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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년주일] 옥에 갇혔으나 형통한 사람 청년 요셉 (창 39: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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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 갇혔으나 형통한 사람 청년 요셉 (창 39:19-23)

사람들은 하는 일마다 형통(亨通)하기를 기대합니다. 형통(亨通)의 사전적 의미는 "온갖 일이 뜻대로 됨"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업이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계획하는 대로 일이 척척 진행되어서 크게 성공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또한 가정이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은 공부 잘하고 남편은 돈 잘 벌어오고 건강하게 살기를 소원합니다. 젊은 청년들은 사랑에 형통하기를 기대합니다. 능력있고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서 헤어지지 않고 사랑에 골인하기를 바랍니다. 이와같이 모든 일에 형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작한 사업이 불경기를 만나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빚만 늘어나는데 형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정이 불화하여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속썩이고 남편은 남편대로 술먹고 부부싸움이 끝일 날이 없는 가정을 형통한 가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실패하여 자신감을 잃은 청년을 보고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이 형통이지, 모든 일이 뜻대로 안되는 것을 형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형통의 상황과는 전혀 반대의 사람을 가리켜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청년 요셉입니다. 요셉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배다른 형제들의 질투와 시기 속에서 어렵게 자랐습니다. 결국 형들의 미움이 극에 달하여 자신을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자신을 끔찍히 사랑하시던 아버님은 이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며 자신의 옷을 찢고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고 몸부림 쳤습니다. 노예로 팔려온 것도 억울한데 주인집에서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어서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삶이 어떻게 형통한 삶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 39:23)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이 불통(不通)하여서 하는 일마다 꼬이고 얽혀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누명을 쓰고, 온갖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뒤로 넘어졌는데 코만 깨진 것이 아니라 눈, 입, 귀 할 것 없이 모두 깨지고 찢어진 형국입니다. 재수가 없어도 너무 재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리시는 건지 시험하시는 건지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요셉과 같은 상황이라면 이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실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청년 요셉은 동의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고 계시며 자신을 돌보아 주신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에 보니까 요셉이 탈출하려고 노력했다는 기사가 없습니다. 어려운 현실에서 탈출하려고 힘만 기울였다면 보디발의 집에서 집사의 위치에 있을 때 얼마든지 돈을 훔쳐서 이스라엘로 야반도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한번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요셉은 하나님이 뜻이 계셔서 자신을 인도하고 있음을 확실히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어떤 곳에서도 일하며 최선을 다하여 봉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스스로를 수양하고, 연마하며, 신앙을 키우는데 전력하였습니다. 그렇게 13년이란 세월을 보냈습니다.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관원장을 통하여 바로에게 불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한순간에 일약 애굽의 총리로 임명되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세우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창 41:39~41)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동안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하는 일마다 불통하여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하고 감옥에서 젊음을 다 보내는 처량한 신세의 요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으로 팔리지 않았다면 오늘의 영광은 없었을 것입니다. 보니발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총리가 되는 길로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형통케 하신 것이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성도님들의 삶은 어떠하십니까?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하십니까? 하는 일마다 형통하지 못합니까? 가정이 불화하고 어렵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시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님들의 어려움을 통하여 기적의 길로 이끌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어려운 사업을 통하여 하나님은 무엇인가 훈련하시기를 바라십니다. 믿음의 훈련, 기도의 훈련, 희생의 훈련을 시키기 원하십니다. 

청년 요셉은 항상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에게 팔려왔을 때도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신앙은 더욱 커졌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보디발은 이러한 요셉을 주목하여 본 후 자신의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요셉이 평소에 자신을 영적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하나님 앞에서 연단 받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보디발의 아내 사건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하나님께 득죄 할 수 없다"는 신앙으로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혈기가 가장 왕성할 사춘기 때 아름다운 주인의 아내가 유혹하는 것을 거절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요셉이 늘 자신과의 싸움에서 영적으로 무장되어있지 않았다면 결코 이길 수 없었던 시험이었습니다. 

정욕에 넘어가 미모에 유혹당하지 마세요. 젊어서 여호와 하나님, 창조자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젊음을 승화시켜 하나님의 뜻에 맞춰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훈련시키기 원하십니다. 독수리가 자신의 새끼를 모질게 훈련시켜서 훌륭하게 키우는 것처럼 하나님도 자기의 백성을 연단하여 강하게 하시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시련과 어려움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요셉을 보면서 그 어려운 시련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이기는 자에게 주는 약속이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첫째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 과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먹게 하리라" (계 2:7) 

둘째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 2:1) 

셋째는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시는 영광을 받게 됩니다. (계 2:1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넷째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계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다섯째 이기는 자는 생명책에 이름이 분명하게 기록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5) 

이 외에도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으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시련과 시험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충성하고, 최선을 다하여 신앙생활에 임해야 합니다. 느긋하게 신앙생활하면서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걸어가면서 1등 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요셉은 최선을 다하여 모든 시련을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시련을 주실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우리는 요셉을 통하여 깨닫게 됩니다. 요셉에게 주신 시련의 목적은 바로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을 만났을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 45:5) 

하나님이 자신의 종을 훈련하실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노아가 일백년 동안 멸시와 천대 속에서 방주를 지은 것도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연단 받은 것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광야를 유리하며 방황한 것도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거지처럼 살았던 것도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온갖 시련과 고통속에서 결국 십자가를 지신 것도 인류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들의 모든 고통과 시험과 연단과 고난 뒤에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항상 숨어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생명을 구원하는데 부름받은 하나님의 종들은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극복했다는 사실입니다. 불평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힘썼습니다. 

사랑하는 청년성도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고난과 어려움이 왔을 때 무슨 생각이 앞섭니까? 
이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이 무슨 역사를 이루시려는가 하는 믿음이 앞섭니까? 
아니면 무조건 불평과 원망부터 앞섭니까? 

요셉의 고난은 요셉 자신의 생명을 굶주림으로부터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고난은 자기가 사랑하던 가족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라를 살렸고, 주변 국가들을 살렸습니다. 요셉의 고난을 통과하는 믿음이 없었다면 칠년 동안의 흉년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고난은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우리들의 고난도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무엇 때문에 내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까? 무엇 때문에 내 가정이 화평하지 못합니까? 그 모든 어려움을 통하여 기도의 사람, 충성의 사람,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여러분은 깨닫고 계십니까? 

우리들의 삶은 유한합니다. 이세상의 안락한 삶에 푹 빠져서 영원한 생명을 잃을 것이 두려워 하나님이 여러분을 훈련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독수리처럼 둥지에 가시를 집어넣어 스스로 둥지를 박차고 하늘을 날도록 훈련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십니까? 

고난 뒤에는 반드시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형통해서 감옥간 요셉을 바라봅시다. 요셉을 감옥에 보내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과 슬픔이 위로 될 것입니다. 

인자하신 사랑의 하나님이 요셉의 고난을 통하여 요셉을 훈련시키시고 형통케 하셨던 것처럼, 우리 청년들에게 고난을 통하여 형통케 하시는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하여 생명을 구원하고, 이기고 또 이기는 역사가 바로 나 자신과 우리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충만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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