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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다윗의 생애9) (삼하 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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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다윗의 생애9) (삼하 7:18-29)
 
감사의 고백

한 번은 우리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부목사님들의 소박한 감사의 제목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분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목회자이신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거대한 산과 같았고 넘어지지 않을 것 같은 아버지의 등은 저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이었습니다. 저는 그 뒤만 따라가면 되었습니다. 이제 목회의 길을 가면서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사명이라고 말씀하셨던 부분을 저 자신도 깨닫게 된 것은 큰 감동이며 감사였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쓰러지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회복되셔서 하루의 대부분을 성경 읽으시고 기도하시는데 보내십니다. 자식들에게 다른 것을 해줄 수는 없고 말씀과 기도로 중보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제 목회에 가장 든든한 힘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의 은택이라고 믿으며 감사드립니다.” 

자녀들을 기억하면서 감사했던 분도 계셨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12년 만에 자녀를 얻었습니다. 세 차례의 유산을 경험하면서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6살이 된 아이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이루신 일에 대해 다만 기뻐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했던 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소망교회 지구담당 목사로 화요일 말씀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성도님들의 진지한 눈빛과 성실한 참여를 보면서 소망교회의 저력을 보았습니다. 제게는 말씀을 준비하는 부담감도 있지만 이런 성도님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요 감사의 제목입니다.” 

또 다른 목사님입니다. 

“성도님들이 몸이 불편하여 부축해서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데도 부부가 서로 손을 붙잡고 예배당에 들어오는 모습은 아주 감동적입니다. 저런 분들을 통해서 예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 제게는 감사입니다.” 

또 다른 목사님입니다. 

“행사나 이벤트 중심의 비본질적인 목회가 아니라, 말씀과 예배와 새벽기도라고 하는 단순한 목회적 과정을 통해 교회가 교회다워지며 예배가 예배다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 다른 목사님입니다. 

“목회자에 대한 신뢰상실로 인해 흩어져 있던 구역의 식구들이 하나둘 다시 모여 신앙 공동체 본연의 자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나를 말씀의 도구,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또 다른 목사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집사님, 자녀의 이혼에 아파하면서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겠지요’ 라고 하며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고자 하는 권사님, 시험에 붙게 해달라고 부탁해놓고는 교역자가 실망할까봐 시험에 떨어진 사실을 알리지 않고 여쭈어보면 ‘이번엔 우리 아이의 기회가 아닌가 봐요 다음에 더 좋은 것으로 해주시겠죠. 목사님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성도님, 자신의 마음이 아프지만 오히려 교역자를 위로해주며 예배당으로 들어가시는 성도님들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큰 복이요 감사한 일인지 말로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하는 신앙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감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앙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어떤 것이 성숙한 신앙일까요? 내 속에 감사의 제목이 있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삶이 되었다면 성숙한 신앙입니다.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감사의 찬양 울려 퍼지고 있다면 복된 신앙이요,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내 안에 좋은 것이 있고 복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부터 내게 주어진 것, 아니 저 하늘로부터 내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을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선물은 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부모님의 은혜, 어머니의 은혜, 아버지의 은혜라는 말을 할 때 우리의 가슴은 따뜻해집니다. 그러나 이 은혜라는 말을 정말 쓸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골고다 언덕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게 하셔서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고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건져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 것을 우리가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윗의 기도의 노래입니다. 감사의 찬양입니다. “하나님, 내가 누구이기에 나를 사랑하셔서 여기까지 인도해주셨습니까?” 다윗의 마음에는 자책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나는 번쩍거리는 백향목 궁에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궤는 저 휘장 가운데 놓여 있으니 마음이 송구스럽습니다.” 사무엘하 7장 2절에서 이렇게 다윗의 심정이 표현되어있습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사무엘하 7:2) 

그래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멋진 성전을 짓고 싶다고 말합니다. 나단은 다윗이 멋진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만 호의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아름다운 성전을 세워드리기 원한다는 그 말을 기뻐하며 그 날 저녁에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왔습니다. “내 종 다윗에게 가서 얘기해라. 내 집을 짓지 않아도 된다.” 사실 하나님도 기쁘셨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사무엘하 7:5)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사무엘하 7:7下 )

“내가 나의 성전 짓지 않았다고 꾸중하더냐? 내가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더냐? 내가 머물 곳이 없어서 꼭 필요하다고 말하더냐? 네가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너를 위하여 어떤 일들을 했는지 네 마음에 다시 확인해라. 그리고 그것을 감사해라. 그것을 찬양해라. 다른 수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소중한 것이다. 너는 본래 들판의 양치기였잖느냐? 그런데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지 않았느냐? 내가 아무런 이름도 없던 네가 위대한 이름을 주지 않았느냐? 바로 이 모든 일을 한 분이 나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기억하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내가 나단 선지자에게 부탁했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나를 부르시는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직접 무릎 꿇어야겠구나. 내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높이는 찬양을 해야겠구나.’ 그래서 18절에 다윗의 기도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기보다 감사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사무엘하 7:18) 

여기 보면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앉았다고 기록합니다. 아마 기도했을 것입니다.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주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찬양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깨닫습니다. ‘주님, 저는 저의 능력과 재물로, 제가 가진 지위로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군요.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아는 것,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로군요!’ 

다윗의 생애를 쓴 유진 피터슨은 이 구절을 보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세계와 인간 실존의 시작이요, 중심이며 끝이시기 때문이다.” 

그냥 하나님 안에 있는 것, 하나님과 더불어 있는 것,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수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실존을 벌거벗긴 채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머리 숙이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게으름을 피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만사가 다 귀찮아서 체념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조용히 나아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을 하나하나 세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복주셨구나. 하나님께서 내게 생명을 주셨구나. 하나님께서 내게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구나. 하나님께서 내게 사랑하는 가족을 주셨구나. 하나님께서 내게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주셨구나.’ 나의 삶 하나하나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을 기억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감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깨닫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린 아이와 같은 친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다윗은 18절부터 29절까지 긴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때 다윗은 나단에게 대신 기도를 부탁한 것이 아니라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와 2인칭으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주’라고 되어 있는데 그 ‘주’라고 하는 번역은 전부 ‘YOU’, ‘당신’이라고 하는 2인칭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당신께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당신’이라고 말하면 나이 드신 어르신께서는 어떻게 하나님을 향해서 당신이라고 할 수 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말에는 2인칭이 잘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영어는 누구에게나 ‘YOU'입니다. 대통령도 ’YOU'고 만나는 사람 모두가 ‘YOU', 즉 당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깥에서 그렇게 말했다간 뺨 한 대 얻어맞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당신’이란 말이 아주 소중한 말이 될 때가 있습니다. 남편 되시는 분들은 집에 가면 아내를 뭐라고 부릅니까? ‘당신’이라고 부르십니까? 거기에는 사랑과 애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내 되신 분들은 남편을 부를 때 뭐라고 부릅니까? ‘당신’, 거기에는 2인칭의 깊은 애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사무엘하 7:20)

“당신 여호와는 당신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당신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마치 사랑하는 부모 앞에 나아가는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 하나님 좋아해요. 하나님, 나 하나님 사랑해요. 하나님, 당신이 내 인생의 최고에요.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말을 내가 너무 좋아해요.” 이렇게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 앞에 자기의 모습을 아뢰고 있습니다. 그때 다윗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속에서 영혼이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찬양하고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십시오

“그런즉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사무엘하 7:22)

“하나님, 당신같이 위대한 존재는 이 땅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가 당신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어떤 신들이 하나님과 똑같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의 찬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기쁘게 살아가는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감사는 겸손해질 때 나타납니다. ‘아, 내가 받은 것이 많구나. 내가 하나님에게, 내가 부모님에게,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참 받은 것이 많구나!’ 이것을 깨달을 때 감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가슴을 기쁘게 합니다. 감사에는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감정만이 아닙니다. 감사는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감사하기로 선택하겠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희망노트를 씁니다. 될 것, 안 될 것 잡다하게 씁니다. 우리는 약속의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노트를 써야 합니다.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아니 하루에 세 가지 정도 감사의 제목을 적어보십시오. 내 영혼이 빛이 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 영혼에 찬송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오늘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내 영혼이 기뻐 뛰놀기를 원합니다. 내가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내 심장이 뛰는 것 감사합니다. 저 푸른 하늘을 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내 귀로 듣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내게 예배드릴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내 속에 감사할 줄 아는 영혼을 허락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에 감사를 마음껏 선포하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누리시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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