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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례 요한의 죽음 -헤롯의 오명 (마 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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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1-12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자기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본문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낸 세 유형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한의 죽음의 사건에는 헤롯과 헤로디아와 살로메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한결같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1. 헤롯의 유형(6,7절 쾌락) 

헤롯은 딸의 춤을 즐기고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무엇이든지 다 바치려고 하는 세속적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쾌락보다 주안에서 얻게 되는 기쁨을 추구해야 합니다. 

2. 헤로디아의 유형(3,4절 증오) 

헤로디아는 자기의 불법을 지적한 요한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자기의 잘못에 대한 충고를 무시하고 분노하며 증오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충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고치려고 해야 합니다. 

3. 살로메의 유형(8절 거절) 

살로메는 헤로디아의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요한의 목을 요청했습니다. 
분별력도 없이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악을 행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는 분별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잘못된 요구를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라도 자랑스럽고 깨끗한 삶을 살기 원하지만, 인생을 결산할 때에 부끄러움을 남기게 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왕이라는 좋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 이름이 추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가 바로 헤롯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하게 되는 자랑스럽지 못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의로운 사람 요한을 죽이는 커다란 과오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역사가 증언할 때에 추한 인생을 산 것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헤롯은 안티파스인데 분봉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안에 4분지 1만을 다스릴 수 있는 왕이었습니다. 당시 분봉 왕은 로마 황제의 승인을 얻고 임명을 받음으로 왕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헤롯이 죽으면서 아들들에게 지역을 나누어 주게 되었습니다. 아켈라우스라는 아들에게는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을 주었고, 빌립에게는 이두레아드 지역(서쪽 레바논)을, 그리고 루사니아에게는 아빌레네 지역(북쪽 레바논)을 주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헤롯 안티파스에게는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가 주전 4년에서 주후 39년까지 그 지역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아라비아 아레다 왕의 딸을 아내로 취하였었는데, 로마로 갔다가 이복동생 빌립의 집에 유하게 되었는데,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에게 매혹되어 동생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꼬여 내어 본국으로 데리고 와서 결혼해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헤롯의 본처는 친정인 아라비아로 가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아라비아의 아레다 왕은 딸에 대한 복수로 군대를 보내어 헤롯을 공격함으로 크게 패전하게 되었으나, 로마가 원정군을 보내줌으로 겨우 구출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세례 요한은 헤롯의 잘못된 것을 책망하였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헤로디아는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헤롯도 역시 세례 요한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지만, 모든 사람들이 의로운 사람으로 알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헤롯의 생일이 되어 많은 사람이 모여 즐깁니다. 잔치가 배설되고, 흥겨운 춤이 있게 되었는데, 그 앞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춥니다. 여기에 매료된 헤롯 안티파스는 약속을 합니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주겠다. 그때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는 불과 17세 정도의 어린 소녀였기에 어머니에게 가서 의논합니다. 그때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라고 시켰습니다. 

약속했던 헤롯은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자기 권위를 위하여 약속을 지킨다는 뜻에서 세례 요한을 죽이라고 말합니다. 헤롯은 의인을 죽이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큰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런 부끄러운 일, 잘못된 일을 하게 되었을까요? 

첫째, 해서는 안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선한 일을 할 데도 많고, 내가 필요로 하는 데도 많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니 아무리 매력 있는 여자라 하더라도, 동생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취한다는 것은 안될 일이었습니다. 

왕으로서 할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국태민안을 위하여, 경제 성장을 위하여 할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겨우 한다는 것이 동생 집에서 제수를 꼬여서 아내로 삼는 이상한 일을 하였습니다. 이건 왕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할 일이라고 생각됩니까? 자랑스러운 이름을 남기려면 내게 주어진 것을 선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선용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을 삽니다. 그 시간을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은 자랑스럽게 살았다고 말합니다. 소위 성공자라고 말합니다. 

리차드 호프만은 말하길, 현대 문명에서 사람을 죽이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하나는 달력(Calender)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이가 30대 전에는 세월이 흐르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50대가 넘으면 아니 벌써 한 달이 지났구먼. 달력을 넘길 때마다 기분이 좋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전화(Telephone)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활필수품입니다. 학생들도 핸드폰이라는 것이 있어서 선생님께 혼나거나 체벌을 당하면 전화하고 부모가 때리면 고소하는 게 전화입니다. 그 전화가 많아짐으로 없어진 것이 있습니다. 편지가 없어졌습니다. 정이 없어졌습니다. 연애편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 번째는 시계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라도 시계가 있습니다. 그 시계를 가만히 보세요. 시계 소리는 내 목을 자르는 소리와도 같은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니까 달력이 뜯어지고, 그것이 나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주어진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값있는 일을 하고 계십니까? 항상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해 놓은 일은 별로 없지는 않습니까? 주어진 시간을 선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어진 것을 바로 써야 합니다. 

삼손을 보세요. 그에게는 특별한 힘이 주어졌습니다. 나귀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쳐죽일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 힘으로 이렇다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여자들이나 쫓아다니면서 뒷골목에 깡패처럼 행동하다가 나중에는 비참하게 눈이 빠지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놀이개감으로 살다가 갔습니다. 힘이 있고, 권력이 주어져 사사가 되었으면 이렇다 할 일을 하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목동으로 일할 때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항복을 강요하면서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불안을 주고 모욕을 주었을 때 자기에게 주어진 물맷돌을 갖고 골리앗을 죽이고 백성들에게 승리와 평화를 주었습니다. 주어진 것을 선용하는 사람은 자랑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다윗도 왕이 되었을 때 왕이라는 권력을 남용하여 남의 아내를 빼앗고 그것이 들통이 나게 될 것 같아서 충신인 그 남편 우리아를 전쟁에 나가게 하고 최전방에 보내서 죽게 하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힘과 물질을 바로 사용하는 사람은 자랑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둘째,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귀는 참으로 귀한 지체입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듣는데 잘 들어야 합니다.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헤롯은 자기가 사랑한다는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말은 들을 수 있었는데, 정작 들어야 할 세례 요한의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옛말에 약은 입에 쓰지만 몸에 유익하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삶에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옛날부터 좋은 정치가들의 말로를 보면 충신의 충언을 잘 들었던 왕은 자랑스러운 왕이었지만, 간신배의 아부하는 말을 들었던 사람은 역사에서 악평을 듣는 사람으로 끝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례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회개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들으면 살고 듣지 아니하면 죽는다. 이 말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헤롯은 들어야 할 말 세례 요한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자신의 영혼이 죽고 세례 요한은 육신의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듣지 아니하면 죽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죄 간음죄를 범하였습니다만 나단의 책망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바로 당신이 그 사람(삼하 12:1-7)이라는 매우 기분 좋지 않은 말을 들었습니다. 다윗은 영혼이 살고 나단은 목숨이 살았습니다.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지도자들은 세 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하나는 민중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론입니다. 들어보아야 합니다. 다음은 역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아니야라고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주일을 범해 도 되는 건가? 네게 그렇게 많은 축복을 주었는데, 십일조를 하지 못해, 건강을 주었는데 그 몸으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헤롯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요? 왜 들어야 할 말을 못 들었나요? 

① 자기 권력에 도취되었기에 듣지 못했습니다. 권력을 갖고 남의 아내도 빼앗았고, 양심의 소리도, 세례 요한 의 말도 듣지 못한 것입니다. 

② 향락에 도취되었기에 듣지 못했습니다. 헤롯은 헤로디아를 취한 후에 그의 딸 살로메의 춤에 매료되어 듣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도취되면 보이는 것도 없고, 누구의 말도 양심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③ 믿음이 없었기에 듣지 못한 것입니다. 헤롯도 죽은 자의 부활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냉정하고 분명한 의식과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주의 음성을 듣는 중에 바른 길을 걸어가는 승리자의 삶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주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됩시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음성입니다. 이런 사람은 실수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셋째, 안 해도 될 말을 하다가 그리되었습니다. 

사람이 말하는 특별한 기능을 받은 것은 축복입니다. 말을 통하여 의사를 전달하기도 하고, 말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도 합니다. 말로 의사소통을 하게 됩니다. 

언어를 통하여 의사 전달을 바로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을 먼저 말하고 중요하지 아니한 것은 말하지 않거나 다음으로 미루어도 된다고 봅니다. 

둘째, 알아듣기 쉽게 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을 하면 혼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대화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명령조나 아니면 연설하는 것 같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넷째, 고정관념을 없애라 하였습니다. 

헤롯은 말을 잘못했습니다. 참으로 잘 하는 구나 너에게 내가 상을 주려고 한다 그 정도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지나치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지 주겠다"고 허황된 말을 했습니다.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한 것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줄 수 있는 게 왕이 아닙니다. 왕이면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한 약속이었을 것입니다. 

그 약속이 자기를 속박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목을 주세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아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적이라도 얼마나 고민하였겠습니까?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할 말이란 어떤 것이 있나요? 

① 부질없는 약속입니다. 

지키기가 어려운 약속 아니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이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것 세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한 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은 흘러간 세월입니다. 그리고 한 번 뱉은 말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화가 난다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이 아닌 것 같이 기분 좋다고 아무렇게나 약속하는 것이 아니 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아니하면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② 비난하는 말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이면 흔히 화제가 다른 사람의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없다고 비난하는 말을 하는 것은 잘 하는 것이 못됩니다. 차라리 당사자가 없을 때 칭찬하는 말은 좋습니다. 

창세기 9:20-27절을 보면 노아가 술을 마시고 실수를 하였는데, 술에 취하여 벌거벗은 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이것을 함이라는 둘째 아들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형과 동생에게 말 하였습니다. 노아가 술에 취한 것도 사실이요, 노아가 벌거벗은 것도 사실입니다. 

함이 그 사실을 보았습니다. 사실대로 본 대로 말한 것입니다. 함이 거짓말 한 것도 아니고 사실 그대로 본 대로 말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버지를 비난한 것으로 표현되고 저주를 받아 가나안의 종의 종이 되라는 말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비난보다는 칭찬하는 말을 자꾸 하게 되면 덕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에 대하여 주는 교훈적인 것이 있습니다. "친절한 말은 비용이 들지 않지만, 많은 것을 성취한다. 부주의한 말은 싸움에 불을 붙이는 것이요, 잔인한 말은 사람을 치고 죽이는 것이다. 지혜로운 말은 길을 평탄하게 닦아준다. 기쁨에 넘치는 말은 상처를 고쳐주고 축복이 될 것이다." 이런 교훈을 보면서 우리는 비난보다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③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이란 자동차 기어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어를 넣는 대로 자동차가 가는 것 같이 말하는 대로 되어집니다. 된다고 하면 되구요, 죽는다 하면 죽게 됩니다. 
특히 해서는 안될 말을 삼가야 합니다. 그러면 부끄럽지 아니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입니다. 


4. 두려워 할 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명을 남기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을 두려워 할 게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두려워할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 12:15)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안다고 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 즉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될까하여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음행 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 12:16)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가를 잊어버리면 망령된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보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헤롯은 사람의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적인 삶에 충실하여 수고하고 충성하신 분들이여! 

어렵고 알아주지 아니하고 힘들어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계십니다. 힘써 더욱 선을 행하는 믿음의 대장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랑스러운 삶, 역사에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 일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들을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사람의 말을 듣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소리,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할 말을 할 수 있고, 해서는 안될 말은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중에, 역사에 남고, 하나님 나라에 빛나는 이름을 소유한 복된 분들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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