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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례요한과 예수 (마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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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과 예수 (마 11:1-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선지자가 보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세례요한을 보내주셨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난 이유는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쳤던 소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라고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다가 메시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성령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라고 알아보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만왕에 왕으로서 사역하실 수 있도록 그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예전에 모처에서 4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언쟁을 하면서 다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용은 그 중에 한 사람이 나이를 한 살 속였다는 이유였습니다. 나이를 속인 사람은 부모님이 출생 신고를 할 때에 생년월일을 잘못 기록해서 한 살이 줄었기 때문에 너희들과 같은 나이라고 다투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서열 세우기를 잘합니다. 그 서열에 기준이 무엇입니까? 일반인들에게 몇 년생이냐! 학교 동창이라면 몇 학번이냐! 이것을 먼저 따집니다. 그래서 서열을 정합니다. 그 서열은 질서가 되어서 언니 동생이 되고 형 아우로 정해집니다. 그 정해진 서역대로 후배는 선배를 깍듯이 모시게 되고, 선배는 후배로부터 대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세례요한이 생각했던 서열은 세상적인 서열과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자기보다 늦은 예수님을 향하여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해야 하겠다"(요3:30)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 인물 중에 다윗이라는 왕이 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아들인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건축 재료를 예비하는 사역을 감당하였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이 바로 다윗이 같이 예수님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건축 재료를 예비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세례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한 시점이 언제입니까? 이미 마4:12에서 언급하였듯이 세례요한이 헤롯 안디바에 의해서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옥에 갇혀있는 상태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바라볼 때에 예수님의 모습은 마치 [세례요한의 아픔이 예수님에게 도리어 기쁨]이 되는 원리였습니다. 그들이 볼 때에는 아무리 보아도 예수님보다 세례요한이 훌륭하게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얼마 전에 자기 스승에게 세례를 받았던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런 예수가 이제는 자기 스승과 같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고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에 동료 중에 벌써 예수님께로 옮겨간 사람들도 생기면서 불만을 가득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불만이 가득했던 제자들과는 세례요한이 어떠한 인격을 소유하고 있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제2의 세례요한으로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교훈을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우리 스승이 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해 주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사야는 이 땅에 오신 메시아는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사61:1)라고 예언대로 헤롯 앞에서까지 생명 걸고 회개하라 외쳤건만 왜 가만히 계실까라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당장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축복이 임하고 악한 자들에게는 심판이 임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마3:7, 10, 12).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을 의심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다윗과 같은 위대한 정치가이며 강한 왕이었습니다. 이런 왕이 나와서 강대한 로마를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메시야 사상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가졌던 잘못된 기대였습니다. 

세례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 보내면서 어떤 질문을 하라고 하였습니까? 3절에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이 영과 육이 침체되었음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으로 인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의심과 불만을 풀어주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던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과의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에 풀어가는 방법은 어떤 문제든지 예수님께 가지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가정의 문제, 사업의 문제, 심령의 문제, 학업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을 예수님께 가지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문제들을 가지고 그 분께 상의 하시고 기도하시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문제를 주님 앞에 내려놓지 않으면 어떻게 문제가 풀립니까?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이런 예화를 들었습니다. 6.25 전쟁 중에 미군장교가 차를 타고 가는데 길거리에 무거운 것을 이고 가는 한 할머니를 보았답니다. 그래서 가는데 까지 태워다 준다고 하니까 할머니가 고맙게 그 차에 탔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머리에 짐을 내려놓지 않고 짐을 그대로 머리에 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내려놓지 않습니까? 라고 물으니 "태어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뭐 짐까지" 그러더랍니다. 주님의 차에 타면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내려놓을까 말까 망설이지 말고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문제는 정말 주님께 내려놓는 가 아닌가에 달려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당장 구해 주마" "내가 헤롯을 즉시 심판 하겠다""나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다"라는 대답을 기대하였습니다. 

우리도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같이 이런 생각에 붙잡혔던 경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이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나 가정문제나 직장문제나 자녀문제가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사회를 바라보아도 여전히 범죄와 사랑과 미움이 계속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므로 한 번이라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 있습니까? 언제 감옥에 죄수가 없고 언제 정의로운 나라가 되었습니까? 이세상이 달라지기는커녕 어떻게 보면 더 악해지고 더 무서운 세계가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화해자로 오셨다고 하지만 어떻게 해서 전쟁은 더 일어나고, 모든 세계는 분쟁에 휘말리고 있는가! 이렇게 볼 때 과연 예수님은 우리가 기대한 메시아인가 하는 의문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사야는 이런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 보다 높으니라"(사 55:8, 9)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에 하나님의 생각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주님의 생각에 내 생각을 맞추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주신 답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보았던 예수님의 행하셨던 이적과 전파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내용들입니다. 5절에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답변 내용에는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기대했던 사건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심판도 없고, 파괴도 없으며, 저주와 보복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치유와 생명과 복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한꺼번에 놀라운 변혁을 일으키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이 세계를 하루아침에 평화롭게 만들지도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변화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사랑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 가운데 많은 문제와 고민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땅을 치료하시고, 고치시고,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너무나 성급한 나머지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같이 혁명적인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더욱 깊은 악을 낳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같이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의지했던 사람이나 재물이 감옥과 같은 환경이 처해있을 때에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당장 속 시원한 응답이 오지 않아서 답답해하고 실망합니다. 세상에서 헤롯 같은 악인들이 형통한 것 보면 하나님이 정말 계시나 하고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읍시다(히4:16). 이럴 때에 모든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이 해결함을 받습니다. 


3.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으면 복이 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경고하신 말씀은 너희들이 편리 한대로 예수님을 이해하면 예수님으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행 1:6)라고 했던 제자들도 오순절에 주께서 허락하신 성령충만을 받고 나니, 그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영원한 생명과 그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좌우에 두 명에 강도와 함께 달려서 죽었습니다. 그때에 한 강도는 예수님께서 천국에 이를 때에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강도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반대로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그 강도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실족하므로 낙원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같이 자신들이 생각들을 기대하며 기도했던 일은 없습니까? 그 문제들이 해결받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성령님께서 들어오시도록 마음을 비우는 일이 우선순위입니다. 그럴 때에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서 역사하시면 나의 아집과 교만과 고집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자의 심령 속에서 역사 하십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에 성령이 충만을 받아서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을 지배할 수 있도록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이럴 때에 세례요한과 같이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불편한 가운데서도 주님 앞에 나가가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번민하며 고민이 떠나지 않을 때에도 주님에게 나아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밖에는 주시는 일이 없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도 열어주십니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 주님 안에서 살지 못하면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육신도 고달프게 되는 것을 체험합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편이 되어 주셨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고훈 목사님의 시 "나의 주 당신은"을 읽고 마칩니다. 

"나의 주 당신은 " 

나를 올라가게 하시려고 당신은 내려오셨습니다. 
나를 거듭나게 하시려고 당신은 태어나셨습니다 
나를 부유케 하시려고 당신은 가난하셨습니다. 
나를 아들 되게 하시려고 당신은 종이셨습니다. 

나에게 하늘의 거처를 주시려고 당신은 집이 없으셨습니다. 
나를 배부르게 하시려고 당신은 굶주렸습니다. 
나를 마시게 하시려고 당신은 목마르셨습니다. 
나를 옷 입게 하시려고 당신은 벗으셨습니다. 

나를 쉬게 하시려고 당신은 짐을 지셨습니다. 
나를 인정받게 하시려고 당신은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나를 기쁘게 하시려고 당신은 슬프셨습니다. 
나를 복되게 하시려고 당신은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당신은 죽으셨습니다. 
나를 높이기 위해 당신은 살아나셨습니다. 
실로 당신만이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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