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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주의 하라 깨어 있으라 (막 13: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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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하라 깨어 있으라 (막 13:28-37)
   
교회력에 따르면 오늘 11월 마지막 주일로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대림절이란 성탄절을 앞에 두고 4주간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며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대림’이라는 말은 영어로 ‘Advent’라고 하는데 이 말은 ‘강림’, ‘오심’, ‘도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신적인 권위를 가진 황제가 즉위한 후에 자기 제국의 여러 지역을 행차할 때에 황제의 방문을 ‘His Advent’ 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은 왕 중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기이기에 Advent 라고 불렀습니다. 사랑하는 귀한 손님이 우리 집에 온다는 하면 그의 오심을 준비하며 그를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법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주님의 초림을 감격 속에 돌아보면서 또한 주님이 약속하신 재림을 대망하면서 앞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나라, 당신의 왕국을 시작하기 위하여 초림,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왕국의 최종적인 완성을 위하여 다시 오십니다. 신약성경이 말씀하는 신약의 종말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기대입니다. 이 기대가 신약교회의 믿음을 지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 신앙이 오늘의 교회를 이 땅에 존속하게 만들었습니다. 재림 신앙은 우리를 구원하는 진리의 말씀에서 핵심이요, 최후의 완성이 됩니다. 

복음서와 서신서에도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말씀은 수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4복음서에서 다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어느 한 복음서의 한 두 곳에만 나타나는 약속이 아닙니다. 

마16:27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영광중에 오신 주님, 영광중에 강림하신다는 말이 “파루시아”라고 했습니다. 이 파루시아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데 영광중에 강림하신다는 말입니다. 

막14:62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인자 곧 예수님이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유대 교권자들이 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보리라는 말씀은 당대의 교권자들이 본다는 의미도 되지만, 재림의 확실성을 강하게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됩니다. 

행1:11에서도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천사들의 입으로 증언하신 말씀인데,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의 서신들에도 도처에 나타나는데, 살전5:2에서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주의 날이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매 장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계1:7에서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에서는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마라나타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오시옵소서”라는 말이 마라나타입니다. 초대교회는 “마라나타”를 말했습니다. “주님이 오십니다.”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기원이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 주님의 교회들은 우리 주님 예수님의 다시 오심, 재림에 대한 생생한 기대 속에 신앙을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그러한 기대와 소망이 우리 성도들에게 보이지 않고, 아예 생각조차 없다면, 무엇인가 하나님의 진리에서 아주 멀어져 있고, 근본적으로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 속으로 우리 주님이 더디 오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는 우리 주님께 아주 불충한 사람입니다. 오늘의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너무나 물질적이고 세상의 일에 연연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에 대한 관심이 우리의 관심사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아마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주님이 다시 오시면 좋은 일이라고 말은 하지만, 우리 당대에는 오시지 않을 것이요, 오신다고 하여도 아주 먼 미래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재림에 약속은 재림 신앙만 남아 있고, 재림은 막연한 기대에 맡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유야 어떠하든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힘차고도 생생한 기대를 잃어버린다고 하는 것은 교회 안에 퍼져 있는 아주 심각한 영적 질병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삼가 주의해야 하며 깨어 있는 신앙, 영적으로 각성하여 주님의 재림을 대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막13:32의 말씀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는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지는데,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시는 아들 우리 주님 자신도 그 날과 그 때를 모릅니다. 다만 아버지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이요, 아버지만이 아시는 날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도 인정하셨습니다. 당신 자신도 다시 오시는 날과 때를 모른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에서 어떤 말씀이 조속한 재림이나 제자들이 살아 활동하던 그 당대에 오실 것처럼 보이는 구절이 있다고 하여도 오늘 막13:32의 말씀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는 말씀의 빛 아래에서 해석해야만 합니다. 어떤 구절도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석해야 됩니다. 

저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데, 우리들이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다시 오면 좋겠습니다. 제가 고대하고 소망한다고 주님의 재림이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주님이 우리 시대에 오시면 구원받은 사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주님이 예비하시는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여러분은 죽은 다음에 오시는 것을 바라고 계십니까? 저는 살아 있는 우리 시대에 오시는 것을 고대하고 사모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해지면 여름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무화과나무의 잎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안다고 합니다. 여름이 다가온다는 것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만 알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다가오는 그 무엇이라고 하는 것은 도래하는 구원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앞에서 말씀하시는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마지막 세대에 일어나게 되는 많은 세기말적인 사건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는 날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일어나며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다 말씀드리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우리 주님이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미혹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이적과 기적을 행하면서 미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환난의 날이 닥쳐올 것이며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본문 30-31절의 말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도 재림에 대한 확실성을 강조하신 말씀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는 말씀이나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도 역시 재림의 확실성을 말씀하신 것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32절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고 사모하여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것을 32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어떤 말씀이 있든지, 사도들이 말씀하신 재림에 대한 교훈의 말씀에도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시는 말씀은 한 곳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33절입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주의하다는 말은 “보라”(see), 알아차리라, 인지하라, 통찰하다, 간파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악한지, 얼마나 타락하였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유혹하는 것들이 많이 삼가야 하고, 주목하여 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들어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잠을 쫓아버리라는 말이요, 정신 차리고 낮이 되었음을 알고 맑은 정신으로 긴장하라는 말입니다. 

우주적인 종말, 역사적인 종말, 우리 주님이 역사의 심판주로 오시는 그 날은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이 아버지만 아시고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령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에 오실지, 밤중에 오실지, 닭 울 때에 오실지, 새벽에 오실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집에 돌아와 보니 종이 자는 것을 본다면 불충한 종이 되고 맙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에 종이 깨어 있고,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본다면 주인이 얼마나 기뻐할 것입니까?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하십니다. 주인이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고,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을 정신 차리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지음을 받은 목적을 잘 알고 우리의 살아가는 동안 열심히 살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다가 주님을 만나면 됩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여 흰옷을 입고 목욕하고 오로지 먼 산만 바라보면서 우리 주님이 저 구름을 타고 오실까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맞이할 수 있는 믿음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 말씀하시기를 주님이 이제 가까워 오셨다는 생각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롬13:11에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깨어 있는 것입니까? 세상에 깊이 잠들지 말고 영적으로 경성하고 각성해야 하고 정신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모토(Motto)라는 신학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어제 죽으셨고, 오늘 아침 일어나셨으며, 내일 다시 오실 것처럼 살자”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재림을 확신하지만, 그러나 언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개혁주의 종말론을 쓰신 안토니 후쿠마라는 교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이 시간상으로 임박했다고 말하지 말고 상황적으로 임박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한 귀로 듣고 다시 한 귀로 흘려버리지 말고,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우주적인 종말, 역사적인 종말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머지않아 주님 앞에 서야 하는 개인적인 종말이 바로 코앞에 놓여 있습니다.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습니다. 

언젠가 인디언 추장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미국의 서부 개척사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 백인들이 아메리칸 인디언을 쫓아내기 위해서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마을 주위에 불을 질렀습니다. 당시 인디언들은 사방에 옥수수를 심어놓고 그 가운데 부락을 만들고 거주하고 있었는데 불길이 사방에서 조여오기 시작했습니다. 몇 시간 뒤에는 마을까지 불길이 번질 상황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모두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때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추장이 나서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어서 빨리 마을 앞 옥수수 밭에 불을 질러라! 꾸물대지 말고 빨리 빨리 불을 질러라!!” 중요한 결단의 순간 추수를 기다리고 있던 옥수수 밭이 새까맣게 불타 버렸습니다. 추장은 다시금 마을 사람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살고 싶거든 모두 다 불탄 자리에 올라서라!” 마을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젖먹이 어린 자녀들을 끌어안고 평생 살아오던 집에서 나와 불탄 옥수수 밭으로 올라가 그 엄청난 화염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추장은 이미 한번 불에 탄 곳은 다시는 불에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무서운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심판 받으신 십자가의 자리에 나오기만 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5:2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받아야 하는 심판과 저주를 주님이 받으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비록 발을 이 땅에 붙이고 살지만, 우리의 영혼은 이미 하늘나라를 살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감격을 안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주의 깨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실화입니다.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었습니다. 한 노부부가 하룻밤 묵을 방을 찾아 아주 작은 호텔을 찾아왔습니다.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은 겸손한 말로 방이 다 찼다는 말과 함께 오늘 이 도시의 모든 호텔도 다 만원이라는 사실도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를 이 우중에 돌려 보낼 수 없으니 괜찮으시다면 제가 쓰는 방이라도 주무시고 가시죠” 그 밤에 노부부를 돌려보내지 않고 자기 방에 모시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극구 사양하였지만, 노부부는 그 직원의 친절에 감동을 받아 하룻밤을 잘 쉬고 다음 날 계산하면서 “당신은 미국 전역에서 제일 좋은 호텔을 관리할 사람이군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직원은 노부부의 초청을 받아 뉴욕으로 갔습니다. 그 때 그 노인은 “이 호텔이 바로 당신이 맡아 운영할 호텔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노인이 바로 ‘윌리엄 월도프 아스토’였고, 이 호텔이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었습니다. 성실은 누구나 알아줍니다. 우리 주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데 성실하게 사는 것도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서시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다가 주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을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주님 앞에 서시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시고 성실을 다하시고 정직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만큼 살게 되었으면 감사하시고 세상에 쏟던 관심을 이제부터 영혼을 살찌게 하고 건강하도록 각성하여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역에 최선을 다하시고,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살다가 주님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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