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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웃든지 뭘 하든지... (창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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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든지 뭘 하든지... (창 21:1-7)

건강하려면 이 세 가지를 잘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는 무엇을 먹느냐, 먹는 것을 잘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음식의 문제입니다. 여러 가지 음식이 있지만 어떤 음식을 먹는가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먹고 어떻게 하느냐? 즉 소화를 어떻게 시키며 배설을 얼마나 잘 하는가, 그리고 먹고 난 후 운동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세 번째는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의 마음자세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옛날에는 양의사들이 잘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많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밝고 믿음이 강한 사람은 면역세포 수치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천배나 더 높다고 수치로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세 번째로 말하는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의 문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웃음입니다. 웃음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암환자를 웃음으로 치유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을 것이고, 여러 연구 조사된 바에 의하면 10초의 웃음은 3분간의 노 젓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노를 저어보셨습니까? 매우 힘듭니다. 숙련되지 않으면 금방 손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쉽지 않습니다. 10초 웃으면 3분간 노 젓는 것과 같고, 10초 웃으면 4분간 조깅한 것과 같다고 하고, 웃으면 산소공급이 두 배로 증가해서 몸이 시원해진다고 말합니다. 늘 몸이 찌푸둥하신 분들은 웃지 않아서 그런지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치매라는 병은 큰 문제입니다. 요즘은 젊은이들도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기억력에 웃음이 아주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 자신감이 없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점점 더 자신감이 떨어지는 사람 그리고 무언가 생활이 재미가 없고 활력이 없는 사람 또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웃지 않아서 그런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웃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자꾸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스위스 바젤에서 웃음에 대한 국제학술대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발표된 것 몇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웃음은 스트레스를 진정시킵니다. 스트레스는 큰 병입니다. 혈압을 낮춰주고, 혈액순환을 개선시키고 면역체계와 소화기관을 안정시켜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웃을 때 몸에서 양질의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웃음은 어떤 의약품보다도 병의 예방이나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간혹 TV를 보면 억지로 웃는 일들이 있는데, 억지로 웃어도 90%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오늘부터 억지로라도 한 번 웃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드디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을 낳아 이삭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삭 이름의 의미가 바로 웃음입니다. 이 웃음이라는 이름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임신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19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이름이든지 또 다른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주실 때는 항상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십시오.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복으로 주셨음에도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반대로 이것을 잘 기억하면 심지어 복으로 주시지 않고 야단치시기 위해서 경고로 주시는 것도 복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경제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경제력 있는 분들도 계실 텐데, 그런 분들은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돈을 주셨는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하면 복이 되지 못합니다. 반대로 혹시 경제력을 갖지 못하신 분들도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지시 않았는지 제대로 알게 되면 여러분들은 금방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이삭’입니다. 웃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삭’은 이 아이의 부모 두 사람과 다 관련이 있습니다. 1년 전 사라가 임신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네 아내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성경에 나왔는데 한 번 잘 들어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오(창17:17) 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입으로는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창17:18)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말하는 것을 보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예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다른 사람에게 “기도나 좀 해주십시오.” 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좀 조심해야합니다. 기도를 얼마나 값없는 것으로 알았으면 ‘기도나’ 라고 이야기합니까? 그런 말을 할 바에는 기도를 부탁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런 소리를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첩이 낳은 자식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니 내 자식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자조적이고 반항적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웃기도 했고 또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라고 말했습니다.

그 얼마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는데 이번에는 그 아내 사라가 또 그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 창세기 18장 10절부터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창18:10-12).. 이 태도 역시 별로 좋지 않고 불량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렇게 태도가 안 좋은 것, 불량한 것, 상당히 자조적이고 반항적인 웃음과 그들이 한 말들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남편의 나이는 백에서 하나가 모자란 아흔 아홉이고, 그 아내는 아흔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여든 아홉입니다. 나이도 나이지만 아브라함이 이들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지가 이십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24년이 지났습니다. 24년 전부터 그 말씀을 하셨는데 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도 속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라도 하나님 앞에 삐딱하게 나가지 않겠습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들이 한 행동은 좀 괘씸하지 않습니까? 웃기도 하였고 삐딱하게 말하여 화가 나실 수도 있는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전혀 그러신 것 같지 않습니다. 도리어 웃으라고 자꾸 놀리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당신 자신을 웃기는 하나님, 야속한 하나님, 너무하신 하나님, 지나친 하나님이 되려고 작정하신 것처럼 스스로 연출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는 성경 여러 곳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히브리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한 지가 430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 히브리 노예들에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셔서 내가 여러분들을 해방시켜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었습니까? 믿지 않았습니다.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모세가 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집트 사람들이 보내줄 리도 없고, 히브리 사람들은 이미 노예근성이 가득한 사람들이라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도대체 말도 안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정말로 그러했습니다. 

이때 모세가 어쩔 수 없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이집트 왕 바로 앞에 나갔을 때에 바로가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2:2).. 보내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출5:5)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출5:8-9) 라고 지시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지금까지 한 일을 그대로 하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바로가 어떤 명령을 했습니까? 이들은 벽돌을 만드는 일을 많이 했는데 쓸 짚을 주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쓸 짚을 주지 말고 스스로 어디 가서 짚을 주워서 벽돌을 만들게 하는데, 벽돌 숫자도 감해주지 말고 똑같이 만들게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모세도 큰일 났습니다. 자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고통스럽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만히 놔두고, 모세도 나타나지 않고, 하나님도 나서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라는 영화를 자주 생각하는데 하나님, 제발 도와주시지 않으시려면 가만히 계시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모세야, 네가 아무리 수고하고 힘써보아야 이집트 사람들은 히브리 노예들을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집트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어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에게는 그리고 모세에게는 너무도 원망스러운 하나님이었습니다. 

저도 가끔씩 하나님께 그런 투정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하나님의 종으로 세워주셨으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 왜 이렇게 하십니까? 제가 개척을 하려고 했습니까? 제가 목사가 되려고 하였습니까? 왜 목사가 되게 해놓고 이렇게 하십니까? 차라리 가만히 두셨으면 지금 찬양대에서 찬양도 하고 지금 하는 것보다 더 충성스럽게 봉사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린 적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너무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외부 민족의 침략을 받아서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 하박국에게 있어서 더 고통스러운 것은 이스라엘은 물론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맞아야 했지만 이스라엘을 때리고 힘들게 한 민족이 이스라엘보다 훨씬 악한 민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당하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픈데 거기가 더 악한 백성으로 이스라엘을 힘들게 징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 대들었습니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대든 것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 성경 1301면 하박국 1장 2절부터 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은 한 번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어떻게 대드는지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이리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학1:2-4).. 그 유명한 ‘어느 때까지입니까?’ 라는 말이 여기에 나옵니다. “하나님께 이럴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겁탈과 강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와 관련되어 최근에 ‘도가니’라는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같은 영화는 보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아이들이 전부 우리 딸입니다. 내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 영화를 볼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시겠습니까? 물론 그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겠지만 저는 너무너무 가슴이 아파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하박국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 악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다 약탈당하고 부녀자들은 아주 못된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최근에도 미군들에 의해서 고등학생들이 당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정말로 가슴 아픕니다. 신문 기사도 보기 힘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이 어떤 욕을 했다면 그 사람이 이런 욕을 했다고 인용하는 것도 하지 말아야합니다. 소이라는 말이 있는데, 귀를 씻어야합니다. 

하박국 1장 13절부터 보면 하박국이 너무 속상해서 하나님 앞에 대드는 것이 있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학1:13-14).. 여기서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을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이신데 어떻게 그렇게 당하도록 내버려주시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학1:15-16)..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들이 낚시로 이스라엘 민족을 모두 낚아 소득을 풍성하게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재벌은 그 다음 재벌을, 그 다음 재벌은 약한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 그것 때문에 있는 사람들은 더 있고, 돈 버는 사람들은 더 벌고, 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없어지고 중산층도 없어지고 하층계층만 점점 더 많아집니다. 미국의 분노 영국의 분노를 보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곧 옵니다. 생각해야할 바가 많습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너무 하다는 것입니다. 

17절에는 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너무 하다고 하나님께 대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당신이 이렇게 다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좀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꼭 그렇지 않고, 충성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살아가고 기업을 했는데 왜 기업이 잘되지 않고 그 가정과 자식이 덜 되었는가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박국처럼 나서서 대들지 못할지라도 왜 우리 마음속에 서러움을 가지게 하시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정말로 힘들지, 너무 속상하지? 내가 너무 야속하지? 여러분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원망하는 심정으로, 나에게 대드는 심정으로 분명하게 보고 알 것이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너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마치 째려보듯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 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난 후, 그렇게 잔뜩 화가 나 있고 원망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끝내 출애굽을 보여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장정만 60만 명, 한 200-300만 명 되는 사람들이 홍해를 뚫고 나갔습니다. 깜짝 놀랄 일입니다. 드디어 이루고야 마셨습니다. 이집트를 빠져나온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우리가 멀리 가니 먹을 것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금도 필요하고, 은도 필요하니 내 놓으라고 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집트 사람들이 다 가지고 가라고 말하면서 나누어 주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놓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바로 ‘나는 한다.’라는 것을 알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펄펄 뛰는 하박국 앞에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이번에는 반대로 하셨습니다. “너 그렇게 펄펄 뛰었느냐? 힘들었다고 말하느냐? 속상하다고 말하느냐? 아직 멀었다. 앞으로 맞을 일이 한참 더 남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박국으로 하여금 그렇게 펄펄 뛰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웃고 싶으면 실컷 웃으라, 울고 싶으면 울어라, 화내고 싶으면 화내라, 대들고 싶으면 대들도 펄펄 뛰고 싶으면 얼마든지 뛰어도 좋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간에 펄펄 뛰는 그 심정으로 속상한 그 심정으로 화난 그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고 알아라. 나는 반드시 할 일을 하고 만다.” 바로 이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도 예외는 아닙니다. ‘나는 할 일은 한다.’ 라고 여러분 앞에 다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히브리 노예들처럼 바다를 뚫고 은금패물을 많이 얻어서 나오게 하시기도 하고, 더 맞게도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이 말씀을 오늘 하십니다. 

다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실 일을 반드시 하십니다. 우리가 믿든 안 믿든 간에, 누가 방해하고 거부하든 간에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반드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렇게 웃었던 사라가 한 말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 6절에 아들을 낳고 난 후 사라가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21:6)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우스웠지만 하나님 말씀이 정말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습게 보였던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하셨다, 정말로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내 눈에 우습게 보였지만 그렇게 보일 하나님이 아니라는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7절을 보십시오.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사라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게 될 것이라고 누군가 아브라함에게 말할 것을 꿈엔들 생각했겠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함부로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일,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셨을 때, 나도 웃었고 내 남편도 웃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다 이루고야 마셨다는 고백이 바로 6절 그리고 7절의 고백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인생 살다보면 하나님 앞에 허탈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울 수도 있습니다. 화낼 수도 있고 대들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삐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하든지 다 좋습니다. 그러나 꼭 알 것이 있습니다. 삐쳐도 끝까지 삐치지 마말고 살짝 삐치고 돌아와야 합니다. 무엇을 해도 괜찮지만 여러분이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기독교의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를 알아야합니다. 

이사야 40장에서는 영원한 하나님이신 여호와에 대해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29-31)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기억하기 전에 이 말씀 바로 앞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까지 같이 기억하여야합니다.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지금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 앞에 많이 터지고 많이 깨졌습니다. 이방민족들에게 많이 당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자식이 아니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 바로 전에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사40:2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범죄했기 때문에 나한테 맞고 벌을 받았는데, 어떻게 그것으로 내가 너를 버렸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이 아니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런 이스라엘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나는 절대로 여러분을 버리지 않았다.”입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43장은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더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1절부터 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는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43:1-7)..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버려졌다, 우리는 이제 가망이 없다, 우리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네가 그렇게 된 것은 너의 죄로 인하여 잠시 나한테 벌을 받고 있는 것이지, 내가 너희들을 절대로 버릴 리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인줄 아십니까? 조금 전에 찬양대가 찬양한 엘리야의 하나님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여러 시간동안 울부짖어도 꼼짝하지 않았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하자 그렇게 응답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야단치시기도 합니다. 잘못하면 맞아야합니다. 잘못 해놓고도 야단맞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벌인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미울 때는 아는 척도 하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무섭게 때리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식을 끝까지 지키시고 챙기십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이제 한 군데 더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 때 어떤 고백을 할 수 있는지 보십시오. 좋을 때는 물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너무 힘듭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 하박국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 때 한 그 고백을 우리 고백으로 생각하고 함께 보겠습니다. 

하박국 3장 17절부터 19절 말씀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바로 이것입니다. 다 얻고 난 후, 다 좋아지고 난 후 좋다는 말은 누가 하지 못합니까? 참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나중은 물론 지금 미리 당겨서 즐거워하고 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을 때는 물론이고, 힘들 때에도 우리 하나님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고, 그 행복을 누리고 즐거움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이런 참된 신앙인이 되기를 이 시간에 여러분들에게 소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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