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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까? (마 1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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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까? (마 11:16-19)

한국 소고기는 너무 비싸요. 세계에서 소고기가 비싼 나라는 한국입니다. 다른 나라는 돼지고기가 훨씬 비싸대요. 러시아는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배가 비싸고, 아프리카도 돼지고기가 비싸며, 중국도 돼지고기가 비싸고, 남미도 소고기는 굉장히 싼데 돼지고기는 비싸답니다. 특히 아프리카는 닭고기가 굉장히 비싸대요. 닭 한 마리하고 소 한 마리하고 같진 않지만 별 차이가 없답니다. 

아프리카 같은 데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예쁜 쌕 가방 메고 아프리카를 갔는데 그 목동이 부르더래요. 가니까 '소 한 마리 줄테니까 쌕 그거 나줄래?' 하더래요. 운동화 한 켤레 주면 얼마든지 소한마리 얻을 수 있는 곳이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비싸냐? 그것은 인식 때문입니다. 
소는 순하기 때문에 몸에 좋고, 돼지는 지저분하기 때문에 .... 뼈도 소뼈가 더 났다고 그러나 사실 돼지 뼈에 더 영양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식은 성경에도 나타나는데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생각과 같지 않고 사는 습관과 같지 않다고 세례요한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사람들은 특별한 삶을 사는 세례 요한이 미웠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을 비판하였습니다. "요한은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귀신들린 것과 똑같았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귀신들린 사람입니다"하고 비난하였습니다. 

사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약대털옷을 입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의 그런 경건한 생활을 비난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은 그렇게 못사는 데 요한은 사니 자기들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난합니다. 오히려 칭찬하고 박수를 보내며 존경할 것 같았으나 아니었습니다. 

이런 세례 요한에 대해 그들은 화가 나 있는 것입니다. 부정부패를 꾀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과 달리 바르게 사는 사람입니다. 같이 도둑질해야 좋은데 도둑질을 안 합니다. 그래서 싫은 것입니다.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 하고 바르게 살려고 하면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미워합니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크리스챤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화내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겁이 나야 합니다. 

사도행전 5장 12-14절에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는 말씀처럼 '상종 못할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친구를 가지고 있습니까? 술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도 한 잔씩 하시는 것이겠지요? 놀음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까? 그 친구와 친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들도 가끔 화투를 치시는 모양이지요? 경건하게 산다고 해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싫어합니다.

그런데 19절에서는 그들이 똑같은 문제로 예수님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다릅니다. 세례 요한은 아주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보통 사람처럼, 보통 사람들과 아니 낮은 자들과 같이 잡수시고 같이 어울리셨습니다. 세리와 창기들과도 어울려 지내셨습니다. 

사람들은 또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 먹기를 탐한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먹지 않으니까 귀신들렸다고 하고 예수님은 잡수시니까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살면 이렇게 산다고 비난하고 저렇게 살면 저렇게 산다고 비난하는 그 사람들을 가리켜서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하고 주님께서 비유하셨습니다. 

우리교회 출석하는 사람들이 이 목사를 다 좋아하겠죠?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닌가 봅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사람의 얘기가 제게도 들립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중에 하소연 한 내용이 있어서 잠깐 읽어 보았는데 목사가 

젊으면 - 경험이 부족하여 불안하다고 하고, 

늙으면 - 시대에 맞지 않고 희망이 없다고 합니다. 

잘 생기면 - 제비 같아 위험하다 하고, 

못 생기면 - 품위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자식을 많이 낳으면 - 무절제 한 사람이라고 하고, 

아들만 낳으면 - 욕심이 많다 하고, 

딸만 낳으면 - 기도해서 그 정도도 해결 못 받았냐고 합니다. 

부잣집을 심방하면 - 잘난 놈들과만 어울린다고 합니다. 

좋은 집에서 잘 살면 - 사치한다고 하고, 

못 살면 - 축복도 받지 못한 목사라고 천시합니다. 

좋은 차를 타면 - 어려운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과소비 한다하고, 

나쁜 차를 타면 - 장로님들과 교인들에게 사랑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하면 - 돈만 안다고 하고, 

안 하면 - 가르치지 않는 무책임한 목사라고 합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면 - 너무 냉정하다고 하고, 

잘못을 지적치 않으면 - 정의감이 없다고 합니다. 

사람이 미워지면 잘해도 밉고 못해도 밉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사랑하면 다 좋게 해석되고 다 좋게 받아들여집니다. 자기를 비판하고 욕을 하여도 신이 납니다. 밉지가 않습니다. 섭섭하게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오늘 성경에 나와 있는 시대의 사람들은 마치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곡을 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사람처럼 온통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은 비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비판하는 사람입니다. 미움받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미움을 받거나 비판을 받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마 11:16)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대의 사람'이란 구체적으로 당시의 예수님 설교를 듣는 사람들과 함께 멀리서 천국을 소개하는 복음 운동에 응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손가락질하고, 비평만 하는 사람들을 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넓게는 '이 세상의 사람' 다시 말해 오늘 이 때에 사는 우리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비유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먼저 이는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예수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교회에 나온 지 오래 된 사람과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신이 못났다고 하는 사람과 함께 어울릴 줄 알아야 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세워주고 격려하고 다툼과 갈등이 없이 하나를 이루는, 조화를 이루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무엇보다 '영적인 질서'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로서, 장로는 장로, 권사는 권사로서, 집사, 성가대원, 교사, 등 각기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합니다. 사회에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징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찬양대원이 찬양대원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영적인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각자 감당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분별하여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질서입니다. 사울 왕은 자기가 할 일이 아님을 분명히 알면서도 제사장이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정당한 이유와 합리화시킬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제사장의 일을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구경꾼이 되지 마라는 것입니다. "구경꾼, 비판자"는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피리를 불면서 함께 춤을 추고 가슴을 치며 애곡을 하면 한 맘이 됩니까?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참가 정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맘 되어 함께 어울리며 춤도 추고 가슴도 두드리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비위에 맞지 않거나 뜻을 달리하는 문제가 있더라도 장터의 놀이,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한 천국 운동을 위해 믿고 순종하며 협조하고 헌신하는 참여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안타까워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비위에 맞지 않는다 하여 장터 놀이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무감각이든, 무관심이든, 무기력이든, 결국 천국 잔치의 분위기를 깨며 자신도 천국잔치에서 제외될 뿐입니다. 함께 어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항상 말씀을 잘 들어야 된다"라고 당부합니다. 부모님의 말씀과 선생님의 말씀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귀 담아 들으시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듣는다'고 하는 것은 내 귀에 어떤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가슴 속에, 머리 속에 담아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습니다. 얼마나 귀 담아 들으십니까? 다른 사람들의 얘기에 얼마나 관심이 있으십니까? 여러분들의 자식에 대해서, 남편, 아내, 부모, 형제에 대해서 그 얘기에 얼마나 귀 담아 들으십니까? 

예수님이 답답해 하신 것은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고" 아무의 얘기도 귀 담아 듣지 않고 비판하고 방관적인 사람들을 책망하시면서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라고 하신 것입니다. 쉽게 분노하는 사람, 아무 일에나 화를 내고 화를 품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의 말을 귀 담아 듣고 조화를 이루고 질서를 지키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참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주님의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하시는 탄식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어떤 일에 비유될 수 있겠습니까? 쉽게 분노하고, 남과 어울릴 줄 모르고,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하셨던 예수님의 물음이 오늘 우리에게도 들리는 때입니다. 가정, 교회, 나라에서 조화를 이루고 질서를 지키며 참여하는 선을 행할 줄 알면 행하는 능동적인 크리스챤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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