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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현대인의 우상 - 물질 (잠 30:7-9, 막 10: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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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우상 - 물질 (잠 30:7-9, 막 10:17-22)


10월은 종교개혁의 달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10월 한 달 동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바로잡고 영적 불순물들을 제거하는 기간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살면서 싸우고 투쟁하여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여기서의 투쟁은 싸우기 위한 투쟁이 아니고 바로잡기 위한 투쟁입니다. 잘못된 습관, 잘못된 관행들을 고치려는 투쟁입니다. 종교개혁은 개혁을 위한 개혁이 아니고 잃은 길을 회복하고 바로잡자는 개혁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한 달 동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할 일들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최대의 우상과 싸우는 일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의 가장 큰 우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앞에는 우리들이 감당하기 어렵고 모든 사람들의 정신을 빼 놓을 만큼 큰 우상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검은 것을 희게 하고 추한 것을 아름답게 하고 늙은 것을 젊게 하는 힘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또한 “늙은 과부에게 젊은 청혼자들이 모여들게 하는 힘을 가진 것”이라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돈입니다. 

이 돈이 오늘 현대인들의 최대의 우상입니다. 이 돈은 굉장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돈에 사족을 못 씁니다. 목회도 선교도 이 돈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해외선교사 파송이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인데 그것도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이룬 것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돈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돈이 사람을 압도하기도 합니다. 돈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신처럼 섬기고 떠받들게 만듭니다. 

어느 젊은이는 내가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수만 있으면 마귀에게 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섬뜩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닙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부모를 죽이는 일들이 일어나는 이 시대에 누군가에게 그런 제안해 보십시오.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이렇게 오늘은 모두 성공과 돈에 정신을 팔고 살아가는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신학에서도 일명 “돈의 신학”이라 불리는 “번영신학“(health and wealth theology)이라는 것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마태는 이 사람을 청년(마19:20)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누가는 어떤 관리(눅18:18)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젊은 사람으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바리새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께 찾아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하고 질문하였습니다. 참 좋은 질문입니다. 내용도 주제도 관심도 참 좋습니다. 사람들이 영생에 대해서 관심 갖기가 어려운 법인데 더구나 젊은 사람이 그랬다니 그는 아주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1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라고 기록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 젊은이에게 관심과 애착을 가지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젊은이에게 계명들을 지키라(19)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젊은이가 “나는 계명들을 이미 다 지켰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범상치 않은 대단한 젊은이 입니다. 젊은이가 절도가 있고 규칙이 있는 엄격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젊은이에게 예수께서 정중하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어, 네게는 너무 재물이 많아. 재물이 많으면 영생을 얻기가 어려워, 많은 재물은 영생을 얻는데 장애가 되거든, 그러니 그것을 나누어라, 구제하라, 기부하라(21).” 그랬더니 본문 22절을 보면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그냥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많은 재물은 영적인 삶을 병행하기가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을 갖게 하고 이생을 집착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특별히 말씀하셨던 것인데 그 젊은이는 예수님의 염려대로 그 벽을 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물질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질은 영적 생활을 하는데 지대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욕심을 크게 만들고 집착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영적 생활을 빗나가게 하고 외면하게 하고 영적 목표를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물질에 대해서 아주 냉철하게 지적하며 경계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나 교단이나 신앙인들이 이 물질로 인하여 많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도 물질과 재물에 대해서 아주 민감합니다. 그래서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이자 많이 주는 곳으로 몰려갑니다. 오늘 각 교단의 자금 운용 담당자들도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주는 곳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서 상담해 보면 의외로 상담자들이 성경의 원칙에 따른 투자가 좋다고 조언을 해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투자자들이 반응이 싸늘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카지노 회사에 투자하면 이자가 많다던데, 술 회사 담배회사가 수익성이 높다던데” 하며 은근히 그쪽에 투자하면 어떠냐고 반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모두가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삶의 기준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법칙과 안내와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돈이 더 벌려도 성경이 제시하는 뜻을 생각해 보고 투자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화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돈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모든 것의 주인 하나님 

인간은 소유권을 주장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내 인생을 맡은 인생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인생을 주셨습니다. 그 인생을 잘 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 올 텐데 그때 하나님은 나에게 “너는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대답하기 위해서 삶을 살아야 하는 청지기들입니다. 또 우리는 시간을 맡은 청지기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아껴서 사용해야 합니다. 게으름, 허송세월은 죄입니다. 그것은 마치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물질을 맡은 청지기들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우리에게 잠시 맡겨 놓으시고 그 물질을 선용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그 물질을 마구 사용하고 사치하는 것은 죄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십일조를 바치라고 강조합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십일조를 드린 후 나머지 90%는 내 마음대로 사용해도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나쁜 데만 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물질은 하나님이 내게 맡겨 놓으신 것이라는 청지기 정신에 따라야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부작용이 바로 사치와 과소비입니다. 이 사치와 과소비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사치나 과소비는 인간의 정신과 생활과 의식과 마음과 신앙을 병들게 합니다. 

과소비로 인해 병들고 실패한 인생을 산 사람의 대표가 바로 솔로몬입니다. 열왕기상 10장을 보면 솔로몬은 왕궁을 꾸미기 위해서 외국으로부터 사치품들을 무작위로 수입했습니다. 그 사치품들의 품목들이 “향품, 금은보석, 백단목, 상아, 원숭이, 공작, 갑옷, 말, 노새 등등”이었습니다. 또한 나중에는 금을 수입해서 그 금으로 방패를 만들고 무기를 만들었습니다(10:14). 그리고 자기 보좌를 금으로 입혔고 왕궁의 식기들조차도 모두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찌감치 금을 많이 쌓아놓지 말라(신 17:17)고 하셨습니다. 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허황되게 만듭니다. 정신을 현혹합니다. 솔로몬은 그 명령을 어겼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니까 백성들도 따라서 타락하여 온 나라가 사치와 과소비로 물들어 갔던 것입니다. 정신이 병들고 생각이 병들면 사치는 더 과감해집니다. 솔로몬은 마침내 애급에서 말을 수입했습니다. 또한 외국에서 여인들까지 수입해 왔습니다(왕상 17:6-17). 

외국에서 여인들을 수입해오면 여인들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그 나라의 우상들도 따라서 들어왔습니다. 그 결과 나라에 우상이 넘쳐나게 되고 영적으로 음란하게 되어 결국 나라 전체가 영적으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말기에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한지 겨우 50년 만에 아들 솔로몬이 그 나라를 남북으로 두 쪽으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물질 앞에서 청지기적 의식이 서 있지 않으면 이렇게 타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물질에 대해서 아주 무섭게 경고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인생도, 내 생명도, 내 몸도, 내 영혼도, 내게 주어진 물질도, 내 자식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주신 것을 지키고 선용하도록 부름 받은 청지기들입니다. 우리는 이점을 주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물질 때문에 시험 들지 않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치하고 과소비하려는 내 인간적 마음과 심각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경건한 신앙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부자되기 원치 않으심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부자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가난에 찌들어 살고 동정 받는 삶을 원치도 않으십니다. 그래서 잠언 30:7-9절을 보면 “우리로 부하게도 마시고 가난하게도 말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부하면 하나님을 부인할까 함이요 너무 가난하면 하나님을 잊을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부자 되게 하신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성경구절을 잘못 해석해서 부자 되게 하신다는 오해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성경이 시편 37편의 말씀입니다. 4절을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네 소원을 이루시리라”고 하십니다. 

여기 “네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시리라”에서 “마음의 소원대로”는 나로 하여금 성공하고 부자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에 나오는 소원은 “내가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이 내 삶에 임재하시기를 원하는 소원”을 뜻합니다. 본문은 그 소원을 이루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또 역대상 4장 10절을 보면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소위 야베스의 기도입니다. 거기에 보면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땅을 넓게 하시고 나로 부자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뜻이 아니고 “나로 하여금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이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또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7장 7절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는 구절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물질을 구하면 채워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물질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중에 물질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때로 물질을 주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물질은 영적인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 주신다는 것이 물질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겠다고 약속은 하셨는데 우리에게 부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부자가 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아주 쉽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자가 되게 해 주시면 헌금을 많이 하고 선교헌금도 많이 하면 좋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우리 인간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매부 좋고 누이 좋고 식입니다. 그래서 나도 좋고 하나님께도 좋지 않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편의적으로 생각하시지 않으십니다. 선교헌금은 꼭 부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부하다고 다 하나님께 선교헌금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가난하다고 선교에 무관심하거나 선교헌금 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하거나 가난하거나의 문제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문제는 돈을 가지면 탐욕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 탐욕 앞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물질 때문에 타락하고 탐욕하게 되는 것은 물질을 마음대로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 탐욕은 마침내 그 사람을 올무에 걸리게 만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이 무섭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는 경고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물질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 앞에서 탐욕으로 우상이 될 것임을 경고한 것입니다. 

성경의 제안 

그래서 성경은 물질을 사용하는 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족하라, 구제하라 나누라는 제안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이 영생을 질문하던 젊은 관원에게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종말 때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족과 구제,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물질 사용법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생활은 나 자신부터 철저하게 자족하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 생활에 침해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 때문에 시험 드는 일이 없도록 물질 관리에 신중하고 탐욕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시대에는 이자 받는 것까지 반대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각 지파들이 모두 내 형제들이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이자를 받으면 탐욕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 탐욕이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은 이 비싼 이자 때문에 욕망의 덫에 걸립니다. 사채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중학생들도 학교에서 사채놀이를 한다고 합니다. 

어느 학생은 만원 빌리고 15만원을 갚았다고 하니 오늘이 비상식의 시대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투기를 조심해야 합니다. 주식에 한번 투자하게 되면 온 정신이 거기에 몰두하게 되고 깊이 빠지게 됩니다. 그 때로부터 내 마음, 생활, 관심, 삶과 목적 전체가 그 주식에 매이게 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주식에 따라 울고 웃게 되고 하루 종일, 잠을 자도, 예배 시간에도 정신이 모두 거기에 쏠리게 됩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구약시대에는 물질관리 방법으로 구제에 힘쓰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제가 이기적인 삶을 버리게 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구제가 하나님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삶을 실천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예수님은 젊은이에게 나누라고 하신 것입니다. 벤 위더링턴(Ben Witherington) 이라는 사람이 “예수와 돈”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오늘의 신앙인들이 물질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몇 가지로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과소비문화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수품과 사치품이 무엇인지 목록을 정해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구제에 힘쓰고 직접 사역현장에 뛰어가 보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재물이 충분히 있다면 나머지는 하나님 일에 헌신하라고 권고하였고 넷째는 돈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희년을 선포하고 희년에는 과감하게 빚을 탕감하고 무이자로 빌려줘 보라고 제안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싸워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가장 먼저 싸워야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탐욕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적 생활이 깊어지고 맑아지며 신앙이 순전하게 깊어질 것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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