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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자와 여자 (창 1: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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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 (창 1:27-28)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몸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모든 부위가 저마다 대장이 되려고 했습니다. 뇌가 말하길 내가 신경계를 관장하고 있으니 대장자리는 당연히 내 차지다. 발은 말하길, 우리가 있기에 몸이 서 있을 수 있으니 우리가 대장이 되어야 한다. 눈이 말하길, 바깥 세상에 관한 모든 정보를 보는 내가 대장 노릇을 해야한다. 입이 말하길, 내가 먹어 주는 덕분에 살면서 무슨 소리냐 나야말로 대장감이다.
  
똥구멍이 들으며 화가 났습니다. 잔뜩 오무린 채 말도 안하고 할 일을 안 하기로 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체의 배설을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뇌는 열에 들뜨고, 눈은 흐릿해지고, 발은 걷기가 힘들어지고, 손은 힘없이 축 늘어집니다. 결국은 모든 부위들이 모여 뇌에게 간청했습니다. 대장 자리를 똥구멍에게 양보하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똥구멍이 대장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똥구멍이 우두머리가 되고 나서 똥내 나는 골칫거리들을 모두 해결했습니다.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고전12:22-23)

  
󰊱 하나님의 형상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은 하나, 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말합니다. 단수가 아닌 일인칭 복수로 ‘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께서 의논하며 인간을 지으신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시고, 바다의 물고기, 공중의 새 가축 들짐승 땅위에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형상이란 히브리어로 “첼렘”으로 “새긴 형태”를 뜻하고 모양은 “테무트”로 “유사한 것”을 의미합니다. 형상이나 모양이라는 말은 겉모양이 아니라 내면적 유사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학자에 따라 다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창조력이라 해석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라 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경영능력이라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성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용어로 하나님의 형상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해야 옳습니다. 
  
인간의 용어로 하나님의 인격을 표현하자니 “형상”이나 “모양”이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동물들이 갖지 못한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가장 닮은 모습입니다.  
  
비잔틴 시대는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성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기독교 미술 문화를 꽃피운 것이 창조성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로마인이 랍비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있으면 좀 보여 주시오 그러면 “나도 믿겠소” 랍비는 로마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태양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시오” 로마인은 잠깐 쳐다보다가 금방 눈을 감고 “엉터리 같은 소리 집어치우시오! 어떻게 태양을 쳐다본단 말이오” 그러자 랍비가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인 태양 하나도 바로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위대하신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겠소!”
  
예수님은 제자 빌립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소서 하니,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내 말을 믿어라”(요14:9,11 쉬운성경)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후4:4)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골1:15)
  
내가 우리 아버지를 닮은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을 닮으셨습니다. 창조 신학, 창조 신앙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바랍니다. 

  
󰊲 남자의 재료 흙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이 말씀은 아담을 말합니다. 
  
흙을 아는 것이 인간의 근본을 아는 것입니다. 인간을 알려면 흙을 알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흙으로 남자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첫째, 흙은 생명을 공급해줍니다. 모든 생명체는 흙에서 삽니다. 식물도 동물도 흙에서 살고 흙에서 제공해주는 양식으로 살아갑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채소나 야채, 그리고 동물도 흙에서 나오는 것으로 식물을 삼고 살아갑니다. 흙이 없다면 식물도 자라지 못하고 따라서 곡식도 열매도 없습니다. 흙이 있어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둘째, 흙은 모든 것을 품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버리는 온갖 오물 쓰레기라도 받아줍니다. 그것들을 받아 안고 썩혀서 거름이 되게 합니다. 흙은 모든 것을 품어 변화시킵니다. 
  
셋째, 흙은 정직합니다. 콩 심으면 콩을 내고 팥 심으면 팥을 냅니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놓지 않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합니다. 인간은 흙처럼 살아야 합니다. 흙은 정직함이요 흙은 남자의 본질입니다. 
  
넷째, 흙은 겸손합니다. 겸손(humility)은 부식토(humus)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다움을 휴먼(human)이라 하는데, 이 말도 같은 어원 humility에서 나왔습니다. 흙에서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흙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가장 낮은데서 작은 씨앗을 품고 싹을 내고 줄기를 키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아담은 지구 껍데기에서 채취한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흙은 지구의 살덩어리이고, 아담의 살덩어리입니다. 흙으로 지어진 사람은 흙에서 살다가 흙에 묻히게 됩니다.
  
농부는 땅을 갈아 흙을 비옥하게 합니다. 옹기장이는 좋은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듭니다. 흙은 풍부하고 깊습니다. 파고 또 파면 마실 물을 줍니다. 흙은 무한한 잠재력입니다. 파고 또 파면 금도 나오고 은도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3:23) 지하자원 개발보다 인간개발이 더욱 시급합니다. 
  
하나님은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호10:12)고 하십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뒤덮인 묶은 당을 갈아엎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것을 거둡니다. 
  
  
󰊳 여자의 재료 갈빗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창2:22-23) 하와를 만든 재료는 아담의 갈비뼈입니다.
  
남자는 뜨거운 물에서 목욕을 길게 못합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어서 뜨거운 물에 오래 있으면 풀어진답니다. 여자가 뜨거운 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뼈로 만들었기 때문에 뜨거운 물에 오래 푹 고아야 한답니다. 
  
하와는 아담과 달리 두 차례 정제과정을 거쳤습니다. 정제(精製)란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해 더 잘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약체보강의 원리를 적용하고 하자 없이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면 하와는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아담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새겨 넣으시고 하와를 하나님과 닮은꼴로 지으셨다는 말입니다.
  
주석가 메튜헨리는 “아담의 갈빗대를 통해 만들어진 하와는 두 배로 정제된 하나님의 작품이다”라고 했습니다. 붉고 거친 흙으로 만든 아담은 거칠고 한번 더 곱게 정제된 갈비뼈로 만드신 하와는 더 곱고 섬세합니다. 
  
하나님은 하와를 지어 아담을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창2:20). “돕는”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제르”는 “도움을 주다” “호위하다” “더하다”라는 뜻입니다. “배필”로 번역된 히브리어 “케네그또”는 “바라보다” “마주 대하다”라는 뜻입니다. 
  
하와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 그 실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습니다(창3L6). 하나님의 말씀보다 아내의 말을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 말 안 듣는 남자가 없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아내 말 잘 듣는 사람, 안 듣는 사람을 따로 앉혔습니다. 한쪽에 한 사람만 앉아 있었습니다. “왜 자네는 아내 말을 안 듣나?” “아내가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빈 토카이어라는 랍비가 쓴 탈무드에 “여성상위”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탈무드는 “위대한 연구”라는 뜻입니다. 
  
착하기로 소문난 어떤 부부가 어쩌다가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남편은 곧 재혼을 했는데 나쁜 여자를 만나 살다보니 좋았던 남자가 나쁜 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내도 곧 재혼을 했습니다. 그도 역시 나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좋은 아내로 말미암아 나쁜 남자가 좋은 남자가 되었습니다. 남자는 언제나 여자에 의해 달라지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의 하와는 하나님이 금하신 실과를 아담에게 먹게 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했습니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딸 된 현대 여성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먹게 하여 새 에덴 동산 천국 백성이 되게 해야 합니다. 
 
습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학이나 그림 조각에 뜻을 둔 사람이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연습으로 지은 것으로 아직 세상에 발표하지 못한 작품을 말합니다. 남자는 습작이랍니다. 웃기지요? 여자를 만들기 전에 연습으로 만들어본 작품이라는 겁니다. 
  
그 말을 입증하려면 나쁜 남자를 좋은 남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남자의 부족을 보충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남자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였는데 남편과 시댁 식구를 모두 예수 믿게 하는 여성입니다. 
  
남편에게 하나님 같은 아내, 아내에게 하나님 같은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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