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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히 알게 되는 날에 (고전 1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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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알게 되는 날에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13:9-10) 

Ⅰ. 본문해설 

지금 아는 것과 그때에 아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함으로써 천국이 지식과 사랑의 나라라는 것과 오늘 우리가 왜 은혜를 사모하고 모든 은사보다 사랑을 마음에 더 품어야 되는지에 대해 가르쳐준다. 


Ⅱ. 지금과 ‘그때’ 아는 것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는 현재의 아는 것과 온전한 것이 오게 되는 그 날에 알게 되는 것을 대조한다. 사실 사도의 진정한 의도는 아는 것을 대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부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은 언젠가 폐하여지나 사랑은 언제든지 폐지되지 않는 것이기에 사랑이 지식과 예언의 은사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왜 지식과 예언의 은사가 필요 없게 되는지를 알려면 지금 아는 것과 영광스러운 그날에 알게 되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야 이 모든 대조가 명료해진다. 

Α. 지금 아는 것 

사도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고 한 이 시기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기 전이므로 은사의 형태로 주어지는 지식과 예언 등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것이 사도가 지식과 예언의 은사로 말미암아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다루면서, 14장에서 예언을 사모하도록 권고했던 이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 보여주신 계시를 담고 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구속을 위한 계시가 필요 없었지만 죄가 들어온 이후에는 구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지식을 통해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식의 빛 아래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위대한 구속의 계시는 한 번에 주어지지 않고 앞에 있는 빛에 또 다른 빛을 더하는 점진적인 계시의 형태로 주어졌다. 

성경이 완성된 뒤에도 우리가 그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더 나은 구속의 계시를 가졌으나 이것 역시 완성된 그날에 우리에게 주어질 온전한 지식에 비하면 부분적일 수밖에 없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먼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그 위에 내린 저주 때문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사람만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도 그 저주에 참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의 충만한 것이 깃들여 있던 이 모든 피조물들은 본래의 아름다운 광채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두 번째는 인간의 생래적인 한계 때문이다. 구원받았으나 여전히 우리 안에 죄가 남아있기에 우리의 영혼은 수시로 어두움에 휩싸이게 되고 이는 지성의 눈멂으로 나타난다. 

Β. ‘그때’ 아는 것 

그 영광의 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우리가 부활하는 그날, 우리의 흙으로 돌아간 육체의 몸이 다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재탄생하고 하늘에 있던 우리의 영혼이 결합하여 완전한 몸을 이루게 되는 그 때의 우리의 앎은 점진적으로 주어지던 계시의 성격을 넘어서는 완성적인 지식이 될 것이다. 그때에도 우리가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나 점진적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가르쳐주던 성경 계시를 넘어서는 것이고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 펼쳐진 이 구속의 역사적 전개를 통하여 깨닫게 되는 지식을 능가하는 지식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영광스러운 몸으로 덧입고 영혼이 육체와 다시 만나 환희하게 되는 그날에 우리가 알게 되는 앎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아는 것이 될 것이다. 구약에서는 신약에서 주어질 실체를 바라보는 모형이 제시되었고, 이 모형은 신약시대에 완성된 실체로 나타났다. 그 이후에는 이 모형과 실체의 관계를 통해 예표된대로 우리의 역사와 삶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전개되었다. 

우리를 구원받게 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성경의 기록과 함께 완결되었지만 완결된 하나님의 구속의 의지가 역사 속에서 실현되는 것은 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모형에서 실체로 그 실체에서 영광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알리시는 과정이다. 구약에서는 모형을 보고 겨우 실체를 예측했고 신약에서는 실체를 바라보고 미래의 전개를 예상했지만 그 날에는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 영광 안에서 이 모든 지구상에 펼쳐졌던 구원의 역사를 한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이때에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은 성경의 완성을 기다리며 지식과 예언의 은사와 같은 부분적인 지식에 의존하는 그런 방식의 앎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은 성경이 완성되어 이 성경을 통해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과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그날에는 하나님의 계시의 통한 간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우리 인간 지성에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오늘날은 우리가 아무리 탁월하게 열심히 성경을 대할지라도 성령께서 조명해주시지 않는다면 성경에 관한 중요한 진리들을 깨달을 수 없다. 이처럼 성경에 대한 앎은 성령의 조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날에는 조명을 통한 앎이 아닌 비전을 통한 앎이다. 이상이 드러나듯이 한 번에 이 모든 계시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한 눈에 꿰뚫어 바라볼 수 있는 직접적인 방식의 지식이 신비롭게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영화의 날에 주어질 새로운 지식의 내용은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우선 첫째는 하나님 자신을 아는 지식이다. 이 지상에서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탐구하게 하셨고 성령의 조명을 통해 하나씩 깨우쳐 알게 하셨다. 이 사람이 은사를 받고 깨달은 지식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깨달은 지식이나 한계를 가진 부분적일 수밖에 없는 지식이었다. 

그러나 그날의 지식은 탁월한 지식이 될 것이고 한 번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지식이 될 수 없으니 이는 하나님은 무한하지기 때문에 당신 자신을 전부 가르쳐주시지 않지만 가르쳐주어도 인간이 계시의 빛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당신 자신에 대해서 점증적으로 보여주신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고정된 나라가 아니라 약동하는 생명의 나라이다. 

두 번째는 구속사에 대한 지식이다. 구속사는 성경 안에서는 구원의 길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나 성경 계시가 끝난 후에는 이 세계를 창조한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구속을 전개하시는 과정이다. 구원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구속사는 끝이 났으나 하나님이 구원을 작정하신 영원한 작정은 성경이 종료된 이후에도 계속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구속사도 우리의 제한된 지식으로 모두 알지 못하고 역사 속에서 흘러가는 구속의 역사는 그 속에서 함께 떠내려가기에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누구도 그것을 유일하고 정확하게 해석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날에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위에서 한 번에 이 모든 역사를 바라볼 것이기에 성경에 기록된 구속사와 종말까지 줄달음쳐온 인류 안에 이루어진 구속실현의 역사까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것이다. 오류가 없는 확실한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럽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갖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사물들에 관한 지식이다. 자연적인 사물들과 영적인 사물들에 대한 지식이 그것인데 자연적인 사물은 생명이 없는 물건들에 대한 지식이고 영적 사물은 영적 생명을 가진 인간과 천사와 같은 피조물들을 이르는 것이다. 지금은 자연 사물들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하기에 학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영적인 사물들에 관하여는 성경을 통해 또는 인간이 만든 철학이나 윤리학, 심리학과 같은 학문을 통해 배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에 관한 지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영적인 사물에 대한 지식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영광스러운 날에는 자연사물과 영적사물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갖게 될 것이고 성경과 학자들의 도움이 없이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네 번째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지식이다. 계시가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라면 섭리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해야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나니 이것이 섭리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알게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완성의 날에는 한 번에 이 모든 것들을 보면서 왜 그런 일이 우리에게 필요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이어졌든지간에 우리의 인생을 두고 펼쳐졌던 모든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Ⅲ. 천국 , 지식과 사랑의 나라 

천국은 지식과 사랑의 나라이다. 그때, 그 영광스러운 날에 우리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과 구원의 역사와 이 모든 사물들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지식들을 갖게 될 것이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아주 탁월하고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이 모든 세계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이 모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만물, 하늘에 떠 있는 큰 별들로부터 이 땅에 있는 작은 돌맹이와 같은 피조물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 연결을 이루고 있으며 그 안에 모든 인간들도 또한 적절한 연결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자연세계와 인간들이 서로 다른 층차에서 아름다운 그물망을 이루면서 찬란한 빛을 드러내게 될 것이고 그 끝없이 펼쳐진 존재들의 그물망 가장 높은 곳에 찬란하게 빛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광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물들에 대한 지식은 통합될 것이고 이 모든 지식의 중심에 탁월하신 그리스도 예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계시될 것이고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수록 모든 인류들은 하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다시는 지식이 사랑과 결별하여 교만해지거나 사랑이 지식과 결별하여 무모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식은 언제나 사랑과 하나를 이룰 것이고 아는 것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알게 될 것이니 알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을 멸시하거나 혹은 지식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받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불합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Ⅳ. 결론 

우리는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이 영광스런 약속과 유업을 받았으니 말이다. 이런 영광스런 지식과 사랑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눈물 흐리는 것을 며칠 더 당하며 우리의 행할 길을 가야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지어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신명을 바치며 이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까지 주님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이 모든 지식을 사랑을 불러일으키는데 사용하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만남을 기다리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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