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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패에서 배우기(3) : 이스라엘의 3대왕 바아사 (왕상 15:33 - 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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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배우기3(이스라엘의 3대왕 바아사)
열왕기상15:33-16:7

어제 시골 교회 어느 장로님과 통화하는데 목사님이 은퇴했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똑같은 제목으로 똑같은 본문으로 설교를 4개월이나 했답니다. 그러면서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지루해 설교를 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졸거나 딴청을 부리는 교회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에는 목사님의 말씀이 무지무지 길었는데도 교인들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목사님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목사님은 너무나 감격하여 예배를 마친 후 사모님에게 물었답니다. "오늘 설교는 괜찮았나 봐! 교인들이 모두 나를 뚫어지게 보더군." 그러자 사모님이 "누가 강대상 뒤에 시계를 걸어놨어요."라고 하더랍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보고 또 보아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또 실패한 이스라엘 왕”하며 지루하게 생각하고 귀를 닫지 마시기 바랍니다. 흐르는 물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매일 뜨고 지는 태양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매일 뛰는 심장이 지루하다고 쉬면 사망입니다. 매일 숨 쉬는 허파가 지루하다고 멈추면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생수와 같습니다. 지루하고 반복된다고 귀를 막고 몸부림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자신을 깨닫게 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의 앞길을 밝게 하는 빛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구원해 주고 소망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오늘은 실패에서 배우기 세 번째로 이스라엘 제 3대왕 바아사를 통하여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바아사 왕은 2대왕 나답을 전쟁터에서 죽이고 왕이 된 사람입니다. 참 비열한 사람이지요. 왕이 군사를 이끌고 블레셋 군인들과 싸우고 있는데 함께 힘을 모아 적을 물리쳐야 할 사람이 자신의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권을 차지한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는 24년 동안 통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그의 성공적인 삶의 기록은 없고 실패한 기록만 있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엘라가 이스라엘 4대 왕이 되었는데 신하 시므리가 반란을 일으켜 엘라를 죽이고 집안의 모든 남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그렇게 모반하고 가족을 다 죽였는데 자신의 아들도 똑같이 당한 것입니다. 그는 입법 사법 행정권을 가지고 24년 동안 왕으로 살았지만 이런 기록을 보면 그의 인생은 결코 성공한 인생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바아사 왕의 실패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1. 우리는 실패를 결론으로 만들지 말고 실패를 과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누구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나답왕의 신하로 있을 때 실패했습니다. 왕의 신하로 반역하여 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가족을 몰살시켰습니다. 그리고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어서도 실패로 시작을 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16장 2절을 보십시오. 티끌 같은 인생을 왕 되게 하였는데 여로보암의 길로 갔고, 백성들을 범죄케 하였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습니다. 왕으로 출발부터 실패했습니다. 그의 인생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선지자 예후의 입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7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악을 행하며 그의 손의 행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집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결론이 이렇게 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과정이 되어야하지 그것이 마지막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마지막 하나님 앞에 평가를 받을 때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라는 평가를 받으면 안 됩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하는데 마지막 날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7:23)”라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됩니다. 시작도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하지만 끝은 더욱 중요합니다. 실패는 결론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것이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약속을 믿지 못하고 첩을 얻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삶의 과정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25년 만에 이삭을 낳았고 그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드리려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창 22:16)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창 22:17)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 22:18)”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다. 혈기를 부려 사람을 죽였습니다.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40년 왕자로 살던 사람이 쫄딱 망하여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생명 빼고는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40에 사업 왕창 망했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실패가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40년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철저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손아귀에서 해방시켰습니다.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민족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인생의 결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히 11:24)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 11:25)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6)”

요셉의 인생을 보십시오.

어머니가 넷이나 되는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한 때 사기꾼이었고 욕심쟁이 였습니다. 어머니들이 아이 낳기 경쟁을 하는 집안입니다. 형이 계모를 범한 집안입니다. 형들이 시기를 합니다. 완전 콩가루 집안입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실패같이 보입니다. 결국 형들의 시기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웅덩이에 갇혔습니다. 인생 실패 같습니다. 인신매매되어 애굽 나라로 팔려갔습니다. 사랑받았던 사람이 이제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실패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까?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합니다. 그 유혹을 뿌리치고 결국 감옥에 갇힙니다. 끝없는 실패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패는 요셉 인생의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국무총리가 되었고 그를 통해 가족이 살고 이스라엘 민족이 번성하고 애굽과 주변 나라가 흉년에도 경제적 안정을 누렸습니다. 요셉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3)”

출발이 좋지 않다고 인생 실패했다고 포기 하지 말고 결론을 성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요셉은 출발이 좋지 않았습니다. 모세도 출발이 좋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방해하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도 형들이 그의 꿈을 인정해 주지 않고 방해했습니다. 다윗도 형제들로부터 심지어 아버지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모세도 자기를 지지해주어야 할 자기 백성이 그를 살인자로 고발하였습니다. 절망적인 사건이 연거푸 다가온다고 사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은 구덩이에 갇히고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히고 23년 중에 20년을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브라함도 25년 중 24년을 약속을 얻지 못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기간이 오래 걸린다고 비전을 접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은 23년이 걸렸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이 걸렸습니다. 모세는 40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크게 이루어 주십니다. 작은 실패를 디딤돌로 큰 성공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다시 일어나기에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뿌리」를 쓴 알렉스 헤일리는 8년 동안 1백 번이 넘는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일어나 55세가 되던 해에 세계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루스벨트 대통령의 서거로 미국의 대통령이 된 헨리 트루먼은 평범한 농부로 살다가 천신만고 끝에 서른아홉 살에 처음으로 공직을 얻었고, 뒤늦은 50세에 정치무대에 입성한 후 61세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았고, 모세는 80세에 다시 일어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아이가 혼자서 걷기 위해서는 3000번을 넘어진다고 합니다. 적어도 3000번의 실패를 통해 겨우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자전거를 배울 때도, 스키를 배울 때도, 골프를 배울 때도, 영어를 배울 때도, 젓가락질을 배울 때도 많은 실패를 한 후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악기를 배우고 운동을 배울 때도 한 가지 동작을 몇 천 번 이상 해야 몸에 익고,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를 결론으로 만들지 말고 실패를 과정으로 만드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6)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8)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2. 우리는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바아사 왕의 인생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권력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왕이 되려고 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왕이 되려고 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가 최고가 되기 위해,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자기가 왕이 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입니다. 여로보암을 보니까 다윗의 아들이 아니어도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쿠데타를 일으켜서도 얼마든지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15장 27절을 보십시오. 전쟁터에 나간 나답 왕을 모반하여 깁브돈에서 그를 죽이고 권력을 쟁취하였습니다.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한 집착이 있는 것입니다. 권력욕 자체를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권력욕이 있습니다. 평생 동안 자기의 지배력을 확장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권력을 주신 분을 모르고 자신이 최고가 되려고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안하무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위해 더 높으신 분이 계시는 것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16장 2절을 보십시오. 티끌 같은 인생인데 누가 왕으로 세워주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자기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그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합니까?

15장 29절을 보십시오. 여로보암의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다 죽입니다. 정적을 제거합니다. 왕권을 행세하는데 방해되는 사람을 다 제거하는 것입니다. 왕의 총애를 받은 사람입니다. 용사입니다. 그런데 반역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 죽여 버립니다. 그 권력을 주신 분의 일을 하지 않고 자기 권력을 유지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권력이 보장될 줄 아는 것입니다. 15장 3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그 권력을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섬겼듯이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도 그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티끌 같은 인생을 왕 되게 하였는데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자신이 왕이 되어 하나님께 반역한 것입니다. 그 권력이 자기 것인 줄 착각한 것입니다. 옛날, 신상을 지고 다니는 당나귀가 있었습니다. 이 당나귀는 자기를 보는 사람마다 절을 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잔뜩 교만해졌습니다. 이렇게 당나귀가 오만방자해지자, 주인은 당나귀에게서 신상을 치워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사람들이 자기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당나귀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인사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고 다니는 신상에게 절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생명, 권력, 명예, 돈, 재능 그것 영원히 내 것 아닙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했다는 다윗을 보십시오. 40년 동안 통치한 다윗은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얼마나 대조적인지 성경을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다윗도 실패했지만 근본적인 자세가 다릅니다. 대상29:10-19절입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대상 29:11)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 29:12)”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우리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려면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끝없이 자신이 왕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받기 싫다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살게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나는 자유인이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사는데 왜 간섭하느냐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이겠습니까? 반역죄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반역죄를 무섭게 다룹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가장 무거운 죄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는 반역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대표적 특징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8)”라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하는 반역죄를 지은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같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선악을 판단하는 최종적인 결론자가 되려고 한 것입니다. 내가 최고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류는 그 반역의 대열에 가담한 것입니다. 바벨탑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창11:4)”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할 때 빌라도가 심문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것입니다.

최고의 권력자는 자기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네 말이 옳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주재권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 생명도 주님의 것입니다. 내 재능도 주님의 것입니다. 내 시간도 주님의 것입니다. 내 물질도 주님의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주재권(loadship)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 영역에서 예수님께서 왕 되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전 6:19)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20)” 이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주재권을 자기 스스로 가지고 사는 사람을 성경은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세상 풍조와 육체의 욕심에 따라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사람은 주재권을 다 주님께 맡기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성공적으로 인생을 산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주재권을 어떻게 인정하십니까?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8)”

동방의 최고의 부자였다는 욥을 보십시오. 재산을 다 잃어 버리고 자녀를 잃고 건강을 잃었을 때입니다. 그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가족 관계에서도 주님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친구관계에서도 주님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소유 관계에서도 주님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감정, 시간, 대인관계, 명성, 직업, 학업, 재능, 건강, 권력 모든 부분에 주님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를 나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이 왕 되심을 인정하는 삶이 진정 성공한 삶입니다.



3. 우리는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세우는 일을 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바아사 왕이 왕으로 24년 동안 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에 대단한 치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왕상 15:17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성 하나 세운 것입니다. 무엇하기 위해서입니까? 전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한 일을 한 마디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15장 32절을 보십시오.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이것이 그가 왕으로서 한 일입니다. 형제의 나라입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일생동안 전쟁만 하다 간 것입니다. 전쟁은 파괴하는 것입니다.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는 한 가정을 무너뜨렸습니다. 자기의 지배욕을 채우기 위해 여로보암 가문을 처절하게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의 왕권을 확장하기 위해 유다 나라와 일평생 전쟁을 치렀습니다. 얼마나 수많은 가정의 아들들과 남편이 전장에서 죽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발생하였겠습니까? 전쟁으로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평생 얼마나 고통을 받게 되었겠습니까? 전장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아내와 부모 형제들이 얼마나 고달픈 인생을 살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나의 지배욕, 정복욕을 채우려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피눈물을 맺히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6장 3-4절을 보십시오. 내 눈에도 피눈물이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묵과하지 않습니다.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16장 11절 이하를 보십시오. 그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무섭지 않습니까?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게 주어진 권력과 재능, 시간과 재산을 가지고 무너뜨리는 일을 할 것이 아니라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사장이 되면 그 사장의 권한을 가지고 회사를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직책을 받으면 그 직책으로 회사를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회사를 무너뜨리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으면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12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처럼 무너뜨리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 니골라 처럼 이단이 되어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요한 삼서를 보면 디오드레베가 나옵니다. 아마 장로였을 것입니다. 그는 으뜸이 되기를 좋아했습니다. 사도를 우습게 여기며 배척합니다. 지도자를 비방합니다. 부족한 형제들을 교회에서 쫓아냅니다. 흠을 잡아 비난합니다.

신앙인은 자기 세우는 일에 목숨 건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무너진다 해도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하나님 영광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직분을 주었다고 말씀하십니까?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2)”

기준은 수준을 결정합니다. 세우는데 기준을 세우느냐 무너뜨리는데 기준을 세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우기는 세우는데 누구를 세우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을 세울 것인가? 이웃을 세울 것인가? 하나님을 세울 것인가? 성경은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매라고 했습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내었던 김승규 장로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에서는 2006년 한국선교 121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가장 모범적인 신앙 가정을 뽑혔던 가정입니다. 초임 검사 시절 때에도 꼭 피고인을 만날 때 30분 전에 성경을 읽고 기도로 준비했답니다.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전할 수 있게 해주시고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재범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답니다. 이들 중에는 나중에 저도 검사님처럼 예수님을 믿게 해 주십시오 라고 연락 오는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로 취임하여서도 매주 점심시간에 20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답니다. 아버님의 영향력 때문에 그렇게 자신이 신앙인이 되었답니다. 아버지는 “항상 큰 비전을 갖고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신앙인이 되라. 남에게 유익을 주고 선을 베푸는 꿀벌 같은 인간이 되고 이웃 교회와 사회에 덕을 끼쳐라”라고 했답니다.

아버지가 김응선 장로님이신데 전남 순천에서 농사를 지었답니다. 소작농으로 힘겹게 살았답니다. 9남매를 양육하며 가난하지만 열심히 교회를 세우기 위해 봉사하고 헌신했답니다. 매일 새벽에 자녀들을 깨워 새벽예배에 나가 “자녀들이 장로와 권사로 목사님과 교회를 섬기게 해 달라고 기도했답니다.” 추운 겨울 새벽 기도에 나가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강물에 빠져 옷에 고드름이 맺힐 때 몸을 녹이지 않고 옷만 갈아입고 다시 교회로 갔답니다.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아 장로님이 되셨답니다. 장로 임직을 받고 주일예배 때 공중기도를 하기 위해 단 위에 올랐답니다. 그때 목사님이 장로님을 말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장을 입으신 분이 기도를 해주세요."라고 했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다 시험 들어 목사님과 싸우고 감정을 가지고 교회를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장을 못한 장로님은 강단에서 내려와 맨 뒷자리에 앉아 눈물을 쏟아 기도했답니다. 농사지어 8남매 가르치다 보니 넥타이와 양복은 엄두도 못 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내 자식들에게만은 이 가난을 물려주지 않게 하소서."라며 장로님은 새벽마다 기도를 드렸답니다. 매년 1월 1일이면 온 식구가 모여 예배드리고 성경을 가장 많이 읽은 가족에게 상을 주었답니다. 세우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104명의 예수 잘 믿는 후손이 생겼답니다. 9남매가 다 장로와 권사가 되었답니다. 장남은 고등학교 교장이 되었고, 차남은 주식회사 명보 회장이 되었고, 삼남은 유성 회장이 되었고, 사남은 14대 15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5남은 법무부 장관이 되었고, 네 딸과 사위는 교회의 중직자가 되어 교회를 세워가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신앙의 명문 가문을 이룩한 것입니다. 김응선 장로님은 시골 농부였지만 자녀 교육 7계명을 정해 놓고 교육을 시켰답니다. “첫 번 째가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라. 두 번째, 선명한 비전과 분명한 목적을 가져라. 세 번째, 겸손한 신앙인이 되어라. 네 번째, 꿀벌처럼 남에게 유익을 주는 신앙인이 되어라. 다섯 번째,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어라. 여섯 번째, 신앙의 기업을 이어라. 일곱 번째,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라. 7계명 중 첫 번째가 새벽을 깨우며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왕이었던 바아사 가정과는 얼마나 비교가 됩니까? 어떤 경우에도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 세우기 위해 세상을 무너뜨리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나를 헌신하여 나 때문에 가정이 세워지고 내가 거름이 되어 교회가 세워지고 내가 희생하여 하나님 나라를 든든하게 세워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 멋지게 역전 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힘든 상황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과정에 불과합니다. 골이 깊으면 메아리도 크게 울리는 것입니다. 골이 깊으면 봉우리도 높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3대왕 바아사는 실패에서 시작하여 실패로 끝난 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실패를 결론으로 만들지 말고 실패를 과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3대왕 바아사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자신이 왕이 되려하다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우리는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3대왕 바아사는 평생 동안 전쟁을 버리다가 실패한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우리는 우리를 은사를 통해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세우는 일을 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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