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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주 하나님 (창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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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 (창 1:1)

박봉수 목사님은 창조신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도미노로 설명합니다. 도미노 게임을 생각해 보세요. 일정한 간격으로 도미노 블록을 세워놓습니다. 그리고 제일 앞의 도미노 블록을 쓰러뜨립니다. 이것이 쓰러지면서 두 번째 블록을 쓰러뜨립니다. 이것은 또 쓰러지면서 세 번째 블록을 쓰러뜨립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진행되면서 전체 도미노 블록을 다 넘어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제일 첫 번째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바로 창조신앙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첫 번째 도미노입니다. 이것이 쓰러지면 하나씩 차례로 쓰러지게 되고 마지막까지 모든 것이 다 쓰러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진화론의 위험이 바로 이것입니다. 첫 번째 도미노인 창조신앙을 흔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쓰러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 심령 속에 이 창조신앙이 쓰러진 사람들은 기독교 세계관이 하나씩 쓰러지고 있고, 결국에는 모든 기독교 세계관이 다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들이 될 것입니다. 인본주의자들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조신앙을 철저하게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이 창조신앙을 지키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을 지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천지만물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우연히 천지만물이 만들어 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우연히 아메바가 만들어졌고, 아메바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정말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세탁기에 쇠를 넣고 100만년을 돌리면 시계가 만들어집니까? 모래를 억만 년 놓아두면 우연히 집이 지어집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하찮은 것들도 누군가가 만들어야 되는데 이렇게 광대하고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세계가 어떻게 우연히 생겼겠습니까? 우주만물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이 우주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1장에 계시된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있었던 것처럼 6일 동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자연만물이 차근차근 만들어졌습니다.
   
오늘 설교는 창조주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좀 더 자세하게 나누겠습니다. 
 
1. 전능하신 하나님 
   
히브리인들이 사용했던 창조라는 단어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바라’ 창조가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말합니다. 아무런 재로도 없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창 1:1에서 사용된 단어가 바로 ‘바라’입니다. 둘째, ‘아사’창조입니다. 이 말은 준비된 무엇인가를 개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나무를 가지고 의자를 만든다든지, 철을 가지고 칼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야차르’입니다. 이 말은 모델을 앞에 놓고 그 형상을 본 따서 만드는 조각가의 작업을 의미합니다.
   
‘아사’ 창조나 ‘야차르’ 창조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창조입니다. 나무를 가지고 의자를 만드는 일이나 모델을 보고 조각품을 만드는 일은 작품성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바라’ 창조는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창조입니다. 이 창조는 천사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전능성을 연약한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셔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창 1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1년이 지나면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아브람의 아들을 낳을 것이고 아브람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민족을 이룰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아브람의 나이가 99세였고, 사래는 89세였습니다. 사래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고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아브람이 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1년이 지난 후 사래가 아브람의아들 이삭을 낳게 하셨고 말씀하신대로 이삭의 후손들이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출생과 민족의 형성을 통해서 전능하심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의 구원입니다.
   
마 19장에 보면 한 부자청년이 주님을 만났으나 재물 때문에 주님을 따르지 못하고 떠나간 사건이 나옵니다. 그 청년이 주님을 떠나간 후에 주님께서는 부자가 천국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 몹시 놀랐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부자가 구원 받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죄인 되었던 우리들이 구원을 받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구원 받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구원이 불가능한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2. 공동체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은 공동체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일하시지 않고 함께 일하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엘로힘’을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창 1:1에서도 ‘엘로힘’을 쓰고 있습니다.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입니다. 그래서 엘로힘은 문법에 맞게 해석을 하면 ‘하나님들’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들’로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해석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부하나님은 창조의 역사를 이루실 때 성자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성령하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하나님 혼자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아들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공동체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신앙생활도 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여 광야를 통과하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의 구원과 천성을 향해 가는 과정과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광야생활 그리고 가나안입성을 개인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했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공동체적이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몸으로 성도를 지체로 비유하셨습니다. 이 비유 역시 신앙생활은 공동체성이 중요함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지체도 몸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손가락이 잘리면 잘린 손가락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몸에서 떨어져나간 손가락은 움직인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서 떨어져나가서 꿈틀거릴 때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동일한 것입니다. 몸된 교회가 없는 신앙생활은 불행입니다. 몸에서 이탈된 지체가 죽는 것처럼 몸된 교회에서 이탈된 신앙은 영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질서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최고의 권위는 성부하나님에게 있었습니다. 성자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은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셨습니다.
   
요 12:49에 보면 성자하나님은 자의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주님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만 말씀하셨고 행하셨습니다.
   
요 16:13에 보면 성령님도 스스로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님도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만 말씀하셨고 행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공동체로 완벽하게 조하를 이루며 사역하실 수 있는 것은 ‘나’를 내려놓고 ‘우리’ 안에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공동체 안에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려면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이 사용하신 비유 중에 으깬 감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감자들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자들이 한 자루 안에 있다고 하나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감자를 깍두기처럼 썰어서 한 통 안에 넣으면 하나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감자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감자를 삶아서 으깨고 덩어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자는 한 덩어리가 됩니다.
   
우리들의 모습 속에는 으깬 감자의 모습보다는 통감자의 모습이 강합니다. 또 통감자는 아니지만 깍두기처럼 아직도 내 자아의 덩어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저와 여러분은 삶아서 으깬 감자처럼 부서져야 합니다. 내 모습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3. 말씀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이 말씀은 그냥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은 빛을 존재하게 만드는 능력이었습니다.
   
사 57:19을 보면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공수표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시면 말씀하신대로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병든 자를 고치셨고, 말씀으로 귀신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갈릴리 바다의 파도도 잠잠하게 만드셨습니다.
   
요 2장을 보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주님께서 말씀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그렇게 말씀하셨을 뿐인데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성으로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가 안 되도 순종할 때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만난 첫 번째 장애물은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은 2중 성벽으로 된 아주 견고한 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성벽을 7일 동안 돌고 함성을 지르면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6일간은 하루에 한 번씩 돌고 7일째 되는 날은 일곱 번 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함성을 지르자 견고한 성 여리고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를 무너뜨리심으로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지금도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 속에 말씀이 들어가면 그 사람을 변화시키고 영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설교는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믿음으로 들으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17년 간 승려 생활을 하다가 목사가 된 김일규씨의 간증이 있습니다. 어느 날 시주하러 갔는데 한 청년이 책 한 권을 자루에 넣어 주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니 한번 읽어보고 예수를 믿으시오”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불쾌하게 느꼈지만 호기심에 그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번을 통독하는 동안 성경이 불경과 다르다는 4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①속죄의 가르침, ②예수님이 무덤에서 살아 나셨다는 것 ③예수님은 속세와 함께 하셨다는 것 ④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에서 나와서 신학교를 가서 신학을 했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영원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승려를 신학교로 가게 만든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의 생활에 하나님이 가지신 창조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이 나타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이 임하고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저를 존중하는 사람은 저의 말을 잘 듣는 것처럼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읽고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냐 추하냐는 여러분의 가치관이 얼마나 성경적인가로 판가름 납니다. 지금은 말씀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아니 말씀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보다 더 못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복이 넘치게 될 것이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복을 받은 예와 말씀을 멀리하므로 하나님의 복에서 멀어지는 예를 미국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실로 짧은 역사입니다. 1776년에 시작된 나라입니다. 미국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신정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세운 나라입니다. 미국의 지폐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취임식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합니다. 미국은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국에 복을 주셨습니다. 1950년에서 60년에는 전 세계 GNP의 50%가 미국의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자동차수와 전 세계 자동차 수가 맞먹었고, 전 세계의 전화기 수와 미국의 전화기 수가 거의 같았고, 전 세계 국방비와 미국의 국방비가 거의 같았습니다. 그 당시 세계인들은 미국 땅을 동경하여 이민가기 위해 줄을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960대 존 F. 케네디가 집권하면서 신앙은 자유이지 꼭 강요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공립학교 및 국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것을 폐지하고 십계명을 제거하였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해서 미국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미국은 급격히 타락하여 월남전에서 패배하였고, 히피족들이 거리를 누비게 되었고, 마약과 음란이 청소년들 사이에 파고들어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에이즈환자와 동성연애가 판을 치고 있으며, 매년 1천억 불 이상의 적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강의를 폐지할 당시 대통령이었던 케네디는 암살되고 그 동생들도 암살되거나 비명에 죽었고 그 자녀들까지 요절하는 불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 주어진 복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버리십니다. 삼상 15:23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사울에 대해서 사무엘 선지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4. 선하신 하나님 
  
창 1장에 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기록하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말씀이 7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보기에 좋은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은 것입니다.
   
창 1장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할 때 사용한 ‘좋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브’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좋다. 선하다. 즐겁다. 이익이 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고,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엇을 만지시면 그것은 좋은 결과, 선한 결과, 즐거운 결과, 이익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창 1:2을 봅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께서 6일 창조를 하시기 전에 재료가 준비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때의 특징은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입니다. 그런데 6일 동안 하나님께서 만지시니 혼돈이 질서로 변했습니다. 온 우주가 얼마나 질서 있게 움직입니까? 공허가 충만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흑암이 빛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창세기 1장의 역사가 지금도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새로운 물질을 창조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충만했던 세계를 하나님께서 손대시니 세계가 변했습니다. 혼돈이 질서로 변했습니다. 공허가 충만으로 변했습니다. 흑암이 빛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이 손대시면 엄청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불란서 조각가 중에 ‘로댕’ 다음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세자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매우 특색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거의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버린 물건들을 가지고 작품을 만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철제 폐품으로 만든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집이 가난해서 배우지도 못하고 조각할 수 있는 재료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버려진 물건들을 주어다가 그 물건의 특징을 살려서 조각품을 만들곤 하던 것이 오늘의 세자르가 되게 하였습니다. 사진으로 그의 작업장을 보면 그곳은 마치 철공소 같기도 하고, 폐품 수집장 같은 인상을 풍기기도 했습니다. 부서지고 녹슬고, 버려진 것들이 조각가 ‘세자르’의 손에 들어가면 매우 신기한 작품으로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폐품을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의 작업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만지셔서 의인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병든 자를 만지셔서 건강한 사람으로 만드시고, 가난한 사람을 부하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으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한나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도하여 하나님의 만지심을 경험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은 후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삼상 2:8입니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한나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고 빈궁한 자를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만지심을 소망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이 만져달라고 기도합시다. 
 

5.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천지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만물은 다 하님의 것입니다.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창 1:27,28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사람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맡기신 하나님은 반드시 결산 하십니다. 달란트 비유에 보면 주인이 외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한 사람은 다섯 달란트, 한 사람은 두 달란트, 한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맡긴 달란트를 결산합니다. 여기서 주인은 주님을 상징합니다. 타국에서 돌아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달란트를 받은 모든 종들과 결산을 하는 것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이 재림하시면 결산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칭찬과 보상을 받은 것은 주님이 재림 하신 후 충성된 사람들이 상급을 받을 것을 보여줍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인의 책망을 받고 벌을 받는 것은 주님이 재림하신 후에 불충성한 사람이 심판을 받을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중에 어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과 함께 상을 받아야 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책망과 벌을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로 충성하셔서 주님 재림 하신 후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하늘의 상급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천지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기독교 신앙은 출발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워싱턴이 어렸을 때에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답니다. 워싱턴의 부모님은 워싱턴이 하나님의 창조를 믿게 하기 위하여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뒷동산에다 워싱턴의 이름을 따라 꽃씨를 뿌리고 꽃이 피어 아름다운 모습이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워싱턴을 데리고 뒷동산에 올라 그 광경을 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워싱턴에게 “이야,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생기다니, 너무나 신기한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워싱턴은 부모님에게 “에이, 이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저를 놀라게 하려고 만드신 것이죠. 이게 어떻게 저절로 생겨요”라고 말했습니다. 워싱턴의 말을 들은 부모님은 워싱턴에게 “너는 이 작은 일도 그냥 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어떻게 이 광대하고 정교한 우주는 그냥 되었다고 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워싱턴은 그때야 자기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천지만물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찬송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모든 피조물 중에서 뛰어난 존재이지만 인간도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 43:21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공동체의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선하신 하나님,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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