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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혼자 노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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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탄생을 심히 기뻐하지 않은 사람은 부모님 외에도 더 있었다.
이미 짐작하겠지만 바로 나의 둘째언니다.

내가 태어나던 날 밤, 집안이 소란하여 잠에서 깬 언니는 우주의 어느 별똥별에서 잘못 떨어진 괴물 같은 것이 하나 누워 있는 걸 보고 말할 수 없이 놀랬단다. 시뻘겋고 쭈글쭈글한 것이 눈도 못 뜨고 있는 꼴이란!

더 놀라운 건 엄마가 그 괴물을 동생이라고 소개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저런 괴물딱지가 내 동생이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게다가 저것이 내 옷을 허락도 안 받고 입어? 저걸 한 대 쥐어박아, 말아? 엄만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주워온 거야? 아무래도 엄마가 요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밥을 얼마나 먹었는지 배가 자꾸 뚱뚱해질 때 그 때 알아 봤어야 하는 건데.... 그 날 밤 언니는 편안히 잘 수가 없었다.

나와 네 살 차이 나는 둘째언니는 내가 태어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막내였다. 밤에 잘 때 엄마의 포근한 품은 당연히 언니 거였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던 바로 그날 밤부터 막내 자리를 내 놓고, 엄마 옆자리도 내 놓고 쓸쓸히 물러나야만 했다. 그 때부터 언니 마음속에는 저것만 없으면 내가 막낸데 하는 생각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며 이 세상에 나왔다.

나는 호적에 기록된 생년월일이 실제와 다르다.
당시만 해도 영아 사망률이 제법 높아서 아이가 태어나도 육 개월 정도는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자녀가 태어나는 기쁨은 이미 다섯 번이나, 넘치도록 만끽한 후가 아닌가!

똑똑한 아버지가 머리를 쓰셨다. 아이 출생신고를 하러 면사무소까지 가야하는 것이 귀찮아서, 거기 볼 일보러 가는 마을이장님께 부탁을 한 것이다. 이장님은 또 제자식이 아니다보니 깜빡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뒤늦게 아이의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그 해의 마지막 날에야 겨우 신고를 마쳤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된 내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숫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다음에 나는 아버지의 손녀로 호적에 올라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 아버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절차를 밟아 정정을 하고 나니 이번엔 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숫자가 달라졌다.

육남매 막내였다고는 하지만 나는 늘 외로웠다. 언니 오빠들은 나와 놀아주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거나 자기 일이 바빴다. 그래도 둘째 언니가 제일 나이 차가 적으니 나는 늘 언니한테 매달렸고, 언니는 자기 친구들이랑 놀기로 약속했는데 어린 동생이 자꾸 따라붙으니 귀찮기만 했다.

그래서 자주, 아무 것도 없는 데를 쳐다보며 “어, 저게 뭐지?” 하고는, 언니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며 뭐가 있는지 내가 찾는 동안 쌩~하고 도망을 갔다. 매번 당하면서도 나는 언니가 그럴 때마다 그 쪽을 바라보는 맹한 아이였다. 한참 뒤에야 언니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나도 데리고 가~~~, 나도...”하며 울던 아이, 그게 유년기의 나다.

그렇게 울다 지친 나는 일거리에 파묻혀 나한테 눈길 한 번 제대로 줄 여유가 없는 엄마 치마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다가 그것도 지겨워지면 마실 나가시는 할머니를 따라다녔다. 그렇지만 할머니를 따라가는 것은 내가 혼자 노는 것보다 더 재미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며 혼자 노는 일에 익숙해졌다.

아버지는 기계나 새로운 물건에 관심이 많으셨다. 텔레비전도 동네에서 제일 먼저 샀고, 자동차 역시 그러했다. 덕분에 텔레비전에 나오는 멋진 ‘카수’들 흉내를 내며 혼자 놀았던 나는 머지않아 그 노래실력(?)을 가족들에게 인정받게 되었다. 둘째 언니가 노래하면 십 원을 주는데 내가 노래하면 이십 원을 준 것이다. 그것 때문에 나는 또 언니에게 무지 당했다.

당하거나 말았거나 그 이십 원은 나에게 엄청난 유혹이었다. 십 원만 줘도 알사탕이 몇 갠데. 그 맛에 길들여진 나는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불러댔다.

일곱 살이 될 때까지 그렇게 노래하는 낙으로 살았던 나는 어느 날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 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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