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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 (사 6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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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 (사 60:4-9)  

< 뇌 모르핀 >  

일본인 의사 하루야마 시게오는 병 치료와 예방에는 뇌 모르핀이 최고라고 합니다. 뇌 모르핀은 각종 질병은 물론 환청, 불면, 그리고 우울증도 치료합니다. 화를 내거나 낙심하면 만병의 원인이 되는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되지만 마음이 평화롭고 긍정적이면 최대 질병 치료제인 뇌 모르핀이 분비됩니다. 흔히 아는 엔도르핀도 20가지 정도 되는 뇌 모르핀 중 하나입니다.   

시게오는 뇌 모르핀 활성화를 위해 3가지를 권고합니다. 첫째, 뇌 모르핀 성분이 단백질이기에 고단백 저칼로리 음식을 먹고, 둘째, 체지방을 단백질화 하는 맨손체조 같은 부드러운 근육운동을 하고, 셋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플러스 발상’을 가지라고 합니다.   

사람이 생각할 때 몸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에너지가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사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특히 생각할 때는 뇌에서 단백질을 분해해 생기는 에너지를 사용하는데 그때 생각에 따라 뇌의 단백질 분해방법이 달라지고 나오는 분비물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좋게 생각하면 엔도르핀이 나오고 나쁘게 생각하면 아드레날린이 나옵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살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플러스 발상’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뇌에는 좌뇌와 우뇌가 있는데 뇌 모르핀은 우뇌에서만 분비됩니다. 좌뇌는 IQ와 관련된 이성을 주관하고 우뇌는 EQ와 관련된 감성을 주관합니다. 또한 좌뇌에는 자신이 후천적으로 경험해 얻은 지식이 축적되어 있고, 우뇌에는 선대로부터 전승된 지혜가 유전자 정보로 축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좌뇌보다 우뇌가 10만 배 이상 용량이 많기에 좌뇌 중심적으로 살면 자기 잠재 능력의 1%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뇌를 발달시켜야 합니다.   

어떻게 우뇌를 발달시킵니까? 비판적 생각으로 살면 좌뇌가 발달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살면 우뇌가 발달합니다. 그리고 보통은 언어능력을 가진 좌뇌가 우뇌를 압도하기에 좌뇌보다 우뇌를 발달시키려면 말을 줄이고, 숙면을 취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좌뇌의 기가 꺾이지 않을 때는 금식하면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좌뇌의 활동이 줄어들고 우뇌의 활동이 늘면서 생명력과 창조력이 나옵니다. 

또한 뇌 모르핀을 많이 나오게 하려면 마음의 평안이 필요한데 그것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희생적인 봉사입니다. 즉 드리고 나누고 베풀 때 최상의 질을 가진 뇌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반면에 만병의 근원이 되는 아드레날린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시게오는 설명합니다. 과학적인 연구지만 성경적인 원리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 나눔의 축복을 아는 현인 >  

하나님은 ‘주는 삶’을 살아야 마음이 평안하고 건강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복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입니다. ‘나만의 복’보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복 받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혼자만 복을 많이 받는 것은 진짜 복이 아닙니다. 서로 축복을 나누며 같이 행복을 느껴야 진짜 복 받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일 안타까운 분이 삼성의 이건희 회장입니다. 사업은 성공했고 돈은 많지만 얼마나 안티도 많습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의 욕을 먹으면 적어도 욕먹지 않는 방법을 찾고 더 나아가 뭇사람의 존경받는 존재가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재벌들을 욕하는 것이 단순히 질투심 때문일까요? 아니면 아무리 잘해도 재벌들은 욕먹는 운명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욕먹을 행동을 하기에 욕을 먹는 것입니다.  

지금 서민경제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나눔’보다 ‘경제력 집중’에만 몰두하는 재벌들의 모습을 어떻게 좋게 봐줍니까? 재벌이 되었다면 그 많은 재화로 망하는 한이 있어도 일반인들의 접근이 힘든 우주산업, 항공산업, 나노산업, 신소재산업, 신물질산업 등에 집중 투자해 새로운 기술과 재화를 창출해야 하는데 일반 중소기업이나 동네 상인들이 취급하는 분야까지 진출해서 상권을 잠식하니까 그 모습이 어떻게 좋게 보입니까?   

게다가 나눔을 실천하면 누가 재벌을 욕합니까? 지금은 현대 자동차가 외국 기업과 경쟁하고 삼성이 외국 기업과 소송을 벌일 때 우리 국민들이 외국 기업들을 응원하는 판국입니다. 아무리 현장 직원에게 친절교육을 하고 고객중심의 경영을 강조해도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로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얻습니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본인도 상처와 스트레스로 제 명에 못 살고 결국 그 재벌기업도 조만간 무너집니다.   

요새 보수 정치권도 재벌규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재벌들이 극심하게 반발한다는 기사를 어제 보았습니다. 그러나 왜 보수 정치인들까지 그런 논의를 하는지에 대한 시대상황을 외면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왜 재벌규제 얘기가 나옵니까? 재벌들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권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먼저 나누려고 하면 얼마나 기업 이미지가 좋아집니까? 안티가 많은 기업은 수명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요새 삼성의 힘이 큰 것을 빗대어 <삼성공화국>이란 말을 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외면하면 그 공화국의 수명이 얼마 가겠습니까? 최근에 한 경제인으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아무리 삼성의 힘이 커도 정치권력이 작심하고 경영진 일가를 무너뜨리려고 하면 그것은 너무도 쉽다고 합니다. 법을 움직이고 돈줄을 쥔 은행을 움직이면 삼성을 공중분해 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삼성도 사실상 새 대통령을 맞는 5년마다 시한부 생명을 연장 받는 셈입니다. 알고 보면 <삼성공화국>이 아니라 산소 호흡기를 낀 채 지탱하는 <삼성 시한부 공화국>인 셈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법률 팀을 운용하고 신문광고를 파상적으로 해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곧 신세가 비참해집니다. 그런 시한부 생명을 반 영속적인 생명으로 만들려면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혹시 나쁜 정치권력이 그룹을 깨도 사람들의 마음과 역사의 기록에는 반영구적으로 그 소중한 흔적이 남을 것입니다.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을 보십시오. 그의 직업은 ‘주식 브로커’입니다. 주식 브로커로 지내면 투자자나 기업인에게 손해를 끼치며 욕을 바가지로 먹을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오마하의 현인’이란 소리를 듣습니까? 매번 오르는 주식만 기막히게 사서 현인입니까? 아닙니다. 그도 때로는 엄청나게 손해 봅니다.  

2008년에 그는 약 620억 달러의 재산으로 13년 연속 세계 최대의 부자였던 빌 게이츠를 2위로 밀어내고 세계 1위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랬다가 미국 금융위기로 2009년에는 재산이 370억 달러로 줄었습니다. 1년 만에 전 재산의 40%인 250억 달러(28조원)를 잃은 것입니다. 그런 일도 많은데 왜 ‘현인’입니까? 무엇보다 돈을 잘 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계 제일의 부자지만 검소하게 삽니다. 아직도 1958년에 31500달러에 구입한 2층짜리의 평범한 회벽토 집에 삽니다. 그리고 빌 게이츠 재단을 비롯해 여러 곳에 자신의 재산 99%를 기증하기로 서약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주식 브로커’라고 나쁘게 부르지 않고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부릅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만약 우리나라 재벌들이 99%가 아닌 9%만 기부해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것입니다. 왜 그런 복된 길을 외면하고 나쁜 이미지만 쌓고 자기 수명을 단축시키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재벌이라고 무조건 욕만 먹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얻는 영웅적인 모델 재벌이 도무지 없으니까 욕을 먹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모델 재벌이 없을 때 ‘나눔’을 멋지게 실천하는 재벌이 하나만 나와도 얼마나 그 이름이 부각되겠습니까? 어차피 죽을 때 싸가지 못할 재물로 소중한 이름이라도 남기면 얼마나 좋습니까? 죽을 때 싸가지 못할 재물을 붙들고 계속 욕먹는 행동만 하면 삶은 기쁨이 아닌 고통이 되고 결국은 스트레스로 제 명에 못삽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왜 우리 재벌 중에는 ‘오마하의 현인’이 없는 것일까요?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가문은 오늘날로 말하면 당대의 재벌 가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믿음을 앞세워 살았기에 그 이름이 지금까지 찬란하게 남았습니다. 록펠러는 ‘악덕 기업인’이란 악명을 떨치다가 50대 중반에 죽을병에 걸려 비로소 나눔의 중요성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 후 건강을 회복하고 나눔을 실천하면서 90세가 넘도록 장수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삶들을 보면 무엇이 축복인지 그 실체는 명백해집니다. 우리 교회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재벌들을 배출하고 나눔의 기쁨과 축복을 아는 현인들을 꿈꾸고 키워내야 합니다.   

<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 >  

인생 최대의 축복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다른 축복은 그냥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얻기 전에 꼭 얻어야 할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의 마음을 얻습니까?   

1. 기쁜 빛을 내십시오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축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올 때 부와 재물도 따라오는데, 그 장면을 보고 기쁜 빛을 내며 기뻐하는 모습이 본문 5절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처럼 일단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를 원하면 먼저 자신의 얼굴과 삶에서 기쁜 빛이 나와야 합니다. 이제 현실이 힘들어도 얼굴에 기쁨의 빛을 잃지 말고 그 현실의 자리에서 일어나 빛을 발하십시오.

사람들은 대개 힘든 현실을 피해 새로운 곳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곳을 찾을 때는 힘든 곳을 피하려고 찾지 말고 사명을 따라 헌신하려고 찾으십시오. 힘들다고 피하면 더 힘든 곳을 만납니다. 힘들어도 그 힘든 현실에서 믿음으로 일어나야 진짜 기적이 시작됩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어둡다!”고 말하는데 왜 세상이 어둡습니까? 차라리 말이나 말지 그렇게 말하면서 희생은 없기에 세상이 어두운 것입니다.  

사실 ‘세상이 어두운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이 어두운 것’입니다. 마음만 잘 먹으면 밤도 얼마나 의미가 있습니까? 낮은 선이고 밤은 악이 아니라 낮은 낮대로 의미 있고 밤은 밤대로 의미 있습니다. 낮은 좌뇌의 활동 시간이고 밤은 우뇌의 활동 시간입니다. 그처럼 생명활동은 밤에 왕성해지기에 밤은 악이 아니라 오히려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런 시각을 가지고 힘든 현실에서도 믿음으로 일어서면 그 힘든 현실이 결국 축복의 산실이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 13:17).” 자기 현실에서 일어나 열심히 땅을 밟을 때 축복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땅이 한 평도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땅보다 더 소중한 것은 미래입니다. 믿음으로 일어나면 미래는 우리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영향력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정신적인 자산을 가진 것은 땅을 가진 것보다 훨씬 복된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개척할 수 있는 영적인 미지의 땅은 많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가지고 일어나십시오. 자녀를 키울 때도 에스더나 다윗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키우십시오. 그런 인물 배출의 꿈을 가지고 돈도 벌면서 돈을 ‘욕정을 채우는 도구’가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 희망의 씨앗’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돈을 버십시오. 그처럼 힘들고 어두운 현실에서도 일어나 작은 빛이라도 발하려고 하면 반드시 그의 내일도 찬란하게 될 것입니다.
  

2. 남을 잘되게 하십시오  

본문을 보면 전 세계 사방 곳곳에서 사람들이 무수한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제단으로 찾아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읽기만 해도 복음의 엄청난 매력과 영향력이 느껴집니다. 그런 매력과 영향력을 꿈꾸며 열심히 땀을 흘리십시오.  

참된 믿음은 땀도 중시하는 믿음입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은 일을 천시해서 양반들은 다리를 꼬고 앉았고 농부와 상인과 천민은 죽도록 일하면서도 신분상승의 희망이 없으니까 자신의 운명을 한탄했습니다. 그런 시절에 선교사들이 와서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치며 비전을 품게 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운명론에 맞서 큰 비전을 품고 달려가는 사람을 축복해주십니다. 비전이 커지면 마음도 커지고 그때 매력적인 빛도 나옵니다. 

살다 보면 어떤 분은 매력적인 빛은 없고 예리한 칼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면 겁나고, 어설프게 말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습니다. 또한 말할 때마다 돈 냄새가 풍기고,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의 냄새도 진동합니다. 그처럼 마음이 좁고 한기만 느껴지면 누가 가까이 가고 싶겠습니까?  

반면에 어떤 분은 늘 낙관적이고, 늘 신선하고, 넓은 가슴과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미소가 끊이지 않고, 늘 칭찬하고, 마음이 따뜻합니다. 그런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엔도르핀이 솟아납니다. 그런 분들은 자주 만나고 싶고, 같이 오래 있고 싶고, 안 보면 또 보고 싶습니다. 그런 매력적인 사람을 꿈꾸십시오. 남은 죽든지 말든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면 결국 자신부터 죽지만 남을 잘되게 하면 자신도 잘 됩니다.   

이제 남도 잘 되게 하십시오. 말도 복된 말이 많이 나오도록 계속 훈련하고 실천하십시오. 말은 축복도 선도하고 저주도 선도합니다. 말은 씨가 됩니다. 굳이 점쟁이를 찾아 점을 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의 말이 결국 예언이 됩니다. “영구 없다!”는 말로 대 히트를 친 심형래 씨를 보십시오. 요새 직원들 임금 체불혐의로 진짜 영구 없게 되었습니다. 매일 없다고 하면 진짜 없게 되지만 없어도 매일 있다고 하면 진짜 있게 될 것입니다. 
  

3. 선교에 더욱 힘쓰십시오  

본문을 보면 세계 방방곡곡에서 하나님을 찾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 무엇보다 선교를 도전받습니다. 요새 왜 전도가 잘 안 됩니까? 교회가 선교마인드를 외면해서 신망을 많이 잃었기 때문입니다. 내 가족, 내 교회, 내 학교, 내 지역만 생각하고 남을 배타하면 아무리 신앙적인 열정이 있어도 미성숙한 것이고 그런 배타적인 사람은 진정한 축복과 행복을 얻기도 어렵고 불신자들의 신망도 받지 못합니다.   

참된 믿음은 불신자들에게도 인정받는 믿음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이방인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창세기 21장 22절 말씀을 보면 이방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칭송했습니다. 그처럼 아브라함은 이방인들과 잘 지내며 신망을 받았는데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처럼 여겼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행동입니까? 불신자들과 잘 지내는 것은 타협이 아닌 하나님의 뜻입니다.  

더 나아가 소외된 사람들을 잘 살펴주는 것도 잘 믿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자기 소외를 극복하는 최적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기피하던 창녀, 세리, 병자, 이방인을 다 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구분, 차별, 배타, 편견 등은 성도가 가장 피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래서 선교마인드가 필요합니다.  

가끔 어떤 분은 해외선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목사님! 우리나라에도 선교할 곳 많은데 꼭 외국까지 가서 선교해야 합니까?” 그 말도 ‘일리(一理)’는 있지만 ‘이리(二理)’는 없습니다. 즉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말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외국 선교사들이 안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선교사들도 자기 나라에서 할 일이 많았지만 큰 비전을 품고 한국 땅에 왔기에 우리가 지금처럼 복음의 중심국가가 된 것입니다. 이제 생각의 폭을 넓혀 하나님의 마음과 비전을 가지십시오.  

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복음을 버렸습니까? 복음에 담긴 이방인을 사랑하는 강력한 정신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복 없는 행동입니까? 창세기 16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랍인의 조상인 이스마엘을 낳은 하갈의 고통도 들어주셨습니다. 이제 선교마인드를 가지고 사랑의 폭을 넓히고 주는 삶을 확대시키십시오. 주는 삶이 없으면 삶이 고독해지고 옹졸해집니다. 결국 ‘이기적인 마음’보다 삶에 독약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조만간 빈손으로 이 땅을 떠납니다. 그러므로 현재 주어진 것으로 열심히 선교에 동참하십시오. 천국에 가보면 세상에서 전혀 보지 못한 분이 반겨 맞을 것입니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를 아셨어요?”라고 물으면 그가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파송한 선교사로 제가 구원받아 천국에 오게 되었어요. 감사해요.”   

이제 열심히 선교에 동참하고 구제에도 관심을 두십시오. 왜 부자동네에는 걸인이 없고 오히려 달동네에 걸인이 많습니까? 사실상 부지동네에서는 더 얻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결국 어려운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더 돕는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가난해도 힘써 나누고, 더 나아가 나눔으로 힘써 가난해지십시오. 나눔으로 생긴 가난은 언젠가 최고의 부요와 축복과 행복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 사랑을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 >  

복음성가 중에 한국 성도들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바로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복음성가입니다. 왜 그 복음성가를 좋아하는지 이유를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사랑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소명감을 가지십시오. 계속 받기만 하면 사람들이 점차 내 곁을 떠나게 되고 자기 영혼도 점차 시들게 됩니다.   

어떤 분이 아들을 낳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이 사랑 받는 아들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 아이는 부모와 이웃의 사랑을 엄청나게 받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자녀가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정신적 미숙아가 된 것입니다. 결국 그 어머니는 이렇게 기도를 바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이 사랑을 주는 아들 되게 하소서!” 그처럼 이제는 기도하면서 받는 기도만 하지 말고 주는 기도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줄 수 있는 능력과 축복을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저와 형제처럼 지내는 몽골의 임 병철 선교사님이 뉴욕에서 목회할 때 1990년대 말에 그해 교회 표어가 이랬습니다. “많이 나눠주는 해!” 그 다음 해에는 교회 표어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가장 많이 나눠주는 해!”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교회 표어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작년보다 더 많이 나눠주는 해!” 그런 계속 나눔의 비전을 도전하자 성도들도 크게 축복을 받으면서 그 작은 교회가 엄청나게 많은 선교사를 도왔습니다. 그러다가 직접 자기 몸까지 나눠주려고 2002년에 몽골 선교사로 자원해 가게 된 것입니다.   

기도할 때 그처럼 기도해보십시오. “하나님! 많이 베풀고 많이 섬기고 많이 위로하게 하소서!” 이런 기도가 전혀 없다면 그 기도는 헛된 기도가 될 것입니다. 살다 보면 세상의 어둔 구석과 못마땅한 장면이 많이 보이지만 이제 세상만 탓하지 마십시오. 세상만 탓하고 세상만 “확!” 바꿔지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공의에 의문을 품고 몸부림만 치면 대개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중요한 것은 선교마인드를 가지고 사랑의 주사를 놓는 자신의 작은 실천입니다.  

모든 성공은 선교의 꿈을 이루기 위한 중간 기착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이란 중간 기착지에 머물지 말고 ‘선교’란 최종 목적지로 가는 꿈을 품으십시오. 그처럼 선교에 힘쓰면 복의 근원이 되고, 좋은 사람도 얻고, 후손도 복될 것입니다. 진짜 축복은 다음 세대에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돈의 수명은 짧지만 복음의 수명은 영원합니다. 항상 선교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얻고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가문을 열어가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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