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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가 미쳤도다 (행 16:16-25, 26: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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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미쳤도다 (행 16:16-25, 26:24-25)


I. 미친 사람

지금은 한국교회가 신학적으로는 본질로, 태도나 자세면에서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교회는 100일 새벽부흥회를 통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주제 아래 
사도행전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저 자신도 깜짝 깜짝 놀라는 신선한 만나를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지난 한 주간은 내내 사도행전 16장 말씀을 여섯 번에 걸쳐 묵상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한 주간 동안 묵상했던 사도행전 16장 말씀을 
또 다른 관점에서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시절에는 목회자도 귀했고 성경도 무척 귀했습니다. 그나마 선교사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한 교회만을 돌볼 수 없는 선교사는 그 마을에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 가운데 성경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 가운데 조사를 임명해 놓고 다른 마을로 갑니다. 그래서 몇 달에 한 번씩 그 교회를 다시 방문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 전기불이 있을 리가 없지요. 주일 저녁 예배시간에 조사들이 성경을 읽습니다. 가물거리는 호롱불 밑에서 두꺼운 돋보기 끼고는 성경을 읽습니다. 

시편 23편을 읽는데 “여...호와는 나...의...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겨우겨우 성경을 읽습니다. 

한 번은 경상북도 어느 산골 교회에서 조사가 성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호롱불이 가물가물해서 글씨가 잘못 보였던 모양입니다. 
“여호와는 내 목 자르시니” 이렇게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고 보니까 너무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목을 자르셔도 내게는 부족함이 없다.” 

성경을 읽고 난 다음에 조사가 비장한 얼굴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목을 자르셔도 저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죽어도 좋습니다.” 조사님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온 교인들도 저마다 손을 들면서 “내두요. 내두요.  여호와가 내 목자르셔도 주님 따릅니다.” 
여호와가 내 목을 자르셔도 좋다고 교인들이 외쳤다고 합니다. 
“이 일하다가 여호와가 내 생명 거두어 가셔도 좋다.” 
이게 우리 믿으의 선진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 보면 사도바울을 심문하던 총독 베스도의 입을 통하여
「바울은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사도행전이 바울을 미쳤다고 기록하는 대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우선 미친 사람은 수치를 모릅니다.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자신의 수치를 알면 벌써 그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미친 사람은 남들이 비웃든 조롱하든 수치를 개의치 않습니다. 전도 한 번을 해도 그렇습니다. 성령에 미친 사람은 그게 자랑스럽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모르는 사람은 그게 부끄럽게 여겨지는 겁니다.

2. 두 번째 미쳤다는 말은 돌았다는 말입니다.

돌았다는 말은 변했다는 얘기인데 베스도 총독으로서는 바울의 이 변화과정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미쳤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받은 경험을 이야기 했을 때 속물들에겐 터무니 없는 얘기로만 들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구원받은 간증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고 우리의 주의 사역을 향한 열정 때문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이것은 분명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셋째 미친 사람은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곧잘 합니다.  

베스도 총독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알아 들을 수 없어서 바울이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없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면 돈벌이가 잘 된다고 그러더라. 어느 길로 가면 출세한다고 그러더라. 어디 가면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그러더라. 그저 무의미하게 태어났다가 먹고 자고 싸고 죽으면 그만입니다. 이런 세속적 인간들에게 하늘의 이야기, 영생의 선물, 죽은 자의 부활과 심판 이런 얘기는 황당무개한 얘기로 들렸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 소식이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베스도는 자신에게 보이지 않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 한 가지 때문에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너의 많은 학문이 너로 하여금 미치게 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비전의 사람들, 남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미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자그만치 100년동안 방주를 건설하던 노아를 향하여 동네사람들은 미쳤다고 얘기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0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를 미쳤다고 비난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1절에 보면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님이 미친줄 알고 예수님을 찾아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길을 걷다가 당하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진리는 조만간에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자는 오히려 화가 있을것”이라고. 행여 신사적이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이 복음에 대한 열정의 부족,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충성의 결핍에서 오는 미지근함 때문은 아닐런지요.  

이 땅을 살아가던 어느날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얘기를 한 번 들어야 제대로 사는 겁니다. 

음악에 미친 사람이 음악가가 됩니다. 문학에 미친 사람이 문학가가 됩니다. 
영화에 미친 사람이 영화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에 미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게고, 복음에 미쳐 본 사람이 복음의 일꾼이 됩니다.

예수 한분, 복음 하나에 미친 사람들이 나와야 한국교회가 건강하게 됩니다. 
천국에 가서 보면 한소망 교회문 앞에 우리교회를 위하여 충성에 미친 사람들, 
헌신에 미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져 있을 것입니다. 
한소망교회의 교회됨은 바로 너 때문이었다.  

II. 본문

본문을 살펴보십시다.
사도 바울 선교단은 아시아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하며 기도하고 자는 밤이었습니다. 그 밤 환상을 보지요. 큰 키, 큰 코에 노랑머리를 하고 유럽인들이 나타납니다. “유럽으로 건너와 우리를 도와 주시오.” 애절하게 손짓을 하고 서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 일행은 이 모습을 성령의 환상으로, 성령의 음성,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유럽의 첫 도시 빌립보로 갑니다.

이곳에서 루디아를 동역자로 얻고 어느날 기도처에 가다가 용하다고 소문난 귀신들린 점쟁이 여종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이 점쟁이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알아보고 소리를 질러댑니다.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18절)

이 일로 점쟁이 여종의 주인이 바울을 법정에 고소합니다. 로마 법관들은 유대인 따위가 도시민을 어지럽힌다하여 몹시 매로 치고 바울 일행을 감옥에 가둡니다. 그날밤 발이 쇠고랑에 묶인체로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그때 큰 지진처럼 감옥이 흔들리고 감옥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벗겨집니다. 자다가 깜짝 놀란 간수는 감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아차 죄수들이 도망갔구나. 칼을 뽑아 자결하려 합니다.

그때 사도 바울이 크게 소리 지릅니다. 
“당신의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시오. 우리는 다 여기에 있소.” 간수가 감동합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선생님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초대교회의 케리그마가 선포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간수와 온 집안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고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가 됩니다. 여기까지가 대략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 무엇엔가 미쳐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헛된 것들에 미쳐살던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III. 무엇에 미쳤나?

오늘 본문의 인물은 한결같이 뭔가에 미쳐 있었습니다. 

1. 먼저 이름 그대로 미친 여종입니다.  

남의 집에 매여 사는 노예 신분만으로도 불쌍하고 가련하거늘 귀신의 종이 되었으니 엎친데 덮친 격이지요.

이 사람은 귀신의 말을 듣고 귀신이 주는 말을 합니다. 이 땅에는 귀신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두운 세계를 봅니다. 어두운 말을 하고 어두운 행동을 합니다. 귀신에게 묶여서 이사도 함부로 못합니다. 못 하나 박는 것도 맘대로 못합니다. 결혼 날짜도 편안히 못 잡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한 가정을 묶고 있는 귀신도 나옵니다. 한 가족을 묶고 있는 어둠의 영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귀신에 사로 잡혀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늘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의 영에 사로잡혀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아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그를 미워하게 되면 그 사람과 내 영혼이 soul-tie 혼이 묶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미움의 자리에 사단이 앉아서 법적으로 나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뢰를 쌓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용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할 수 있습니다. 

만사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눈 - 그 배후에 더러운 영이 있습니다. 

영적인 권위자들에게 순복하지 못하는 거역의 영, 압살놈의 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불순종을 정의로 알고 살아갑니다. 질병의 영에 사로잡혀 악한 질병을 유전시키는 가계도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질병의 영은 떠나갈찌어다. 가계를 묶고 있는 어둠의 영은 떠나갈찌어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속에 붙어있는 분노의 영은 떠나갈 것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음란의 영, 거역의 영, 사악한 영들은 이 시간에 떠나갈찌어다. 

2. 돈에 미친 종의 주인이 나옵니다.  

사람이 살게 되었는데, 미친 여종을 고쳐주었는데 소고기 근이라도 사들고, 계란줄이라도 매고 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해야 옳았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돈에만 눈이 어두워진 주인은 여종이 벌어들이던 복채가 끊어졌다고 노발대발, 폭행, 고소 고발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이 주인에게 있어서 여종은 한 인격체가 아니라 상품에 불과했습니다. 돈에 미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주인들”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여기 재물이란 단순한 돈이 아닙니다.

마태 저자는 재물, 맘몬(manmon)이란 단어로 소문자로 쓰지 않고 대문자 Manmon 즉 돈 귀신, 재물귀신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왜요? 재물이 단지 재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지배하는 신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만큼 강력한 신이냐? 하나님과 견줄만큼 강한 신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돈 너무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간이 돈 앞에 그토록 무력한 이유는 돈에 신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돈에는 인간을 조종하는 힘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초점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신앙의 감격을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지성적으로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 돈만 보면 힘없이 무너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아가 인간이 돈을 사랑하게 되면 돈을 신으로 섬기게 됩니다. 인간은 돈의 위력을 빌리기 위하여 스스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운명을 맡기게 됩니다. 

사단이 돈을 흔들며 하는 말이 있습니다. 

① 돈은 네가 번거야. 네 거야. 아닙니다.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② 사단은 유혹합니다. 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아닙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돈보다 소중한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③ 사단은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5:10)

④ 사단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도 일단 유보하라고 유혹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3. 편견과 전통에 미친 재판관이 나옵니다.  

피고가 유대인이란 말만 듣고 시비곡직을 가릴 필요없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고 옥에 가두어 버린 편견의 노예입니다. 이런 선입주견에 매이게 되면 가장 냉정하고 공정해야 할 법관까지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호된 책망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전통 집착증 환자들이었습니다. 좋은 전통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좋은 전통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전통주의자들은 전통이 진리와 복음을 대신합니다. 전통이 말씀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해 버립니다.

어떤 교회에서 카펫을 깔게 되었는데 빨간색으로 깔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녹색으로 까는게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위원회를 만들어서 토의를 하는데 빨간색 보혈의 색까지 운운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색깔이 빨간 색깔이다. 십자가의 색깔이다. 녹색은 희망의 색깔이요 새로운 미래의 색깔이요 성장의 색깔이다. 싸움이 커져서 두 교회로 나뉘어 지게 된 것입니다. 빨간색으로 깔아야 된다는 사람이 나가서 빨간 십자가 교회를 세웠고, 녹색으로 깔아야 된다는 사람은 늘푸른 교회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IV. 바울은 무엇에 미쳤나?

1. 성령에 미친 사람

제 곁에 사도 바울 선생이 계시다면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뭔가에 붙잡혀 살아가는데 선생님도 뭔가에 미쳐 살아가십니까? 선생님도 미쳤다면 그들과 뭐가 다를바 있습니까? 
“아닐세. 신앙이란 미쳐야 할 것에 제대로 미치는 거야.”

선생님 그러면 선생님의 위치였다면 얼마든지 편하고 좋은 곳에서 목회하고 전도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핍박이 심한 이 곳 빌립보에 오셔서 이 고생을 하십니까?

사도 바울 선생이 대답을 합니다. 
“나도 처음부터 빌립보에 갈 생각을 아니하고 좀더 편한 아시아에서 일하길 원했지. 그러나 성령이 허락하시지 않았어. 비두니아에 찾아가 복음을 전하길 원했으나 성령의 결재를 받지 못했지. 드로아에서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는데 나를 유럽으로 부르는 간절한 요청이 있었어. 나는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 비전에 미친 사람이라네. 나는 성령님이 너무 좋아. 성령에 미친 사람이라네.”

2. 사랑에 미친 사람

또 제가 두 번째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빌립보에 온 것까지는 그렇다 치고 악귀에 붙잡힌 여종 하나 못 본 체했다고 해서 누가 책잡을 사람도 없고, 그 귀신들린 여종 하나 고쳐주었다고 표창 할 일도 아닌데 그냥 복음이나 전하면 될 것이지 왜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십니까?”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18절에서 대답을 합니다. 
“나도 그 일로 심히 괴로웠다네. 처음에는 나도 그냥 지나쳐도 보았지.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눈을 감겨 주지 않으셨다네. 그 처참한 모습을 생각할 때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 나 사도 바울은 예수 사랑에 미쳐 살아가는 사람이야. 강한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도와줘야 될 사람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달려간다네.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미쳐 산다네. 예수 사랑에 미친 사람, 하나님의 사랑에 미쳐 살아가는 사람이지.” 

3. 말씀과 사명에 붙잡힌 사람

세 번째 사도 바울 선생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한 가지만 더 물어 보고 싶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거야 선생님의 일이니까 그렇다 치고 좀 쉬면서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밤도 없고 낮도 없고 풍랑도 없고 파도도 없고 감옥도 없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나 사람 앞에서나 가정에서나 성전에서나 그렇게 미친 듯이 복음 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 선생님이 대답합니다. 
“이보게 류 목사. 나도 매를 맞으면 아파. 밤잠을 자지 못하면 피곤해. 먹지 못하면 배가 고파. 그러나 이게 나의 사명인걸 어떡하겠나. 나의 달려갈 길을 끝까지 가려는데 어찌 낮이 있고 밤이 있을 수 있겠는가? 편안한 자리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풍랑이 내 앞을 가로막을 수가 있으며 감옥이 어찌 내 앞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말씀에 미쳐 살아가는 말씀의 종일세.” 

여기 “붙잡혔다”는 원문의 뜻은 그런 뜻입니다. 압착했다. 뭔가 강한 힘이 짓눌러서 툭툭 터진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참기름 짜는 걸 보니까 참깨를 달달 볶아서 보자기에 싸서 큰 절구통 속에 집어 넣어요. 거기다 지렛대 같은 걸 박아 놓고 큰 돌멩이를 올려놓고 짓누릅니다. 그러면 볶아진 참깨들이 압착을 이기지 못해서, 짓눌려서 으깨지고 부서져서 밑으로 기름이 뚝뚝뚝뚝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붙잡힌다. 압착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무게가 나를 짓누를 때, 하나님의 말씀의 무게가 나를 압착할 때, 환상이 나를 사로잡을 때, 주의 은혜가 나를 감동할 때, 그 뜨거운 감동을, 무거운 힘을, 능력을, 위대함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입을 열고 손 발을 벌리고 달려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에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V. 제대로 붙잡혀야 산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지요. 

10대는 사랑에 붙잡히고, 20대는 인기와 야망에 붙잡히고, 30대는 사업과 일에 붙잡히고, 40대는 소유와 정욕에 붙잡히고, 50대는 권세에 붙잡히고, 60대는 명예에 붙잡힌다고 합니다.
어차피 미쳐야 산다면 바른 곳에 미치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빌3:7-8) 

1950년대초 태어남 - 50만 그리스도인
1970년대초 대학생 - 150만 그리스도인
(20년만에 3배 성장)
1990년대초 교회개척 - 850만 (20년만에 5-6배 성장)
또 다른 20년 - 잃어버린 20년
             ⇊
앞으로 10년 20년?
잃어버린 10년 20년?
아니면 다시 일어서는 20년?

비행기는 이륙하려고 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 가장 많은 기름이 소모된다고 합니다. Full trust - 모든 불기둥을 잡아 당겨놓는 것입니다. 가장 많은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지요.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침체의 늪을 헤매는 사람이 이륙하기 위해서는 전에 없는 뜨거운 기도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무기력한 성도로 전락했다가 능력있는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에 없는 말씀에 사로잡히는 새로운 계기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불길을 잃어버리고 냉냉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커다란 성령의 기적을 위해서는 전에 없는 뜨거운 말씀에 사로잡히고 뜨겁게 기도하는 일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한소망교회, 한국교회, 한민족이 일어날 때입니다. 
저는 이 교회를 시작할 때에 그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땅 바닥을 벌벌 기어다니는 교회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제 목회가 벌떡 일어서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가 무력한 교회가 되어서 땅바닥을 기는 교회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늘을 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늘을 나는 목회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제 목회가 이륙하게 하시고, 부족한 종이 섬기는 교회가 하늘을 날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침체된 한국교회를 살리고 민족을 살려내게 하시옵소서.” 

20년전 찬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던 그때의 기도를 부족한 종은 2012년 다시 드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다짐과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 이 교회를 살려주십시오. 이 교회를 살리는 것은 한국교회를 살리는 것이고 민족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소망 가족들을 쓰시고 저들의 기업들을 쓰시고 이 교회 젊은이들을 쓰시옵소서.” 새로운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묶고 있던 악한 사단들이 얼마나 몸부림을 강하게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손발을 꽁꽁 묶어서 꼼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감옥에서도 사도 바울 일행은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한국교회 한민족을 살리기 위해 전에 없는 뜨거운 기도를 해야될 것이며, 전에 없는 뜨거운 찬미를 할때입니다. 

마닐라에 있었던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로잔대회에서 중국의 조지 첸이라는 86세 할아버지 한분이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18년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14년동안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인분구덩이를 치우던 할아버지였습니다. 86세 할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세계교회 지도자들 앞에서 조목조목 자신이 겪어왔던 삶의 자국을 간증하고 있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더니 이 사람은 염병들은 사람이다. 이 사람을 다른 사람하고 붙여선 안되겠다. 혼자 두자.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인분을 치우게 된 것입니다. 인분 구덩이에 들어가 보면 코를 찌릅니다. 푹푹 빠지는 인분 구덩이 속에서 금방이라도 발이 함께 썩어 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넘어지는 순간에는 온 몸이 인분 구덩이에서 뒹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는 찬송하고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습니다. 

그런 얘기했습니다. “인분 구덩이에 들어가는 시간이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감옥에 있을 때는 찬송도 기도도 큰 소리로 할 수 없었는데 간수들이 아무도 그 냄새나는 자리에 오려하지 않기 때문에, 수감원들도 그 어느 누구도 가까이 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인분을 치우는 그 시간에는 전능한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껏 부를 수 있었습니다. 큰 소리로 12억 중국 동포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교회를 가슴에 끌어안고 마음놓고 찬송하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모일 때마다 찬송을 불렀지요. 그리고는 중국말로 찬송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는 가장 많이 불렀다는 찬송 442장 1절을 불렀습니다. (통499장)

♪ 1.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그리고 마지막 3절을 부를 때는 거기 모인 4천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함께 목놓아 울며 찬송을 각자 자기 말로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 3.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복음의 기쁨은 나를 감옥에 가두지도 못했습니다. 사단은 이미 나를 구덩이 속에 쳐 넣기 원했지만 나는 거기서 천국동산을 맛보았습니다. 예수안에서, 복음안에서, 성령안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천국을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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