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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고 바라보면 살리라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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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믿고 바라보면 살리라 (민수기 21:4-9)

주간 성경읽기에 따라 민수기를 읽으신 분들은 한 주 전에 오늘의 본문 불뱀 사건에 관한 말씀을 읽었을 것입니다. 지난 주일 Lalego목사님이 설교를 맡아 한 주가 지난 오늘 이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을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여행 도중에 불뱀에 물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죽기까지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광야 여행에 지친 백성들이 견디다 못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민수기 20장을 보면, 불뱀 사건이 있기 전에 백성들이 신 광야 가데스에서 물이 없어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시때때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백성들 때문에 마음이 상했던 모세와 아론이 홧김에 지팡이로 반석을 쳤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물을 나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벌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책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약 40년의 광야여행을 하는 동안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그들의 속 마음을 있는대로 다 드러내 보이고 말았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특별히 구별되어 성막에서 수종들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불신앙과 불순종의 모습을 여러 번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가데스에서 지도자 모세와 아론마저 분노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책망을 들었습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신 광야 가데스에서 죽어 장사지냈고 형 아론도 호르 산에서 죽었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론은 가나안 땅을 멀리서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모세의 누나와 형의 죽음은 백성들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모세와 함께 이 험한 길을 걸었던 아론마저 죽었으니 우리의 광야생활은 언제나 끝이 나고 안식을 누릴 수 있을까? 과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는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지친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 고단하였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당한 일을 우리도 만났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의 형편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4절을 보면,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4절) 하였습니다.  신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가려면 에돔 땅을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에돔은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의 후손들이었으니 형제 국가입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통과할 때 그들과 전쟁하지 말고 협조를 요청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에돔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땅을 지나가게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가 밭이나 포도원을 지나지 않고 우물 물도 공짜로 마시지 않고 값을 치르겠다.  에돔 왕이 지정한 길로만 통과하고 절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것이니 협력해 달라 요청했지만 에돔 왕은 거절했습니다. 만일 그래도 우리 땅을 지나간다면 내가 군사를 이끌고 칼로 너희를 맞이하리라 하며 냉정하게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전쟁을 하여 뜷고 가면 될텐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니 지름길을 눈 앞에 두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 홍해 길을 따라 돌고돌아 고생스럽게 행군해야 했습니다. 좋은 길 두고 험한 광야 길로 가야했던 백성들은 불평이 차고 넘쳤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과 모세는 우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 이 광야 길로 인도하여 여기서 죽게 만드는가?  여기는 먹을 양식도 없고 물도 없다.  맨날 똑같은 것을 먹어야 하는 보잘 것 없는 만나는 이제 지겹다’  

이 원망은 지난 40여년 동안 반복 또 반복했던 불평이었습니다.  그 불평 때문에 여러 번 책망을 들었고 40년 세월을 방랑해야만 하는 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또 그 입이 문제였습니다.  백성들의 원망을 듣는 지도자 모세는 그때 뭐하고 있었을까요?가데스에서 속이 상하여 성질 한 번 잘못 부렸다가 하나님께 호되게 책망을 들은 모세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의지했던 형님 아론도 세상을 떠나 없고 외롭고 답답한데 섣불리 나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그 순간 모세는 하나님께 어떻게 좀 해주십사 하고 기도드렸을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즉각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갑자기 불뱀들이 튀어나와 많은 사람들이 물려 죽었고 독이 몸에 퍼져 불덩이처럼 되어 죽어가며 여기저기서 살려달라 아우성입니다.  무서운 벌을 받고서야 백성들이 잘못을 깨닫고 모세에게 찾아와 애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당신에게 원망하여 범죄하였으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이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소서’ 

 모세가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불뱀의 독으로부터 치료받는 처방전을 주십니다. ‘구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아라. 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 그 말씀대로 모세가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았더니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살았더라 했습니다. 이상이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밤중에 조용히 찾아온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실 때 중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던 사건을 언급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4 15) 그리고 그 유명한 성경의 요절인 요한복음 3장16절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우리가 읽었던 민수기의 불뱀 사건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 죽으심을 모세가 나무에 높이 달았던 놋뱀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그 누구든지 나무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면 생명을 구하리라 하신 것처럼,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고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광야의 놋뱀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점에서 관계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왜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죽어갔습니까?  불신앙과 원망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들였습니다.  뱀에 물린 사람들이 불같은 고통 중에 죽어가며 모세 앞에 나와 외쳤던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다가 범죄하여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왜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였습니까?전쟁을 하더라도 에돔을 통과하면 빠르게 갈 수 있는데 왜 힘들게 돌아가라고 하시는가? 길이 험하다고, 광야에 물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랑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는데 사람들은 더 편한 길 편안한 삶을 원하며 잠간의 고난을 싫어하고 불평했습니다.  세상에 걷기 쉬운 광야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으니 거친 광야지 그럼 거기가 낙원이겠습니까? 광야 길을 통과해야만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니 어찌 그 험한 길을 피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편한 길로만 걸어가겠다고 고집합니까?

하나님이 40년 동안 아침마다 내려주신 만나가 보잘 것 없고 지겹고 싫다구요? 그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기 힘든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을 양식 주시고 마실 물을 공급하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신 그 은혜는 어디에서 온 것이었을까요?출애굽을 경험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체험한 민족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요?창조 이후 지금까지 하늘 이끝에서 저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어떤 국민이 이런 은혜를 입었고 어떤 신이 이런 큰 일을 사람들에게 보인 적이 있었습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 홀로 이 큰 일을 하셨고 이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참 신이십니다(신명기 4장).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은혜를 잊고 살았던 배은망덕한 백성들입니다. 급하고 어려울 때는 죽는 소리를 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만 조금 살만 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하나님을 잊고 삽니다. 열 가지 재앙을 만날 때마다 숨이 넘어가도록 급하게 모세와 아론을 불러 제발 이 재앙을 우리에게서 거두시라고 너희 하나님께 기도해달라 애원하던 애굽의 바로가 생각납니다. 재앙이 물러가고 숨을 쉴만 하면 금방 마음을 바꾸어 히브리인들을 놓아주지 않고 강퍅한 마음으로 허세를


부리던 바로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아우성칠 때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고, 먹을 양식이 없다고 징징거리면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주시는 당연한 것으로 받을 줄만 알았지 감사함으로 받을 줄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광야 길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시고 생명을 보존하셨는가 생각해 볼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지금은 힘들어도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때까지 분명히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잠잠히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정도로 성숙한 믿음의 교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철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당장 눈앞에 어려움이 닥치면 징징거리며 울고 투덜거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늘의 만나를 거두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을 눈으로 보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를 믿지 못하여 원망하는 것 이것이 불신앙입니다.   

사단이 뱀을 이용하여 에덴 동산의 하와에게 슬며시 찾아와 하나님을 향해 불신하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끝내는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것처럼 광야의 백성들도 사단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원망하며 불신하는 백성들 속으로 광야의 불뱀들이 들어가 가차없이 물었습니다.   그리고 불같이 뜨거운 고통 속에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뱀에 물려 고통 속에 죽어간 원인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입니다.   물리면 불에 타는 듯한 고통 속에 죽게 만드는 무서운 독뱀들이 그 광야에는 흔하게 널려 있었습니다.  모세가 신명기 8장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들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신8:14하-15절)  지금까지 그들이 지나온 광야는 불뱀과 전갈들이 우글거리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보호하여 백성 중에 하나라도 다치지 않도록 막아주셨습니다.그들은 그것을 못 보고 지내왔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배은망덕한 백성들로부터 잠시 보호의 손길을 거두어 보십니다.  결과는 즉각 나타납니다.   금방 불뱀들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물어버립니다.그들이 뱀에게 물려 죽어간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자기들 입으로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원망입니다.  그 원망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었습니다.   참고 또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교훈삼아 따끔한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나무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을 살리라’ 하십니다.  불신앙의 죄와 그 형벌을 면하여 생명을 건지는 길이 있었습니다.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9절)  나무에 높이 달린 구리뱀을 바라보면 삽니다.   ‘아이고 죽겠다.  저 뱀을 보면 살 수 있다니 쳐다봐야지’ 하고 놋뱀을 바라본 사람은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고 죽겠네,  저게 뭐야.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저런 것 쳐다본다고 어떻게 살아?   무슨 약을 발라 주던가 해야 낫지.  누구를 바보로 아나?’하고 고집부리며 끝내 쳐다보지 않던 사람들은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죄인들을 치료하시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불신앙의 죄를 신앙으로 바꾸면 그 형벌을 면하고 생명을 건집니다.   그런데 끝내 불신앙을 고집하며 원망하던 사람들은 그 형벌로 죽어갔습니다.  그날 사람들이 불뱀에 물린 것은 불신앙에 대한 형벌이었으니 근본적인 치료약은 다른 것이 아니라 원망하던 마음을 회개하고 믿음으로 놋뱀을 쳐다보는 행동이었습니다.   

왜 예수께서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진리를 말씀하시며 모세의 놋뱀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나도 나무에 달려 높이 들려야 한다.  왜냐하면 나무에 달린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의 율법 선생 니고데모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아직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 니고데모 뿐입니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나사렛 예수의 죽음을 저주 받은 형벌로만 알았지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이라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주께서 하신 이 선언을 믿음으로 받고 나의 신앙고백으로 삼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하였고,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 인이나 헬라 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3, 24)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그 시대 사람들이나 바울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힘을 미덕으로 삼았던 로마인들은 막강한 군대의 힘을 자랑하며 세계를 정복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겸손과 희생은 힘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변명일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은 나사렛 청년도 미련하지만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가 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로마 사람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어리석은 짓이라 여기고 코웃음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율법을 따라 나무에 달려 죽은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죄인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음은 절대로 자신들의 구주로 오신 분의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거리낌이었습니다.  구주로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 사람들의 손에 붙여 로마의 사형법을 따라 나무 즉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였습니다.  구세주를 끝까지 거절하기 위한 불신앙의 행동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음으로 바라보면 영생을 얻는다구요?   그렇습니다.   그 길 외에는 구원 얻을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얻은 영혼의 질병, 그 죄의 형벌로 주어진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고침받아 새 생명을 얻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입니다. 미련한 것으로 들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봐야 영생을 얻습니다.   합리적인 치료방법을 제시하고 약을 바르며 수술을 해야 살지 어찌 그런 방식으로 살 수 있느냐?  조롱하고 비웃으며 시간을 지체하고 거절하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끝까지 불신앙으로 일관하던 죄인들이 당한 징벌은 죽음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우리가 믿고 따르며 바라보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영광을 사양하고 낮고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며 바라보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죄의 종노릇 하는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늘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함께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며 아버지가 정하신 때에 다시 오실 하나님의 아들 만왕의 왕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며 주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얻어 주와 함께 영원한 그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 살지만 험한 길을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주님을 따라가며 날마다 공급하시는 하늘 양식을 먹고 마시며 감사와 찬송이 끊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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