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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사밧의 기도(4) (대하 20:20-30)

첨부 1


여호사밧의 기도(4) (대하 20:20-30)
  

들어가는 말

우리교회는 지난 3월 18일부터 4월 7일까지 봄철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진행합니다.
이번 주간은 마지막 주간입니다.
그동안 못 나오셨던 분들도 용기를 내어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특별새벽기도회 중에서 가장 은혜스럽다.’고 고백합니다.
새벽에 부으시는 은혜의 빗줄기를 함께 맛보시길 권합니다. 
이번 봄철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독려하기 위하여 네 차례에 걸쳐 여호사밧의 기도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여호사밧이 기도한 후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살펴봤습니다. 
잠간 몇 가지만 복습해보지요.

1)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대하20:15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여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한 다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 응답을 바란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해야 합니다.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선포된 말씀, 성경을 읽을 때 주어지는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들어야 합니다.

2)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원수와 대결하려 나갔다가 혹시라도 패배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기도한 뒤에 우리를 향하여 달려오는 위기 상황과 맞섰는데 오히려 두들겨 맞고 넘어지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본분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신앙고백을 다시 들어보십시오.
단3:16-18절 “느브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요점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으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져주시느냐 않느냐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린 일이다. 우리는 그의 뜻을 따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항상 선하고,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말씀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적들을 상대로 싸우기 위하여 드고아 들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행진을 보면 무장을 하고 전쟁터로 나가는 군사들의 출정분위기가 아닙니다. 
예배자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아가는 분위기입니다.

대하20:21절을 보십시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도다 하게 하였더니”

마침내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적들을 내분시켜 서로 싸움으로 망하게 하셨습니다.
전쟁은 전면전으로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기만술로 이길 수 있고, 선전술로 이길 수 있고, 선제공격으로 이길 수 있고, 매복으로 이길 수 있고, 내부교란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23절 “.......그들이 서로 쳐 죽였더라.”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성경은 이 전투 이야기를 아주 간략하게 취급하고 넘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역대하 20장 전체가 여호사밧과 아람의 전쟁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전투장면은 불과 두 절뿐입니다.(20:22, 23절)
대부분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와 그 백성을 위해 싸우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에 할애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원수들의 군사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의 힘과 비교해 볼 때 아무것도 아니라는, 하잘 것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원수들의 군사력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진짜 전쟁터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위기상황에 봉착했을 때, 입만 벌릴 뿐 기도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암담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산더미 같은 빚, 희망이 보이지 않는 진찰 결과,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인간관계가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가 알아야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쟁터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의 전쟁터에서 하나님을 크게 보고 상황을 작게 보는 믿음으로 상황을 지배하고 있느냐? 아니면 상황을 크게 보고 하나님을 작게 보는 불신으로 상황에 지배받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과연 무엇을 주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위기상황입니까?
여러분의 눈에 무엇이 더 크게 보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위기상황입니까?
바로 이것이 여호사밧 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전쟁 드라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부지리로 전리품을 거둡니다.
25절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 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 거두어들이고”

고대의 전쟁에서는 승리자가 전리품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습니다.
여호사밧 군대는 싸우지도 않고 어부지리로 승리의 전리품을 거둬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축복이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기도의 축복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할렐루야.

26절을 보겠습니다.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 까지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여호사밧 군대는 걱정과 근심의 무거운 짐이 아니라 엄청난 전리품을 지고 ‘브라가 골짜기’에 집결합니다.

‘부리가’는 축복을 뜻합니다.
이 축복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축복을 말합니다.
혹시 여러분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알겠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축복인가?’라는 생각을 할지 모릅니다.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영어성경(흠정역)에서는 이 구절을 ‘거기서 여호와를 축복하였다(there they blessed the Lord)'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축복받은 자만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베풀어줘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에 감사를 느낀다는 것은 축복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축복에 반응하여 하나님을 송축하고 감사하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매월 첫 주에 드리자고 약속한 감사주일입니다.
왜 우리가 매월 첫 주를 감사주일로 지킵니까?

1) 감사는 생각해야만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감사(thank)는 생각(think)에서 왔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축복을 받았다할지라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감사하지 않으면 행복한 삶이 아닙니다.
감사는 행복한 삶의 지름길입니다.

한 달 전에 형님이 소천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해주셔서 장례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문상을 받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장례식인가?’
그래서 조카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너희들, 아버지 이렇게 보내지 말자.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글 한 줄씩만 써라.”
조카, 조카며느리가 다 한 줄씩을 쓰니 A4로 두 장 분이 되었습니다.

발인예배를 드릴 때 둘째 조카가 읽었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면서 읽었습니다. 
발인 예배 순서 중에서 가장 숙연하고, 애틋하고, 감사하는 순서였습니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감동받았습니다.
큰조카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버지, 교회에서 가족찬양을 할 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라는 찬송가를 아버지의 하모니카 반주에 온 가족들이 불렀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버지,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막내조카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버지는 유난히 구레나룻이 많았어요. 털이 난 볼로 저의 볼을 부비면서 ‘내 강아지. 내 강아지’라고 귀여워해주시던 음성이 아직 귓가에 쟁쟁합니다.” 
형수님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당신은 축협조합장으로서 초대 받은 청와대 오찬자리에서 대통령이 술을 따라줄 때 ‘죄송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이어서 술을 안마십니다.’ 라고 거절하신 분입니다. 그런 믿음이니까 천국에 간줄 확신해요.” 
얼마나 숙연하고 애틋하든지........
저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감사의 고리에 또 다른 감사를 걸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은 축복받는 지름길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생각하고 쌈지 돈을 꺼내 사탕 두 봉지를 사왔습니다.
한 아이는 사탕봉지를 받아들고 깡충깡충 뛰면서 고맙다고 할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합니다.
그리고 사탕 한 알을 할아버지 입에 쏙 넣어 줍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는 시큰둥해가지고, 고맙다는 말도 없이 자기 입에 다 쑤셔 넣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누구에게 더 주고 싶겠어요?
인지상정이라고 감사하는 아이에게 더 주고 싶지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감사해요.’ ‘하나님, 고마워요’
그 소리 듣고 싶어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인간을 만드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감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 감사의 고리에 다른 감사를 걸어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재미로 사시는 분이니까요.

그러면 여호사밧 군대가 전리품을 거둬들였듯이 우리가 인생의 전투를 끝내고 거둬들일 전리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의 위기상황이 지나간 뒤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됩니다.
그것도 지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신8:2-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아니하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의 광야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을 알아갔습니다.
만나를 먹으면서, 의복이 헤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서, 발이 부르트지 않는 것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을 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2. 우리 자신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됩니다.

인생의 위기상황이 지나가면 우리는 영적으로 전과 다르게 성장했음을 알게 됩니다.
인생의 위기는 우리의 바람직하지 못한 성품들을 폭로합니다.
불신, 조급함, 분노, 두려움, 이기심........
그러나 우리가 위기상황 한가운데서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신뢰, 인내, 평안의 성품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요동하던 인생의 파도가 잔잔해졌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최고 수준의 은혜로 양육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약1:2-4절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3.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대하 20:29절을 보십시오.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소문에 소문을 타고 이방나라들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시련 속에서 분투하고 있을 때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질문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목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들은 없을까?’
우리의 이웃들과 직장 동료들, 우리와 별로 상관이 없는 방관자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목격하고 ‘대체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기에 그렇게 놀라운 일들을 행하며 그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가?’라고 물으며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이것들이 우리가 전쟁을 끝내고 반드시 거둬야할 전리품인 것입니다.

나가는 말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공항상태에 빠졌던 그를 평안을 이끄셨습니다.
대하20:30절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평강과 태평, 이것이 바로 기도의 열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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