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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 하나님의 선물 (엡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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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하나님의 선물 (엡 2:1-10)
   
저는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꿈만 같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주님을 믿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이요, 예수님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선물이었고, 예수님이 가져다주신 구원도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도무지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인데,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내가 잘 나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인생이 수학문제처럼 풀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생의 허무를 이길 수가 없어서 중이 되어 절간에 들어갔습니다. 중이 되고 보니 불교계가 썩어도 너무 썩었더랍니다. 무속인들이 기를 받으려고 은밀하게 절을 찾아왔고, 어떤 중은 애인을 둔 것처럼 수많은 무속인들을 거느린 자도 있었습니다. 그는 순수하고 깨끗한 불교대학을 세워보겠다고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사기꾼들에게 속아 감옥에 들어갑니다. 자기를 지키는 간수에게 목탁과 불경을 들여보내 달라했더니 간수가 성경책을 주더랍니다. 좋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감옥에 있는 동안 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여 기독교인들을 불자로 만들어 보리라.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불경에 그런 얘기가 있답니다. 어떤 과부가 외아들을 사랑으로 키우다 그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죽은 외아들을 안고 부처님을 만나 살려달라 애원했습니다. 그때 부처님이 “아래 마을로 내려가 죽음을 맛보지 않은 가문을 찾아 그 집의 물 한 사발을 죽은 아들에게 먹이면 곧 살아나게 된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어미는 마을로 내려가 죽음을 맛보지 않은 가문을 찾는데 어디 그런 집이 있어야지요. 실망으로 돌아온 어미에게 부처가 말합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모든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게 되어 있어요’ 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감옥의 스님이 마태복음부터 차례로 읽어 가는데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그렇게도 찾고 찾든 진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복음을 읽는데 한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얘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죽은 아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그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렇다. 석가는 죽었지만 예수는 살아나셨다. 석가에겐 무덤이 있지만 예수는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 계신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고 마침내 목사님이 되어 허무하게 죽어 가는 불교도들에게 진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극락의 불나비」「나는 예수를 이렇게 믿게 되었다」라는 책을 쓴 김성화 목사님의 얘기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천국 백성이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받도록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누리는 구원은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것은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무궁하신 자비와 은혜로 받은 구원입니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선물이란 말 그대로 그냥 좋아서 주는 것이 값을 말하지도 않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성경에 나타난 진리에 대한 신뢰요, 받아들이는 것이요, 전적인 동의요, 생명을 담보로 하는 확신입니다. 요한 칼빈은 “믿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인간의 선한 의지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사람의 노력에 의한 것도 아니요, 성령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셔서 감동주시고, 역사하셔서 결단하게 하신 믿음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주어지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므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고, 자랑할 것이 있다고 하면 우리 하나님의 은혜임을 자랑할 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 서신 중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가 어떠하였으며,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무엇 때문이며,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주님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인간들의 삶과 주님이 오신 다음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과거에 죽어 있었습니다. (1-3)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모든 인간은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와서 예배드릴 때마다 악령이라든지, 귀신, 사탄을 말하면 부정적인 믿음, 무서워서 믿어두려는 그런 부정적인 믿음이 싹트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주님을 말하고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여 긍정적인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죄는 자기가 짓고는 사탄의 유혹이니 시험이니 하면서 그 원인과 책임을 사탄에게 돌리는 때가 많습니다. 그것도 사실은 아주 한편으로 치우친 신앙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보면 여전히 불신자들은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불순종의 사람들, 불신자들은 악한 영, 사탄의 조종을 받고,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시는 중에 요한1서 3:8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 성령과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쫓겨난 악한 영, 사탄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절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합니다. 지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지만, 우리 역시 전에는 악한 영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반드시 하고 마는 죄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죄의 종으로 살다보니 종에게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있어 주인과 종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을 보면 종에는 완전 자유가 없습니다. 

자기에게 속한 것, 시간도, 물질도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다 주인의 것입니다. 세상에 같은 사람으로 이런 불공평한 관계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전에는 우리도 죄의 종이었습니다. 사탄의 조종을 받았습니다. 그가 하라면 해야 하고, 그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죄가 우리를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죄짓는 것밖에 다른 것을 도무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란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만 쌓는 일이었습니다.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고,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진노만 쌓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2. 하나님이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앉혀주셨습니다. (4-9)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4-6)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들이 사탄의 종이 되었다고 하여도 우리 하나님은 구원하여 주실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마침내 하나님이 살려주시고 인도하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진행하시고, 보증하시고, 완전히 승리하게 하십니다. 

이사야 46:3-4에는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안아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업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따뜻하신 가슴으로 우리를 품어 주셨고, 업어주셨고 구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보십니다. 

시편103:13-14에 하나님의 사랑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진흙같이 보시고, 우리의 체질을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어린 자식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불쌍히 보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긍휼이라고 하면 불쌍히 여기는 것, 동정과 자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시기 때문에 우리 민족을 구원하여 주실 것이요, 모든 헝클어진 문제들을 선하게 해결해주실 것으로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005년 3월 11일자 국민일보 겨자씨 란에 아름다운 희생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이탈리아 여기자 ‘줄리아나 스그레나’는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던 종군 기자였습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이 기자는 단신으로 이라크에 들어가서 취재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무장단체에 의해서 납치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이탈리아 정부는 비밀요원을 보내 이라크 무장단체와 협상을 벌였고, 마침내 이 여기자는 극적으로 구출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출 이후, 비밀요원과 여기자가 바그다드 공항으로 오는 도중에 일어났습니다. 미군들이 오인하여 여기자가 탄 차에 총격을 가하였습니다. 총격으로 비밀요원 한 명이 죽고, 두 명은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줄리아나 스그레나는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비밀요원이 그 여인을 감싸 안았기 때문입니다.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질 때, 비밀요원 ‘리콜라 칼리파리’는 조국의 언론을 자기 가슴에 얼싸안았습니다. 총알은 그의 등에 박혔습니다. 결국 그는 죽었고, 여기자는 살아남았습니다. 이 여기자는 귀국한 후 기자 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울먹였습니다. “나는 그의 거룩한 죽음을 내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그의 죽음은 나를 위한 죽음이구나. 이 분의 죽음이 나를 살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은혜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셨고, 그 십자가 위에서는 나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시고 대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살아나실 때에 우리의 죽은 몸도 함께 살려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가진 신앙이란 과연 이런 확신의 말씀이라는 것을 심어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님을 무덤에서 살리셨고,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혀주셨습니다. 이렇게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혀주시는 것은 우리 주님에게나 해당하는 줄 알았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그렇게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하는 사람은 오늘 이 세상에 종말이 온다고 하여도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늘에 앉게 되어 있습니다. 

8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두 번 창조하셨습니다. 먼저는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죄로 죽었는데, 예수님을 대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고 살려주시고 새롭게 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값을 치르지 않았는데, 값없이 구원을 선물하셨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니 값없이 오라고 하십니다. 돈 없이 오십시오. 

로마서3:24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값을 메길 수 없는 것은 너무 큰 가치여서 그냥 은혜로 주셨습니다. 아들을 내어주셨는데, 생명이란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값없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어떤 탈북자가 몇 년 전 북한에서 탈출해서 중국에서 숨어 지내다가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왔습니다. 그분이 한국에 와서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받으면서 쓴 글이 있습니다. “나는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주민등록증을 받는 순간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고생의 여정들이 눈앞을 지나가며 감회에 젖었습니다. 밤에 자는 사이에도 머리위에 주민등록증을 놓고 자다가 잠이 오지 않아 다시 불을 켜고 주민등록증에 자신의 얼굴이 선명하게 있는 것을 보고 잠을 잤다”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주민등록증이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그러나 목숨 걸고 두만강 건너 중국을 통과하고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온 사람은 주민등록증이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지옥가야 하는 우리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데 그 신분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그것을 깨달을 때에 우리가 이 감격을 느끼게 되고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3. 선한 일만 하십시오. (10)

10절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이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것이 작품이요, 오직 하나밖에 없는 명품입니다. 

이제 나라는 사람이 어떠한 존재가 되었으며,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면 무조건 선한 일만 하세요.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일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존재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는데, 선한 일에 쓰여져야 할 것입니다. 선하다는 말은 탁월하다, 우수하다, 좋다, 훌륭하다, 보다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을 선하다는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은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의 나팔이 되고 한 영혼을 섬기기 위하여 자기를 낮추고 희생하는 것이 가장 선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사32:8에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정하시는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존귀한 사람들은 존귀한 일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집에는 모든 작품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빛낼 수 있는 위대한 일들이 기록될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절망에 빠지는 것처럼 나쁜 것은 없습니다. 나는 어떤 존재냐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은 자녀가 거듭났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었는데,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된 것입니까? 

어떤 물건이든지 얼마의 돈을 주고 샀느냐에 따라 물건의 가치를 따지는 것입니다. 1만원을 주고 샀으면 1만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그 피를 흘리심으로 사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을 대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독생성자 예수님의 가치만큼 우리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 있다면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정말 값진 존재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도 죽었었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로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작품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귀한 일에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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