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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짖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 (렘 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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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 (렘 33:1-9)


인터넷에 보니까 현대 여성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남성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글을 보았습니다.  남성 되시는 분들은 한 번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눈이 단추 구멍만 해서 쌍거풀 수술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으되, 노출이 심한 여자를 볼 때마다 눈이 당구공만 해지는 사람은 용서할 수가 없다.  과거가 있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으되, 미래가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가 없다.  귀 뚫은 남자는 용서할 수 있으되, 귀가 막힌 남자는 용서할 수가 없다.  머리카락이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으되, 머리가 빈 남자는 용서할 수가 없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죄 많은 사람은 용서할 수 있지만,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가 많은 사람, 실패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 누구도 축복할 수 있지만, 그러나 기도하지 않은 사람을 축복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우리는 다 연약합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무엇인가 되고 있다는 창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에 완전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성경에는 우리가 계속 다듬고 만들어져 가고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만 역사하면 무엇인가 될 사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만나주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개입하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개입하실 뿐입니다.

보십시오.  애굽을 떠난 사람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가나안을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으로 하나님의 비밀한 역사를 눈으로 보고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한 두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다원주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원주의라는 말은 결국 상대적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상을 다 받아들입니다.  모든 종교를 다 받아들입니다.  절대적 신앙을 거부합니다.  때문에 하나님도 필요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믿게 만드는 것이 다원주의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다원주의 시대 속에 살고 있다고 해서 다원주의 신앙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십계명 가운데 제1계명은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1계명이 무너지면 다른 계명, 다른 신앙도 다 무너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고 그분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분만을 사랑하십시오.

요즈음 세상적인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어떤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과 줄을 연결하고자 애를 씁니다.  정치권에서도 선이 안 끊어지려고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더 긴밀한 관계를 갖는 사람에게는 더 큰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이 노래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는 죄를 범한 이후에 나단 선지가의 책망을 받고 그 앞에서 고백한 시편입니다.  다윗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것을 더 두려워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사람과 멀어지는 것보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더 두려워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범죄한 죄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긍휼하심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사람은 짧은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인생 여정에서 큰 자취를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오랜 기간 동안에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도 인생 여정에서 어떤 자취를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누가 하나님을 더 가까이 흠모했느냐의 차이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한 시대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축복을 받았던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남다른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문제 투성이 야곱이 가지고 있는 특기라고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한 생애를 살아갈 때에 내가 정직하게 살아도,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원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길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길입니다.  아무리 고난과 고통이 와도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것이 복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울 때 더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십시오.  기적을 일으킨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믿음의 공통점은 시간마다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끝까지 그분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의 모든 생활은 결국 믿음의 산물입니다.  하늘이 항상 맑은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캄캄한 먹구름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가 잔잔한 날이 없듯이 늘 파도와 폭풍이 밀려오고 밀려갑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갈 길을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기적 같은 삶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크게 믿으십시오.  항상 확실하게 믿으십시오.  다른 사람이 감동되게 믿으십시오.

우리 성도의 생활은 영적 전쟁입니다.  깨어서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 그 믿음을 크게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귀하게 보셨고, 그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고, 하나님이 그 믿음을 만족해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어떤 환경,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에 마음에 드는 약해지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역사하는 믿음,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장애가 없으면 능력도 없습니다.  장애가 없으면 하나님을 찾는 마음도 없습니다.  모세는 40년 고난의 인생을 거쳐서 홍해를 가르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성령의 권능을 붙들고 절망 가운데서 일어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 앞에서 부르짖는 작업을 시작하십시오.  부주의한 말 한 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쓰디쓴 말 한 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 마디고 활활타던 사랑의 불을 싹 꺼버립니다.  그러나 소망의 말 한마디가 그 인생을 다시 빛나게 합니다.  믿음의 말 한 마디가 그 인생에 변화를 줍니다.  기도의 한 마디가 땅을 고치고 모든 삶의 결박을 풀어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온 우리는 오늘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 안에는 소망이 있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 안에는 사랑이 있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 안에는 자유가 있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 안에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기도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기도는 능력의 세미한 신경입니다.  기도하면 모든 능력의 세미한 신경들이 살아납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 없이는 능력도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응답도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고침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역대하 7장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이렇게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땅이 고쳐집니다.  이 말씀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 지식, 좋은 사상을 배우려고 하지 말고 믿음의 기도를 붙드십시오.  기도하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인생의 가장 고귀한 기쁨도 기도의 신비한 세계에서만 얻을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 받게 하시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기도하는 시간보다 더 좋은 시간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기도하는 시간보다 더 귀한 시간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기도하는 시간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기도하는 시간보다 사람이 더 착해지는 시간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신 '크고 은밀한 계획들'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들을 보여주시면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서를 들여다 본 예레미야는 눈물로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해서 임금과 귀족들과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아니하면 바벨론의 멍에를 메고 패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 예언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시드기야 왕은 세간을 어지럽히는 예언을 한다면서 예레미아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 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1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지금 예레미야는 자신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든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먼저는 자신 스스로가 절망의 시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오히려 시위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가 하면 나라가 망하는 절대 절망의 시간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절망의 시간에 예레미야가 붙잡은 것은 절망이라는 그 환경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지금 예레미야는 절망의 시간에 그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뜻을 세워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려다가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도시마다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가득 찼습니다.  임금은 두 눈이 뽑혀서 종처럼 끌려 다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행동은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일을 행하시고, 그 일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인생의 주권자이신 그분의 계획을 빨리 파악하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했습니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은 동일할 수 있다.  그러나 고통 당하는 사람의 모습은 동일하지 않다.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 가까이 나아간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고통을 당하느냐, 당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과 고난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미풍이 불어오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꽃은 아름다운 향기를 날리게 됩니다.  고통은 똑같이 당할 수 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그 고통이 삶의 마이너스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은 내 인생의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를 향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계획을 알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본문 3절에서 그 대답을 가르쳐주십니다.  본문 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시위대 감옥에 갇혔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지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어쩌면 예레미야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어려운 난국을 풀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외쳐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제 나는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때가 가장 큰 일을 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무너져 가는 이 나라를 위해서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이 불쌍한 나라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는 것이다.  방황하는 민족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라.  그렇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살리는 가장 중대한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그 위기를 벗어나 승리하는 지름길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하는 일보다 더 크고 우선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비밀한 계획이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박해를 받았던 엘리야도 한때는 착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갈멜산 대결에서 승리했던 엘리야는 복수를 결심하는 이세벨을 피하여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자 광야로 도망을 갑니다.  하룻길을 도망하다가 지친 그는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나님 앞에 하소연을 합니다.  "하나님, 나 혼자 뛰다가 이제는 지칠 때로 지쳤습니다.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  차라리 내 목숨을 거두어 가 주십시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나 여호와이니라.  너 혼자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지금도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 칠천의 용사를 네 곁에 남겨 두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험한 인생 길에서 지쳐있습니까?  그러나 지금도 누군가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그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 동안 예레미야는 이리 저리 쫓아다니느라고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이 감옥에서 마음껏 부르짖어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주할 때 우리는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잘 될 때 세상에 뛰어다니느라고 기도할 시간도 장소도 갖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울 때, 그래서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을 때 나는 엎드려 마음껏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절망의 터널은 내가 무릎 꿇고 그분께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도의 터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실 감옥은 가장 안전한 기도의 골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역대상 4장 10절에 나오는 야베스의 기도를 아십니까?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는 그의 어머니가 수고롭게 난 아들이었습니다.  숱한 고생길을 걸어야만 하는 인생이 될 뻔했습니다.  무거운 환난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게 될 고통의 인간이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의 시간에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 절망의 장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내 인생에 운명의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 영향력 있는 인물로 살아가겠습니다.  내 지경을 넓혀 주시옵소서.  환난과 근심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백성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선물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야베스의 기도를 보면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렇습니다.  기도는 운명을 바꿉니다.  기도는 역사를 바꿉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기도하는 그곳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그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그곳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그곳에는 치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 이하를 보면, 어려운 시대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예레미야 29장 12절과 13절을 찾아서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그래서 인생에 모든 희망이 끊어진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아무도 희망을 선포해 주지 않을 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을 붙들고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세상을 향해 "아직도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선포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절망의 시간에 하나님의 사람이 해야 할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부르짖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본문 6절의 말씀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여기에서 '그러나'는 반전 접속사입니다.  4절과 5절은 하나님의 소중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와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6절 이하의 말씀을 축복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6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부르짖는 자들을 향한 치료가 선포되어집니다.  부르짖는 자들을 향한 용서가 선포되어집니다.  회복과 영광이 선포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심판과 멸망의 예언은 부르짖는 기도를 통하여 위대한 대 반전이 일어납니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파괴되고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이 주께로 돌아와 부르짖어 기도하면 무너진 성을 회복하고 다시 찾게 되고 새로워지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고쳐 낫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돌아와 부르짖어 기도하면 비록 너희들이 나를 버리고 세상으로 갔다가 실패한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너를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하십니다.  계속해서 7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포로가 되어 붙잡혀 갔다고 할지라도, 다 잃어버리고 빼앗겼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다시 세우고 축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회복과 부흥을 위해서입니다.  실패와 절망 가운데서도 우리가 다시 일어나 희망을 선포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셔야 합니다.  사탄의 역사는 파괴와 무너짐과 방황과 깨어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회복과 부흥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서 다시 한 번 회복과 부흥을 기대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본문에 보면 회복의 클라이막스는 9절의 말씀입니다.  본문 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배신하고 떠났던 백성들에게도 그들이 다시 돌아오면 그들이 세계 열방들 앞에서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되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모든 복을 듣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름에도 기쁜 이름이 있고, 슬픈 이름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가 잘 될 때 그 이름은 기쁜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자녀가 어긋난 길로 가고, 잘못될 때 그 이름은 슬픈 이름입니다.  부모는 그 아이의 이름만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났던 저들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슬픈 이름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세상 속에서도 조롱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부르짖기만 하면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 속에서 찬송과 영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는 그들의 모습을 세상 열방들이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열방의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두려워 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들로 하여금 돌아와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 크고 놀라운 계획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크고 놀라운 계획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되는 삶을 사십시오.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에게 찬송과 영광이 되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십시오.  그리고 열방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시위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어떻게요?  우리가 전심으로 주께 돌아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18세기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릴 때 윤리적으로, 영적으로는 타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무렵 시골에서 살길을 찾아 런던으로 올라온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힘들게 전당포에 취직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골목을 청소하기 위해 가게문을 열 때마다 지난밤의 광란이 지나간 거리를 바라보면서 마음 아파했습니다.  어린 소년은 하나님을 향하여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살아 계십니까?  런던 거리에 희망이 있습니까?"

성경책을 펼쳐들었을 때 그는 시편 5편 3절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그는 아침마다 빗자루를 손에 들고 거리를 쓸기 전에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쓰는 것은 런던 거리이지만 이 민족의 쓰레기 같은, 영적인 쓰레기를 치우는 내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이 도시를 깨끗하게 하는 청소부가 아니라 이 백성의 영혼을 청소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복을 받아서 내가 받은 복으로 이 도시를 살리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를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내가 변화되어져서 이 영향력으로 이 시대를 살리는 인물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그의 기도와 같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리더십이 영향력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바로 당대의 영적인 거성이요, 산업혁명시대에 타락한 영국을 살려내었던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엄 부스대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도 믿음의 기도는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킬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믿음의 기도는 바위에서 생수가 터질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믿음의 기도는 하늘로부터 양식을 내리게 할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믿음의 기도는 떠있는 해도 멈추게 할 것을 믿습니다.  이 시간 우리를 향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계획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이 땅을 고쳐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는 내 앞에 있는 풍랑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경험을 의지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그 얄팍한 지식을 의지하시겠습니까?  썩은 새끼줄 같은 세상 줄을 붙들고 살아가시겠습니까?  그것들을 놓을 때에 우리는 생명줄을 붙들 수가 있습니다.  기도의 줄을 붙들 수가 있습니다.  전능한 하나님의 손을 붙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운명의 노예가 되지 말고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운명을 바꾸는 축복의 사람이 되십시오.  환경에 짓눌려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부르짖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우리의 유일한 자산은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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