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가 다락방의 모임 (행 2:5-13, 40-42)

첨부 1


마가 다락방의 모임 (행 2:5-13, 40-42)  

교회는 모임이다. 둘 이상 모이는 모임이다. 교회(에클레시아)란 말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이 있다. 그 동안 3주에 걸쳐 구약의 3대 모임을 배웠다. 그 모임은 일회적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모임은 정기적이다. 기독교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일을 지켜 예배를 위한 모임을 갖는데 있다. 그 교회의 시작이 된 모임이 마가 다락방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부활하신 주님의 약속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40일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일을 말씀하신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실 때까지 모여 있었다. 행1:14을 보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까 마가의 다락방의 모임은 ①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모임이고 ②주님을 믿고 약속을 신뢰하는 120명의 무리들의 모임이다. ③이 모임은 오직 기도에 힘쓰는 모임인데 이 모임은 어떻게 되었는가?
  

1. 성령의 은사가 나타난 모임이 되다. (행2:4)

행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의 나타나심은 다양한 은사다. 그 은사 중에 다른 언어로 말하는 방언의 은사가 나타났다. 이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표식이다. 바벨탑 사건 이래 언어가 갈라져서 서로 듣지 못하고 소통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기도 모임 위에 임한 성령 충만은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은사가 나타났다. 성령이 우리 위에 머물러 계시다가 그 성령이 나를 지배하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외적 역사가 있을 때 그 성령 충만에서 나타나는 것이 은사다. 약속하신대로 성령 보혜사가 오셨다는 징표로 방언의 은사가 나타났다.

방언은 신호음이다. 새 시대, 성령 시대, 교회 시대가 열렸다는 신호음이다. 종말이 올 때까지 교회가 선교해야 된다는 신호음이다.
  

2.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받는 기쁨의 모임이 되다. (행2:13)

마가의 다락방 모임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갈릴리 사람들의 입에서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될 때 기이한 마음을 가졌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조롱하였다. 행2:13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술 취한 사람은 시끄럽다. 술 취한 사람은 냄새가 난다. 술 취한 사람은 즐거워한다. 노래하고 신난다.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는 정말 술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 방언을 하느라 시끄러웠고 성령의 사람이 된 기름 냄새가 났고 은혜, 은사를 받은 기쁨과 소망으로 즐거움에 빠져 있다. 성령을 모르는 사람들, 예수께 속하지 않고 육에 속하여 성령의 나타나심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조롱할 수 밖에 없었다. 은혜 받은 감격, 은혜 받은 기쁨, 그 즐거움을 모르니 기쁨을 조롱한다. 술에 취했다고 조롱한다.

그렇다. 본래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른다. 갈5:17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 사람들은 성령의 나타나심을 거스른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받아 기쁨과 즐거움으로 만사를 대하니 사랑으로 그 기쁨을 나눈다. 사랑으로 섬기고 내어준다. 그런데 육의 사람들이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만들어 낸 삶을 이해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천!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조롱하고 거스르고 핍박한다. 그래서 부딪힌다. 영과 육의 삶이 거스른다. 기쁨이 있어서 구제한다. 기쁨이 있어서 전도한다. 기쁨이 있어서 철야 집회에 나간다. 이것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조롱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조롱 받을 만큼 기쁨에 취한 모임이 되게 하자. 120문도 모임이 기쁨의 모임이 되었다.
  

3. 담대한 전도자로 세워지는 모임이 되다. (행2:14~40)

행2:14~40은 베드로의 설교다. 120문도를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행2:14에서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일어섰다. 베드로는 오히려 소리를 높여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담대함으로 충만했다. 120문도들이 성령을 받은 것이지 술 취한 것이 아니라고 설교하였다. 

행2:24에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는 예수, 행2:32에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예수, 행2;36에 십자가에 예수를 못 박은 이들은 너희들이라고 외쳤다. 그 마음을 찌르는 설교는 목숨을 건 설교였다. 예수를 전한 그 마음은 두려움 따위에 움츠러들 수 없는 담대함이었다. 베드로는 회개를 촉구한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고 한다. 결단을 촉구하며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베드로와 열 한 사도는 전혀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가의 다락방의 모임은 변화의 산실이었다. 비겁자가 담대한 전도자로 세워지는 모임이 되었다. 사람의 여론을 무서워하는 자가 결단을 촉구하는 전도자로 세워진 모임이었다.
  

4. 폭발적인 부흥의 현장을 목격하는 모임이 되다. (행2:41)

베드로의 설교가 끝났다. 행2:41을 보면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하였다. 기독교 역사상 담대한 베드로의 전도 설교를 통해 한꺼번에 3,000명의 믿는 자가 생겨난 것은 놀라운 영적 부흥이다. 기독교의 바탕이 되어있지 않는 복음의 볼모지, 유대교 문화로 착색되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은 폭발적인 부흥의 현장이다. 실로 마가의 다락방의 모임은 부흥의 현장을 목격하는 모임이 되었다.

파워 설교, 파워 전도, 파워 은혜, 3천명의 믿는 무리가 더하여진 이 부흥 현장은 성령이 교회의 운행자이며 성령이 죄인을 회개시키며 성령이 교회를 굳게 세우시는 분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람을 일으켜 세워놓는 부흥은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된다. 오직 주의 신으로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 믿는 자들이 꿈꾸는 참된 부흥, 진정한 부흥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찾으라. 아니 교회의 시작도 교회의 확장도, 교회의 승리도, 교회의 영향력도 마가의 다락방 모임 속에 그 비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회가 조직화되고 체계화되면서 다양한 과목의 공부를 하고 신학교와 교회에서는 상담학, 설교학, 예배학, 성경 주석, 현대 신학, 교회사, 교리사 등등 많은 것을 가르친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전문가, 박사들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생겼다. 그런데 교회가 오히려 더 흔들리고 무너지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것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마가의 다락방의 모임이 보여준 기본을 빼먹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살린다는 신학교에서 타종교를 이해하고 현대 사조를 공부하고 심지어 불교, 유교, 샤머니즘까지 공부하면서도 마가의 다락방으로 시작된 모임의 기본기를 외면하고 있다. 그것은 시작도 기도요, 성령의 임재 시도 기도요, 부흥이 경험된 후도 기도라는 사실에 어긋나는 일이다.   

신도의 수가 3천명이나 더하는 부흥이 도래했으나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공부가 필요로 된다. 서로가 서로를 아는 친교가 필요로 된다. 피 눈물 나는 논문 작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든지 기도가 없으면 안된다. 기도를 외면하면 안된다. 그들은 기도에 물러서지 않았다.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마가의 다락방 120문도는 부흥이 오기 전 또 부흥이 온 이후도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쓴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 없는 교회, 기도 없는 신학교, 기도 없는 대학생, 기도 없는 선교 단체란 아무리 방법이 많아도 기본을 버린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의 모임은 기도에 힘쓰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우리 교회는 기도가 있는 모임, 기도하는 성도,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진정한 교회, 성령이 일하는 교회, 부흥이 일어나는 살아있는 교회, 건강한 교회를 만들게 된다. 학위보다 마가의 다락방의 기도 모임, 명예와 재산보다 마가의 다락방의 기도 모임이 우선이다. 길을 갈 때나 앉았을 때나 다락방의 기도 모임을 사모하라. 진정 교회를 세우려면 기도 모임,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모임, 이 모임을 날마다 사모해야 한다. 우리의 작은 속회 모임조차도 기도 위에 세우려 할 때 건강한 CM으로 분가되고 재탄생될 것이다. 

끝없는 도전, 온누리교회 컨퍼런스에 오신 짐 심발라 목사는 노숙자, 알콜 중독자들 주변에 세워진 교회가 30명에서 10,000명의 교회로 세워진 동력은 오직 기도였다고 고백한 것을 잊을 수 없다. 알콜 중독자를 돌보는 사역의 동력은 기도였다. 기도가 새 바람, 새 불길, 새 방언을 가져오는 동력이다. 기도가 방법이다. 기도가 기본이다. 기도가 정도다. 삼위일체 성령 하나님은 나와 여러분의 기도하는 무릎을 기다린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