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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엠디의 정신으로 가만이 전도(3) (요 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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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의 정신으로 가만이 전도(3) (요 1:35-42)

-안드레의 모범을 따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요한복음 1 : 35 - 42)

우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모든 갈증을 해결하고 기쁨으로 살아가게 된 것을 확신합니다.  

어제, 3월 17일(토요일)의 특별 일정입니다. 주일준비를 하며 보내는 토요일의 일반적인 일정 외의 일정입니다.

12시 - 심이례권사님 아들 소공희군의 결혼예식.
2시 - 김정욱집사님 부친 김종거성도의 임종예식.
5시 반 - 김종묵집사님 아들 김찬영의 첫돌 감사예배.
7시 - 장인 장모님의 합동 추도식.

인생의 가장 큰 일들이라는 결혼, 출생, 임종 그리고 추도식을 한 날에 경험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이렇게 삶과 죽음이 함께 얽혀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겸손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런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독교,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가하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신앙의 핵심입니다. 
  

I. 실체  

세례 요한은 한 마디로 예수님을 정의하였습니다.
36절 말씀입니다.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심으로 이것을 알게 되자 깜짝 놀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죽어야 할 맏이를 대신하여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받으신 제물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무엇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습니까?
요한복음 1장 28절 말씀입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대신 지고 가는 어린 양이었습니다.

2. 어린 양은 속죄의 제물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값으로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하나님께 바쳐지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제물입니다. 이것은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모든 죄에서 벗어납니다.
이런 예수님을 자신의 삶에서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II. 만남  

요한의 두 제자가 스승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38절 말씀입니다.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그들에게는 물세례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금욕생활로는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깊은 절망을 느끼고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줄 스승을 찾고 있었습니다.

1. 그들은 영적인 갈망이 있었습니다.

갈망이 있다고 해서 모두 시원한 샘물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갈망함이 없이도 시원한 샘물을 만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의식을 가지 있는 사람이 해답을 찾듯이, 일반적으로 영적인 갈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영적인 해답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생의 곤궁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가서 보고 그곳에서 무엇을 만났습니까?

41절 말씀입니다.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안드레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 형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어로 메시야는 그리스어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한 마디로 모든 문제의 종결자라는 의미입니다.


2. 그들은 인생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선지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의 짐을 지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죄를 씻어 주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세력에게 짓눌린 사람들에게 보호와 인도를 허락하시는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었습니다.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요 5:24)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영원한 운명을 바꾸어 놓는 만남입니다. 

1988년 8월 8일. 그 날 아침, 저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감격으로 몰려왔습니다. 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기뻤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날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온 몸으로 알게 됨으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만난 사람입니다. 물론 경험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지성적으로, 어떤 사람은 감정적으로, 어떤 사람은 신비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러나 어떤 접촉이든 하나님과 접속되는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계속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만남! 하나님을 만났고, 만나고,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갈증이 해결된 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안드레의 사역은 무엇입니까?
  

III. 사역  

이제, MD 즉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만남, 그 이후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들이 본받고 따라야 할 MD 사역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난 안드레는 먼저 어떻게 하였습니까?
41절 말씀입니다.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스승인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깨달은 안드레는 형인 시몬을 찾아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MD 사역의 중요한 요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짚어야 할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난 안드레가 가장 먼저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난 후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았습니다. 여기에서 ‘찾다[euJrivskw/휴리스코]’는 말은 기본적으로 ‘만나다’는 말이지만 ‘질문하고, 생각하고, 조사하고, 관찰하여 발견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안드레는 생각하였습니다. 아니 생각이 났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 먼저, 형제를 생각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자 이 분이야말로 그들이 기다리고 찾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그의 형제 시몬이 생각났습니다. 여기에서 ‘형제[adelfov"/아델프호스]’라는 말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확대되어 ‘동일한 조상을 가진 사람’이나 ‘같은 국민에 속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 이런 저런 관계로 맺어진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좁게는 친 형제 자매에서, 넓게는 이렇게 저렇게 알고 지내는 사람, 아주 넓게는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형제입니다. 

형제라는 말은 다른 말로 ‘오이코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이코스(oikos)라는 말은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에서 ‘집’이라는 말의 그리스어입니다. 이 때 집이란 단독 주택이냐 아파트냐는 것(house)이 아니고, 그 집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가족(family)이라는 것을 다 아실 것입니다. 오이코스는 가정을 형성하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가족이나 친지를 가리키는 오이코스에 대한 개념도 확대가 되어 이웃, 친구, 직장동료, 클럽회원 등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는 인간관계를 가리킵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오니코스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관관계가 똑 같은 정도로 맺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더 깊은 관계도 있고 상대적으로 얇은 관계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중에는 먹을 것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누어 먹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까운 형제입니다. 안드레에게는 그의 형인 시몬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먼저 시몬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은 힘들고 어려울 때, 누가 먼저 생각납니까? 기쁘고 즐거울 때, 누가 먼저 생각납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누가 먼저 생각납니까? 행복한 일이 있다면 누구에게 먼저 알리고 싶습니까? 누가 생각나는가 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인생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그 사람이 여러분과 가장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MD 사역을 위하여 자신의 형제가 누구인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는 그 사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스쳐 지나는 가는 생각으로 흘러가게 하지 마시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 사람이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붙여주시는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는 한 사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그 사람에게 집중하십시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는 그 한 사람에게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짚어야 할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난 안드레가 형제 시몬이 생각나자 어떻게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형제가 생각나자 그 다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안드레는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갔습니다. 41절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찾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안드레가 스스로 일어나 형 시몬을 찾아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2. 즉시, 형제를 찾아갔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났다고 해도, 형제 시몬이 생각났다고 해도, 시몬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안드레 혼자의 일로 끝이 났을 것입니다. 안드레는 형제 시몬을 즉각, 직접, 찾았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배워야 할 MD 사역의 요소가 있습니다.

MD 사역에는 신속성이 필요합니다. 신속성은 미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에 즉각 순종하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먼저’ 시몬을 찾았습니다. ‘먼저’라는 말은 ‘첫 번째로’라는 뜻과 함께 ‘일찍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안드레는 형이 생각나자마자 형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우리는 머뭇거림으로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려는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첫 번째 생각은 성령의 생각, 두 번째 생각은 자기의 생각, 세 번째 생각은 마귀의 생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두 번, 세 번, 심사숙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이리 재고 저리 재며 핑계를 대어,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을 꾸짖는 말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에 즉각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MD 사역에는 직접성이 필요합니다. 직접성은 직접 얼굴과 얼굴로 만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간접적인 방법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직접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전화나, 문자나, 메모를 남기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 결코 만남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아가 만나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고전 1:21). 우리는 직접 사람을 만나는 두려움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형제이기에 속일 필요도 꾸밀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직접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전화나 문자로 얼굴로 만나는 것을 대신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얼굴과 얼굴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MD 사역에는 현장성이 필요합니다. 현장성은 구름 위에서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이 있는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별다른 사람에게 호기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친밀감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에 신뢰성을 바탕으로 기쁨을 함께하고 슬픔을 나누는 만남이 있습니다.자신과 다른 딴 나라 사람으로 여기면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단한 삶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만남이 필요합니다. 세련되지 않은 투박함을 하나님은 더 적절하게 사용하십니다. 삶의 모습 그대로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MD 사역은 그 어떤 이론이 아니라 찾아가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만남에 사건이 있듯이 만남에 전도의 역사가 있습니다. 삶으로 신속하게 직접 찾아가 만나시기를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짚어야 할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난 안드레가 형제 시몬이 생각나자 찾아가 무엇을 말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형제 시몬을 찾아가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다시, 41절 말씀입니다.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안드레는 시몬에게 “우리가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만나다는 말은 ‘안드레가 형제 시몬을 찾았다’에서 ‘찾았다’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찾아가는 것이 만나는 것이고, 만나는 것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말이 그 유명한 아르키메데스가 벌거벗은 몸으로 외쳤다는 ‘유레카’라는 말입니다. 유레카는 영어식 발음입니다만 만났다, 찾았다는 뜻의 그리스말입니다. 안드레는 형제 시몬에게 찾아가서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3. 형제에게 만남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에 히에로 2세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금세공사에게 순금을 주어 신에게 바칠 금관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완성된 금관을 받은 히에로 2세는 금세공사가 금관을 만들 때, 혹시 금을 빼돌리고 같은 무게의 은을 섞지 안았나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금관을 부수지 않고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 수 있는 방법을 아르키메데스에게 의뢰하였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사람이 욕조에 들어가면 몸의 부피만큼 물이 밖으로 흐르는 것에 착안하여 서로 다른 물질은 같은 무게라 할지라도 차지하는 부피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벌거벗고 목욕을 하다가 이것을 깨닫게 된 아르키메데스는 옷을 벗을 채로 뛰쳐나와 “찾았다”고, 그리스어로 ‘유레카[εὕρηκα]’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진리를 찾았고 외쳤던 것입니다.

안드레는 시몬에게 가서 ‘유레카’라고 외쳤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자신이 진리를 만났다고 기쁨으로 외쳤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났다고 해도, 형제 시몬이 생각났다고 해도, 시몬을 찾아갔다고 해도,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찾아가서 사업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왔다면 친밀감은 높아졌겠지만 성령님께서 그를 보내신 목적은 달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간증이 중요합니다. 세상을 사는 이야기로 마음을 여는 것도 필요하지만, 모든 문제의 종결자이신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탤런트 차인표씨의 간증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많은 분들로 부터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팬들을 만날 때마다 저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게 진심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거짓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저의 팬들을 사랑했다면 내가 믿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을 저는 두려워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인기가 떨어질까 봐. 두 번째는 절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세 번째는 재미없다고 일어나서 나가버릴까 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40년간 예수님을 믿었던 저 조차도 예수님을 직접보거나, 만지거나, 그 음성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습관적으로만 믿었던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2006년 봄이었습니다. 4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저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비로소 그 만남을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예수님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MD 사역자에게는 먼저, MD를 만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만남이 없는데 만났다고 말하면 이것은 증인이 아니라 위증이 됩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유레카라고 외칠 수 있는 기쁨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가서 형제를 만나도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MD 사역자로서의 만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좋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생의 해답을 찾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결론이 내려져야 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표현하여야 할지는 두 번째입니다. 만남이 첫 번째입니다. ‘만났다’고, ‘유레카’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남과 이를 간증할 수 있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드레에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안드레는 시몬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안드레가 데리고 온 시몬을 게바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다만 우리는 가서, 만나고, 이야기하여야 합니다. ‘가보자! 만나보자! 이야기하자!’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뜨거운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뜨거움이 또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뜨거움은 온도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가슴 속에 뜨겁게 흘러넘쳐 또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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