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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믿음(1) (히 11: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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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믿음(1) (히 11:24-26)

날마다 새벽기도에 나와서 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어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새벽마다 울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들을 붙잡아 주세요. 하나님이 돌아오게 할 줄로 믿습니다”, 그 집사님의 기도소리를 듣고 위로하려고 목사님이 가서 말합니다. “집사님, 그 아들 돌아올 겁니다. 집사님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니까 꼭 돌아올 겁니다.” 그랬더니 그 집사님 말하기를, “걔요, 걔는 안 되요” ....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저는 기도 가운데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한 번 되새길 것은 믿음의 대해서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이라고 하는데,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의 믿음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장입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은 그 중에서도 모세의 믿음에 대해서 보려고 합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입니까? 

모세는 영웅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기적으로 가득찼습니다. 그의 생애를 보면, 

1) 그가 태어나서 생명을 보존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바로의 말살 정책, 3달 동안의 키워짐, 나일강, 바로의 공주).  

2) 40년 왕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게 됩니다.  

3)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것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4)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의 통치자 바로와 싸우면서 출애굽하는 장면은 위대한 드라마입니다(‘십계’라는 영화, ‘이집트 왕자’(애니메이션), ‘레딕스 십계(세계적인 프랑스 뮤지컬)’).  

5) 모세의 말년을 보면, (신34: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120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기록되었는데, 그의 비스가산에서의 죽음(시체도 하나님에 의해 감추어짐.)은 신비스럽기도 합니다. 

옛날 TV 프로그램 중 ‘맥가이버’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 맥가이버는 좌절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더욱 정신을 차려 그 난관을 돌파하는 용기와 저돌성, 그리고 창의력을 보여줍니다.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위기를 돌파하는 참으로 감탄할 만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죠?   

모세가 그랬습니다. 성경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어떠한 위기도 돌파해 나갑니다. 

(신33:1) 성경은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칭호입니까? ‘하나님의 사람(Man of God)’ 또한 (신34:5) ‘여호와의 종’ 이라고도 했습니다. 

(신34: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역사상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다시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아신던 자’, 즉 하나님이 알아주신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오늘 본문 앞에 히11:23에 모세의 부모가 나옵니다. - 아므람과 요게벳(출6:20), 그 부모들은 끔찍한 법령속에서 모세를 키웁니다. (히11:23)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미남이란 말이 아닙니다. 잘 생겨서, 포기하면 마음이 안쓰럽고 안타까워서 아이를 기른 것 아닙니다. ‘아름다운 아이’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아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부모도 귀한 믿음을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있게 대처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용기를 줍니다. 믿음으로 용기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인생의 의미있는 선택으로 영웅이 된 모세의 아름다운 믿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그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아름다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1. 아름다운 믿음은 거절할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24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이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거절하고’라는 단어입니다. 무엇을 거절했다는 것인가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명예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왕궁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자라면서 나중에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노예 계층인 히브리인을 외면하고 애굽사람으로 행세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냥 이집트의 왕자로서의 권력과 명예를 갖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명예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명예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악한 것을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야망입니다. 성경은 명예심 자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요셉이나 다니엘을 보십시오. 한 나라의 훌륭한 지도자이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매우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유명해지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명예심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 명예심은 거절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결단을 방해하고 우리의 인격이 순전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삶을 사는데 거침이 되는 명예심은 거절해야 합니다. 모세가 명예를 거절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그는 동족을 위한 목적과 보다 낳은 가치를 위해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한 것입니다. 

요셉은 17세에 형들의 손에 의해서 애굽 왕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려가 종살이를 합니다. 그 집에 팔려가서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집 주인은 시위대장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경호실장인 까닭에 밤낮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시간이 많아 남편이 없을 때 자기 집의 잘생긴 종인 늠름한 요셉 청년을 유혹했습니다. 요셉은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 나이쯤 되면 여인의 사랑이 그리워질 때도 되었습니다. 눈 감고 그 여인의 요구를 들어주면 얼마나 그 집에서 그 여인의 사랑을 받고 잘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면 안 된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여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 거절로 그 후에 치러야 할 댓가를 생각한다면 각오가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거절한 결과 그는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나중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지름길이 되었습니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서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나라의 제2인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그때 거절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았다면 평생 노예로 살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거절할 것을 거절할 줄 아는 사람, 그의 믿음을 성경은 아름답다고 기록했습니다. 

제가 어느 ‘교회성장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강사가 말했습니다. ‘목사님들, 설교 시간에 듣기에 거북한 내용은 말씀하지 마십시오. 마음 속에 부담과 괴로움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개 없는 기독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 앞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가만히 보니까 이 청년이 돈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그 욕심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욱 컸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의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기를 좇으라고 그에게 말씀하셨음 그때 그 청년은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여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러셨을까? 왜 무리한 요구를 하셨을까? 만일 이 청년이 돈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있는 사람이면 주님께서 다 버리라고 안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에게 돈은 우상이었습니다. 이 돈이 이 청년의 인격을 좀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믿음은 거절할 것을 거절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에 거절할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버려야만 할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까? 


2. 아름다운 믿음은 선택할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25절)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더 좋아하고’입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삶을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 26절은 흥미있는 구절입니다.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살았더니 성경은 그 삶이 바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보다 훨씬 뒤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더 크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으며 또 그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자리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올 봄에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죠? 어떤 사람이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식으로 혼자 자살할 수 있느냐, 타살이다’ 하며 논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십자가에 스스로 못 박히면, 그것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사람입니까? 

주를 위하여 살기 원하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은 주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였더니 성경은 그리스도를 선택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거절한다’는 말은 소극적 차원이고, ‘선택한다’는 말은 적극적인 차원을 말합니다. 거절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낳은 선택에 의미가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선택하려면 좋지 못한 것을 거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당연히 선택해야 할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삶이 고난의 길이라 하여도 그 길을 가기로 한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예술 학교에 미모와 연기력이 특출난 장래가 촉망되는 여학생 두 명이 있었습니다. - 그들은 ‘콜린 타운센드 에반스’와 ‘마릴린 먼로’ 입니다. 그들의 연기력은 탁월했습니다. 그래서 둘 다 헐리우드에 진출하게 됩니다. 아주 뛰어난 배우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타운센드는 결혼 직전에 헐리우드가 얼마나 허망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곳인지를 깨닫고 배우 되기를 포기합니다. 주위에서는 타운센트를 바보라고 했습니다. 

마릴린 먼로 역시 경쟁 상대였던 타운센트를 바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타운센트는 배우를 그만두고 선교사와 결혼해서 선교를 떠나게 됨. 세월이 흘렀음. 마릴린 먼로가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지만 결과는 자살로 끝이 났습니다. 마릴린 먼로가 자살하기 직전에, 옛날 친구 타운센드에게 간단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네가 떠날 때 너를 비웃었어. 내 경쟁 상대자가 없어지는 것을 좋아했고 너를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네가 참으로 부럽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서의 마지막에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가장 비참한 사람이야”라고 썼습니다. 아름다운 믿음은 선택해야 할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3. 아름다운 믿음은 바라볼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6절) “...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바로의 궁을 뒤로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는 고난을 선택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믿은 후에 잃은 것이 많습니다. - 공주의 아들로 장차 일국의 왕이 될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수많은 재물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었으나 이것도 잃었습니다. 

모세에게는 분명한 삶의 전환이 있었습니다. 그가 그런 삶을 선택하고 고난의 길을 갈 수 있었던 비밀은 주께서 상주심을 믿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민족을 위하여 능욕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상주실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상이 아닌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잠시 누릴 상이 아닌 영원을 통해 기억될 상급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 믿음이 위대한 결단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의 선택을 비웃었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상급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 여정 가운데 어려운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어떨 때는 너무나 실망하여 차라리 목사가 아니라 평신도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 어떤 분은 그러실거에요. ‘목사님, 그래도 목사님은 저만큼 어렵지 않으셨을거에요“, 맞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지경을 만납니다. 

그런데 제가 어렵고 낙심해 있다가도 기도 중에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체험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용기를 냅니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스런 상급을 바라볼 수 있기에 수많은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중요한 구절이 6절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상급을 기대하시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몇 년 전, 미국 항공우주국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과학적인 목적의 우주 탐사를 하고 지구로 귀환하던 중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컬럼비아호 탑승자가 7명이었는데, 대부분이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선장이었던 ‘릭 허즈번드(Rick Husband)’와 유일한 흑인 공군 중령 ‘마이클 앤더슨(Michael Anderson)’은 둘 다 ‘휴스턴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성도들이었다고 합니다. 

마이클 앤더슨은 사고가 있기 3주 전, 예배시간에 마치 자기의 죽음을 예견한 사람처럼 의미심장한 간증을 남겼다고 합니다. “제가 우주선에 탑승하기로 한 것은 위험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저의 사명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저는 이 여행이 우리 모두와 인류에게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만일 이 여행이 제대로 성공하지 못해도, 저에 대해 걱정하기 마십시오. 저는 더 높은 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선장 ‘릭 허즈번드’는 교회 안에서 섬김으로 경건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 근무하면서 직장에서도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하고,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가정 생활에서도 모범이 되었고, 교회 생활에서는 우리로 치면 남선교회에서 사역하고, 교회학교 교사로도 섬기며, 정기적으로 찬양대원으로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는 4살 때부터 꿈이 별에 가는 것이었고 제일 즐겨 부르던 찬송도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79장)’였다고 합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그 교회의 담임목사인 도노후 목사는 아마도 사고가 난 순간에도 릭은 이 찬양을 부르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찬송의 4절을 봅니다.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2)” 

‘릭 허즈번드’는 자신이 사랑했던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별을 노래하다가 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품에 안긴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름다운 믿음은 거절할 것을 거절하고, 선택할 것을 선택하며, 바라볼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름다운 믿음을 소유하셔서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의 상급을 소유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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