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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다리시는 하나님 (사 30: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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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30년 동안 교도소목회를 하는 목사님이 그곳의 한 죄수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아버지는 매주 토요일에 감옥에 갇혀 있는 아들에게 면회를 왔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를 보지 않겠다고 면회를 거절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토요일만 되면 어김없이 교도소를 찾아와서 면회를 신청했고 아들에게 거절당하고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헛되지 않았다. 이 아버지의 스물다섯 번째 면회에서 반년 만에 아들은 눈물로 아버지를 맞았다고 한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 있는 아들을 계속해서 찾아오는 아버지, 매번 거절을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아들을 만나러 오는 아버지의 사랑에 아들은 감동한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이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돌아올 상속재산을 미리 나누어 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안 된다고 했지만 하도 졸라서 할 수 없이 재산을 나누어 주었고 작은 아들은 즉시 재산을 처분해서 먼 나라로 떠났다. 아버지는 이 아들이 집을 떠난 때부터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아들이 모든 것을 탕진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기다리고 있다가 뛰어가서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환영했다. 그리고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고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벌였다.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 아버지의 모습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면회를 거절하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반년 동안 계속 찾아오는 아버지처럼, 집을 나간 아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처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과 은혜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겠다고 하신다. 

이 말씀의 배경은 주전 705년 경 당시 신흥강대국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위협할 때이다. 앗수르는 이미 주전 722년에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 유다까지도 정복하려고 했다. 이에 남 유다는 앗수르의 세력을 막아보려고 강대국 애굽과 비밀리에 군사동맹을 맺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경고를 듣지 않고 애굽과 동맹을 맺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시면서 그들의 그런 노력과 수고가 헛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들이 앗수르 군대의 침공을 받을 때에 애굽이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5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민족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7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 이유가 무엇인가?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그 계획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계획이기에 즉 그들이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31:1“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들이 어려울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죄악을 책망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그러나”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기다리고 계시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려고 일어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나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이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다. 어떤 선교사가 원주민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었는데 워낙 어휘가 부족해서 “믿음”이란 말을 어떻게 번역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원주민이 들어오더니 “목사님, 피곤해요”하면서 흔들의자에 기대어 앉더니 금방 잠이 들더란다. 이것을 보고 선교사는 크게 깨닫는 것이 있어서 ‘믿음’을 ‘의자에 기대어 앉는 것’이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믿음이란 이처럼 하나님께 기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불신앙이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이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어렵고 힘들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이고 사실은 믿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 때보다 고난이 있을 때에 그가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불신앙이고 죄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죄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고난과 문제 앞에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죄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고난과 역경 앞에서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죄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이 죄이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은 것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문제 앞에서 걱정하고 염려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두려워하고 불안해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이제 모든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떨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복과 은혜를 주시려고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받아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31: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에 안으시고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시고 반드시 지키시고 구원해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주시는가? 

첫째,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신다.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는 것이다. 고통과 환난의 때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데서 도움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그래서 다시는 고통과 환난 때문에 통곡하지 않게 해주실 것이다.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밖에는 나의 도움이 없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믿음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르짖는 기도를 요구하시고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신다. 예레미야 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성경에 “부르짖다”는 말이 31번 나오는데 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를 가리킨다. 하나님께 돌아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서 응답받아 승리하라. 

둘째, 말씀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신다.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 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징계하시기 위해 때로 그들에게 환난과 고생을 하게 하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숨기지 않으신다. 여기서 “스승”은 하나님 자신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만은 그들에게 숨기지 않으시고 거두어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잘못된 길로 치우쳐 갈 때에는 뒤에서 그리로 가지 말라고 하시고 바른 길로 가라고 말씀해 주실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그 말씀을 거두어 가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 말씀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세례 요한이 나타나기까지 450년간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때를 영적 암흑기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심판 중에 가장 큰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는 것이다. 재앙 중에 가장 큰 재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고 그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 것이다. 아모스 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다가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말씀의 은혜를 제일 먼저 주실 것이다. 말씀을 주시는 것이 가장 큰 은혜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은혜를 제일 먼저 구하라. 말씀의 은혜를 주시는 것을 감사하라. 내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바른 길로 가라고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길로 가라.  

셋째, 잘못된 삶을 고치게 될 것이다.
“22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전에는 나무나 돌로 또는 철로 우상을 만들고 그 위에 은이나 금을 입혀서 그것에 절하고 섬겼었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더러운 쓰레기처럼, 오물처럼 여기고 과감하게 던져버릴 것이다. 전에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었지만 이제는 그 우상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그렇게 살았던 삶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더러운 물건처럼 우상을 던지면서 나가라고 외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이처럼 과거의 잘못된 삶을 과감하게 고치고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은 옛 생활을 미워하고 거기서 돌아서고 새 삶을 산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지난날의 잘못된 삶을 고칠 수 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아무리 애써도 내 힘으로 고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었던 잘못된 삶을 고치고, 죄악 된 삶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신앙은 완전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의인이 되어서 하나님께 오는 것이 아니다. 더럽고 추한 모습 그대로, 부족하고 못난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해주시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집을 나갔던 아들이 모든 것을 다 탕진하고 몸과 마음과 영혼이 더럽게 되었지만, 감히 아버지께 돌아갈 수 없는 죄인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아버지는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그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를 씻기고 새 옷을 입히고 신을 신기고 반지를 끼워주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신다.

넷째, 삶이 풍성하게 해주신다.
“23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24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앞의 20절에서는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이제는 그들이 땅에 뿌린 씨에 비를 주셔서 땅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낼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가축들까지도 맛있는 먹이를 마음껏 먹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우리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셔서 풍서하게 해주실 것이다.

“25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이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러 오는 대적들을 물리쳐주시는 날이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끝나는 날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비를 풍성하게 주셔서 징계와 심판은 끝나고 골짜기마다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다시는 물이 없어서 농사를 짓지 못하고 씨를 뿌리고 수고해도 거두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올 때에, 믿음이 회복될 때에 비로소 삶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다섯째, 우리의 상처를 고쳐주실 것이다.
“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고쳐주실 것이다. 세상에서 살면서 받은 마음의 상처, 영혼의 상처를 하나님께서 싸매주실 것이다. 또한 우리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맞은 자리를 다시 고쳐주시고 다 낫게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만 우리의 모든 상처가 고침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만 우리의 모든 상처를 싸매시고 몸과 마음과 영혼의 아픈 것들을 다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회복될 것이다. 그래서 그 날에는 큰 기쁨이 넘칠 것이다. 전에는 맛볼 수 없었던 큰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고 세상은 줄 수도 없는 큰 기쁨을 주실 것이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마치 달빛이 햇빛처럼 밝게 빛나고 햇빛은 일곱 배로 빛나는 것 같을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기쁨, 아버지께 돌아온 기쁨, 나를 다시 맞아주시는 기쁨, 잃어버린 모든 것이 회복된 기쁨, 상처와 아픔이 고침 받은 기쁨이 넘칠 것이다. 

시편 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은혜와 위로의 은혜로 인한 기쁨은 세상에서 돈과 명예와 쾌락을 얻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도 크게 기뻐하신다. 누가복음 15장에 잃어버렸다가 찾은 것에 대한 세 가지 비유가 있는데 모두 마지막에 큰 잔치로 끝난다. 목자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다시 찾았을 때 크게 기뻐하며 큰 잔치를 벌인다. 여인이 잃어버린 드라크마 동전을 다시 찾았을 때 사람들을 불러서 큰 잔치를 벌인다. 집을 나갔던 아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에 아버지는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벌이고 기뻐한다. 이것은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복음 15:7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0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우리에게도 큰 기쁨을 주시고 하나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신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상처의 고침을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라.

누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는가?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시온’은 예루살렘 성이 있는 산이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거주한다’는 것은 그곳에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고통과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돌아가서 그곳에 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와서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에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장군과 타냐의 대화 장면이다. 장군은 타냐에게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기에 타냐는 “혁명의 와중이고 거리는 불이 나고 복잡해서 그저 도망치는 중에 ~~”라고 말을 얼버무린다. 그때 장군이 “헤어진 진짜 이유는 무엇이지?”하고 다그치자 타냐는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던 말을 실토한다. “사실은 아버지가 내 손을 놓아버렸어요.” 이때 장군은 타냐에게 말한다. “내가 진실을 가르쳐 주마. 코마로프는 네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너의 아버지는 바로 닥터 지바고야. 만일 그가 네 친아버지였다면 아무리 거리에 불이 나고 혁명의 와중이라도 절대 네 손을 놓지 않았을 거야.”

진짜 아버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딸의 손을 놓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도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신다. 문제는 우리가 내 아버지 하나님의 손을 놓아버리고 다른 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손을 내미시고 돌아와서 그 손을 잡으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부르셔도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 손을 다시 잡아주시고 우리를 사랑의 품에 안아주시고 복과 은혜를 주시려고 준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해주시고 다시는 통곡하지 않게 해주신다. 우리를 말씀으로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다. 우리의 잘못된 삶을 고치게 해주신다. 우리의 삶이 풍성하게 해주신다. 우리의 상처를 고쳐주시고 큰 기쁨이 넘치게 해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도 함께 크게 기뻐하신다. 죄악의 자리에서, 절망의 자리에서, 우상숭배의 자리에서, 교만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우리가 있어야 할 믿음의 자리,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돌아오라. 잘못된 길로 달려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고 즉시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준비해 놓으신 풍성한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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