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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성탄 선물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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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선물 (마 2:1-12)
 

1. 선물

‘짐’과 ‘델라’라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부부였습니다만, 정말 가난했습니다. 결혼한 후 처음 맞이하는 성탄절,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하여 사랑이 가득 담긴 선물을 하고픈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었지요. 그래서 델라는 어려서부터 길러온 자신의 아름다운 금발 머리를 잘라 그 값으로 황금 시계 줄을 샀습니다. 왜냐하면 남편 짐에게는 시계 줄이 없어 한 번도 손목에 차 본적은 없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황금 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편 짐은 금발이 아름다운 아내에게 예쁜 머리핀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살 돈이 없었는지라 할 수 없이 자신의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으로 머리핀을 샀습니다. 성탄절 아침, 두 사람은 서로 준비한 선물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짐은 부인이 내놓은 황금 시계 줄을 보고서 몹시 당황했습니다. 자신에게는 시계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그제서야 아내가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지 말하지 않아도 그 시계 줄은 아내의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자르고 산 것이 분명했습니다. 

남편은 핑 도는 눈물을 감추며 “머리는 또 자라겠지…”하면서 자신의 선물을 내놓았습니다. 꽂을 머리가 없는 머리핀이었지요. 머리핀을 받아든 아내는 그 머리핀이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으로 구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그냥 마주 바라보면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알았습니다. 자신은 시계 줄이나 머리핀보다 더 큰 선물을 받았다고요! 이 이야기는 미국의 유명한 작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소설을 요약한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성탄절”하면 “선물”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올 성탄절에 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신지요? 취업포털 잡코리아(www.jobkorea.co.kr)가 최근 남녀 직장인 623명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남성 직장인이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 1위(21.5%)는 옷, 목도리, 장갑과 같은 ‘의류’였고, 다음으로 현찰(17.4%), 세 번째는 핸드폰 등 소형 전자제품이었습니다. 여성 직장인이 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 1위(18.9%)는 시계와 반지 등 ‘액세서리’였고 두 번째는 현찰(17.0%)이었습니다. 

오늘 제가 “선물”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하는 이유는 오늘 본문이 선물과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본문을 주목해 보실까요?

2. 동방박사들이 준비한 세 가지 예물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성탄절을 산타가 선물 주는 날,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그 근거가 바로 오늘 본문이죠.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하는 선물은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라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예수님께 드린 최초의 사람들은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고 선물을 준비해 왔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드린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인데요, 이 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많은 경건한 사람들은 이 예물들이 예수님의 생애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예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 중, 3세기의 유명한 신학자인 오리겐이 박사들이 예수님께 드린 황금, 유향, 몰약에 대해서 아주 뜻 깊은 해석을 했는데요, 오늘 우리는 이 해석에 따라 세 가지 선물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들은 어떤 선물을 예수님께 드릴 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황금

동방박사 중 한 사람이 먼저 예수님께 드린 것은 “황금”이었습니다. 그들이 황금을 드린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고대 역사가 세네카는 예수님 당시 중동에 “황금을 가지지 않고는 왕을 만날 생각을 하지 마라”는 격언이 있었다고 전해줍니다. 즉 당시 왕을 만날 때에는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예물이 황금이었다는 말이죠. 또 구약성경에도 보면 “황금”은 대부분 왕의 권세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동방의 뛰어난 賢者이자 碩學들인 동방박사들이 이런 의미를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아기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은 예수님이 세상의 왕이심을 인정한 행동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것은 예수님 스스로 주장해서 인정받은 것이 아니며,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만 그의 인격과 능력, 그의 말씀과 삶이 자연스럽게 그가 왕이심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만, 동방박사들은 후에 장성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과 기적과 권능 행하심을 보고서 그를 왕으로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 앞에 있는 유약한 아기일 뿐인 그 예수님을 이미 왕으로 알아보고 선물을 드린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인 권력, 즉 政權을 잡으신 왕이 아니었습니다. 군사력을 장악한 絶對的인 君主로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경제권을 거머쥔 帝王으로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의미의 왕이심에 대해 어느 역사학자는 예수님을 알렉산더 대왕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알렉산더는 왕궁에서 태어났고 예수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알렉산더는 왕자로 태어났고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알렉산더는 왕좌에서 고귀한 왕으로 죽었으며 예수는 십자가에서 조롱받으며 죽었다. 알렉산더는 일생에 위대한 성공을 보였고 예수의 일생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소유를 위하여 수십만의 피를 흘렸고 예수는 전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렸다. 알렉산더는 영광의 바벨론에서 죽었고, 예수는 수치의 갈보리에서 죽었다. 알렉산더는 모든 왕국을 정복하였고 예수는 죽음을 정복하였다. 알렉산더는 모든 사람을 노예로 만들었고 예수는 모든 인간을 자유롭게 하였다. 

알렉산더는 역사를 만들었고 예수는 역사를 변화시켰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인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왕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죽음으로 우리를 죄와 심판과 죽음에서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진정한 왕이 되신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께 우리도 황금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께 드릴 황금은 무엇일까요? 

1812년, 나폴레옹은 5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섰습니다. 프랑스 군의 공세에 밀려 러시아군은 계속 후퇴했습니다. 마지막 보루였던 모스크바 전방에서 전투가 벌어져 양측 군사 7만 여 명이 戰死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프랑스 군은 모스크바에 入城했습니다. 그런데 모스크바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러시아 군이 孫子兵法에 나오는 空城計 작전을 쓴 것이죠. 모스크바를 텅 비게 만들어 프랑스군이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화재가 발생하여 4일 만에 모스크바 시가 全燒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먼 길을 와서,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나 다름없는 모스크바였지만 정작 그들이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한파가 밀어닥쳐 凍死者가 속출했습니다. 군량미까지 바닥나 餓死者가 생겼습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지요. 그때 어디선가 숨어있던 러시아 군이 공격해 왔습니다. 프랑스 군은 속수무책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 국경을 넘은 프랑스 군은 고작 2만 명뿐이었습니다. 48만 명의 군인을 잃은 것이죠. 

그렇게 나폴레옹 군대가 퇴각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러시아 군의 추격을 받던 프랑스 군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강을 건너는 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강의 모든 다리들은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오도 가도 못할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폴레옹은 결단을 내리고 명령했습니다. “어떤 방법을 쓰든지 강에 다리를 놓으라.” 이것은 불가능한 명령이었습니다. 강이 깊고, 물살이 세었으며, 더욱이 겨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병사들은 나폴레옹의 명령에 복종하여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물살이 얼마나 세찬지 서너 명의 병사가 물결에 휩쓸려갔습니다. 

그런데도 병사들은 계속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임시 다리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임시 다리는 불안하여 누군가 그 다리를 붙들어야 했는데, 물속에 들어간 병사들이 그 기둥을 붙들고 다른 병사들이 지나기까지 물에 그대로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노력과 희생으로 나폴레옹과 병사들은 안전하게 강을 건넜습니다. 그 후 나폴레옹은 물속에 있던 병사들에게 올라올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물속의 병사들은 꼼짝도 않고 이미 강을 건너 도열해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이것을 본 나폴레옹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 병사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에 병사들이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만, 그들은 단 한 명의 병사도 끌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임시로 만든 다리의 기둥을 붙들고 있던 모든 병사들이 눈을 부릅뜬 채 얼어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명령을 죽음으로 수행한 그 병사들을 부둥켜안고 통곡했습니다. 목숨 바쳐 복종한 그들이 전우들과 왕과 프랑스를 살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왕이신 예수님께 드릴 저와 여러분의 황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폴레옹의 군사들이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왕에게 복종한 것처럼, 여러분도 왕이신 예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복종이 이 땅에 오신 왕께 드릴 여러분의 황금입니다. 

2) 유향

동방박사들이 두 번째로 드린 것은 “유향”이었습니다. 유향은 감람나무 과에 속하는 나무에서 채취한 津液, 즉 나무진으로 만든 향품으로서 향이나 향수의 원료로 쓰였습니다. 당시 유향의 主産地는 아라비아, 특히 홍해 지역이며, 지금의 오만에 있는 우바르가 그 중심지였고, 현재 그 유적이 발굴 중이라고 합니다. 이 유향에 대한 기록은 로마 황제 네로가 자신의 왕비 포파에아의 장례식 때 전 로마 시민들이 1년 동안 쓸 양의 유향을 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이것은 진설병과 함께 제단에 올려졌던 祭物이었습니다(레 24:7). 즉 성경적으로 볼 때 유향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祭物이었다는 말이죠. 따라서 하나님께 바쳐지고 쓰이기 위해 사용된 유향을 아기 예수님께 드렸다는 것은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참 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여겨 유향을 드린 것이죠.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시대는 권위가 무너진 시대입니다. 대통령이 소위 잘났다는 사람들로부터 막말을 듣는 시대, 경찰서장이 시위대로부터 뭇매를 당하는 시대, 선생님이 학생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는 시대 ….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그런데요, 이러한 권위 붕괴의 주원인 제공자는 죄송하지만 성도 여러분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도들이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범사에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시대가 이렇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필요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따라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니까 범사에 ‘하나님 먼저, 말씀 우선’이 아니라, 항상 자신과 자기 입장이 먼저였다는 말이죠. 이런 신앙생활은 무엇과 같은지 아십니까? 마치 과거 신분 사회 시대에 주인이 하인을 대할 때 오직 자신의 입장만 내세웠던 것과 같습니다. 

어느 주인이 하인의 입장이나 그의 견해를 존중합니까?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면서 명령만 하면 끝이지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지금 성도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 먼저, 자신의 감정과 상황만을 앞세우는 것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리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성도가 하나님을 부려먹음으로서 권위를 무너지게 하여 세상의 권위 붕괴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죠. 

그러므로 무너진 권위를 다시 세우는 것은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 개인의 전부를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이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께 동방의 賢者들, 동방의 碩學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王과 방불한 사람이었던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예물을 드렸듯이 하나님이 진정한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신, 참 신이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 앞에서의 삶, 즉 “CORAM DEO”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여러분들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몰약

동방박사들이 세 번째로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선물은 “몰약”이었습니다. 몰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모르’는 향료의 일종으로 감람나무과의 일종인 발삼나무의 나무진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쓴맛이 나며 향기가 좋고 노란색을 띤 적갈색의 함유수지(含油樹脂)입니다. 이 몰약은 나무껍질이 자연적으로 쪼개지거나 혹은 인위적으로 칼자국을 낼 때에 나무껍질 속에 있는 수지관(樹脂管)에서 흘러나옵니다. 그것이 공기에 노출되면 점점 딱딱해지면서 방울들과 불규칙한 덩어리들을 만드는데, 옛 사람들은 이것을 “눈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몰약은 주로 분향료(焚香料), 향수나 향고(香膏) 등의 화장품, 부향료(賦香料), 약제 등 다양하게 이용되었는데, 고대 中近東 지역 및 중세 유럽에서는 대단히 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약제로 이용될 경우, 주로 구강의 감염과 염증 치료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만드는 방부제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기원전 1세기 이전에는 몰약이 와인이 발효돼 식초가 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뱀에 물렸을 때 효과적인 치료약으로 처방되었습니다. 미국 인디언들은 순환기 장애, 신경장애, 관절염 등의 치료를 위해 몰약을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서방에서는 강력한 방부 효과를 내면서 신체의 고통을 덜어주고 치료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물질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서 몰약의 주된 용처는 시신 방부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동방박사들은 갓 태어난 아기 예수께 죽음 혹 시신과 관련된 몰약을 선물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즉 몰약 나무의 껍질이 날카로운 칼로 찢겨져 수액이 눈물처럼 스며 나오듯, 예수님께서 그렇게 고난당하실 것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관한 구약성경의 기록들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22편,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시22:14~16).” 이사야 53장,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3-5).” 이렇게 동방박사들은 죄인을 위하여 고난당하러 오신 예수님, 죽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에 합당한 선물로서 몰약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님께 드릴 몰약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 죄와 죄인을 향한 저주를 없이 하시고 새 생명을 주셨으며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 주님께 우리는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 

찬송가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세상 살아갈 동안 찬송하게 하소서. 손과 발을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주의 일을 위하여 민첩하게 하소서. 나의 음성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주의 진리 말씀만 전파하게 하소서. 나의 보화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하늘나라 위하여 주 뜻대로 쓰소서. 나의 시간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평생토록 주 위해 봉사하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셨듯이 여러분도 예수님께 여러분의 생명을 드리십시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몰약입니다. 

3. 우리의 선물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과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로 오신 성탄절인 오늘은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는 날입니다. 누구보다 먼저 이것을 알았던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최고의 선물을 바쳤습니다. 그들이 드린 황금은 예수님께서 왕이시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이 드린 유향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몰약을 드림으로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속과 행복을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깊은 의미를 담아 선물을 드린 동방박사들처럼 2011년 성탄절을 맞아 여러분들도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왕이신 예수님께 순도 높은 복종을 드리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참 신 진정한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에 감사하면서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전부를 드리기 바랍니다. 

그와 더불어 오늘의 중요한 정신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이 세상을 위한 선물로 오신 것처럼,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 되신 것처럼,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선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시간과 물질을, 그리고 가진 바 은사들을 나누십시오. 그것이 주님께 드리는 또 하나의 예물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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