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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기오놋에 맞춘 기도 (합 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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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오놋에 맞춘 기도 (합 3:1-16)

서론 

하박국 3장 1절은 하박국 3장의 제목입니다. “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합 3:1). 사실 하박국 3장에 기도는 한 줄밖에 없고 나머지는 주로 찬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기오놋’에 관하여는 3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수금이라는 악기를 가르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왜 이런 견해가 나왔느냐면 하박국 3장 19절에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시기오놋이라는 악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견해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음악의 지시어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음악에서는 ‘느리게’, ‘빠르게’, ‘세게’, ‘약하게’ 등의 지시어가 있습니다. 

하박국서 3장에도 중간에 ‘셀라’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찬양을 잠깐 중지하고 묵상해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시기오놋은 보통의 감정으로 평범하게 불러서는 안 되고 감정을 강하게 넣어서 부르라는 뜻의 음악 지시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박국 3장은 보통 감정으로 불러서는 안 되는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석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세 번째 견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잘못을 교정하고 교훈하는 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하박국서도 성경이기 때문에 교훈과 책망하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시기오놋이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해도 별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시편 7편을 보면 ‘다윗의 식가욘’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데 ‘식가욘’은 ‘시기오놋’의 단수입니다. 

그런데 시편 7편을 봐도 악인의 허물을 교정하려고 하는 의도가 포함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시 7:11-12). 악인의 잘못을 교정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식가욘’과 ‘시기오놋’을 ‘잘못을 교정하고 교훈하는 시’라는 뜻으로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하박국서 3장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자기 잘못을 크게 교정하게 되는데 무엇이 하박국 선지자를 그렇게 변화시켰을까요?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합 3:2).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변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고 무관심하시다고 생각했더니 “아니다. 내가 성전에서 일하고 있다.” 이렇게 대답하셔서 놀랍니다. 그리고 악인들이 이기는데도 가만히 계시고 악인들을 앞세워 어떻게 의인을 치실 수 있느냐고 생각했더니 “아니다. 악인은 멸망하고 세계는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의인의 세계가 될 것이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면 변화합니다. 사람의 행동은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면이 변화되면 행동도 저절로 바뀝니다. 술 마시는 사람보고 마시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나서 더 많이 마십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에게 끊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끊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변합니다. 아무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라고 해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된 사람이 많습니다. 욥도 얼마나 불평이 많았습니까? 고통이 너무 심하니까 자기 생일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 42:5-6).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모두 자기가 옳은 줄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자기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사야 6장에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뵙고 나서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이 의인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뵙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숯을 이사야 선지자 입에 대니까 악이 제하여지고 죄가 사하여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며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핍박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도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깨닫는 사람은 변화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주께 대한 소문을 듣더니 세 가지의 잘못이 교정되었습니다. 

Ⅰ. 두려움의 대상에 변화가 왔다 

하박국 선지자는 세 가지가 두려웠습니다. 

첫째, 유다왕국을 지배하고 있는 악인들이 두려웠습니다. 악인들이 정권을 잡으면 얼마나 두렵습니까? 사람을 잡아가서 때리고 죽입니다. 므낫세가 왕이 되었을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서 죽였습니다. 하박국이 예언하고 있던 당시의 왕은 여호야김이었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감옥에 집어넣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증거하는 말씀을 칼로 잘라서 불에 던진 사람입니다. 여호야김 왕이 하박국 선지자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정권을 잡고 있는 악인들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둘째, 유다왕국의 멸망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전쟁이 나서 서울이 망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혹시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셋째, 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바벨론 군대가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심판과 위령이 자기로 말미암으며” (합 1:7).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만나고 주께 대한 소문을 듣더니 이런 것들보다 더 두려운 것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전에서 일하시고 과거에도 일하셨고 미래에도 일하시며 하나님의 능력은 두려운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박국서 2장 20절은 하나님께서 현재 일하신다는 확신입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합 2:20). 또 하박국서 2장 14절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일하신다는 확신입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합 2:14). 그리고 하박국서 3장 3-15절은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일하셨다는 확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 (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합 3:3-4). 

이것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다 드러내시면 사람은 그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출애굽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률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합 3:5-6). 

하나님께서 행하시면 온역이 나오고 불덩이가 나옵니다. 불덩이는 열병을 말합니다. 애굽이 아무리 높고 큰 산 같아도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니까 꼼짝 못하고 무너지고 엎드러졌다는 것입니다.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도다” (합 3:7). 

구산이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사사시대에 옷니엘이 물리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미디안은 사사시대에 사사 기드온의 300 용사가 물리친 미디안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결국 하박국 3장 7절은 사사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3장 8-10절은 홍해를 가르시고 요단 강을 가르신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바다와 강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즉시로 길을 내고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주의 날으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합 3:11). 해가 멈춘 것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아모리 족속과 전쟁할 때 적을 죽이는 시간을 주시기 위해 태양을 멈춘 사건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박국 3장 12-14절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7족을 멸하는 사건들을 가리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은 복잡하고 기억하기 어렵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산, 바다, 강, 어떤 열국도 하나님 앞에는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이 두려워할 것은 통치하는 악인들, 나라의 멸망, 바벨론이 아니라 하늘에 계시며 영광과 능력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 것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잠 14:27).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시 103:1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인자를 베푸시고 생명의 샘이 되어주시며 사망에서 벗어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면 됩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Ⅱ. 기도의 우선순위와 내용에 변화가 왔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내용이 하박국서에 여러 번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합 1:2-3). 

기도가 전부 ‘내, 나의, 나를, 나에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하박국 1장의 기도는 자기중심적인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박국 3장 2절을 보면 주의 일을 부흥케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 3:2). 자신의 일에서 주의 일로 초점이 변화된 것을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일을 부흥케 해달라는 기도 이후에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 달라고 기도를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도 우선순위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와 관련된 것은 나중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의 우선순위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일을 책임져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박국은 주님의 일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노하시면서도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지만 애굽처럼 노예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로운 시민처럼 70년을 살다가 B.C. 539년 고레스 칙령으로 해방되었습니다. 하박국의 기도는 그의 생전에 다 응답되지는 않았지만 사후에 응답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보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Ⅲ. 이스라엘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는 변화가 왔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이유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축복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사는 것으로만 생각한 것입니다. 축복의 개념이 현세의 축복에 국한되어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젖과 꿀을 풍성하게 주는 존재가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대상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근을 주시거나 고난을 주시면 젖과 꿀을 주는 존재로 섬김의 대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현세의 축복을 복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하지만 현세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진짜 복은 영원한 축복, 영생의 축복,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사는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평생 돈 벌고 이 땅에서 축복을 받아봤자 영원한 축복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두신 목적은 현세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시아를 보호하기 위해서임을 깨달았습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합 3:13). ‘기름 받은 자’가 히브리어로 메시아이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입니다. 

유다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 왕가를 보호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왕가의 왕손을 끊어버리려고 여러 사람들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유다 왕국이 망하고 나서도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보내 자식을 낳게 하시고 13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박국 선지자는 이스라엘 나라를 두신 목적이 메시아를 보내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박국 선지자는 역사와 인생을 보는 눈이 넓어졌습니다. 유다 왕국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왕국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지난번 부흥회 때 강사님이 오셔서 비유로 사용하셨는데 이스라엘이 무너져야 되는 이유는 거푸집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집인 교회, 하나님의 왕국이 지어졌는데 거푸집을 왜 갖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거푸집이 무너져야 실제 집이 나타나므로 이스라엘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훌륭한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나와서 정치가 잘되고 경제가 잘되고 우리나라가 번영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또 남북한이 자유통일이 되고 평화통일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어주셔야 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들어주셔야 합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대한민국이 잘되는 것 그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일하는 나라가 되면 하나님께서 누구라도 세우셔서 나라를 잘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에 맞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나와도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과 관심을 이루고 그것을 위해서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축복하실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지난 50년간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은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이 선교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새벽마다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선교헌금을 하며 신학교를 나와 선교사로 헌신하니까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주목하시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결론 

우리의 타락된 마음은 항상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으로 책망과 교정과 교훈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고 교훈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해보십시오. “나는 하나님만 두려워한다. 세상에 두려울 것 없다.” 질병도 두렵지 않고 전쟁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또 나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주님의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나라의 유익을 구하고 일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이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우리 마음속에 하박국과 같은 변화, 하나님을 만남으로 오는 변화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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