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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요 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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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2:13-22)

지금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묵상하는 사순절이라는 절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사순절이란 40이라는 숫자와 연관이 있습니다.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사순절 기간을 정한 이후 교회들은 부활절을 앞두고 고난주간을 포함한 40일간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과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는 절기로 지켜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나의 고난과 죽음으로 삼아 나의 죄와 욕심과 허영과 사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을 본 받아 나를 죽이는 삶을 사는 기간입니다.  주일은 본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의 날, 축제의 날이므로 부활절 앞에 오는 여섯 번의 주일은 작은 부활절로 여겨 사순절에 포함하지 않고 40일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삶을 힘쓰는 이 은혜로운 계절에 성도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간절히 깨닫고 감사하며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공생애 사역 중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셨던 일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기로 합니다. 지난 주 화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그룹 식구들과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솔로몬이 처음 지었던 성전은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때 무너졌고 70년 포로 이후 돌아온 백성들이 스룹바벨 총독의 지휘 아래 무너진 성전을 재건했으니 이것이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그리고 로마 통치 시대에 헤롯 대제가 유대인의 환심을 얻기 위해 성전 대지를 확장하고 이전보다 크고 화려하게 증축했으니 이 성전을 가리켜 헤롯 성전이라 부릅니다. 오늘은 복음서에 나오는 성전을 중심으로 성전과 예수 그리스도, 성전과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생애 가장 중요한 사건이 성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방문하신 기록은 사복음서 여러 곳에 산발적으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생애 첫 방문은 부모님의 품에 안긴 갖난 아기였을 때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보면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아기를 낳은 후 산혈이 깨끗해지는 기간이 지난 후 성전에 올라가 정결케 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남자 아이를 낳으면 33일, 여자 아이를 낳으면 66일을 기다렸다가 번제를 위해 일년 된 어린 양을 드렸고, 속죄제를 위해 비둘기 새끼를 제물로 드렸습니다(레12장).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되었을 때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눅2:22-24). 이것이 예수님의 성전 첫 방문입니다. 그리고 열 두 살이 되던 해 소년 예수는 유월절 제사에 참여하기 위해 부모를 따라 성전에 올라갔습니다(눅2:42). 

예수님도 일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매년 절기를 따라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성전을 찾아가 제사하며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모든 유대인 특히 유대인 남자의 삶이지만 예수님의 생애와는 특별한 연관이 있습니다. 고향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지역에서 주로 복음을 전하셨던 주님은 매년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마다 성전에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 말씀을 가르치셨고 때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의 성전 청결사건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던 해 유월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마태와 마가, 누가복음서에도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이 기록되었지만 그 시기가 요한복음과는 다릅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공생애 마지막 시기에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 성전의 장사치들을 내쫓으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공생애 초반과 마지막에 두 번 일어났던 일로 보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지만 요한은 성전의 장사꾼들을 내쫓으신 예수님과 성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솔로몬의 첫 성전이 완공된 후 봉헌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라’ 하셨습니다(왕상9:3).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과 만남의 자리입니다.  이 집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찾아와 예배하며 기도하라고 지정해주신 구별된 장소였고 거룩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집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인되시고 거룩하게 구별되어져야 할 성전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제사는 형식에 불과했고 제사를 빌미로 사람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자기 이름을 알리는 종교 영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예수께서 그 성전을 방문하셨을 때 성전 마당은 제물로 드릴 짐승들을 사고파는 장사하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신 주님은 짐승들을 성전에서 내어쫓으셨고 돈 바꾸는 사람들과 장사꾼들을 무섭게 꾸짖고 내어 쫓으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요2:16) 꾸짖는 예수의 행동을 본 유대인들이 당신이 무슨 권리로 이런 일을 하느냐? 당신이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 하는데 만일 하늘로부터 왔다면) 우리에게 표적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이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에 지었는데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하였습니다.  물론 거기 함게 있던 제자들도 주님의 대답을 말씀 그대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오늘 읽은 말씀처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는 해석을 붙입니다.  그 일이 일어난 당시에는 아무도 예수님이 하신 성전 청결이나 성전을 헐고 다시 일으키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하였는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을 기억하고 믿었더라는 말입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은 곧 성전이셨고 성전은 예수님의 몸이며 성부 하나님의 거룩한 집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이라는 건물과 장소에 관심이 있고 거기서 이루어지는 제사의식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성전 제사도 형식에 치우치고 거기서 얻는 이득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관심이 없었고 구별된 성도의 본분을 아주 망각해버렸습니다.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욕심을 만족시켜 주고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종교의식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의 요구와 구미에 맞춰주는 제사의식으로 자리를 지켰고 그런 식으로 명예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로마 제국이 피식민지 국가의 종교를 인정하는 정책으로 자유를 보장했을 때 이스라엘도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교행위와 자치활동에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전의 제사장들은 로마 황제가 파견한 총독이나 분봉왕들과 정치적으로 적당한 긴장과 타협의 관계를 유지하며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간섭 받지 않는 치외법권의 특권을 누렸습니다.  

헤롯 대제가 유대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 화려하게 증축한 성전은 이렇게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의 작은 왕국이었습니다.  성전 마당에서 제물을 사고 파는 장사꾼들에게 이득의 얼마를 상납 받았고, 성전에 들어올 때 내는 성전세를 일반 화폐와 바꿔주는 환전상들에게 얼마의 수수료를 받아챙기는 식으로 돈벌이를 했습니다.  웃돈을 더 얹어주는 상인들이나 뇌물을 주는 장사꾼들에게 성전 마당에서 장사할 수 있는 특권을 팔아넘기며 성전 두목들과 상인들은 성전을 시장바닥으로 만들었다. 성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성전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으니 하나님의 거룩한 집은 주님 말씀하신 것처럼 도적들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타락한 성전제사와 종교 지도자들의 범죄를 보신 주님은 성전의 장사치들을 엄하게 꾸짖고 내쫓으심으로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전에서 수종드는 제사장들에게 배척을 당하시고 죄없이 고소당하여 억지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성전 모독죄와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신성모독죄로 고소당하여 사형 선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로마 사람들에게 넘겨 이방인들의 가장 잔인한 십자가 형으로 죽임을 당하게 했습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종들이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자기들의 자리를 지키려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방문하시던 길에 주님은 멀리서 그 성을 바라보시며 우셨습니다.  장차 망하게 될 그 성과 무너져 돌 위에 돌 하나 겹치지 못할 정도로 황폐하게 될 그 성전을 보고 우셨습니다.그리고 그 성에 들어가실 때 어린 나귀를 타고 왕의 행차를 하셨으며 예루살렘 사람들의 극진한 환영을 받으며 그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며 생애 마지막 유월절을 준비하시던 주님은 그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 날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셨고 거기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탄생하신 후 부모님의 품에 안겨 성전에 들어가셨던 주님은 생애 마지막 순간에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다가 마침내 그 사명을 모두 마치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가 다 이루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 외치고 숨을 거두시는 순간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희생 제물로 드려 목숨이 다하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지며 성전의 희생제사가 완전히 이루어졌음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성전에서 만나주신 것처럼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만나주시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전에는 피흘리는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갔지만 이제는 각자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전에는 피흘리는 제물과 제사장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가 되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며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십니다.성전이신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약의 제사에 관한 모든 법을 단번에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기 육체를 찢으신 예수 그리스도, 성전이신 자기 몸을 깨뜨려 갈라진 휘장 사이로 곧장 하나님께로 향한 길을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힘입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가시며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처럼 임마누엘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려고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주셨고 우리는 그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배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곧 성전이며,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은 서로 연합하여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되기 위해 지어져 갑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삶을 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성령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것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니라’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한 말씀처럼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다(고전6:19).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집이 곧 성전이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그의 피로 값주고 사신 그의 백성입니다.  우리 몸의 주인이시며 교회의 주인이신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성전의 사명을 다하라 하십니다.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전인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하지 맙시다.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심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합시다.  

각각 성도는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주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성전이며,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며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자주 말씀을 드립니다만,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기 위해 예배당 건물이 필요하여 큰 집을 세우고 거기서 예배와 교제와 섬김이라는 일을 합니다.  건물이 없어도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존재하지만 성도가 없는 교회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가 이 원리를 가볍게 여기고 경쟁하듯 예배당 건물을 크고 높이 짓는데 너무 많은 힘을 들이고 있습니다.  예배당 건물만 화려하게 지으려 하지 말고 성도 각 개인들과 교회가 성전의 기능을 올바르게 수행하도록 합시다.  예배당에 모이는 사람들이 건물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영국이나 유럽의 예배당 건물들을 봅시다.  그 크고 화려한 예배당을 지을 때 지금처럼 관광명소나 교인들이 떠나고 텅빈 문화재 취급이나 받을 줄 알았겠습니까?사람들은 다 떠나버렸습니다. 주일 아침 선데이 베스트를 입고 예배드리러 교회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영국의 거리가 이제는 축구장 가는 사람들로 복잡하고 주일 아침마다 동네 축구장은 울긋불긋 각색 유니폼을 입고 나온 어린아이들과 가족들로 가득합니다.  

예배하는 장소로서 예배당 건물도 중요하지만 거기 모이는 우리 개인 성도들의 삶이 더 중요합니다.  내 마음과 몸에 그리고 우리의 생활 속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고 사는 우리 교인들의 변화된 삶과 선한 영향력은 성결한 그리스도인의 참된 표식입니다.일반세상에서 말하는 도덕주의 윤리주의 사상을 전하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새롭게 변화된 생활을 힘쓰자는 말입니다.  

내가 노력하여 흠없이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은 일반 세상도 추구하는 보편적인 윤리 도덕이며 선한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전된 생활을 하는 것은 내가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순종이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내가 스스로 노력하여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나같은 죄인을 가엾게 여기고 나를 불러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아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순종하느냐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거주하시는 집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 성령이십닝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이끄심을 순종하는 삶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려면 세상의 철학이나 가치관과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들과 싸워가며 거룩한 삶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거룩한 백성의 생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세상과 구별되어 살게 하시는 은혜를 깨달아 성전의 사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주시는 자리이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자리입니다.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는 사순절을 지나면서 성도 각 개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본 받아 나를 낮추고 나의 죄된 생각과 행동과 이기적인 자아를 죽이는 훈련을 합시다.  성전의 주인이신 주님과 연합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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