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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NQ, 공존지수 (마 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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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NQ, 공존지수 (마 14:13-21)

IQ(Intelligence Quotient)는 지능지수를 말합니다. IQ가 높다고 하면 머리가 좋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가지 머리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서점에 어린이 도서 코너에는 IQ를 높이는데 관한 책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IQ만 좋다고 성공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NQ란 Network Quotient의 약자입니다. Network라는 말은 그물 짜는 것입니다. 라디오나 방송망 중계를 위해 동시에 같은 프로그램을 각지에 방송할 수 있도록 여러 방송국을 연결한 조직입니다.
  
NQ란 “공존지수”입니다. 예수님은 NQ의 천재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을 보면 “큰 무리들” “제자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등장합니다(요6:9). 예수님은 제자들과 어린 아이를 통해서 5천명이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NQ 능력입니다.

  
󰊱 예수님의 관심은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나 “무리”를 만납니다. 무리란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무리 중에는 언제나 병든 자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운이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의 눈에 들어오는 무리들은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운이 빠져 있었습니다(마9:36).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께로 와서 말했습니다. “이곳은 외딴 곳이고, 시간도 늦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을 보내어 마을로 가서 각자 먹을 것을 사먹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요한 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빌립이 어떻게 하는지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그때 빌립은 이백 테나리온의 떡을 사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요6:5-6).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십니다. 저녁이 되니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먹을 것을 주십니다. 에덴 동산은 아담과 하와가 먹을 것이 풍족했습니다. 먹기에 좋은 열매 맺는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먹을거리로 주셨습니다(창1:29). 
  
영국 속담에 “내 배를 가득 채워주는 자야말로 나를 참되게 사랑하는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위해 의복이 있고 몸을 위해 양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가르쳐 주신 기도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6:11)라는 기도입니다. 먹을 것을 위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미국의 주식투자로 부자 된 워렌버핏은 2010년 일년동안 우리 돈으로 730억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 해 세금으로 80억을 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나 같은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거두라”로 하여 “버핏세”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부유한 자들이 부유세를 내게 하자는 법안이 나온 것입니다. 
  
일자리를 만들어 먹고 살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기업가 정신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하신 주님의 정신입니다. 

  
󰊲 예수님은 제자들을 시험하셨습니다.

시험이란 테스트Test입니다. 시험이 선생님입니다. 시험이 학생을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시험을 봐야 학생이 공부를 하니까요. 시험은 실력 향상의 필수조건입니다. 시험을 적게 본 학생들이 수능성적이 떨어졌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시험으로 학생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시험 횟수를 줄인 교육정책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1:2,3)
  
믿음의 실력을 높이는 과정도 시험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얼마나 당해내는지를 테스트하면서 믿음 지수를 측정합니다.    
  
카네기는 신입사원을 뽑는데 화물을 포장해 놓은 밧줄을 끄르게 했습니다. 묶인 밧줄을 꼼꼼하게 푸른 사람은 모두 불합격이 되고 칼로 썩썩 잘라 버린 사람은 모두 합격시켰습니다. 
  
밧줄을 끄르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사무는 언제 보냐는 것입니다. 그런 비능률적인 사람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시험문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였습니다. 빌립은 점수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백테나리온의 떡을 사도 모자란다고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믿음의 분량으로는 먹을 것을 주는 해답을 내지 못한 것입니다. 안드레는 빌립과 다릅니다.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9절)
  
안드레는 예수님으로부터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을 듣고 우선 먹을 것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그는 본래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가리키며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니,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직접 따라가 그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지냈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돌아와 자기형인 시몬에게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고 시몬을 데리고 예수께로 갔습니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체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요1:42) 반석을 아람어로 “게바”라고 하고 그리스어로는 “베트라” 베드로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데리고 온 시몬을 보시고 “네가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게바는 반석이요, 베드로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빵과 물고기가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예수께 드려졌을 때 나타날 결과를 상상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는지 그 뜻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을 통해 제자들의 믿음을 키우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공존지수입니다.

  
󰊳 예수님의 공존 지수를 배워야 합니다. 

NQ란  Network의 능력입니다. 다른 사람과 네트워크를 얼마나 잘 만들고, 잘 꾸려 가는가를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예수님은 NQ의 원조입니다. 
  
안드레를 움직여 먹을 것을 찾게 하셨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떡과 물고기를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그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으니”(마13:47) 네트워크는 그물을 짜는 일입니다. 천국은 짜여진 그물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최고경영자요, 최고 조직가입니다. 그물을 짜듯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십니다. 혼자 못하는 일을 둘이 하게 하십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여럿을 통해 엄청난 시너지가 생기게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NQ가 높은 지도자였습니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심었습니다. 예를 들면 정주영씨를 불러 조선소를 세우자고 했습니다.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었지만, 조선소를 세울 분은 당신뿐이다!고 하며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는 영국을 두 번 찾아가 차관을 빌려다가 조선소를 세우게 했습니다. 
  
포항제철은 박태준씨로 시작하게 했습니다. 못한다고 사람에게 당신은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태준씨는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최고 경영자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잠재력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안드레와 어린아이를 통해 오천명을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박대통령은 가난한 나라를 잘사는 대한민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주부들에게 “부자 되는 법”을 강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증권이나 펀드를 투자하는 법을 가르치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남의 돈을 떼먹지 마라” “남을 위해 기도하라” 이 두 가지가 부자 되는 조건이라고 했습니다. 부자가 되려면 남 잘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니”(19절) 남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NQ입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하였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주는 자로 오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까지 대속물로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도 주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내게 있는 것을 주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이세상 사람을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먹고 사는 사람, 도움 받고 사는 사람, 도와주며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NQ의 천재이십니다. 별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통해 많은 사람을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것을 믿게 하십니다.   
안드레가 그렇고 보리떡과 물고기를 갖고 있던 아이가 그렇습니다. 자기 혼자 먹었으면 그것으로 끝났을 도시락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예수님께 드림으로 5천명이 배부를 수 있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어린 아이를 무시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드레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그의 높은 공존 지수가 어린 아이의 도시락 하나가 예수님께 드려져 기적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상이 NQ가 높은 지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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