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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을 따르는 자의 자격 (눅 9: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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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따르는 자의 자격 (눅 9:23-26) 
 
 
우리는 지금 교회 절기상으로 사순절을 초반부를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을 뒤따르는 사람들을 단순한 무리에서 제자로 부르시고 훈련되게 하는 기간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단순한 무리에게는 그렇게 엄격한 자격이 필요치 않습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되고 누구든지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는데는 아주 엄격한 자격을 제정하시고 그 자격을 요구하셨습니다. 자격이 엄격할수록 그곳은 좋은 곳입니다. 

명문대학이 좋은 것은 그 대학에 들어갈 사람들에 대한 자격이 까다롭고 그 기준이 높기 때문입니다. 들어가기가 쉬운 명문대학은 없습니다. 자격이 낮으면 누리는 것도 작습니다. 어려분 스스로 교회와 기독교의 격을 낮추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자격과 성도가 되는 자격을 스스로 낮추면 기독교는 하등종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하시면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필수 자격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그렇게 쉽지 만은 않기 때문에 그 자격을 생각하고 자격에 합당한 모습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결단을 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릴 자들입니다. 주님과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첫번째 자격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좇을 것(23)"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기'란 어떤 자기를 말함입니까? "육신적인 자기입니다. 성령의 지배가 결핍된 육신의 자기를 말합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부인해야 할 자기입니다. 
우리 주님을 뒤따라 사는 사람들은, '세상 안에 살지만' 그러나 '세상에 속하여 있지않기 때문에 세상에 빠져 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분명 다른 가치를 가지고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하셨습니다.  

주님이 따라오라고 하신 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포기하지 않으면 뒤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 높고자 하면 낮아져야 하고 강하고자 하면 약해져야 하고 의인이 되려면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그냥 높고자 하고 강하고자 하고 의인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내 주인 행세를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하고 그렇게 여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강신권박사의 "핵심 멤버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책이 있습니다. 교회는 핵심 멤버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탄은 핵심멤버를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그것은 핵심멤버의 타락은 곧 바로 교회의 몰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핵심멤버를 사탄이 어떤식으로 공격을 하는 것입니까? '자기를 주장하게 하고 자기를 자랑하게 하고 자기교만에 빠지게 하는 것' 방식입니다. 

두번째 자격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23)"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시대의 형벌 중 가장 잔혹한 것으로 죽음과 고난과 증오를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는 거룩하고, 은혜롭고,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천국도 없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순종을 말합니다. 즐겁게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우리가 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이 져야할 십자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는 자기 십자가 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남에게 지우려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모두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면 남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서로들 남에게 십자가를 지우려고만 하기 때문에 여기 저기 십자가가 나뒹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가 늘 무겁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가볍게 해달라고 기도 했는데 어느날 꿈속에서 주님께서 그를 십자가 창고로 부르셨시더랍니다. 그리고서는 이곳에서 너에게 가장 잘 맞는 십자가를 골라보거라, 그래서 이 십자가 저 십자가를 고르고 고르다가 그 중에서 하나를 골랐답니다. "주님 제 십자가를 골랐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애야! 네가 고른 십자가를 자세히 보거라"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자신이 평소에 그렇게 무겁다고 불평하던 십자가더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삶을 쉽게만 살아가려는 것과는 반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쉽게만 하려고 하면 결국은 믿음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뒤따르지 않고 오는 복을 소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가 아주 싸구려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리고 타종교인들이 기독교를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죽음과 고난을 받을지라도 바른신앙생활을 할려는 자세와 각오를 새롭게 해야할 것입니다. 

유럽의 어느 교회 앞에서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십자가 사십시오. 값싼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떨이 할께요, 세일입니다." 그것은 상인이 공예품 십자가를 파는 모습이었습니다. 
절대로 싼십자가 없습니다. 세일하고 떨이하는 십자가는 없는 것입니다. 

세번째 자격은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26)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수치를 느낀다면 주님도 그 영광의 날에 그로 수치를 느낄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동기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없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도 없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한다면,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부끄러워 할 것이며 우리는 그의 면전에서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내가 오늘 주님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나는 순수하고 귀하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이런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 때에 나는 천하고 무시되고 업신여겨질 존재로 낮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의 영광의 날에 나를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날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주님이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 가운데 들어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영광스러운 사람들 가운데 들어 있을 것인가?

우리가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열매없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은밀히 행하는 죄악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엡5:11~12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했습니다. 

주님을 뒤따름, 바로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숙제입니다. 뒤따름이 없는 신앙이란 것은 가식뿐인 신앙입니다. 
주님의 핵심제자로서, 교회의 핵심 멤버로서 자신을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와 그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영광스럽게 여기는 자격자로 세워지는 사순절 기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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