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행 16:31-32)

첨부 1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행 16:31-32)


오늘은 광야교회 창립 16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그리고 이 날을 위해 교회는 가족 총 출석 주일로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는 여러 가족 단위 성도님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가족 중에는 신앙에 열심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또한 아직까지 믿음이 없거나 신앙에 열심이지 않는 가족도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주일을 통해 이 곳에 모인 모든 가족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온전히 섬기기 위한 다짐을 할 수 있는 거룩한 시간되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바로 빌립보 감옥을 지키는 간수장과 그 가족들입니다. 또한 본문 말씀은 그들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 특히 그 가족의 가장인 간수장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아주 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간수는 퇴역한 로마 군인들이 많이 했다고 합니다. 퇴역 이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국가에서 마련해 준 간수라는 직업에 몸담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빌립보 감옥에 죄수 두 명이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바울과 실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잡혀 있던 날 한밤중이 되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건물이 흔들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지진에 놀란 간수는 잠을 자다가 깨고 말았습니다. 잠에서 깬 간수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 하면 지진에 옥문이 모두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수는 직감적으로 죄수들이 모두 도망을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간수는 현 상황에서 자신이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살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 하면 자신이 잠을 잔 사이 지진이 났고 옥문이 열려 죄수들이 도망을 갔기에 그들을 도망가게 방조한 책임을 물어 그 또한 벌을 면할 수 없고, 결국 간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벌이 그의 가족들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살만이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간수가 자살을 하려고 할 때, 그 때 죄수들 중 두 명인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은 도망가지 않았다고 외칩니다. 이 말을 들은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있는 옥으로 다가가 그들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까요?”라고 말합니다. 간수는 방금 전까지 자살을 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울과 실라가 “우리가 도망가지 않고 여기에 있습니다.”라는 말에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고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아주 짧은 순간 한 사람의 극적인 심적 변화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진과 그로 인한 감옥문의 열림, 이런 상황은 간수를 당혹하게 했고 ‘자살’이란 섣부른 판단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외침’이 조그만 늦었어도 이 간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또는 무엇이 자살하기 직전에 있는 간수를 살렸을까요? 그리고 그에게 극적인 심적 변화를 주었을까요? 

그 이유의 첫 번째는 바울과 실라가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밤에 그 감옥에 바울과 실라가 없었다면 그 간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진은 자주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도 빌립보가 있는 그리스와 그 주변 지역은 지진이 자주 일어납니다. 만일 바울과 실라가 옥에 없고 그 밤에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다 열렸다면 그 간수는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밤에 지진이 일어난 것은 분명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실라를 위해 지진을 일으키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진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무관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밤에 빌립보 감옥에 하나님을 믿는 바울과 실라가 있었다는 사실이며 그 두 사람 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던 간수가 살게 된 것입니다. 지진과 옥문이 모두 열린 것으로 인해 당황한 간수는 자살이란 극한 판단을 하고 이제 죽으려고 할 때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외친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기에 그는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얼마 전 지방의 한 도시에서 일가족이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자살했다는 소식이 뉴스에 방영 되었습니다. 자살의 이유는 사기와 얼 킨 경제적인 문제였습니다. 40대 어머니와 초등학생인 딸과 4살 난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일가족 자살이란 말을 심심찮게 듣게 됩니다. 가족이 해체되고, 죽어가는 가족, 이러한 모습이 요즘 우리 현실의 한 단면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 도와 줄 이가 아무도 없다고 판단합니다. 오늘 본문의 간수처럼 말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바울과 실라처럼 그들에게 우리의 ‘외침’을 들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이 말은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 준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외침’은 여기에 모인 성도님들과 성도님들의 가족들 간에도 들려져야 합니다. 자칫 소홀히 여길 수 있는 가족 관계 속에서 우리는 더더욱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 주고 직접적인 도움과 용기로 함께해야 합니다. 동요에도 나옵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냥 내가, 또는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 더 나아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우리 주변에, 우리 가족 중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바울과 실라가 감옥 안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기 때문입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눈여겨 보았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특이한 죄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특이한 이유는 감옥에 갇히고 채찍에 맞아 아프면서도 밤새 기도하고 그들의 신을 찬양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은 감옥에 갇히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좌절하거나 불안과 공포에 떨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울과 실라의 모습은 간수에게 이상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느끼게 했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진이 나고 감옥 문이 열리는 것을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믿게 만들었습니다. 기도와 고난 가운데 찬양은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진은 기도 없이도, 찬양 없이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도와 찬양은 간수에게 자신에게 닥친 현 상황이 우연히 일어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일어났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면 살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바울과 실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찬양 하는 사람들이 되기 바랍니다. 보통 사람들은 고난과 어려움이 닥치면 먼저 불평하고 원망을 합니다. 또한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채찍을 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쁨으로 찬양했던 바울과 실라처럼 우리도 고난과 어려운 상황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가족을 보면 아버지가, 또는 어머니가 하던 일이 잘 안 되거나 사업이 실패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기면 먼저 가족들 간에 원망과 불평이 일어납니다. 부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고 받은 스트레스를 자녀들에게 풀고 자녀들은 부모를 원망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기도하며 찬양 하는 모습은 간수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부모나 자녀보다 기도하는 아버지,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일이 안 되고 사업이 잘 안 될 때 새벽마다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 좌절하고 낙망하는 자녀들에게 오히려 기쁨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는 부모의 모습에 자녀들은 감동을 받을 것이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커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모습을 통해 비춰진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가 익히 알고 있던 세상의 방법과 세상 사람의 삶의 태도와는 다르다는 인식 속에서 그들을 아버지께 인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바울과 실라가 도망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기도했고 하나님을 찬양했기에 밤중에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리자 하나님의 응답인 줄 알고 도망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도망가지 않은 이유는 애초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할 때 지진이 일어나 옥문을 열어달라는 기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감옥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복음을 전하다 핍박을 받고 감옥에 갇힌 것을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마땅히 받아야할 고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에게 감옥은 빨리 탈출해야 하는 지긋지긋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감옥과 채찍 맞음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자랑꺼리였습니다. 또한 바울과 실라가 비록 감옥에 갇혔지만 그들은 자신이 진짜 죄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갇힌 것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감옥에 갇혔지만 당당했습니다. 이런 바울과 실라의 자세는 그들이 채찍에 맞아 아파하면서도 감옥에서 기도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미하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또한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다 열려도 도망가지 않은 이유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에 대한 그들의 믿음의 자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진실함에서 나오는 당당함은 자살하려고 했던 간수를 살리고 또한 그의 모든 가족들을 살리는 역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실라 같이 그리스도인으로 진실하며 당당해야 합니다. 쏜살같이 달리고 있는 세상처럼 너무 빨리 움직이지 맙시다. 어렵다고 힘들다는 이유로 금방 금방 신앙과 마음이 변하도록 내버려 두지 맙시다. 때로는 고난과 우리가 당한 어려움을 자랑합시다. 하나님을 믿다가 당한 어려움은 모두 자랑꺼리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혹 이 곳에 모인 여러분 가운데 여러 가지 안 좋은 상황으로 막다른 곳에 다다른 분이 있다면 여러분이 처한 현실을 그저 빨리 모면하고 탈출해야 하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준비 단계임을 믿읍시다. 이러한 믿음의 자세를 통해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이 살 수 있고 내 이웃이 살 수 있고 내 주변이 살 수 있습니다. 

오늘 교회 창립 주일을 맞아 가족 총동원 주일로 지키는데 여기에 오신 모든 가족들, 부모님, 자녀들, 아내, 남편, 사위, 며느리, 장인, 장모, 시아버지, 시어머님, 친구, 이웃 모두 바울과 실라 같이 서로에게 하나님의 사람, 기도하며 찬양하며 진실하고 당당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줍시다. 아직도 내 옆에, 내 뒤에, 혹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바울과 실라와 같은 사람이 되어 주길 바랍니까? 아닙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아닌 내가 먼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나로 인하여, 우리로 인하여 행복하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족, 직장, 그리고 학교... 그 밖의 모임이 되길 거듭 부탁드립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