긍휼)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 하십니다.
우리의 예배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아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어둠과 두려움의 밤을 지새우며 지친 영혼들에게 아침을 알리는 새벽 빛처럼 찾아오십니다.  그 빛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이 당신의 진정한 마음을 죄인들에게 열어 비추시는 자비와 사랑의 빛입니다. 여름 내내 말랐던 땅을 고르게 적시는 겨울비와 풍성한 열매를 맺게하는 봄비처럼 메마른 영혼들을 흠뻑 적시는 사랑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이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며 너는 내 백성이라 하십니다.그 부르심을 거절하지 말고 기쁨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면 내가 그분의 사랑받는 귀한 백성이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바로 정립되면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서 기도와 감사와 기쁨의 찬양이 나옵니다. 측량할 수 없이 넓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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