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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길을 따라 (막 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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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길을 따라 (막 2:13-17)


1. 우리는 사순절 기간 동안 주일예배에서 <예수님의 길을 따라> 란 주제의 시리즈 설교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자기를 비우신 예수님, 그분은 이 땅에 섬기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종이기에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였습니다. 그 분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워주신 사랑의 멍에를 메고 살면 우리 인생이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2.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가난하여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하였습니다. 일년동안 돈 벌어서 육지 나가서 고등학교를 다니기로 했습니다. 그 때, 제 친구를 한 명 전도했습니다. 신문배달하며 대구에서 공부할 꿈을 키우던 저는 신앙적으로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열심히 새벽기도하였고, 주일학교 교사로도 봉사하였습니다. 그 뜨거운 열정으로 제 친구에게 “종성아, 너도 교회 가자”라고 했습니다. 의외로 쉽게 그 친구가 저를 따라 교회에 왔습니다. 매주일 그 친구를 데리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1년 후, 저는 대구로 나와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친구는 울릉도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수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 대학교 다닐 때 대구에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영남신학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너무 반가웠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아니 이 친구가 저보다 먼저 신학교를 간 것입니다. 얼마나 반갑고 기뻤든지 모릅니다. 지금은 이 친구가 메스컴에도 나오는 유명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상담심리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 가서 심신통합의학을 배워와서, 암환자들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친구를 교회로 불렀던 그 때, 누가 이런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3. 지금부터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를 부르신 곳은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숫가의 가버나움이란 동네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신 유명한 장소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살았던 고향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나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그들을 가르치시고 가버나움 시내로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세리 레위는 즉시 일어나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나섰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고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동일한 사건에서 마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알패오의 아들 이름을 레위 마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편의상 마태라고 부르겠습니다. 

요아힘 예레미아스가 쓴 <예수시대의 예루살렘>이란 책을 보면, 당시 세리라는 직업은 투전꾼, 고리대금업자, 목동 등과 함께 천대받는 직업이었습니다. 세리는 세금을 부당하게 과세하고 그것의 일부를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는 착복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세리를 매국노라 불렀고, 아무도 세리를 친구로 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리가 내는 빈민구제기금은 받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더러운 돈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함께 언급하는 것을 보면, 세리는 죄인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완전히 왕따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을 열두 제자중 한 사람으로 부르셨다는 것은 대단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자격기준이 까다롭습니다. 대학생들이 취직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스펙을 쌓으려고 밤낮없이 공부합니다. 토익점수도 높여야 하고, 자원봉사 경력도 쌓아야 하고, 어학연수도 다녀와야 하고.... 그렇다고 학교 성적도 무시할 수도 없고요. 
키가 170cm가 넘어야 하고, 몸무게 70이상, 얼굴은 보통 수준은 되야 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고... 이런 식으로 사람을 찾는다면, 저는 크게 낙심할 것입니다. 제 같은 사람은 그 기준에 들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세리 마태와 같은 죄인들을 부르셨습니다.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 나선 후에, 자기 집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평소 세리 마태의 친구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들은 보통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유대인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손가락질 당하던 사람들, 세리와 죄인들이 마태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식사에 초대하였을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비난합니다. “어떻게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가?”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잘 생각해보십시다. 환자복 입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모두 영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감옥소 가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죄인들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인줄 모르며 사는 죄인이 있고, 자신이 죄인인 줄 알며 사는 죄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건강한 자, 의인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자신이 연약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주님 앞에 무릎꿇는 마음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주님은 만나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오는 분들을 고쳐주시고, 용서하여 주실 것입니다. 

4. 세관에 앉아있던 세리 마태를 부르신 장면을 바로 앞의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과 연결해놓은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마태는 영적으로 중풍병자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비록 돈은 많이 모았지만, 그는 영적으로 마비된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는 돈만 있으면 행복하리라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동족을 배반하면서도, 돈을 모았습니다. 
현대판 마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사람....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마태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14절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지나가시다가” “보시고”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가 근무하는 세관을 지나가시다가 마태를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우연이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태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마태, 사랑이 많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마태, 그러나 마태는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막연한 제 추측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충분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1절부터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친 사건이 나옵니다. 또, 거기에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습니다. 해가 질 때에 가버나움동네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병자를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아주셨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13절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큰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실 때, 마태가 저 한 구석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병자들, 귀신들린 사람들, 유대인들은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은 사람들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가버나움 세관에 근무하는 마태는 누구보다 정보에 빠른 사람입니다. 여러분, 세리는 소위 펜대 굴려 먹는 사람입니다. 계산 잘 하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세금을 부과해야 하기에, 세상 돌아가는 정보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마태는 가버나움에서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일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가지 놀라운 사건들을 보고 또는 들으면서 마태는 예수님이야말로 자기 같이 마음이 아픈 사람, 외로운 사람을 가까이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의 이 마음을 아셨습니다. 

이것이 어찌 우연입니까?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은혜를 에베소서 2:8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모두에게 이런 구원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5. 마태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 기쁨을 혼자 누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왜요? 
자기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마태의 친구들은 모두 세리와 죄인들이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마태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세리 마태, 그는 이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물질적 만족만을 위해 살던 마태,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소망의 문이 되었습니다. 세리 마태, 그는 저주의 골짜기, 죽음의 골짜기인 아골 골짜기에 소망의 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의 가진 대부분을 내려놓았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다시 갈릴리 호수로 돌아가 고기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실제 그들은 갈릴리에 내려가 다시 고기 잡았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직업, 세리를 포기하였습니다. 다시 세리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더 큰 희생을 한 것입니다. 그는 후에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 <마태복음>을 기록하여 영원히 인류역사에 거룩한 이름을 남겼습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네 의하면, 마태는 말년에 이디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칼에 맞아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만일 마태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는 동족들에게 영원히 미움을 받는 사람, 그렇게 이름없이 살다가 죽었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셨습니다. 마태의 미래를,,, 지금은 마태가 사람들에게 왕따 당하는 매국노 마태이지만, 앞으로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을 증거할 마태, 마태복음서를 기록할 마태를 보셨습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십니다. 
마태처럼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따라 나서는 사람에게 주님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소망의 문으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이 예배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 다른사람에게 소망의 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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