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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과 아비가일 (삼상 25: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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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아비가일 (삼상 25:32-35)
 
분노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사울 왕이고, 사울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종종 두 사람의 품성은 대비됩니다. 사울 왕은 시샘이 많고 교만하고 화와 분노를 잘 내는 사람입니다. 정서적으로 Up & Down이 수없이 반복되어서 옆에서 그것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에 비해서 겸손한 사람, 온유한 사람, 때에 따라서 담대한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다윗의 이러한 좋은 모습들이 아니라, 혈기를 부리고 화를 내고 분노하고 남을 향해 복수의 칼을 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혈기를 제어하는 것입니다. 분노할 때 분노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절제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인간이었던 아담이 범죄할 때에도 혈기 때문에 범죄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나도 하나님처럼 자유가 있다!’고 하면서 덥석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가인이 첫 번째 살인자가 된 것도 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자신의 제사는 받아드려지지 않고 동생의 제물만 받아진 것을 보면서 그에게는 욱하는 혈기가 돋아났습니다. 하나님께 원망할 것을 옆에 있는 동생에게 혈기를 분출한 것이 곧 첫 번째 살인이었습니다. 성경에 위대했던 인물들이 왜 순식간에 무너지는가를 살펴보면 혈기와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잠언 14:17) 

이 세상에 노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빨리 노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화를 낼 때 셋까지만 세어도 많은 것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더 오래 참는 사람은 열 까지를 셉니다. 대부분의 화는 다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전도서 7:9) 

급한 마음을 가지고 화를 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왜 화를 내면 미련하게 될까요? 화를 내는 순간 모든 생각이 차단되기 때문입니다. 분별력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면 그 속에는 혈기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노할 때 자기통제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성숙한 모습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윗은 오랫동안을 초조하게 보냈습니다. 울적한 마음으로 답답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기 때문입니다.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안식처가 없었습니다. 금방 해결될 줄 알았으나 여러 해가 지나면서 다윗도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또 이런 사건이 발생합니다. 인생의 멘토요 영적 스승이었던 사무엘 선지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그에게 들려왔습니다. 아주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자기의 영적 후원자였던 사무엘이 이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은 이 사실을 가르쳐주고 다윗이 어떤 상태에 들어갔는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사무엘상 25:1)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요, 애국자요, 선지자요, 영적 아버지이며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을 약속했던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그의 마음도 슬펐을 것입니다. 온 국민이 애도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장례식에조차 찾아갈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울 왕이 그를 끊임없이 추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아라비아 반도 최남단에 있는 바란 광야로 피신합니다. 그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후에 또 하나의 사건이 사무엘상 25장 4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충격적인 보고를 받았습니다. 자기 아내를 사울 왕이 도로 빼앗아서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 (사무엘상 25:44)

다윗에게 허락했던 딸을 빼앗아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버리게 했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스승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그는 이 가운데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나발은 다윗의 사람들을 모욕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운명의 장난에 자기의 삶을 그냥 맡겨두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재기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란 광야에 있다가 자기가 옛날에 머물렀던 마온이라는 마을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은 부자 나발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던 마을이었습니다. 다윗을 좋아해서 따라다녔던 인물들이 약 600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먹을 양식이 부족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부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때는 양털을 깎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양털을 깎는 그 시기에 목자들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이웃들도 초청했습니다. 다윗은 자기도 이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목자들을 옆에서 돌보아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발이라는 부자에게 양식을 구했다가 아주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도 모욕을 당하고 자존심을 짓밟히면서 거부당했던 일이 본문에 중요한 사건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어떻게 나발이 다윗의 사람들을 욕했을까요?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사무엘상 25:10~11) 

“이들에게 줄 수가 없다. 다윗이 도대체 누구냐? 도대체 이새의 아들이라고 행세하는 자가 누구냐? 요새 주인을 떠난 배반자들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데 출처도 알 수 없는 이런 부랑뱅이들한테 내 목자를 위해서 준비한 양식을 줄 수 있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발이 정말 몰랐을까요? 나발은 다윗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눈치를 보았을 것입니다. 사울 왕이 아직도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을 보니 도망자였습니다. 몰골이 우스웠습니다. 다윗을 얕잡아 보고 무시했습니다. 어쩌면 더 강력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22장에 보면 다윗이 놉이라는 곳에 가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에게 먹을 것을 얻어먹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사울 왕에게 이것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사울 왕은 분노하였고 그곳에 있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을 몰살시켜 버렸습니다. 나발은 다윗에게 좋은 일을 행하면 자신에게 해가 미칠 것이라고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을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다윗의 남루한 모습은 떠돌아다니는 부랑자와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발이 놓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다윗이 거절당했을 때 다윗의 마음에는 욱 하는 혈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나발을 그대로 놔두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발이라는 말은 미련한 자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그를 미련하게 하겠다고 다윗이 결심합니다. 그 집안 남자들의 씨를 말리기로 작정하고 400명이나 되는 군사를 무장시켜서 그의 집안과 마을 정벌에 나섰습니다. 그가 쌓아놨던 멋진 용사, 온유한 지도자의 이미지가 무너질 위기 속에 처하게 됐습니다. 바로 이때 등장한 것이 본문에 나오는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입니다.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이 어떻게 흥분하여 펄펄뛰었던 다윗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을까요?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에 모습을 성경은 용모가 아름답고 총명하며 지혜로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이 자기 남편이 다윗을 무시하고 조롱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윗이 격분해서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다윗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여러분, 이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놀라운 지혜가 있었습니다. 남자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남자의 마음을 조금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참으로 다릅니다.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특별히 자존심 때문에 생명을 거는 것이 남자들의 생태적 본질입니다. 자존심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격분해서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이 여인은 직감적으로 위기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요청한 먹고 마실 것을 풍성하게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 여인의 첫 번째 지혜였습니다. 또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다윗을 지금 누구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남편을 살리고, 가문을 살리고, 모든 남자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는 길은 다윗 앞에 바짝 엎드리는 겸손보다 더 큰 겸손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두 번째 지혜였습니다. 세 번째는 이것입니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잘못한 것에 대하여 과감하게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잘못입니다.”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사무엘상 25:24)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종입니다. 당신은 주인입니다.” 그리고 그 발에 바싹 엎드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의 죄악을 그에게 돌리지 말고 내게로 돌리시옵소서. 그런데 한 가지 말씀만 듣고 하옵소서.” 그러면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네 번째 지혜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나발을 향해서 외치고 싶었던 말, “이 멍텅구리야! 이 못난이야!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감히 나를 화나게 해?” 라는 말을 이 여인이 다윗의 마음으로 그의 앞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것입니다.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사무엘상 25:25)

다윗의 화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다윗의 상처 난 자존감을 다시 회복시켜주려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당신이 화난 것은 맞습니다. 당신이 그를 향하여 미련한 자라고 욕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고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입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이 보지 못했던 다윗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외적의 모습은 초라했습니다.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미래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 사람이 사울 왕 대신에 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윗이 생각하고 있었던 바를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다윗의 집을 하나님께서 세워줄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싸워줄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 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남자들의 자존감을 세워줄 수 있는 여인은 복 받은 여인입니다. 남편의 자존감이 상처를 받았을 때 남편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여인은 참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무엇보다 남편이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가르쳐주는 여인은 축복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사무엘상 25:28)

“당신은 하나님 편에 서있군요. 아니, 하나님께서 당신 편에 서있군요. 당신을 위해서 싸우시는 군요.” 자신의 남편과 달리 하나님의 섭리가 다윗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이니 함부로 칼을 놀려서 사람들의 피를 보지 말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또 다른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웠습니다. 쫓겨 다니면서 언제 생명이 끝날까, 내 인생이 어떻게 될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이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보존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언자와 같습니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사무엘상 25:29)

지혜로운 여인을 아내로 맞으십시오

다윗은 지금 진노하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몇 가지 말을 듣고 나니 다윗의 혈기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분노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인을 향해서 예찬합니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사무엘상 25:33)

“너 때문에 내가 피를 안 흘리게 되었다. 내가 분노하는 마음으로 복수하려던 것을 네가 막았구나. 너는 지혜로운 여인, 총명한 여인이다. 넌 복 받은 여인이다.” 그렇게 이 여인을 예찬합니다. 이후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 여인의 남편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다윗은 지체하지 않고 이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정중하게 초청합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다윗의 아내가 되어 왕비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복이 무엇일까요? 남자가 소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많은 소원이 있지만 가장 큰 소원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혜로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총각들이 있습니까? 그럴 것입니다. 결혼한 분들이 계십니까? 지금 내 아내가 바로 그러한 지혜로운 여인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잠언 31:10)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잠언 14:1)

어떤 보물과도 내 지혜로운 아내와는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남편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자녀들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민족을 세우는데,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아내가 되십시오

남자들이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곤고합니다. 살벌한 경쟁 터에서 피 흘리는 고통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사랑하는 아내에게 위로받기를 원합니다. 바깥에서 상처를 받아서 때로는 집에 와서 한번쯤 큰 소리를 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쳐봅니다. 그런데 그때 아내의 마음속에 ‘아니, 당신만 스트레스 받았나? 나도 얼마나 집에서 스트레스 받았는데!’ 하면서 같이 큰 소리를 치면 어떻게 될까요?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아내로부터 한두 번 거절을 당합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바깥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어디로 갈까요? 술집으로 갑니다. 돈을 주면 애교부리고 아양을 떠는 여자들을 만납니다. 그것이 죄인 줄 알면서도 그리로 들어갑니다. 남자들이 집에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고 봉급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아내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습니다. 금의환향하는 사람처럼 남편을 맞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이 왜 저렇게 큰 소리를 치는지, 남편이 왜 아파하는지, 남편이 왜 신음하는지, 남편이 왜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지 아내가 받아주지 아니하면 남자들은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마치 막대기와 같습니다. 한번 뚝 끊어지면 다시 회복이 잘 되지 않습니다. 남자가 혈기를 부릴 때 여자가 같이 혈기를 부리면 안 됩니다. 오히려 진정시켜야 합니다. 남자가 실망하고 낙담하면 여자들이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에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아는 아내, 내 심정을 이해하는 아내를 만나면 남자들은 등에 아내를 업고 뛰기도 합니다. 춤추기도 합니다. 남자들은 단순한데가 있습니다. 

아내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남자의 마음, 남편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남자는 자존감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상처 난 자존감을 아내들이 회복시켜주셔야 합니다. 또 두 번째 부탁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우리 가정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 당신이 아닙니까? 함께 기도하면서 우리가 다시 일어납시다.” 라고 용기를 불어주고 힘을 불어주고 격려해주는 아내, 그런 여성이 되십시오. 그래야 회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한테도 그랬습니다. 남편이 잘 못하는 것 같으니까 자녀들만 붙잡고 있습니다. 남편이 나가는지 오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남편이 오면 벌떡 일어나서 문 밖으로 나가세요. 수고했다고 등 두들기고 껴안아주세요. 그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집에 가서 당장 실험해보세요. 남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정말 힘들겠다고 당신 우리집안의 최고의 소중한 존재라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그러면 남자들이 그 아내를 정말 보석과 같이 보배와 같이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상처받고 고개 숙이고 사는 남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내들이 자존감에 상처를 싸매주고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선언하고 자녀들에게도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네 아빠가 우리 집에서는 최고야!”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집에 남편이 있는데 아이들한테 네가 최고야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아내를 어떤 남편이 좋아하겠습니까? “네 아버지가 최고야.” 라고 말해야 아내가 최고가 되는 것이고, 그래야 자식들에게도 존경받는 가정이 되고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축복을 결코 놓치지 마시고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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