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지금은 주의 인도를 받아야할 때 (마 2:1-11)

첨부 1


지금은 주의 인도를 받아야할 때 (마 2:1-11)


세계 제 2차 대전이 발발할 때의 일입니다.  영국의 국민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이 때 영국  황실과 윈스턴 처칠 수상은 전쟁이 발발하던 그날, 온 교회가 일제히 같은 시간에 종을 울리도록 영국교회에 요청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립니까?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나?" 하니까 한 가지 질문을 여러분에게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나?"를 경상도 말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니 종은 와 우노?"

그 종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심기 위한 희망의 종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동시에 영국 왕실은 영국성공회의 존경받는 주교였던 윌리암 템플 주교에게 전 국민에게 보내는 방송 설교를 의뢰했습니다.  템플 주교는 그의 역사적인 설교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대영제국의 국민 여러분, 잠시 후 이 땅에 모든 교회는 종을 울릴 것입니다.  종소리를 듣거든 우리 모두 교회로 나가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십시다.  역사의 주인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입니다."

누군가는 그의 설교가 현실적인 대안이 결핍된 매우 종교적이고 상식적이고 심지어는 상투적인 설교라고 비판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상황에서 이 보다도 더 실제적인 대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역사의 모든 고통이 하나님의 손길을 거쳐서 허용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인도 없이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이나 해방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미지의 2012년을 약 20여 일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지난 몇 년은 참으로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1997년에 터진 IMF를 시작해서 2007년에 터진 글로벌 경제 위기 등으로 우리 국민은 참으로 허리를 졸라매는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IMF를 우리는 온 몸으로 맞서면서 헤쳐 나왔더니 IMF 때보다 훨씬 더 큰 세계 경제 위기가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가 경제는 세계 어느 나라의 경제보다 이 험난한 파도를 잘 헤쳐 나오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무역 수출 1조달러를 넘어서서 세계 7대 경제대국에 올라섰다고 합니다.  63년 전에 영국 무역의 3%밖에 되지 않던 처절하게 가난했던 우리 나라가 이제는 그 영국을 넘어섰습니다.  어느 나라들처럼 지하자원이 없는 우리 나라, 동족상잔으로 폐허가 된 우리 나라, 세계 열강국들 사이에 갇혀서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는 우리 나라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은 분명히 경제적 기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와 빌게이츠를 비롯한 많은 세계적 지도자들이 우리 나라를 격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분명히 어깨를 당당히 펴고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사회는 저소득층이 배로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겪는 체감 경기는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화되었습니다.

지난 주간에 계명대학교 학생 한 명이 제게 면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래서 목요일 저녁에 야간수업을 마치고 학생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53살의 일용직 근로자입니다.  요즘 아버지가 일거리가 없어서 너무 힘들어하신다는 것입니다.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하는데, 그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학생이 휴학을 하고 돈을 좀 벌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제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연연하지 말고 그 꿈을 향해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라.  인생을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환경을 보지 말고 꿈과 비전을 보도록 해라.

사실, 그날 이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정의 어려운 이야기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뭐라고 격려를 하고 용기를 주어야 하는지 제 마음도 막막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제가 그 학생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제가 살아왔던 인생의 이야기와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휴학하지 말고 네가 품고 있는 그 꿈을 향해 나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와 헤어지면서 오늘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깊이 체감하고 있는 어려운 현실들 앞에서 제 마음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내면의 소리를 듣는 순간 제 마음에는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경제가 어렵습니다.  사회 정치적인 상황을 바라보면 암담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주님의 인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주님의 인도를 경험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 2000년 전, 이스라엘 땅 동쪽에 살면서 주님의 특별한 인도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소위 동방 박사들의 이야깁니다.  동방의 박사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를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이런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었을까요?  우리가 본문을 묵상하면서 계속 이 질문을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것은 고통스런 이 시대에 내가 주의 인도를 받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사실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주의 비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여러분 중에 어떤 한 분을 붙들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가정을 해보십시오.
"집사님, 당신은 최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계십니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들 가운데 상당한 사람들이 이 질문 앞에 당황해할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특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들이 무의미한 일상적인 삶의 반복에 너무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겁니다,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뭐.  이렇게 살아도 한평생, 저렇게 살아도 한평생인걸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는 거지."

가만히 보면 우리들의 삶에 대한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구체적인 기도가 없습니다.  왜 없습니까?  바꿔 말하면 그것은 희망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꿈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가슴을 설레게 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새로운 꿈이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 엎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주님 앞에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좀 도와주십시오.  주님, 좀 인도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타난 동방박사들이 동방에서부터 예루살렘을 찾아오는 모험에 찬 여행의 시작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어느 날 하늘의 비전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별을 본 것입니다.  이 별을 보자마자 그들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별이 그들의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삶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던 한 흑인 여성 '그리피스 조이너'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핑크빛 비키니 운동복, 빨강 노랑 흰색으로 칠한 10㎝ 길이의 손톱, 긴 머리와 빼어난 미모….  그리고 폭발적인 스피드로 80년대 후반 세계 육상 팬들을 흥분시켰던 '달리는 패션모델'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

그녀는 L.A의 남쪽에 아주 빈민가에서 열두 명의 식구들 중에 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끼니가 어려워서 정부의 보조를 통해서 살아가는 그런 소녀였습니다.  꿈이 없었습니다.  절망 속에 그녀는 늘 친구들을 피하고 우울증에 걸린 소녀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소녀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유명한 복싱 챔피언이었던 슈가레이라는 한 흑인 영웅이 이 소녀가 다니고 있던 초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학생들은 환호성을 올리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슈가레이가 가만히 보니까 구석에 홀로 쭈그리고 앉아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땅만 쳐다보고 있는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끝내고 강연을 마친 다음에 이 소녀 곁에 다가갔습니다.
"얘야, 어디 아프니?"
"다 싫어요. 저는요. 집도 싫고 학교도 싫어요."

슈가레이는 이 소녀를 끌어안아 주면서 "네 이름이 뭐니?" 라고 물었습니다.  "제 이름은 플로어에요.  플로렌스 플로어"
"너 좋아하는 거 있잖아.  너 좋아하는 거 뭐가 있니?"
갑자기 소녀는 눈을 반짝이면서 "저요? 뛰는 건 좋아해요."  "그래?  그러면 말이야.  너도 나처럼 유명해 질 수 있어.  너는 세계적인 육상 스타가 될 수 있어.  그리고 꿈을 가진 사람은 부자야.  꿈을 가지면 너는 세계적인 육상선수가 될 수가 있단다.  내가 네가 그런 선수가 되도록 기도해 줄게."

그리고는 그 어린 소녀의 손을 꽉 잡아 주었습니다.  그 날 슈가레이의 한마디는 이 어린 소녀의 인생이 하늘에 별을 걸도록 만들었습니다.  별을 봤습니다.  그 날부터 이 소녀는 달라졌습니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88서울올림픽에서 그녀는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했고, 89년 은퇴 후에는 불우 어린이를 위한 자선사업과 체육활동을 하면서 미국 전체에 가장 영향력을 끼치는 여성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순간, 저는 오늘 우리 민족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의 별을 보는 것입니다.  비전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회복의 논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 어두운 하늘 아래서 우리 민족이 볼 수 있는 별이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위해서 하늘에 별을 걸어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약속을 되풀이하십니다.  "말세에 내가 나의 종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리니 그러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꿈을 주시는 하나님,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찬란한 꿈과 비전을 바라보고 인생의 길을 달리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을 들어보십시오.  어두운 하늘, 저 높은 곳에 하나님이 걸어 놓으신 희망의 별을, 그리고 그 비전을 볼 수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이 비전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비전을 보는 순간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주님은 아직도 내 인생에 대한 기대를 갖고 계시다, 내가 살아야 할 그리고 내가 걸어가면서 해야 할 내 인생의 마지막 계획이 남아 있다."  이 하나님의 꿈을 보는 순간 사랑하는 여러분, 좌절은 이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인도를 기대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동방의 박사들이 어떻게 이 별이 메시아의 별인 것을 알게 되었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 박사들의 정체를 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사라는 말이 영어 성경에서 가까운 단어들을 찾아보면 원래 마술사입니다.  박사들은 마술사입니다.  '마술사', 그러면 오늘 우리들의 개념으로는 상당히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대의 마술사는 오늘날의 박사들과 거의 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먼 나라 이국에 포로로 갔다가 남의 꿈을 한 번 잘 풀어주었다가 출세한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굽니까?  요셉도 그렇고, 다니엘이 그렇습니다.  다니엘 2장 48절과 49절에 보면,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는 칭찬을 받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온 지방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고, 모든 지혜자들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직책을 보면 당시의 마술사는 시대의 엘리트들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풀 수 없었던 왕의 꿈을 다니엘이 풀었습니다.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느냐?"고 사람들이 물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지혜를 주고 있는 놀라운 책이 하나 있습니다."  다니엘은 틀림없이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이 중요한 책을 소개했을 것입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이라는 외국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바벨론이나 페르시아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성경을 접하면서 그들은 성경의 중요한 예언 하나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민수기 24장 17절에 있는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리라."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출하고 온 세계의 소망이 되기 위한 구세주가, 메시아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나온다.  그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어느 날 출현할 것이다.  이 말씀을 알았을 것입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이 말씀을 전해들은 동방의 박사들은 하늘의 천체들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별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이상한 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스런 별의 어떤 변화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별의 등장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나타난 별입니다.  강력한 빛을 발하면서 하늘에 등장한 이 별의 출현을 보는 순간 박사들은 직감적으로 "메시아다.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행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인생이 뒤바뀌는 놀라운 순간입니다.  그들의 삶을 바꾸는 놀라운 여정이 시작되는 찰라였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그리스도들이 오해하는 대목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오해는 주로 크리스마스 캐롤이나 찬송가 때문에 오는 오해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따라왔다.  그러니까 이 별이 나타난 다음에 계속적으로 박사들의 걸음을 인도하면서 예루살렘까지 왔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을 조심스럽게 보면 이 별이 나타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별은 아마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오는 동안에 그들은 별을 보고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찾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이 말씀의 주인공이 당연히 있어야 할 팔레스타인 땅을 향해서 그들은 찾아온 것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붙들고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어디에 나셨습니까?  인류의 소망이 될 메시아가 어디에 나셨습니까?"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도움을 통해서 성경에 의하면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향했습니다.

본문의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같이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여기에서 '동방에서 보던' 이라는 말은 과거 시제입니다.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서 기적적으로 출현했던 그 별을 보았습니다.  보았던 그 별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상에서 "도대체 베들레헴 어디에 계실까?"  당황하며 찾아가던 그들에게 갑자기 별이 다시 출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얼마나 큰 감격이었겠습니까?
그래서 그 다음절인 10절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생각해 보십시다.  만약에 그들이 계속해서 별을 따라왔다면 이제 와서 이렇게 놀라고 기뻐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베들레헴 상공에 갑자기 나타나서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었고 감격이었을까요?  그들은 놀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이 팔레스타인까지 걸어오는 그 과정에서 줄곧 그들을 인도한 것은 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을 보고 그들은 쫓아온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쫓아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기 위해서 의지해야 할 중요한 방편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적은 항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은 가끔 일어나기 때문에 기적입니다.  기적이 날마다 일어나면 그것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기적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인생을 살다 보면 신앙인들의 생애 속에 어느 날 기적이 체험될 수가 있습니다.  갑자기 눈이 열립니다.  삶의 길이 환해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이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그쳐버린 밤, 내 삶이 캄캄한 어둠의 들을 헤매는 고독한 이 밤, 기적이 없는 밤 중에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시겠습니까?

그 때에도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에 신앙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신앙의 근거는 언제나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신뢰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행진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삶에 기적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내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념하지 마십시오.  기적이 없는 이 캄캄한 밤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주께서 말씀하셨다.  메시아가 이스라엘에서 탄생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이스라엘 땅 어디엔가 나셨을 것이다."  그 말씀을 붙들고 사막을 건너고, 강을 건너고, 들을 건너던 동방의 박사들처럼 내 인생이 사막을 헤맬 때, 내 인생이 캄캄한 어둠을 헤맬 때에 내 머리 위에 기적의 별이 나타나지 않아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의지하고 걸어가십시오.  주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이 말을 들을 때에 뭐가 느껴지십니까?  무엇이 가장 커다란 관심이 됩니까?

가령, 사업을 하시던 분이 내가 지금 어떤 사업에 있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좀 받아야겠다.  "하나님! 제 사업을 인도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내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을 생각은 어떤 생각이겠습니까?  어떤 사업일까?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도와 주실까?  많은 사람들은 그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자 할 때에 가장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주해하던 청교도 설교가였던 토마스 왓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인도하실 때 하나님이 우리를 첫 번째로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로 인도하신다."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하나님이 제일 먼저 인도하는 곳은 어디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자신에게로 인도하신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인도함을 받아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느냐?  내가 인도를 받아서 어떤 축복을 누리겠느냐?  하나님의 인도에는 반드시 보너스가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통해서 경험하게 될 축복보다도 먼저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주님이 나를 인도하신다면 나는 그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역사를 창조하신 하나님, 인류의 소망이신 그 분, 나의 구원이신 그 분, 내가 주님을 경험한다.  그 자체가 내 삶에서 감격이고 흥분일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처음부터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메시아를 만남으로써 그들이 출세할 것에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명한 한 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이 지금 예루살렘까지 찾아왔던 목표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본문 2절을 다시 한 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뭐 하러 왔다고 했습니까?  경배하러 왔노라.  이 순간, 동방의 박사들을 지배한 가장 커다란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일까?  역사의 소망, 인류의 소망, 우리들의 소망이신 그 분 앞에 엎드리고 싶다.  그 분을 경배하고 싶다.  그들은 이 경배의 열망을 가지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열망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주님은 이 박사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늘의 별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를 통해서 그들을 마침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그 분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들이 메시아를 만나는 감격의 장면을 오늘의 본문은 어떻게 묘사합니까?  11절을 다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동방의 박사들은 집에 들어가서 맨 먼저 경배했습니다.  누구에게 경배했습니까?  아기께 경배하고.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박사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별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별을 쓰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신 별이 경배의 대상이 되면 별은 그 순간부터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서 마리아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  인간을 위해 오신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셨습니다.  바로 그 분 앞에 엎드려서 경배합니다.

사랑하는 경배의 초점은 무엇이겠습니까?  경배의 초점은 드리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를 생각할 때 예배를 통해서 내게 축복이나 어떤 이익이 있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예배에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선한다면 그것은 예배 정신의 타락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 자신이 예배의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나를 구원하신 주님, 그 분 앞에 사랑을 드립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찬양을 드립니다.  기도를 드립니다.  헌금을 드립니다.  예배 정신의 핵심은 드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받는 것에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드리고자 했습니다.  무엇을 드렸습니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습니다.  그들은 최선의 것을 바쳤습니다.  그들이 준비한 최선의 것을 최고의 왕 되신 그 분 앞에 드리기를 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을 지배하는 관심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 민족의 최대의 관심은 경제 회복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민족이 만약 경제 회복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축복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경제 회복이 우리 민족에게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경제가 하루속히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경제 회복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더 이상의 높은 목표가 없이 경제회복만을 추구한다면, 그래서 다시금 잘 살게 되었을 때, 잘 살게 된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타락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지나온 우리 민족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경제 회복보다도 더 높은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이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민족이 되고자 하는 꿈.  이 꿈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하십시다.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과 이웃들을 섬기고 세계의 열방들을 섬기는 겸허한 민족이 되는 꿈.  잘 살게 된 경제 회복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이웃 민족들을 도와주고 그들 앞에 겸허히 섬기는 민족이 되는 더 높은 꿈이 없다면 경제 회복은 허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주님에 대한 관심이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을 경배했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계획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예배의 보너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가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역사의 어두움 속에서 내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 겸허히 엎드려 경배하는 자들에게 인생의 새로운 길을 우리 인생의 미래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민족이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새로운 날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앞날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