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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 밭을 갈라 (렘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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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밭을 갈라 (렘 4:1-4)
  

들어가는 말 

20세기 초 세계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영국 웨일즈의 교회들이 지금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1904년 웨일즈 대부흥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모리아교회! 
지금부터 100여 년 전 광부 출신의 가난한 청년 이반 로버츠와 그의 몇몇 친구들이 이 작은 예배당 옆 교육관 골방에서 부흥과 성령을 사모하며 뜨겁게 기도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였고, 그들을 통해 기도운동이 퍼져나갔습니다. 

이 기도운동은 영국 전체를 부흥케 했고 인도, 미국, 나아가 우리나라의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부흥은 마치 나비효과와 같습니다. 
작은 날갯짓이 큰 바다에 태풍을 일으키는 것처럼 몇 사람의 뜨거운 기도가 영국과 온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100년 전 세계부흥의 심장과 중심이었던 그 교회는 지금 박물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웨일즈에는 하노버교회가 있습니다. 
예배당 안에는 한반도가 그려진 액자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파송한 26세의 젊은 선교사 토머스는 1866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조선의 평양으로 향했지만 대동강변에서 순교당합니다.
하지만 그가 전한 성경책 한 권이 어느 집에 도배가 되어 그것을 본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는 회심하여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가 세운 교회는 평양 대부흥을 이끌었던 장대현교회의 모체가 됩니다.146년 전 조선으로 토머스 선교사를 파송한 웨일즈. 
100여 년 전 마치 독수리의 날갯짓처럼 부흥과 선교로 온 열방을 품었던 웨일즈. 

지금은 교회들은 문을 닫고 술집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됐습니까?
그런데 작금 우리 한국교회를 생각할 때 뭔가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1. 예레미야 예언의 시대적인 배경

예레미야라는 예언자는 남 유다왕국이 바벨론 제국의 느브갓네살왕에 의하여 멸망할 즈음에 활동한 예언자였습니다.
그의 조국이 지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의 조국 남 유다는 지금 문자 그대로 풍전등화입니다. 
내일 망할지 모레 망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위기의 때에 평강을 외치고 있습니다. 
렘 6: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괜찮다는 거예요.
문제없다는 겁니다.
또한 백성들은 하나님이 머무르시는 성전이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에 절대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집이 파괴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는가?’ 
‘성전이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에 절대 안전하다.’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전국 방방곡곡 고을마다 교회가 있고, 그곳에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어떻게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를 버리실 수 있을까? 따라서 우리에게 별 어려움이 없을 거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지난 수요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한인교회에서 사역하는 장인근 전도사가 설교했습니다.
그가 하는 사역 중에 자카르타 미국인 학교에서 한국 학생들과 함께 기도하는 사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여학생은 기도할 때마다 운다는 것이지요.
이유는 아버지의 구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아버지도 교회에 다닙니다.
그러나 딸이 보기에는 아버지는 복음적인 회심을 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인 됨을 통절히 느끼고, 하나님의 은혜에 매달려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종교생활을 할 뿐입니다.
‘이런 아버지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것이 그 딸이 우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울어야 할까요? 웃어야 할까요?

온 유다가 이렇게 안일한 상태에 빠져있을 때 한 사람 예레미야는 기울어져가는 조국의 비운을 바라보면서, 어미가 그 자식을 삶아먹지 않으면 안 되는 민족패망을 바라보면서 외롭게 위기를 외치고 있습니다. 

사실 예레미야가 그의 사랑하는 동포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을 예언한다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몇 번이고 그 일을 그만 두려고 했습니다. 
렘 20:9절에 보면,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공동번역에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자.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두자.’고 하여도, 뼛속에 갇혀 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
그 백성에 대한 사랑 때문에 도저히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심장이 불타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요청

그러면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놀랍게도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적 결단만이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민족의 위기든, 한국 교회의 위기든, 개인의 위기든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각 개인에게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첫째, 하나님께 돌아오라.
1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돌아오라.’는 말씀은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윌리암 버클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소개하는 글에서 “예수님은 반역하는 제자 유다일망정 입술을 허락하셨다.”는 말로 회개를 정의했습니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사람들은 누가 예수인줄 모릅니다.
그래서 유다는 자기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예수라고 암호를 짰습니다. 
유다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배반의 음모를 알면서도 보통사람 같으면 위선자의 얼굴에 침을 뱉었겠지만 예수님은 유다를 받아들였습니다. 
삶을 살다보면 인간관계의 갈등을 겪는데 그때 원수마저 받아들이는 것을 회개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앙드레 지드는 ‘회개란 자기 자신에 대하여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주 쉽고 정확한 설명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집착합니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자기 이익을 우선으로 여깁니다. 
회개란 바로 이런 사고와 삶의 스타일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어버리고, 이웃과 하나님에 대하여 흥미를 갖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과 흥미를 잃어버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우리는 살려고 애쓰는데 바울 사도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빌 3:8-9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기독교의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죽으면 살고, 버리면 얻고, 지면 이긴다.’

둘째, 묵은 땅을 갈라

3절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묵은 땅이랑 버려진 땅, 잡초와 가시덤불이 덮여 있어서 곡식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쓸모없는 땅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 상태가 묵은 땅과 같아서 갈아엎지 않고서는 도저히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농촌에서 밭농사를 지을 때 보면 제일 질기고 깊숙이 뻗어 들어오는 나무뿌리가 있습니다. 아카시아나무 뿌리입니다. 
이 뿌리가 뻗어오면 농사는 망치고 맙니다. 
곡식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심령에는 이 아카시아 뿌리와 같은 쓴 뿌리가 없습니까? 
고집이란 쓴 뿌리, 욕심이란 쓴 뿌리, 혈기라는 쓴 뿌리, 교만이란 쓴 뿌리, 놀음이란 쓴 뿌리 이런 쓴 부리를 뽑아내야 신앙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 ‘묵은 땅을 갈라’는 말씀은 같은 얘기입니다.
같은 의미를 반복하여 강조한 것이지요.
결국 마음 밭을 갈라는 것입니다.

새벽기도회 때 세 종류의 인생살이에 대하여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① 유아독존형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나는 도움 받은 것도 없고, 도와줄 일도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이런 개인주의는 현대인의 특징이지요?

② 채권자형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나는 준 것은 많은데 받은 것은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수고한 대가가 왜 이렇게 적으냐?’ ‘준 것은 많은데 받은 것은 왜 이렇게 적으냐?’
대체로 불만형입니다.

③ 채무자형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준 것은 없는데 받은 것은 너무 많아요.”
“값을 길이 없는데 받은 사랑이 많고, 받은 은혜도 많아요.”
항상 빚진 자의 마음입니다.
사랑의 빚을 너무 많이 지고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회 있는 대로 나누고 갚으면서 살려고 애씁니다.
저도 가끔씩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준 것은 없는데 받은 것이 너무 많아요.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저는 강원도 시골 촌부의 아들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해가 뜨면 들에 나가셨다가 해가 지면 집에 돌아오는 농부였습니다.
그런 촌부의 아들로 태어난 저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많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 시각 장애인 강영우 박사(69)아시지요?한국계 미국인으로 백악관 차관보급까지 올랐던 그가 한 달여 남은 시한부 삶에도 아름다운 기부로 세상과 멋진 이별을 준비했습니다.(2012. 1. 9)강 박사와 두 아들 폴 강(한국명 진석) 안과전문의, 크리스토퍼 강(진영)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이 국제로터리재단 평화센터의 평화장학금으로 25만 달러(약 2억9000만원)를 기부했습니다.
강 박사는 이렇게 기부를 한 이유를, “너무 많은 축복을 받고 살아온 삶에 감사하기 위해 기부금을 냈다”고 설명했다.

둘째 아들 크리스토퍼 강은 “40년 전 아버지를 위한 그 장학금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 가족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작지만 이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강박사는 전형적인 채무자형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얘기를 해봅시다.
우리는 유아독존형입니까, 채권자형입니까, 아니면 채무자형입니까?
혹시 우리는 채무자형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채권자형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감사형에서 불만형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찬송 부르는 것이 예전 같이 뜨겁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예전 같이 간절하지 않습니다.

말씀 듣는 것이 예전 같이 갈급하지 않습니다.
성경 읽는 것이 예전 같이 사모함이 없습니다.
이게 위기가 아니고 무엇이 위기겠습니까?
이 마음 밭을 갈아야 합니다.
렘4:4절에 보면,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마음 밭을 갈라는 말씀입니다.
한해 신앙의 농사를 잘 지으려면 먼저 마음 밭을 기경해야 합니다.

3. 그러면 무엇으로 마음 밭을 갈아엎을까요? 

쟁기로? 삽으로?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갈아엎을 수 있습니다. 
렘 23:2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새해에는 아무리 바빠도 성경을 읽읍시다.
늦는 것 같지만 빠른 길입니다.

시간 낭비인 것 같지만 가장 시간을 버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결단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읍시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심령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굳은 마음의 밭, 돌이 있는 마음의 밭, 거시넝쿨이 뒤엉켜있는 마음의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대할 바가 있습니다. 

(복음성가)

나가는 말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고 함석헌 선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분을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추천한 글에 보면 “함석헌 씨는 여러 종류의 압제자들에 의하여 여러 시대에 걸쳐 수없이 체포된 경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체포하는 사람들은 그를 끌고 가기 전에 그와 함께 사진 한 장 찍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성도가 이 정도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너의 생각에는 동조하지 않지만 네 삶 앞에는 무릎을 꿇는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2012년, 마음 밭을 갈아 한국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 밭을 기경하여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거두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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