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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이것이 교회다 (계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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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교회다 (계 1:9-20)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룸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아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
. . .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 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지나온 길이 있다!
어떤 사람이 드넓은 태평양 한가운데서 난파를 당해 황량한 무인도에서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멀리 지나가는 배를 보게 되었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미친 듯이 손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였습니다. 결국 그를 발견한 배가 섬을 향해 다가 왔습니다. 배에서 내린 선장은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질문을 했습니다. 
“저기 오두막이 왜 세 채나 됩니까?”
“저쪽에 있는 건 제 집이지요.”
“그럼 그 옆에 있는 건요?”
“그건 제가 다니는 교회랍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 옆에 있는 건요?”
“아, 그건 전에 다니던 교회죠.”

여러분들에게 교회는 어떤 존재입니까? 사실 이 곳에서 만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교회에서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전교회와 지금의 만나교회가 어떻게 다르며 여러분들이 여기에 앉아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혹 또 여러분들의 삶에서 다른 교회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립 30주년을 맞이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많이 묵상했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가고 있느냐?를 심각하게 묻도록 하셨습니다.

요즘 저에게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느냐? 가 아니라, 이 교회가 왜 이 시대에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여러분들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 교회들은 단순히 고유명사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모든 교회들이 안고 있는 일반적인 교회의 특성들을 다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함께 공부하면 우리 교회를 향한 아주 선명한 하나님의 기준과 방향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요즘 제가 탐독한 책이 하나 있습니다. 옥한음 목사님의 [평신도를 깨운다] 개정판입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초대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역동성이 종교개혁을 중심으로 소극적이고 방어적이 되었는가?
다른 하나는, 왜 교회에서 평신도와 목회자를 구분하여 평신도 사역을 스스로 소극적 만들고 있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하여,
초대교회는 선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동체요, 전도와 선교는 교회의 생명력에 관한 문제였던 반면, 개혁시대에는 전도대상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더 이상 예수를 믿지 않으면 박해받던 시대에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였다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가 무엇이냐?"는 본질의 문제는 시대적으로 다른 요청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시대마다 물음에 답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만나교회의 역사를 바라보며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셨던 비전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게 됩니다. 
만나교회가 광야와 같은 벌판에 천막을 치고 개척을 하던 때가 1981년입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많은 혼란과 고통을 경험하던 시기에,
광야에서 맛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의미로 "만나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진)
그 때 상징적인 성구가 두 개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곳곳에 붙어 있지요.

마태복음 11장 28절,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은 28장 20절
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당시 만나교회는 쉼이 필요한 사람에게 생명의 만나를 제공해 주고, 그 말씀을 가지고 세상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교회 였습니다. 당시 김우영 목사님은 유명한 설교가 였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나교회가 분당시대를 맞이하던 때, 한국사회 현상과 맞물려 경제발전과 더불어 대형교회의 건물이 지어 졌습니다. 당시에 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건물이 지어지면서 우리들의 삶의 부흥을 꿈꾸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고백하는 것은 당시 교회를 지으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그 헌신으로 인하여 많은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표어가 있습니다.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이제 이 큰 건물에 교인들이 모여야 하는 이유를 말해야 했고, 모여진 사람들이 흩어져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김우영 목사님은 교회에 장례식장을 만들려고 시도했고, 의대생들을 공부시키며 종합병원을 꿈꿨고, 호스피스를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모세의 시대와 여호수아 시대로 표현하는데, 그 꿈을 바라보면서 그 다음 사역을 남겨 놓고 김우영 목사님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다음 세대에서 만나교회는 "교회중심적 교회와 하나님 중심적 교회"를 구별하며 사역에 중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교회 건물이 중심이었다면, 이제 이 건물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세대를 위한 공간에 투자를 하고, 아직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예배 공동체를 통해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경험하도록 예배 사역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5번의 다른 예배, 그리고 변화산을 통한 새벽기도 운동은 만나교회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역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지요. 
비전 선언문, 7개의 핵심 사역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해 하나님께서는 만나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떤 의미가 있는 교회인지,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말씀을 가지고 아버지, 예수님, 성령님과 연관이 있는 풍성한 열매가 있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걸어온 만나교회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성경에서 사람들을 구별하는 조건은 단 한가지 라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과" 하나님의 자녀"만이 존재합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신분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일 뿐, 단지 기능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오순절 이후의 본래 교회는 성령을 받은 평신도들의 변화된 삶의 모습이었을 뿐입니다. 세상은 평신도를 보면서 교회를 알게 됩니다. [평신도를 깨운다]에서 옥한음 목사는 로렌스 경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평신도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교회답게 보이는 건물과 그들 보기에 성직자답게 성장한 목사와 평소 몸에 익은 스타일대로 드리는 예배를 원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교회가 그들 혼자 가만히 있게 내버려 두어 달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여기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회의 위기가 여기에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시는"주님이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낸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교회에서 교인들이 살아가야하는 신앙의 본질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며 우리의 만족을 추구해 왔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교회, 원하는 예배, 원하는 목회자들을 바라보며 단 하루에 위안처로 삼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50년 전 영국에 가득 찼던 교인들이 사라져 버리고, 미국의 주류교단의 교회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단지 수십 명의 사람들이 텅빈 교회를 지킬 뿐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느냐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빈자리만이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보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평신도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역동성입니다.
70년 대 통계에 의하면 한 해에 교회가 수천 개가 세워졌던 때가 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교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93-97년까지 우리나라의 장 차관으로 임명된 인사들 중에 기독교 신자의 비율이 67.8%에 이를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한국 사회는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심지어 시미니 질서에 이르기 까지 점점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의 초대교회 공동체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그 곳에 모인 교인들의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함께 7주 동안 여행할 7교회를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이 가졌던 문제와 해결책이 무엇이었는지 함께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지도와 간단한 특징들 사진 보여주기)
1. 에베소
2. 서머나
3. 버가모
4. 두아디라
5. 사데,
6. 빌라델비아
7. 라오디게아

가야할 길이 있다!
오늘 본문으로 조금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음 주부터 7주 동안 심도있게 다룰 내용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그 교회의 특징에 맞게, 그 교회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때로는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고, 때로는 불꽃같은 눈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마지막 절에 있는,
"오른 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고 보냈던 편지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교회에 모두 하나님의 사자가 갔다는 것이며, 아직은 살아 있는 교회에 대하여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살펴 보겠지만,
일곱 교회에 동일한 메시지는 처음 신앙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처음 신앙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일곱교회가 당하는 고난과 박해는 처음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 교회가 세워지고 박해를 받던 예루살렘 교회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당하는 모든 문제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계시고,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시고,
여전히 사단은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고 있으며,
여전히 하나님은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만나교회의 비전이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먼저는 바로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 교회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가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훈련받지 않은 사람,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신앙인은 이 세상에서 근심거리가 될 뿐입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 말씀을 보세요.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한심한 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입니다. 
요즘 저는 젊은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을 보면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중진 국회의원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장로님인 이 분이 하루는 국회 기도실에 갔을 때, 컴컴한데서 흩어져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답니다. 서로 당은 다르지만 기도하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이념이 아닌 신앙공동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들의 신앙으로 바꾸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요즘 저는 젊은이들을 이 세상에서 힘 있게 만드는 일에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서 기업을 하고, 살아남는데 세상 방법이 아닌 신앙을 가지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세상방법을 쓰지 않고 계약이 이루어지고, 기업이 되고,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힘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 만들어가기 위해 "제자훈련"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창립 3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 땅에 존재하는 힘 있는 평신도를 만들지 않으면, 이 교회도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김동호 목사님이 저에게 편지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은행 같은 교회"가 되자고 말입니다. 
한국 은행이 다른 은행들을 위해 있는 것처럼,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되자고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많은 재산을 자랑할 때, 우리는 가진 것이 없는 것을 하나님 앞에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재산을 사회에 내놓고, 
다른 교회를 위해서 교회의 소유를 나눠주고,
조금은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일어 났으면 좋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재산을 가지려고 싸우는데 우리는 안 가지겠다는 데 싸움이 되겠습니까?
세상은 권력과 명예를 가지겠다고 바둥바둥되는데 우리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데 상대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월드 휴먼 브리지를 만들어 주신 이유,
하늘다리 호스피스를 만들어주신 이유,
사무엘 학교를 시작하게 하신 이유,
제자 양육을 시작하고, 나무공동체를 만들어 주신 이유를 다음 세대가 분명하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큰 교회가 아닌 좋은 교회, 좀 바보처럼 돈을 쓸 수 있는 교회,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자랑스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의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책에서 "서툰 사람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박광수 씨의 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사랑, 그 미친 짓'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좋은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나쁜 것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기가 힘들어집니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 가게도 가기 힘들고, 일요일에 좋아하는 야구를 하는 것도 눈치가 보입니다. 쉬는 날 늘어지게 낮잠 자기도 눈치가 보입니다. 오랜 친구들과 마주 앉아 밤늦게 소주 한 잔 기울이는 일도 힘들어집니다. 일도 손에 잘 안 잡히고, 생활 리듬도 깨지기 일쑤이지요. 어디 그것뿐입니까? 늘 조바심으로 마음을 애태우고 전에 없던 의심병도 생깁니다. 혼자 있을 때보다 지출도 많아지고, 훌쩍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은 더더군다나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사랑이 끝날 땐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그 미친 짓을 또 해? 그런데 우리는 아무래도 진짜 미쳤나 봅니다. 그런 굳은 다짐을 잊은 채 또 사랑에 빠져드니 말입니다."

아마도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 미친 짓이 이해가 되지 않을까요?
적어도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좀 미친 것 같은 그 일이 얼마나 귀한지 이해가 가지 않을까요?
결코 편한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을 꿈꾸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비전을 꿈꾸는 교회가 교회입니다.

성경에는 참 멋진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히브리서 11장 8절에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 대하여 증거 하는 것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단지 우리가 믿는 것이 있다면, 우리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이라는 사실, 부르심에 응답하면 과실을 맺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을 뿐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의 말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교회의 핵심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게 하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교회가 할 일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는, "나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이 이렇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에게 꿈이 있다면 강단에서 이렇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저 보다 교회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겠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없다면 따라오십시오!" 혹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것이 불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를 생각하십시오.
그는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비결이 중요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기도할 때, 100% 하나님을 신뢰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기도는 하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것이지만, 문제에 대한 해답을 100% 하나님께 일임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사명을 놓고 고민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명을 놓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언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쉽게 포기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무슨 일을 하든지 기쁨이 우선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말씀가운데 하나가 시편 37편 4절의 말씀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여호와를 기뻐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 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언젠가 읽었던 존 맥스웰 목사님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를 해서 결혼한 목사님은 그 당시 집에서 맡은 일 중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설거지였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도망가서 데이트를 하는데, 공교롭게도 여자 친구의 집에 가면, 그 친구 역시 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가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지 않으려고 도망가서는, 주저 없이 여자 친구 옆에서 설거지를 했지만, 그 설거지는 즐거움과 기쁨의 설거지였다. 즉 목사님에게 이 여자는 기쁨의 대상이 되었기에 가장 하기 싫었던 설거지가 기쁨이 된 것이다.

여러분들의 가장 하기 싫었던 일들이, 우리가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교회입니다. 바로 그런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고, 끝까지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풍성한 열매입니다.
(김병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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