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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생활 (롬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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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생활 (롬 14:1-6)

(롬14:1-6)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1. 최근 지구촌 인구가 70억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 세계의 소는 14억 마리로, 숫자로는 사람의 20%지만 덩치가 훨씬 크기 때문에 총(總)무게로 따지면 사람을 능가할 것입니다. 돼지와 양도 각각 10억 마리나 됩니다. 닭은 무려 190억 마리에 이릅니다. 이렇게 엄청난 수의 동물들이 살아가는 건 물론 사람들이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 동물들을 도축할 때까지 키우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곡식과 물, 땅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이들 가축의 곡물 소비량은 사람의 소비량을 훌쩍 뛰어 넘은지 오랩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사람들이 1년 동안 먹는 쌀이 420만 톤 정도인 반면 사료로 쓰이는 곡물은 1,700만 톤이나 됩니다. 또 세계 경작지의 24%는 소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고기 1kg을 얻으려면 곡물이 12kg 이상 들어갑니다. 돼지고기는 6~7kg, 닭고기는 2~3kg로 좀 덜하지만 에너지 낭비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이들이 내보내는 분뇨의 양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또 소가 트림을 할 때 나오는 메탄은 지구온난화의 주역으로 지목받은 지 오랩니다. 

물론 이런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기를 먹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에 비해 식사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40% 수준이고 물의 소비량도 35%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먹는 고기의 양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네덜란드 마크 포스트 교수는 돼지나 소의 근육에서 줄기세포를 얻은 뒤 적절한 조건에서 배양해 고깃덩어리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며,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사람들이 고기 맛을 포기하지 않고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이처럼 세포를 배양하는 장치에서 얻은 고기를 ‘시험관 고기(in vitro meat)’라고 부르는데 2012년 올해 가을에 시험관 소고기를 다져 만든 햄버거를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험관 고기’를 만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비싼데 ‘시험관 소고기’로 햄버거 하나를 만들려면 33만 달러(약 3억 7,000만 원)가 든다고 합니다. 아무튼 포스트 교수는 ‘시험관 고기’가 친환경적이고 인도적이라 채식주의자들도 죄의식에서 벗어나 고기를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2. 오늘 본문 말씀에서 채소를 먹는 자, 곧 믿음이 연약하여 채소만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육식을 하는 자가 육식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고 채식하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란 성도로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먹어서는 안되는 것들은 무엇인지, 성일(聖日)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등 신앙생활에 있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당시 음식물에 대한 금기(禁忌) 사항이 흔히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 레위기 11:1-47에 언급된 ‘정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을 구분해서 부정한 생물의 식용을 금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짐승 가운데서 굽이 갈라진 쪽발이면서 새김질도 하는 짐승은, 모두 너희가 먹을 수 있다.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두 쪽으로 갈라졌더라도, 다음과 같은 것은 너희가 먹지 못한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는 부정한 것이다. 오소리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는 부정한 것이다. 토끼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는 부정한 것이다. 돼지는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진 쪽발이기는 하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는 부정한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짐승의 고기는 먹지 말고, 그것들의 주검도 만지지 말아라. 이것들은 너희에게는 부정한 것이다.”(레11:1-8) 

‘굽이 갈라진 것’은 상징적으로 성도가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며, ‘새김질하는 짐승’은 한번 먹은 음식을 다시 토해 내어 되씹는 짐승으로, 새김질을 하는 행위는 상징적으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함으로써 영적으로 소화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여하튼 이 두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한 짐승은 먹을 수 없었는데, 그만큼 성도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은 성결한 신앙생활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레11:9-12)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너희가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물에서 사는 모든 것 곧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이들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니 너희는 그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을 가증히 여기라 수중 생물에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가 혐오할 것이니라.

물 속에 사는 어류의 정(淨),부정(不淨)을 가르는 2대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2대 기준은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입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 조건이라도 갖추지 못한 것은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어 먹을 수 없었는데, 그 실례로는 뱀장어류, 조개 등의 갑각류를 들 수 있습니다. ‘지느러미’ 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비늘은 물의 흐름을 감지하며 때론 저항하는 작용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죄악의 세상 바다에서 성도는 한 마리의 물고기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물고기가 세상의 흐름에 그대로 따라가노라면 마치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물고기처럼 부정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이 속하여 그저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휩쓸려 다녀서는 안됩니다. 마땅히 부패한 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감지하고 그것에 저항하며 거슬러 헤엄쳐가야 합니다. 또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는 일반적으로 물 속 깊은 부분이 아닌 수면 가까운 곳에 살 뿐만 아니라, 깨끗하며 그 모습이 험상궂지 않습니다. 성도는 위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천국에 소망을 두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상징합니다. 


3. 본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 당시 초대 교회는 대부분 유대인들이 예수 믿고 교회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얼마 후부터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도 예수 믿고 교회 성도가 되었습니다. 유대인으로 예수 믿고 교회 성도가 된 사람들은 여전히 구약 성경에 준하는 정결법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로 예수 믿고 성도가 된 사람들은 그러한 구약의 정결법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정결법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교회 안에서 구약 전통에 따라 생활하는 유대인 성도들과 그렇지 아니하는 이방인 성도들 사이에 긴장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구약 정결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믿음이 강한 자들은 믿음이 연약하여 육식보다 채식에 의존하는 유대인 성도들을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업신여기거나 판단, 비판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방인 성도들을 두고 ‘모든 것을 먹을 만한’ 강한 믿음이 있다고 했겠습니까? 정결법의 성결 기준은 외적으로 그 법을 지키는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5:17, 로마서3:20-22을 보겠습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롬3:20-2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참조:히8:7-13)

그래서 사도행전20:32에서는 예수 믿는 성도를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자’로, 이들이 장차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교회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믿음으로 그들을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받으셨기 때문에 피차에 먹는 문제 등으로 업신여기거나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한 형제로 받아들여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다 먹든지 먹지 않든지 모두 주를 위해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롬14:13-23)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 형제를 근심하게 하지 아니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서로 화평하고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며 먹고 마시는 일로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 형제로 거리끼게 하지 아니하는 아름다운 성도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믿음으로 사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게속해서 사도 바울의 권면을 보겠습니다. 

“(고전8:8-13)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먹는다거나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잘 사는 것도, 더 못사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음식 문제 등으로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영원히 육식을 먹지 아니하여 형제를 실족하지 않으리라는 자세로 항상 교회에 덕을 세우며 형제들을 세워나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해야 합니다. 본문 3절에서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나 강한 자나 모두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받으신 자를 우리가 서로 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 뜻에 순종치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나 약한 자,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높은 자와 낮은 자, 남녀노소 빈비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서로 한 지체로 받아들여 하나되어 화목하시므로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4. A.D.41년경 가이사랴에 로마 주둔군 백부장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이내 고넬료는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욥바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각에 베드로 역시 기도하려고 하는 중 환상이 보이는데,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고 하자 또 두 번째 음성이 들리는데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행10:1-16) 베드로가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 담긴 것들을 보니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레위기 11:1-47에 있는 먹어서는 안되는 부정한 생물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유대인으로 살아오면서 한 번도 그러한 부정한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았던 베드로인지라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히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는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이방인 고넬료를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조만간 만나게 될 고넬료는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유대인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는, 그리고 항상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으로 유대인들 생각처럼 결코 부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생물의 정, 부정을 정하신 분이신 하나님께서 정하다고 하시면 그 어떠한 생물일지라도 정하다는 것입니다.(행10:9-16) 

다시 말해 모든 피조물의 정, 부정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그 그릇이 다시 하늘로 올려져 갔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속되고 부정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짐승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통적 사고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며, 그들이 속되고 부정하다고 판단한 것들이 깨끗하고 거룩된 것이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세상에 오심 이후부터 깨끗하고 부정한 것의 구별이 없고 이방인과 선민이라는 구별도 파기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믿음이 깨끗하고 부정한 것의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방인과 선민의 구별이 없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막7:15-16)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고 말씀하시므로 레위기 11장의 정결법이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완성되고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사람이 더러워지는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를 히브리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모든 정결법을 완성하셨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히7: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히9: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근본적으로 선한 것으로 여겨 그 어떠한 음식도 그 자체로는 부정하다 하지 않으며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딤전4: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다만 그 음식이 타락하고 부정한 목적으로 쓰였을 때 그 음식은 부정한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우상의 제물로 사용하게 되면 그 음식은 부정한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예루살렘 공회에서 이렇게 결의했습니다. 

(행 15: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행 21: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B.C. 1105년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배은망덕하게 우상숭배하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블레셋 사람과 암몬 사람의 손에 내어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과 암몬 족에 의해 18년 동안 악압을 받아 고통스럽게 살다 견디다 못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을 섬기어,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사사기10장) 

그러자 하나님께서 입다를 사사로 세워 암몬으로부터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입다는 큰 용사였지만 기생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이복형제들로부터 멸시받다 쫓겨나 비슷한 처지의 약자들(雜輩)과 함께 지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멸시 천대받았던 사회적 약자였던 입다를 이스라엘의 머리, 지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삿11:1-3) 

그렇게 해서 사사 입다가 암몬 족을 물리치고 압제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빼앗겼던 영토까지 모두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기생의 자식이자 잡배 출신 입다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왔던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항상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주도권을 잡고자 했던 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의 승리와 그가 이스라엘의 우두머리가 된 것을(삿11:11)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시기한 것입니다. 

결국 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를 향해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면서 전쟁을 선포합니다. 입다를 지도자로서 인정하지 않고 멸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삿12:1) 이에 입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사람과의 대결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내가 너희를 불렀으나 너희는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해 주지 않았다. 너희가 돕지 않는 것을 보고 내가 목숨을 걸고 건너가서 암몬 사람과 싸우자 여호와께서 나에게 승리를 주셨다. 그런데 어째서 너희가 오늘 와서 나와 싸우려고 하느냐?” 

암몬 사람들과 사력을 다해 싸울 때 도와 달라 했어도 모른 채 하다 이제 와서 무슨 시비냐는 것입니다. 에브라임 너희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승리를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입다는 자신의 승리를 두고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림으로써 에브라임 사람들의 질투와 협박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에브라임 사람들을 간단히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패퇴하여 도망하기 위해 요단강 나루터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나루터를 건너는 사람들이 여러 지파 사람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을 분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사람들을 골라내기 위해 사투리 발음을 이용했습니다. ‘시내’를 의미하는 ‘쉽볼렛’이라고 말하라고 했을 때, 그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고 하면 틀림없는 에브라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상도 사람들이 ‘쌀’을 ‘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살’로 한다든지, ‘의’를 ‘어’로 또는 ‘으이’로 발음한다든지 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때 ‘쉽볼렛’이라고 발음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고 발음해서 죽임을 당한 에브라임 사람은 모두 42,000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당시 인구조사에서 에브라임 지파의 장정 수가 45,000명이었습니다.(민 1:33) 

그 후부터 입다 당시까지 300여년이 흐르는 동안(삿11:26) 각 지파마다 인구가 많이 증가했을 것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에브라임의 장정 42,000명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에브라임 지파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큰 타격이었습니다. 기생 출신, 잡배 출신, 사회적으로 버림받았던 입다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입다의 승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결국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것으로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거의 전멸에 가까운 비참한 형국이 되었습니다. 비록 기생의 자식으로 태어났을지라도, 그래서 아무리 잡배들과 동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면 모두가 다 한 이스라엘 지체, 한 민족, 한 백성이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비극을 당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으로 한 몸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같이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입니다.”(고전12:25-26)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롬12:3-5) 서로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 한 몸을 온전히 이루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서로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 각자 주어진 믿음의 분량을 지키며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여 가장 아름다운 성도와 교회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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