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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그러므로 충만하십시오 (엡 5: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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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충만하십시오 (엡 5:15-20)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타블로라는 가수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타블로, 그는 미국의 유명 대학을 나온 가수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중반 일부 네티즌이 인터넷 카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상식이 진리인 세상’ 등을 개설, 학력 위조 등 각종 의혹을 제기하였습니다. 타블로는 인터뷰를 통해 성적표와 스탠퍼드대 교수들 편지까지 다 보여줬습니다. 보여줄 건 다 보여줬는데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하필이면 그가 아빠가 됐고 앨범을 낸 순간이었기에 더 힘들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다가 괴 소문을 알게 되었고, 그런 상황이 몇 달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최근,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가수 활동을 잠시 접었기 때문에 딸이 태어난 순간부터 뛰어다니며 춤을 출 수 있을 때까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힘겨운 시간들이 자신을 변화시킨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 일로 ‘별일 없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별일 없음의 소중함! 별일이 없음에 감사해 보셨습니까? ‘별일 없음’은 무료하고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닙니다. ‘별일 없음’은 일상에서 진짜 행복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자극적인 감동이 없어도 살아 있음이 감사하고 흐뭇하고 정겨운 시간입니다. 힘들고 어려웠는데 돌아보며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 동안, 에베소서를 통하여 듣는 일련의 이야기를 일단 끝맺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그러므로’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I.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15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5a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여기에서 ‘그런즉’은 그동안 우리들이 살펴본 ‘그러므로[ou/운]’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따라서’, ‘결과적으로’ 모두 앞의 무엇이 원인이 되어 나타난 결과를 연결시켜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 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즉, ‘그러므로’,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살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그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사는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답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떻게 행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주의하여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는 세 가지 말씀입니다.  

여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15절 후반절로 16절 말씀입니다.
:15b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우리는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지혜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알고, 미래의 소망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시대가 악하기 때문에 세월을 아낌으로써 시간을 선용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지혜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시간을 선용할 수 있습니까? 

17절 말씀입니다.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 이리 저리 방황하지 않고 시간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뜻을 알 때, 때를 아낄 수가 있으며, 때를 아끼는 삶은 주님의 뜻을 실현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18절 말씀입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우리는 술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주님의 뜻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줍니다.

주님의 뜻을 깨닫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주님의 뜻을 깨닫고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지혜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을 사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 충만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어떤 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모습인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19절로 20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성령 충만의 결과이기도 하고 성령 충만으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II. 성령 충만으로  

성령 충만함에 대하여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데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주도권은 성령님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경우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이며 이런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또, 어떤 사람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십니까? 먼저, 19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9a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성령으로 충만하여지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는 말씀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자동적으로 부른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하라고 역시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하여야 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서로 화답하여 충만하십시오.

여기에서 ‘화답하며[lalevw/랄레오]’는 ‘목소리를 내거나 소리를 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혼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화답하고 라고 합니다. 이것은 함께 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혼자 부르는 노래도 아름답지만 함께 부르는 노래에는 힘이 있습니다. 독창은 섬세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합창에는 웅장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함께 부르는 그 노래에는 공동체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에 임하신 성령 충만을 함께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찬양함으로 공동체에 임하시는 성령님의 충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서 회중 찬양은 정말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서로 함께 부르는 찬송이 중요합니다.

함께 찬양하여 성령의 기름 부르심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찬양 부르는 외적 모습뿐만 아니라 찬양하는 내적 모습이 중요합니다. 

19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9b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점이 ‘마음으로’라는 말입니다. 마음[kardiva/칼디아]은 마음뿐만 아니라 심장, 영혼, 영적 생명의 중심 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가슴으로 노래 불러 주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2. 마음으로 노래하며 충만하십시오.

여러 사람이 함께 찬양을 하는 것이 찬양의 외적인 모습이라면 마음을 다하여 노래하는 것이 찬양의 내적인 모습입니다. 때때로 음악적으로 매우 훌륭한 노래임에도 찬양으로는 2%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 서툴러도 감동적인 찬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경험하는 찬양은 마음을 다하여 부르는 찬양입니다. 그 마음 위에 하나님께서 충만히 임하십니다.

마음을 다하여 찬양함으로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서로 화답하며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시 19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9b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이번에 생각하려고 하는 말은 ‘찬송하며’라는 말입니다. ‘노래하며’라는 말과 ‘찬양하며’라는 말이 어떻게 다를까요? 여기에서 ‘노래하며[a[/dw/아도]’도 ‘찬양을 드리다’(to sing praise to God)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찬송하며[yavllw/프살로]’는 무엇일까요? 본래 문지르다, ‘잡아당기다, 윙하고 울리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문지르고 무엇을 잡아당깁니까? 활로 줄을 문지르는 것입니다. 현악기를 연주하는 것입니다. 연주에 맞추어서 노래 부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3. 연주로 찬양하며 충만하십시오.

악기의 연주 없이 목소리로만 부르는 아카펠라의 아름다움을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악기로 연주하며 함께 찬양하는 아름다움 역시 큽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만들어 내는 찬양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모든 악기는 예배를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악기와 예배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악기의 연주와 함께 찬양할 수 있습니다. 악기로 연주하며 찬양할 때 성령으로 충만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악령이 임하여 번뇌하는 사울 왕 앞에서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자 사울이 상쾌하게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났습니다.(삼상 16:23) 다윗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게 하였습니다.(삼하 6:5)

연주와 함께 하는 찬양에 마음을 다하여 함께 노래함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함으로 받는 아주 중요한 길 한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노래하며, 연주로 찬송하며와 함께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III. 감사하며  

오늘 말씀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노래하며, 연주로 찬송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는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감사함으로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 그 틈으로 사탄이 헤집고 들어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감사하면 사탄이 틈을 탈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지배하시는 삶이 됩니다.

어떻게 감사하여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항상’ 이어야 합니다.

항상[pavntote/판토테]은 언제나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감사할 수 있는데 언제나는 도무지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느 때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는데 어느 때는 성령님이 사라지시는 것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감사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는 자신의 형님 밑에서 개만큼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듣고 있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한 사람을 이렇게 책망하였답니다.

“당신은 개만큼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복도 받고 성공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이 아니라 때때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제, 때때로 불평이 생기더라도 항상 감사하기를 힘쓰는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의 감사는 또 어떤 감사이어야 합니까?


2. 우리는 ‘범사’에 이어야 합니다.

범사[pa'"/파스]란 그야말로 모든 일입니다. 이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좋은 일에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아니라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한 여행자가 당나귀를 타고 닭 한 마리와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 묵어가기를 청하였는데 거절당하였습니다. 동네에서 떨어진 곳에 천막을 쳤습니다.

그래도 여행자는 하루 일을 감사하며 성경을 읽기 위하여 등불을 켰습니다.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천막이 무너지고 등잔은 깨졌습니다. 참으로 운이 없는 하루였습니다. 천막 한 귀퉁이를 세우고 그 밑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닭이 울지 않아 조금 늦게 일어나 보니 밤사이에 맹수들이 나귀를 죽이고 닭을 잡아갔습니다. 참으로 억세게 운이 없는 여행이라는 불평이 마음에서 생겼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자신을 쫓아냈던 동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지난밤에 도적 떼들이 홅고 지나갔던 것입니다. 그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친절하게 받아주었더라면 자신도 함께 화를 당하였을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등이 깨어지지 않았더라면 도적떼에게 자신도 발각되었을 것입니다. 닭이 울고 당나귀가 놀라서 힝힝거렸다면 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여행자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했습니다. 

모든 일에서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찾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범사에 항상 감사할 수 있기 위하여 성령님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한 모든 일에 감사할 때에 성령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감사는 우리의 신앙이자 우리의 인격입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불평하기 쉽고, 원망하기 쉬운 우리가 어떻게 모든 일에 언제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3.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에서 ‘으로’입니다. 이것은 안에, 의하여, 가지고 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는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과 그 능력을 의지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감사하기 보다는 원망하는 일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본성적으로 감사할 수 없으나 예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또한 성령으로 충만을로 받는 길입니다. 존 웨슬리는 “내가 성령 충만하여 중생한 이후로 저주하고 악담하는 일을 그친 것처럼 다시는 염려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4.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사를 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에게로 향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도 전혀 감사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원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감사의 본질입니다.

감사절 이야기의 고전이 있습니다.

어느 임금이 배추 국을 맛있게 드셨습니다. 임금님은 기분이 좋아서 요리사에게 손에 낀 금가락지를 상으로 내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리사는 극구 사양하면서 상을 받을 사람은 맛있고 싱싱한 배추를 공급해 주는 상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임금님이 배추 상인을 불러 상을 내리려하였습니다. 상인 역시 자신은 상 받을 자격이 없다고 사양하였습니다. “상을 받을 사람은 농부입니다. 그가 맛있고 싱싱한 배추를 잘 길렀으니 상 받을 분은 농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은 농부를 불러다가 상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농부 역시 자신은 상 받을 자격이 없다고 사양하였습니다. “상 받을 사람은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주신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이십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요리사와 배추 상인과 농부와 임금님이 함께 손을 잡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고 세상의 지혜로 헤아릴 수 없는 일들 앞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면 길이 열립니다. 원망과 불평이 우리의 길을 막고 보이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감사와 찬양을 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그러므로’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노래하며, 연주로 찬송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감사합니다. 그리고 원망하고 불평할 때 성령의 능력을 소멸하는 것처럼 감사할 때 성령으로 충만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감사할 수 없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습니다.  

감사의 노래를 불러 성령으로 충만하여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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