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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으로 보고 말하는 사람 (고전 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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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보고 말하는 사람 (고전 2:6-16) 


저는 주중에 보통 집회를 많이 다닙니다. 나름 그것도 하나님이 제게 주신 소명과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다니고 때문에 보람도 있습니다. 많은 곳을 다니기 때문에 집회를 한 교회를 다 기억 못합니다. 많은 지역과 나라를 다니기 때문에 지역과 나라도 대개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냥 공항, 호텔, 교회를 왔다 갔다 하다가 오기 때문에 그곳이 다 그곳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몇몇 교회와 지역은 오래 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제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나 제 기억에 남는 교회들을 생각하면서 저는 저와 우리 교회가 과연 우리 하나님의 기억과 마음에 남는 교회일까 아닐까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저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기억과 마음에 남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호남 지역에서 집회를 할 때 두 교회가 연합하여 집회를 하였습니다. 제가 집회를 하기 전에 제가 집회를 한 교회와 연합을 한 교회가 먼저 집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집회를 한 교회의 교인들과 목사님이 함께 참여하여 은혜를 받았고, 제가 집회를 할 때에는 그 교회 목사님과 교인들이 함께 오셔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두 교회 목사님이 서로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친구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는데 너무나 그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시편 133편의 말씀이 자동적으로 떠 올랐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

반대의 경우도 있어서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교민이 한 2천 여명쯤 되는 외국 어느 도시에서 집회를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4개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제일 큰 교회는 500명 쯤 출석하는 교회였고, 나머지 교회는 100명 미만의 작은 교회였습니다. 저를 초청한 교회는 출석 교인이 한 60여명 쯤 되는 교회였습니다.

저를 초청한 교회와 목사님은 저를 초청하면서 집회 출석 예상 인원까지 메일로 보내주셨는데 30명에서 400명 사이라고 보내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집회를 하면서 4 교회의 연합을 바라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럴 경우 400명 정도 올 것 같고 그렇지 못할 경우 자기 교회 교인만으로 집회를 한다면 30명 밖에 모이지 않는 작은 집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예상이었습니다.

집회는 30명도 아니고 400명도 아니었습니다. 자그마한 예배실이 꽉 차리만큼 보기 좋게 모여서 아주 좋은 집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회가 제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지역에서제일 크다고 하는 교회가 보여준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그 교회 목사님이 보여준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교인이 그 작은 교회 집회에 가는 것이 마땅치 않으셨던 목사님은 불과 두 주일 전에 자기 교회에서도 집회를 하기로 결정하고 갑작스럽게 강사를 초청하여 똑 같은 기간에 맞불 집회(?)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교민이 2천 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 교회는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자기 교회 외의 나머지 세 교회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독특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뭐 그렇게까지 하시나 하는 정도의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라이드해 주시던 집사님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교회가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참 황당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거듭남을 강조하는 교회가 그런 행동과 생각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거듭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지배하던 세상의 영이 떠나가고 모습은 사람이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뜻이 그를 지배하여 생각을 해도 꼭 하나님처럼, 어떤 마음을 가져도 꼭 하나님의 마음처럼 되는 것인데 과연 성령세례를 강조하고 그것을 받았다고 하시는 목사님이 자기 교회 교인들이 다른 교회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못 마땅하여서 그 집회에 자기 교회 교인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위하여 갑작스럽게 없던 집회를 계획하고 집회를 여는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가 집회 내내 제 마음에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조금은 옹졸해 보이고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치졸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생각과 마음이 과연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생각과 마음일까가 저는 참 의문이었습니다. 의문을 넘어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무는 열매를 보아 안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교회는 그 열매로 성령세례를 강조하고 입증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제가 보았던 그 부정적인 모습만이 그 교회와 목사님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 맞불집회를 통하여 보여진 그 교회와 목사님의 열매는 성령세례와는 별로 상관없는 열매였습니다. 그 열매만으로 판단한다면 그 교회는 무늬만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교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아는 성령은 그런 성령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성령세례를 받고 거듭난 교회와 목회자라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거나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제가 호남지역 집회에서 보았던 두 교회의 아름다운 연합과 같은 근사한 생각과 행동을 우리에게 하게 하시는 정말로 근사하신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본시 치졸하고 옹졸한 우리를 하나님 닮은 그래서 하나님의 향기와 냄새가 나는 정말 근사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는 두 지혜와 두 영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지혜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의 영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지혜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습니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사람과 하나님이 사시는 에덴동산은 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사탄의 유혹에 빠져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게 됩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면서 인간은 소중한 하나님의 영과 지혜를 잃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형상을 잃어버립니다. 그때부터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세상의 영과 성경이 악인의 꾀라고 표현하신 세상의 지혜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부터 인간은 생명을 잃어버리고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려면, 정말 행복하고 잘사는 사람이 되려면 다른 길은 없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잃어버린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영과 지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거듭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죄인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재 본심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중심에 흐르는 생각과 뜻이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세상의 영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세상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과 전혀 상관없이 어리석어지고 옹졸해지고 치졸해지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정말 살 재미가 없는 실낙원으로 만들어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과 충돌합니다. 세상의 영은 언제나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합니다. 세상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충돌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세상의 영과 충돌하도록 하게 하여야만 합니다. 세상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세상과 세상의 영을 거스리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아까 저를 당황하게 하였던 교회 이야기를 조금 더 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그 교회가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교회라는 이야기를 해 주신 집사님으로부터 또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 교회를 다니는 자기 친구 이야기였습니다. 그 친구야 말로 세상적인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던 친구인데, 그래서 더 망가질 것이 없을 만큼 망가진 친구였는데 어느 날 그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그 교회가 강조하는 성령세례를 받게 되었고, 성령세례를 받으면서부터 정말 믿을 수 없으리만큼 사람이 변하였다는 것입니다. 술 담배를 끊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정말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교회는 제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처럼 그런 엉터리 교회가 아니고 정말 성령만이 맺을 수 있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는 교회인데 어떻게 그런 교회와 그런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이 그런 옹졸해 보이고 치졸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런 생각과 행동과 결정을 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하니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통하여 얻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고해서 언제나 성령과 그 성령의 역사가 우리와 늘 함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쫒고 병자들을 고치는 능력을 받았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귀신 들린 아이를 가진 엄마가 제자들에게 와서 그 귀신을 쫓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을 때 저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전에 귀신을 쫓아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런 부탁을 받았을 때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자신들이 그 귀신을 쫓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실패하였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외에는 다른 유가 없느니라’는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이 그 동안 영적으로 게을러져 있어서 전에 받았던 성령의 능력이 소멸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높은 뜻 교회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좀 멋쩍지만 우리 높은 뜻 교회는 높은 뜻 교회를 대표할만한 제법 괜찮은 열매들이 있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교회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교회들이 우리 높은 뜻 교회와 높은 뜻 교회의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교회들이 저희 교회를 칭찬해 주고 우리의 사역에 일에 동참해주고 협력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높은 뜻 교회가 하고 있는 일들과 사역들은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그와 같은 일과 사역을 더 열심히 하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우리 높은 뜻 교회 교인여러분 우리 높은 뜻 교회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일과 사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높은 뜻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은 뜻입니다. 높은 뜻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일과 사역에 치중하기 이전 먼저 그 일과 사역을 높은 뜻 교회의 일과 사역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영과 마음과 지혜를 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생각과 말과 행동과 사역 속에 언제나 높은 뜻 즉 하나님의 영과 마음과 생각과 지헤가 담기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해야만 합니다.

저와 우리 높은 뜻 교회와 우리 높은 뜻 교회 교인이신 여러분들도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사실을 한 시도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 교인들도 순식간에 소중한 높은 뜻이 소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높은 뜻이 없는 높은 뜻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늬만 높은 뜻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에 있어서 중요한 일과 사역이 아닙니다. 그 일과 사역에 반드시 나타나야만 할 높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입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보배와 같은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 즉 하나님의 뜻와 영을 담고 그것이 변질 되지 않기 위하여, 소멸되지 않기 위하여 언제나 발표하는 새 포도주와 같을 수 있기를 위하여 긴장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주를 위하여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던 교회와 교인들이 타락하여 중세의 암흑기를 연출하였던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영광스러웠던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교회가 되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개혁이 필요한 교회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타락한 중세의 교회를 닮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구교회도 그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도 순교의 피가 많이 흘렀던 영광스러운 교회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 높은 뜻 교회는 조금, 아주 조금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때문에 부흥도 있고 성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가 영적으로 교만해지고 게을러져서 하나님의 영과 지혜를 잃어버리고 세상의 영과 지혜로 무늬만 높은 뜻인 교회를 운영하게 될는지 모릅니다.

높은 뜻 교회의 핵심은 높은 뜻에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마지막 절 말씀이 참 좋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준비하며 은혜를 받으면서 문득 청년 때 읽었던 이해인 수녀의 ‘겨울 숲길을 간다’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빈 해질 녁에 겨울이 오는 소리 /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힌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혼자서 가니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가슴에 묻을 고운 별과 같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지혜, 우리가 말하는 높은 뜻을 평생 품고 늘 하나님 닮은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늘 성령으로 보고 늘 성령으로 말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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