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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드온의 300 용사300 Warriors of Victory (삿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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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와 사탄 왕국간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전쟁터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구약의 전 기간, 그리고 신약교회 시대와 교회사 2000년 간 양자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지속되고 있고, 점점 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흑암의 모든 세력을 심판하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들과 함께 그리스도 왕국을 세우실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군과 미디안 연합군의 전쟁에 대한 기록이지만, 그 본질은 하나님 나라와 사탄 왕국간의 피흘리는 전투의 한 예(例)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투를 해석하는 기준 또한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투의 원리에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고 했습니다. 서로가 마주 대하여 팽팽한 대치 상태에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본서 기자는 기드온을 가리켜 ‘여룹바알’이라 했는데, 이는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 전쟁이 단순한 민족간의 전쟁이 아닌 바알과 여호와 하나님 중 어떤 신이 참 신인지를 판가름하는 영적 전쟁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전쟁에서 바알에게 대항하였던 기드온이 패하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기드온이 바알에게 대항하여서 징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바알을 참 신으로 여기고 더욱 열렬히 숭배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알에게 대항하였던 기드온이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은 무능한 존재에 불과하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전쟁은 기드온의 승리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과 미디안 연합군의 승리를 통하여 하나님을 훼방하기 원하는 사탄간의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승리의 주인공인 기드온의 300용사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주님의 교회가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승리하기 위한 비결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미디안 연합군과 싸워 엄청난 승리를 거둔 기드온의 300용사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 32,000명에서 뽑힌 300명임 (=전투준비가 된 창조적 소수 )

 

7절=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미디안 연합군이 요단을 건너와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삿 6:33). 이때 성령에 감동된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타올라 군사를 모집하기 위해 나팔을 불었고, 기드온의 소집령에 따라 모여든 이스라엘 군대의 수는 총 32,000명이었습니다(3절).

 

당시 이스라엘 군대가 상대해야 할 미디안 군대는 135,000명으로(삿 8:10) 이스라엘군과 비교할 때 4배가 넘는 대군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군사 32,000명이 너무 많다고 하십니다.

 

2절=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아야 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두 번의 선정 절차를 갖게 하시고, 명령대로 순종한 결과 용사로 선택된 사람은 겨우 300명이었습니다. 한 줌도 안 되는 수효입니다. 이것은 전혀 비상식적인 명령입니다. 산술적으로 이스라엘 군 한 명이 미디안 군사 450명을 상대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최종 선발된 300명의 용사는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뽑으신 소수 정예 부대이었습니다. 그들은 전투 준비가 된 창조적 소수였습니다.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 처음 지원병이 32000명이라도 적군의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인데 왜 너무 많다고 하십니까? 그것은 그정도의 병력이라면 굳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어도 전략 전술에 따라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라고 교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아주 적은 병력만 남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칼을 들고 싸우는 전쟁이었다면 이스라엘은 더 많은 군사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숫자나 무기에 승패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창조적 소수들’의 절대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기드온을 영적 전투의 선봉장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300명을 거룩한 전쟁을 위하여 하나님의 용사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말하기를, “역사는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에 의해 발전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역사 또한 ‘창조적 소수’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들이 바로 오직 예수 신앙으로 무장한 예수꾼입니다.

 


마 18:20에서 예수께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고 하신 말씀은 ‘창조적 소수, 곧 예수꾼’ 을 강조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앞절에서 두 세 사람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능력을 소유한자들이고,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심을 듣고 하나님께로 나왔다고 해서 무조건 영광을 허락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직 믿음과 지혜로 끝까지 남는 자에게만 영광을 허락하십니다.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세를 따라 광야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무조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직 믿음과 지혜로 끝까지 남았던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그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아왔던 열두 제자들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들 역시 전부 그리스도와 함께 열 두 보좌에 않는 영광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했던 가룟유다는 그 직분과 영광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같은 현대교회에 필요한 것은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창조적 소수’입니다. 사도행전 교회는 120명의 오순절 성령 체험했던 예수꾼들이 있었기에 놀라운 역사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영적 전투에서 로마의 잡신들을 정복했기 때문에 그토록 엄청난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드온의 300용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용사, 곧 영적 전투를 수행하는 예수꾼들이 되어서 승리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전투적인 바른 자세를 보임 (=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가짐)

 

3절=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6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300용사는 두 단계의 시험을 거쳐서 선택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 이었습니다(3절). 적군 앞에서 두려워 떠는 자는 군사로서의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율법에서도 전쟁에 합당하지 못한 자의 경우로 이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신 20:8).

 


두 번째로 물가로 내려보내어 물을 먹게 하고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이에 돌아간 백성이 9,700명이요 남은 사람은 불과 300명이었습니다. 최종 선발된 300명은 물을 손으로 떠서 그 손바닥에 고여 있는 물을 좌우를 살피면서 개처럼 핥아 먹은 자들입니다. 자제심과 경계심을 가지고 물을 마신 군사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뽑으신 300용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상황과 때를 분별할 줄 알고 경계심과 자제력이 있는 전사(戰士)였습니다. 그들은 전투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3절). 

 

그리고 그들은 무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바른 자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5절). 즉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중심이 바로 선, 준비된 용사들이었던 것입니다.

 


거룩한 전쟁에 임하는 군사들의 자세가 흐트러져서야 되겠습니까? 결국 300용사를 제외한 모든 자들은 영광의 승리에 참여하지 못했고, 가지고 있던 무기마저 회수되고 맙니다.

 

8절=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선발시험에서 탈락하여 각각 처소로 돌아가게 된 9,700명의 백성들이 소유하고 있던 양식과 나팔을 최종 선발된 300명이 취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마 25:14-30)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곱으로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땅에 묻어두고 감추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 왔을 때 앞의 두 사람은 칭찬을 받았으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 있는 것마저 열달란트 가진 자에게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는 자는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없습니다. 돌려보내어진 자들은 지극히 작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요구하신 기준은 영적 전투의 바른 자세, 곧 ‘하나님을 향한 중심’ 이었습니다. 

 


주님의 선택 기준은 학력이나 실력, 외모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이 바로 서지 못한 다수보다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가진 창조적 소수 곧 예수꾼을 승리의 현장에 부르십니다.

 


미국의 기업가 J.C. 페니는 체인스토어와 수퍼마켓을 2,000개나 운영하는 거부였습니다. 그런데 55세가 되던 해 심각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재기에 몸부림치던 그는 앞으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는 교회의 선교 사업에 헌신하게 되었고, 가장 많은 선교비를 헌금하는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간증했습니다.

 


“내가 과거에 예수님을 발견하기 전에는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이니 내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다’ 고 생각하며 살았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봉사의 삶을 산 결과 다시 훌륭한 기업가가 되는 축복의 생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적 전투의 현장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우리의 삶에 침투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영들 분별하는 은사’(고전 12:10)입니다. 이 은사로 아군인지 적군이지 분별하고, 적의 계책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 은사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중심이 바르게 서 있을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우리 모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열린 마음으로 솔직한 입술을 드려서 승리의 현장에 서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함께 누리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3. 믿음으로 수백배의 적들에 맞섬 (= 하나님께 절대 순종)

 

8절=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

 


지금 기드온은 300명이라는 초라한 숫자로 십만이 넘는 대군을 상대하고자 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처럼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기드온과 300용사는 하나님의 지시에 절대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용사 기드온의 순종을 보십시오. 사실 10,000명의 97%나 되는 군사들을 막강 군사력을 지닌 적군 앞에서 돌려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 그리고 순종심이 없는 장수 같으면 9,700명이 아니라 300명도 돌려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의 선발 시험에 탈락한 9,700명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과감히 돌려보냈습니다.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에서 동사 ‘하자크’의 사역형이 사용되어 ‘굳게 붙잡아 두다’ 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기드온은 남은 300명을 단순히 머물게 한 정도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가지 못하게 붙들었습니다. 

 

아마도 최종적으로 남은 300명은 다른 군사들이 대부분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해졌을 것입니다. 이에 기드온은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하시며, 미디안을 아무 어려움 없이 물리치게 해 주겠다’ 는 하나님의 약속(6:16)을 들려주면서 그들을 안심시키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믿음의 용사들이 함께 뭉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드온과 그의 용사 300명은 믿음으로 수백배의 적들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믿음 아니고는 그들의 행동을 설명할 다른 길이 없습니다. 

 

원수들은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았습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가 가진 무기는 ‘나팔과 빈 항아리와 횃불’이 고작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 전쟁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과 300용사들은 하나님의 절대 명령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전투 무기를 손에 잡고 생명을 건 전투 현장에 나섰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순종하는 예수꾼들에게 완벽한 승리를 허락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본장 19절 이하의 승전보를 잠깐 살펴볼까요? 기드온과 300 용사들은 “손에 든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고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였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전쟁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쉽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 순종의 믿음으로 응답하는 성도를 승리의 주인공으로 높여주십니다. 목숨을 건 전투 현장에서 하나님의 절대 명령에 절대 순종했던 기드온과 300용사는 오로지 하나님을 향하여 소리 높여 외쳤을 뿐입니다. 

 

“여호와 만세, 기드온 만세!” “하나님과 기드온의 칼이여!”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투의 현장에 부름받은 하나님의 용사입니다. 주님이 전투의 전방에 배치하고자 하시는 대상은 기드온과 그의 300용사처럼 전투 준비가 된 창조적 소수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향한 중심을 확실히 하고 주님의 계명에 절대 순종하는 소수의 정예부대입니다. 

 


16세기 초반 온 세상을 뒤덮고 있던 로마 카톨릭의 부패한 세력에 대항하여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내세우고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의 기치 아래 영적 전투의 최선봉에서 목숨을 불살랐던 종교개혁의 기수 마틴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탄이 내 마음에 다가와 ‘이 곳에 누가 살고 있는가’ 를 물으면, 내 마음 속에선 ‘이전에는 루터가 살았는데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느니라’ 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울려나오고, 사탄은 이내 도망쳐 버린다.” 

 


그렇습니다.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길은 대장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이름이 존경을 받지 못하고 교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오늘의 현장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입니다.

 

유사 기독교가 판을 치고 기복주의가 인기를 끌고 있는 교회 안에 이미 침투하여 또아리를 틀고 있는 세속주의, 인본주의, 민주주의는 자꾸만 성경과 우리의 신앙을 혼합주의로 끌어가고자 합니다.

 


이러한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우리 모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결단합시다.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 왔는지, 주님을 절대 순종하고 의지하고 있는지, 내 마음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봅시다. 

 

우리 모두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마귀에게 패배한 부위들을 철저하게 도려내고,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모여 있는 이 자리가 성령님의 능력이 충만한 자리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나팔소리와 같이 급하고 강한 음성으로 우리 함께 부르짖기를 원합니다. 

 

손에 든 항아리를 깨뜨리듯이 우리의 심령을 깨뜨리고 죄를 자복하여 주님께 절대 순종하는 신앙을 회복하기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투의 현장을 밝히는 횃불과 같이 온 세상을 밝히는 진리의 횃불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영혼을 깨우는 성령의 나팔이 되어야 합니다.

 


“오, 주님! 우리를 이 마지막 시대의 300용사로 불러주옵소서!”

“오, 주님! 우리 교회를 대구의 우상과 미신의 영에 대적하는 준비된 용사로 세워주옵소서!”

“오, 주님! 한국 교회를 마지막 시대의 증인들을 생산하는 해를 입은 여자로 사용하옵소서!”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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