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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울이 오기 전에 (딤후 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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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기 전에 (딤후 4:6-15)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인생의 흐름을 배울 수 있기에 '자연은 인생의 스승'이라고 한다. 예수님도 자연을 보면서, 진리를 가르치셨다. 본문은 겨울을 통해, 인생의 종말을 가르쳐 준다. 계절에 겨울이 있듯이, 인생에도 겨울이 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가지고 설 수 있나? 
겨울을 보내는 동물들의 지혜를 보면, (1) 철새나 사슴처럼, 자신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동물들이 있고, (2)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죽은 듯 땅속에서 동면하여, 겨울을 나는 동물이 있다. (3) 털갈이를 통해, 두툼한 털을 만들어, 도망가지도 피하지도 않고, 겨울을 직면하는 동물들이 있다.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철새형 동면형처럼, 부정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려워 떨기만 하는 사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웅크리고만 있는 사람, 세상과 쾌락으로 도망가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가치관과 우선순위의 털갈이, 믿음의 털갈이를 통해, 종말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준비한다. 헬라어로 시간이라고 할 때, 크로노스란 말이 있고, 카이로스란 말이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속하는 시간이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반드시 겨울은 온다. 한번 태어난 인생, 반드시 죽는다. 이것은 크로노스다. 그러나 시간 속에는 내가 요리하고, 지혜롭게 쓸 수 있는 카이로스가 있다. 이 카이로스는 동면으로 시간을 버릴 수도 있고, 털갈이로 직면할 수도 있는 나만의 시간이다. 
라인홀드 니이버의 기도문 중에, 이런 기도가 있다. "하나님! 고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고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냉정함을 주시옵소서. 또한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식별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인생의 봄에, 부지런히 씨를 뿌리고, 준비한 자가, 여름날 인생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고, 가을에 추수하여, 행복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문턱에서, 인생의 겨울이 있음을 기억하여 교훈을 얻고자 한다. 

미국 펜실바니아에서, 4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긴, 매카트니 목사님은, 매년 말에 이 본문을 가지고 꼭 같은 설교를 했는데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이 설교를 하는 날이면, 입추의 여지없이 시민들이 몰려와 그 설교를 들었다고 한다. 

1. 왜 겨울 전에?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또한 (21上)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는 사도 바울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는 간절한 편지를 보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① 사도 바울이, 자기 최후가 임박했음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그는 스스로 깨달았다. 자기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순교하기 전에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보고 싶었고, 또 부탁할 말씀도 있었을 것이다. 

② 거듭 오라고 하며, 특별히 겨울 전에 오라고 재촉했다. 그 당시는 지중해를, 겨울에는 항해할 수 없었다. 가을에 배가 떠나지 않으면, 겨울을 지나서, 적어도 넉 달 후에야, 다시 배가 지중해를 항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을에 오지 못하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이 참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김장 외엔, 별로 준비할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겨울도 준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시간관리의 지혜를 잃어 버렸다. 여기서 겨울 전에 오라는 말은, 기회가 지나기 전에 오라는 말이다.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인생은 곧 기회다. 인생은 금방 지나가기에, 힘써 공부하고 멋진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전도서 3장을 읽어보면, 만사에 기한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항해할 수 있는 때가 있고, 항해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여행할 수 있는 때가 있고,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일할 수 없는 때도 온다. 공부할 수 있는 때가 있는가 하면, 공부할 수 없는 때도 온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추수할 때가 있고, 추수할 수 없는 때도 있다. 성공과 실패는, 이 기회를 바로 포착하여 할 일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기회가 있을 때에, 기름을 많이 준비했다. 신랑이 더디 올지라도, 넉넉히 기름을 준비한 까닭에,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은 준비했지만, 기름을 충분히 준비 못했다가, 신랑이 더디오니까 불이 꺼졌다. 그때에야 기름을 구하러 나갔다. 

그 사이에 신랑은 왔고, 문은 닫혔다. 손님은 다 들어갔다. 미련한 처녀들이 문을 열어 달라고, 아무리 두드려 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기름을 준비할 기회에 준비하지 않았기에, 결국 신랑을 맞지 못했다. 천국 갈 기름을 준비할 수 있는 때가 있고, 더 이상 준비할 수 없는 때가 있다. 
문이 열려있는 때가 있고, 매달리고 애원해도, 열리지 않는 때가 있다. 기름 떨어진 줄 알았더라면 부지런히 채웠을 것을! 기름 떨어진 줄이나 알고 사는가? 기름은 충만한가? 그러므로 천하만사에 다 기회가 있다. 영적 준비나 사역에도 기회가 있다. 이 기회는 지나간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세상일에만 분주하신 분들! 늘 자기의 기름을 점검하자. 은혜 받을 때, 은혜를 받고 믿음이 자랄 때, 성장해야 한다. 헛된 세상에 시간 다 보내고 하나님 나라와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늘 인색하기만 한, 초라한 삶을 살지 말자. 
회개에도 기회가 있고, 성공에도 기회가 있다. 주어진 기회를 붙들지 못하면, 그 기회는 내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성공의 아이디어, 축복의 기회들이 지나가고 있으나, 그것을 붙들지 못하면 내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하루 24시간 동안, 10만 가지 이상의 기회가, 우리 앞을 지나간다. 

엄청난 기회가,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지만, 그것을 붙잡지 못해, 별 볼일 없이 인생을 허비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잠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하루를 보내도 시간을 함부로 사용한다. 심지어 자기 몸도 함부로 관리한다. 애인을 사귀고 친구를 만나도, 생각 없이 사귄다. 초대교회의 전설에 의하면, 디모데는 겨울이 오기 전에 오라는, 스승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 즉시 떠나지 못했다. 

교회에 쌓인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지중해로 나갔더니, 이미 겨울 찬바람에 항해가 중단되었다. 그래서 그 이듬해 이른 봄에, 스승을 찾아갔으나 바울은 이미, 옥중에서 순교했고, 디모데는 스승의 무덤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지만, 후회와 한을 풀 수 없어, 천추의 한이 되었다고 한다. 
속히 오되 겨울 전에 오라는, 바울의 부름에 디모데가 응답했다면, 디모데는 스승 바울의 영력을 전수 받고, 디모데의 영향력으로 인해서, 초대 기독교의 모습은, 아주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이, 후대 역사가들의 말이다. 

언제나 기회는 순간이다. 그래서 기회의 신은, 앞머리는 풍성한데, 뒷머리는 대머리라고 한다. 내 앞에 있을 때 붙잡아야지, 지나고 나면 붙잡을 수 없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부탁하고 있다. 활동하기에 불편한 겨울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가온다. 
그 시간은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인생의 겨울이 찾아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겨울이 오지 말 것을 기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오히려 겨울을 대비해야 한다. 카이로스를 준비하는 지혜가 있기 바란다. 

2. 용서의 기회(6-8)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당시, 그의 나이는 약70세 정도라고 추측된다. 그는 이제 인생의 겨울을 맞았다. 전제는 피를 쏟아서, 준비된 제단에 부었다는 뜻이다. 
이미 순교, 즉 생의 마지막 순간을 내다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13上)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 점점 추워짐을 느끼면서,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하여 옷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육신적인 의미에서 만의, 겨울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고독한, 겨울을 맞이했다. (10-11上)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뒤, 혼자 겪는 외로움이, 그를 더욱 춥게 만들었다. 특별히 자기 인생을 반성하며, 마가를 데려오라고 말한다.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다. 마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고, 사도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에, 따라 갔다. 

그러나 도중에 병에 걸려, 보름정도 꼼짝 못하고 고생했다. 이때 사도 바울은 마가를 간호하느라, 애를 썼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주야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여 주었다. 그런데 마가는 병이 겨우 완쾌되자, 무슨 까닭인지 사도 바울과 동행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바울은 몹시 당황했고 섭섭했다. 그 후 2차 전도여행을 다시 떠나려 할 때, 마가는 바울을 찾아와서 동행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게 되었다. 마가가 이번에는 도중하차하지 않고, 끝까지 동행할 것을 아무리 맹세해도, 사도 바울은 끝내 허락하지 않고 거절하였다. 

이 일로 이번에는 마가의 마음이 상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최후의 날이 가까워 오자 바울은 마가와의 일을 괴로워하며, 매우 마음 아파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 이 시간, 그를 만나 화해도 하고 또 그를 격려해 주고도 싶었다. 그러기에 그는 마가를 데려오라고, 부탁하고 있다. 
우리의 겨울이 다가올 때, 꼭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찾아가서 화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서로의 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사실이다. 꼭 만나서 화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은 없는가? 

내가 섭섭하면, 반듯이 상대에게도 상처가 있다. 내 가슴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의 아픔도 헤아려 보라. 사도 바울은 그것이 유익하다고 했다. 남아프리카의 바벰바 부족사회에서는, 반사회적인 범죄행위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혹시 그런 행위가 일어날 경우, 그들은 상당히 흥미로운 의식으로, 죄지은 사람들을 계도한다. 규범에 어긋난 행위를 저지른 부족원을, 마을 한 가운데 세운다. 그러면 모든 부족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부족원 주변으로 모여든다. 어린아이도 빠지지 않는다. 

모여든 모든 부족원들은, 그 부족원을 둥그렇게 에워싼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차례로 돌아가면서 가운데 세워진 부족원이, 그동안 베풀었던 선행을 한가지씩 말한다. 그리하여 그의 건설적인 속성과 능력, 선행, 친절한 행위 등, 모든 것이 빠짐없이 열거된다.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하거나 우스갯소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 의식은 며칠을 두고 이루어진다. 부족원 모두가, 죄지은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어, 칭찬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칭찬한다. 그에 대한 불만이나, 무책임하고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비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부족원 전체가, 잘못한 그 부족원의 칭찬거리를 다 찾아내면, 의식이 끝나고 즐거운 축제가 벌어진다. 그리고 잘못을 했던 부족원은, 다시 부족의 일원으로 환영받으며 되돌아오게 된다. 부족원의 자존심을 최대한 살려주면서, 부족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도록 한다. 
이러한 색다른 심판 때문에, 이 사회에선 범죄행위가 없다고 한다. (벧전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상대방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용서의 첫 단계다. (창9장)을 보면, 노아가 술에 취한 적이 있다. 

옷을 다 벗어 던지고 잠을 자는데, 함이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떠들어댔다. 그때 함은 저주받았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기 위하여, 뒷걸음질쳐 들어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었다. 그때 '셈의 하나님이 되라'고 축복하였다. 
남의 허물을 들추어서, 비웃는 사람들은, 저주받은 함의 후예요,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는 사람들은 복 받은 셈의 후예들이다. 이 겨울이 오기 전에, 김장독을 덮듯이, 노아의 하체를 덮듯이 덮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겨울이 오기 전에 덮어 주자. 

세계적인 영성학자 헨리 나우웬이, 교통사고로 죽음의 경계까지 갔다가 회복해서 쓴 '거울 너머의 세계'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산다는 것보다 죽는 것은,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죽을 때 나도 죽음으로부터, 자유 해야 한다. 
그러나 내 죽음을 통해, 나와 관계 맺은 모든 사람들도 자유 하게 해야 한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억울하게 만들고, 나에게 섭섭하게 했던 사람들까지도 풀어주어서, 내가 죽은 이후에 그들이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죽음에서의 또 하나의 해방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자기를 죽이는 원수들에게 (눅23:34中)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하고 숨을 거두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자유지만, 저들에게도 자유를 주어야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다. 주님의 마음을 닮았던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을 때 (행7:60中)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들을 용서해 줌으로서, 스데반도 용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들도 나중에 회개하고 자유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우리 입에서 비난과 상처의 말들이 난무한가? 우리 가슴이 지옥이기 때문이다. 감사, 칭찬, 격려의 말이 나오는가? 우리 마음이 천국이라는 뜻이다. 

3. 말씀 앞에 서라(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바울은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이 가죽종이는 '비블리아' 곧 바이블, 성경을 말한다. 성경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지금은 인쇄술이 발달하여 성경책을 갖고 다니기가 편하지만, 그 당시의 성경은 가죽 두루마리로서, 너무 무거워서 갖고 다니기 불편하였기에, 안면 있는 집에 부탁해 놓고 다녔다. 
임종이 가까이 옴을 느낀 바울은, 맡겨 놓은 그의 성경책을 가져오라고 부탁한다. 임종이 가까워 오니, 성경을 다시 한번 더 보기 위해서다. 금년을 시작할 때는, 잘해 보리라 결심했는데, 또 헛되이 한해를 보내게 생겼다. 남은 시간 선용하여, 멋진 한해를 보내자. 

지난 일년간, 우리의 삶을 말씀 앞에 세워 보아야 할 시간이다.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갈만한, 뭐가 좀 남아 있는가? 허무한 것들뿐인가? 성경을 가지고 오너라. 성경의 거울 앞에, 서 보고 싶었다. 
겨울이 가까워질 때, 하고 싶은 말보다, 오히려 귀를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겨울이 가까이 올수록, 더욱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하겠다. 죽음이 가까이 오면, 이것저것 해야 할 일도 참 많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아무리 바빠도 사도 바울처럼, 멀리 둔 성경책을 찾아서, 좀 더 진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다. 조용히 말씀 앞에 무릎을 꿇어 보자. 성경책을 가까이 하자. 거기에는 겨울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겨울을 아는 사람은, 영적인 일에 힘을 쓴다. 영원한 세계, 하늘 나라를 준비할 줄 안다.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하고, 이 해를 보내겠는가? 부끄러운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옛날에는 구리로 우상을 만들었다. 

우상을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로 인하여, 장사에 막대한 손해를 보았기에 바울을 심히 괴롭혔다. 바울에게는 그의 목회사역을 방해하던, 아주 원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에 대하여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하며 하나님께 맡겼다. 
내가 더 이상 미워할 필요가 없다. 주께서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우리에게도 한해의 겨울, 인생의 겨울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남을 비판하고, 내 잘못이 남에게 있다고, 원망해야 하는가? 결코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말자. 

오히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찾아보고, 감사하는 기회를 가져 보자. 겨울이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남에게 허물을 돌리지 말자. 사역도 생명도 끝 날이 있다. 너도 가고 나도 간다. 진실하게 성실하게 살자. 헌신도 건강할 때, 헌금도 있을 때, 겨울이 오기 전에, 천국에 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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