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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만나는 길 (행 17:16-34)

첨부 1


하나님을 만나는 길 (행 17:16-34)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지난 몇 주간 동안 우리는 사도행전 17장에 나타난 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성향을 보았습니다. 데살로니가 지역과 베뢰아 지역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테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사도바울이 베뢰아를 떠나 이제 아테네에 도착합니다. 피레우스 항구에 도착합니다.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피레우스 항구 이름은 똑같습니다. 이곳에 도착해 실라와 디모데가 올 때까지 어떤 집에 머물러 있지 않고 길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 전도합니다.

그런데 이 아테네에 도착해 보니까 그 어떤 도시하고도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확연하게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신전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이 일어났습니다. 아니, 이렇게 우상이 많은가? 어떤 학자에 의하면 이때 당시에 우상이 3만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길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 보다 우상을 만나는 것이 더 쉬웠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우상이 많은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이 일어나 있었는데 그때 그 아테네를 주름잡고 있었던 에피크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과 함께 신앙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전하니까, 이 에피크로스 학파 철학자들이 아니 이 말쟁이가 말은 잘하네! 자기가 믿고 있는 자기 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테네 사람들은 아주 종교심이 강해 그들도 3만개 이상의 우상을 섬기면서 그들 각자의 신을 섬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게 되자 이렇게 사도바울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더 이야기 해 달라, 어떤 사람은 들을 필요도 없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레오바고 라고 하는 지역에 갔습니다. 아레오바고는 요즘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모이는 프라자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법 집행도 있어서 법정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약간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도바울이 오늘 보문에 보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제가 보니까 여러분이 아주 종교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테네를 둘러 봤을 때 얼마나 많은 우상을 보았나요! 신전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지금 아테네에 가시면, 그 언덕위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반쯤은 부수어져 있지요. 그런데 이 파르테논 신전이 예수님 오시기 450년 전 그러니까 그리스가 한참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 예수님 오시기 450년 전에 지어진 신전입니다. 그들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신전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런 수도 없이 많은 신전을 보고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도시 보다 종교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 제가 어느 지역을 가보니 여러분들이 위하는 그 많은 신들 중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 하는 그런 신전의 제단도 보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여러분이 많은 종교심을 가지고 있고, 또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하는 신전도 있는데 여러분이 그렇게 섬기고 있는 그 신! 그 알지 못하는 참 신이 누구인가를 지금부터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하고는 하나님의 창조부터 시작을 해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섭리와 깨달음,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맨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께서 이처럼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의 세계로 오셨고 그리고 또 육신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제는 그 예수님 앞에 나와 회개하면,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증언했습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 사도바울의 설교를 듣고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비난하고 어떤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듣자!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듣고 예수 믿고 따라다녔던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보면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17장 전반부에 나오는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베뢰아 사람들이 어떻게 이 아테네 사람들과 달랐나. 아테네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다른 두 도시의 사람들과 달랐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먼저 우리는 이 아테네가 어떤 도시인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테네는 그리스도의 수도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약 500년부터 세워진 당대 최고의 도시였습니다. 이 그리스를 점령한 로마가 지금의 이태리 로마에 도시를 세우고 또 지금의 이집트에 있는 해변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세웠지만, 이 로마와 알렉산드리아가 세워지기 전에 로마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는 바로 아테네였습니다. 이 때 당시 아테네는 세 가지 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학문의 발상지였습니다. 철학과 문학과 수사학과 과학이 시작된 철학의 산지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잘 아는 플라톤 또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이런 철학자들이 태어나고 활동을 했던 곳입니다. 이 때 당시에 400~500년 정도 이상 계속해서 전 세계의 학문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헬라시대 때 이 아테네를 가리켜 헬라의 눈이라 또는 모든 지혜의 본 고장이라 이렇게 불렀습니다. 네 개의 학파가 중심이 되어 아테네의 이런 정신세계를 이끌어 갔는데, 예수님 때에는 아직도 에피크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가 아직도 남아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아테네에는 수도 없이 많은 우상과 신이 존재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모든 신들의 이야기가 이곳 아테네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아테네에는 여신, 남신을 비롯해서 아들신, 엄마신, 배의 신, 물의 신, 수도 없이 많은 우상이 있었습니다. 이 우상이 많았다. 라는 말은 사람들이 종교심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이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본 고장이었습니다. 여기서 자유시민사상이 싹 텄습니다. 로마가 이 아테네를 정복한 주전 89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 아테네는 유럽의 가장 핵심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세 가지 아테네가 아주 중요한 도시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당시 사도바울이 확인한 아테네는 학문의 도시이자 민주주의 도시 이런 것들 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은 우상의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가는 곳곳마다 우상과 우상의 신전이 있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늘 학문을 이야기 하면서도 신에 대하여 미래에 대하여 영혼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당시에 아테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 신앙심을 요즘의 말로 표현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름이 아닌 뉴에이지(New Age) 사상이었습니다.

뉴에이지! 말 그대로 새로운 세대입니다. 새 세대 새 시대! 어느 시대나 새 시대에 대한 열망은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가리켜 사람들이 죄가 많고, 문제가 많고, 타락한 세대다. 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늘 새 시대가 도래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늘 새 시대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의 새 시대가 아니고요, 지난 60년 대 말부터 전 세계에 이런 철학과 종교를 접목한 뉴에이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뉴에지 운동과 아테네 사람들이 갖고 있던 그들의 종교심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럴까요? 이 아테네 사람들이 갖고 있던 종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범신론이었습니다. 범신론은 모든 사물이 모든 것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이 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커다란 나무도 영혼이 있어서 신이 될 수 있고, 커다란 바위도 영혼이 있어 신이 될 수 있고, 날아다니는 새도, 하늘에 있는 달이나 별 해도 다 신이 될 수 있다. 이런 사상이 발전이 되면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도 다 귀한 영혼이기 때문에 신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게 범신론이었습니다.

요즘에 뉴에지 사상을 가만히 보면, 모두가 다 여기에서 왔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니면 피조물이 다 영을 갖고 있어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 결국 이 범신론은 어떻게 발전이 되냐 하면, 우리가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아도 어떤 세상에 있는 피조물을 열심히 섬기고 또는 자기 자신이 신이 되어서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는 사상으로 발전이 되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각자 종교를 잘 믿으면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께 가고 그래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 종교통합주의로 흐르게 됩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오랜 힌두사회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달이 됩니다. 어떤 시각 장애인 6명이 코끼리를 앞에 두고 만져봅니다. 첫 번째 사람이 코끼리의 옆구리를 만지는데 평평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말하기를 “아, 코끼리는 벽과도 같구나.” 그랬더니 옆에 있던 두 번째 사람이 꼬리를 만지고 난 다음에 말하기를 “코끼리는 꼭 뱀 같아”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세 번째 사람이 코끼리의 길 다란 뼈를 만지고 말하기를 “코끼리는 창과도 같아”, 네 번째 사람이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나무 같아” 다섯 번째 사람이 코끼리의 코를 만지고 “코끼리는 밧줄 같아” 여섯 번째 사람이 코끼리의 귀를 만지고 난 다음에 “코끼리는 바나나 나무 같아” 힌두 사람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할까요? 이 이야기의 초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가 인지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전부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것을 믿는데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그것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요즘에 이 뉴에이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주 강하게 이야기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는 결국에 가서는 한 하나님에게 모아진다. 라고 이야기 하면서 어떤 종교든지 믿으면 다 구원 받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이 논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떤 높은 산이 있는데, 그 산 정상에 올라가는 길이 여러 개가 있다는 것이지요. 

A코스 B코스 동쪽코스 서쪽코스 남쪽코스 북쪽코스, 어느 코스로 올라가든지 관계없이 나중에는 정상에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뉴에이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믿든 천주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힌두교를 믿든 이슬람을 믿든 무엇을 믿든지 간에 자기가 믿고 있는 신앙에 열심을 다 하다 보면, 결국에 가서는 정상에 구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 세계의 모든 종교는 하나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정말로 그런가요? 아주 그럴 듯합니다.

이 이야기를 가장 잘 주장하는 사람이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이 사람은 본래 침례교 교인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뉴에이지 사상에 빠져서 지금은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각자 신앙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이 어떤 신앙이든지 간에 관계없이 자기 것을 잘 믿으면 하나님께로 갈수 있습니다.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렇습니까? 나무를 믿고 달을 믿고 해를 믿고 자기 자신이 신이 되어서 열심히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제가 어렸을 적에 초등학교에 다닐 때 몸이 약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보름 날 만 되면, 절두산 성당 옆에 있는 그 뚝방 길로 저를 데리고 가서 달이 환하게 비치는 보름날 무릎을 꿇고 그 상위에 물 한 그릇 떠 놓고 저희 어머니가 저 보고 절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께 어머니 뭘 보고 절하라는 것입니까? 그랬더니 달한테 너 건강하게 해 달라! 저는 지금도 그게 너무너무 눈에 선합니다. 저희 동네 모퉁이에 성황당 같은 것이 있지요? 나무 밑에 사람들이 뭘 같다가 붙이고 밥도 갖다 놓고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사람을 만들어 붙이고, 어떤 경우에는 커다란 바위 밑에도 갖다 붙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믿든지 간에 열심히 믿으면 다 하나님께로 갈까요?

사도바울은 이 우상의 세계를 아테네에 와서 봤습니다. 얼마나 우상이 많았으면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하는 신전도 보았다고 합니까? 실제로 이 신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아테네에 역병이 돌았는데 구레네 출신인 어떤 사람이 와서 사람들의 역병을 치료해 줘서 그 역병으로부터 사람들이 많이 낳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치료해준 이 사람이 함께 신전에 가서 자기들이 각자 믿는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는데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이, 우리를 고쳐준 신들이 많은 텐데 우리가 이름을 써 붙인 이 신 말고도 우리가 모르는 다른 어떤 신이 우리를 고쳐 주었을 수도 있는데 그 신의 이름을 여기다 적지 않으면 그 신이 우리에게 또 다시 재앙을 줄 지 모르니 우리가 그 신의 이름을 모르니 그 신의 이름도 우리가 여기에 적읍시다. 그래서 이름을 모르는 알 수 없는 신, 이라고 써 붙여서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 광경을 보고 바울이 이야기 합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종교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바울이 아테네 시민의 종교심을 보고 난 다음에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24절부터 전달합니다. 

아테네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심과 여러분과 제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은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요? 사도바울이 아테네 시민들을 향하여 그들이 갖고 있는 종교심에 문제가 있다. 라고 한 이유는 뭘까요?

첫 번째, 종교심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갖는 믿음의 신앙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종교를 찾을 때에는 자기 자신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경험 할 때, 그래서 그것이 더 잘 되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이 그것을 우상으로 만듭니다. 그것이 지푸라기로 만든 것일 수도 있고 나무로 깎아 만든 것일 수도 있고 금으로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늘 누구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도와주기를 바라는 어떤 존재를 만들고 거기에 무릎을 꿇고 거기에 빌고 거기에 목을 겁니다.

이런 종교심은 인간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마음과는 전혀 같지 않습니다.

첫 번째, 인간이 우상에게 갖는 종교심은 인격적인 만남이 없습니다. 

인간이 나무에게 절하고 바위에게 절하고 달에게 절 하는데 바위와 그 나무와 달이 그렇게 비는 인간하고 영적인 교재가 있습니까? 사귐이 있나요? 거기에 인격적인 만남이 있습니까? 왜 없습니까? 그것은 물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영과 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격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하나님의 물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지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만든 모든 우상은 다 피조물입니다.

모세가 출애굽 하고 난 다음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는 동안에 40일 이 되도 내려오지 않자 아론이 중심이 되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금 부치를 모아 다 녹여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사람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이 금송아지가 우리를 출애굽 시킨 신이다.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금송아지가 인격이 있나요? 금송아지가 영혼이 있습니까? 금송아지 앞에서 금송아지에게 절하면 금송아지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와 인격적인 교감을 갖습니까? 사도바울은 아테네 시민들이 갖고 있는 종교심에 문제의 첫째는 인격적이지 영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들과 영적인 교제를 가질 수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나무에게 달에게 바위에게 절하고 제물을 갖다 바친다 한들 그것이 이야기 합니까?

두 번째, 우상에게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자기의 소원과 자기의 원하는 바를 일방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렇지요! 저희 어머니가 저보고 건강하게 해 달라고 저 보고 빌라고 했던 것은 제 일방적인 소원을 이야기 했을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신이 그들이 믿고 있는 우상에게 이야기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갑니다. 도와 달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가 가기 전에 우리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계셨다가 말씀으로만 계시지 아니하고 이 땅에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상은 사람들이 찾아가지만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에게 오셨습니다. 찾아가는 종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찾아오시는 그 하나님,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그렇기 때문에 우상이 아닙니다.

세 번째, 우상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요? 죽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돌이 살아있나요? 나무가 살아있나요? 아무리 대리석으로 우상을 잘 만든다 할지라도 우상은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우상 자체가 피조물이기 때문에 죽어있기 때문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사셨고 하나님으로서의 모습을 갖고 계신 완벽한 하나님이시자, 완벽한 인간으로 살아계셨습니다. 우상이 아무리 많아도 3만이 아니라 3백만 개가 되도 모든 우상은 다 죽었기 때문에 구원의 능력이 없습니다.

네 번째, 우상은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달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나요? 나무가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갑니까? 나무가 달이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그것들은 모두 인간이 가져오는 것을 받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가 가지고 가는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뿐만 아니라 죽어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천국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 아테네 사람들을 보면서 사도바울은 너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교회 나와 예배를 드리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음의 대상, 신앙의 대상으로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 가운데 교회는 나옵니다. 주일 아침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바깥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하냐하면,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일이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교회를 나옵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교회를 5년 10년 나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예수님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고, 성경을 읽다가 눈물을 흘려본 적도 없고 하나님이 깨우쳐 주시는 말씀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죄를 회개한 적도 없습니다. 자기의 죄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면 마음이 편안한 것 같아 교회에 나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우상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죄를 용서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죽어도 지옥 갑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의 인격의 관계를 형성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 빌 줄은 알지 자기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셔 들인 적은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테네 사람처럼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는 분은 안계십니까? 사도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이 그들 각자의 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데 그 이름도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절하고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들이 그토록 찾고자 하는 신은 당신들이 손으로 만든 피조물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창조자 하나님이심을 전달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에 있는 수많은 우상이 아닙니다. 일본에 한 번 가시면 수도 없이 많은 신들을 만나게 됩니다. 나무 푯말 같은 곳에 다 쓰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은 신심이 많다고 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심은 바로 이 아테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종교성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고 있는 신심, 신앙심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신심이 종교심이 있지만, 종교심 신심이 많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을 얻을 이름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산에 오르는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가 수도 없이 많지만 어떤 등산로든 간에 올라가면 천국에 갑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결정하시지 않았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들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심, 신심 종교심을 버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만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살아계셔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찾아가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만든 피조물로 전락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만든 모든 피조물까지도 만드신 창조자이십니다. 어리석은 사람, 무식한 사람 사탄에 얽매인 사람은 피조물을 신으로 섬기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피조물이 아니라 피조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이 주신 영혼의 양식을 먹고 영적인 교제를 가져 여러분에게 진정한 구원과 내세와 그리고 용서가 여러분의 삶에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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