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 21:4-9)

첨부 1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 21:4-9)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생활 말미에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가나안 땅 근처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으로 가려면 에돔이라는 나라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에돔에 정중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을 테니 지나가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에돔이 완강하게 거부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먼 길을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향해 먼 길을 우회하기 위해 호르산을 출발했습니다. 할 수 없이 자기들이 왔던 광야 길로 되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 여기저기서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합니까? 여기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고 이 끔찍한 음식 곧 만나도 진저리가 납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불평과 원망을 들으시고 화가 나셨습니다. 그래서 불뱀을 보내셔서 저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뱀에 물린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서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자기들이 죄를 지었으니 제발 여호와께 기도하여 뱀을 물리쳐 달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저들의 청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놋쇠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뱀에 물린 사람은 그것을 쳐다만 보면 산다고 알리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 말씀대로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듣고 순종하여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은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사람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 뱀이 나옵니다. 하나는 불뱀이고, 다른 하나는 놋뱀입니다. 둘 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불뱀과 놋뱀을 보내셨을까요? 이 뱀들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을까요?

불뱀

불뱀이란 문자적으로는 ‘불붙은 뱀’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 지역에 널리 분포하던 독사의 이름입니다. 등에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있어서 그렇게 불렀습니다. 또한 물리게 되면 온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높은 열이 생기며 죽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불뱀을 보내셔서 물려 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불뱀을 보내셔서 저들을 물려 죽게 하셨을까요? 본문 5절을 보면 그 답이 분명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바로 원망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아주 특별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맛보지 못했던 신비한 음식 만나를 매일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반석에서 나오는 신비한 암반수를 마시고 있습니다. 게다가 신비하게도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자기들을 인도합니다. 이런 아주 특별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따라 가나안으로의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감사는커녕 원망을 늘어놓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자기들을 아주 특별하게 대해 주시는데 감사는커녕 원망을 늘어놓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을 까요? 아주 특별한 호의를 베풀고 계신데 감사는커녕 원망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불뱀을 보내신 것입니다. 감사해야 할 사람이 감사대신 원망할 때 불뱀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글 중에 <건축자의 잘못일까?>라는 것이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어렸을 때 집에 좋은 도자기들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도자기들을 아끼며 소중히 여겼습니다. 톨스토이의 여동생은 그 도자기들 중에서도 가장 예쁜 것을 달라고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졸랐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졸라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동생은 정말 떼를 쓰다시피 졸랐습니다. 아버지는 할 수 없어서 딸이 좋아하는 도자기를 주었습니다. 여동생은 너무 기뻐서 그 도자기를 움켜쥐고는 톨스토이에게 자랑도 하고 약도 올려 주려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톨스토이 방문 앞 문턱에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그 도자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 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그러자 여동생은 조각난 도자기를 바라보면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뜻 밖에 원망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우리 집을 지은 사람이 누구예요. 누가 우리 집을 이렇게 지어서 나를 넘어지게 했어요” 

훗날 톨스토이는 원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 여동생이 생각나서 칼럼을 썼습니다. <건축자의 잘못일까?>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자기를 돌아보기 보다는 남의 탓을 합니다. 다른 누군가를 원망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영적인 질병입니다. 이름하여 ‘원망병’입니다.
우리가 이 원망병을 고쳐야 합니다. 이 원망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불뱀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불뱀을 던지시기 전에 빨리 이 원망병을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원망병에 걸리게 되는 주요 요인이 있습니다. 

4절을 보면,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에돔을 우회하기 위해 호르산을 떠나 멀리 아라바 광야로 나가게 되자 마음이 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기대가 무너지게 되자 마음이 상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게 되자 마음이 상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이 상한다는 표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 ‘카차르’(kachar)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짧다”, “참지 못하다”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직역해 보면 “마음이 짧아졌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상하게 됐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짧아졌다는 것인데, 이것은 마음속에 인내심이 부족하여 낙심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군을 하면서도 황량한 아라바 광야 길이 나타나니까 그 마음이 짧아지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낙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주 특별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기들이 감당할 수 없는 길이 나타나자 그 마음이 짧아지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낙심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그 마음이 짧아지게 되자 원망병이 다시 재발하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낙심하게 되자 다시 원망병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도 자칫 우리의 마음이 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고 지금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상활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기대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의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토록 기도했는데 응답이 지연될 때 우리의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의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짧아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인내가 바닥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원망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불뱀을 만나지 않게 됩니다.

놋뱀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어가자 모세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모세에게 원망하던 ]사람들이 염치도 없이 모세에게 간절히 중보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뱀이 사라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행히 모세가 저들의 부탁을 기꺼이 듣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응답하셨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말씀대로 불뱀에 물린 자들이 놋뱀을 쳐다본 모두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셨던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구원을 청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번에는 놋뱀을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놋뱀을 세우게 하셨을까요? 8절에 분명하게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불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 때문에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징계하시기 위해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서는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놋뱀을 만들어 높이 달게 하시고 그것을 보는 자마다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사람들을 놋뱀으로 살리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원망하다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사람들에게 놋뱀으로 다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불뱀으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또 놋뱀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래서 불뱀으로 쓰러졌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놋뱀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놋뱀은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이요,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입니다.

미국의 뉴욕 트리니티 침례교회 맥도날드(Gordon MacDonald) 목사님이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써놓았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부모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램프를 떨어뜨린 적이 있었는데, 바닥에 부딪힐 때 세라믹으로 된 몸체 한 쪽에 그만 금이 가고 말았다. 그때 방안에 혼자 있었기에 나는 램프를 다시 올려놓고는 금 간데가 보이지 않게 슬쩍 돌려놓았다. 

그것은 며칠 동안 그대로 놓여 있었고,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이야말로 부모님이 램프가 깨어진 것을 발견하시고는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내시겠구나'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부모님들이 램프에 가까이 가실 적마다 나는 몸이 얼어붙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깨진 것을 발견하셨을 때 그분들이 보이실 반응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두려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두려움은 점점 더 심해졌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어머니께서 램프의 먼지를 털다 금을 발견하셨다. '네가 그랬니?' 나는 '네'라고 겨우 대답을 하고 모든 것을 정직하게 말씀 드렸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것을 부엌으로 가져가셔서 갈라진 부분을 접착제로 붙이셨을 뿐이다. 램프는 다시 단단히 붙었고, 몇 시간이 지나 마르자 다시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금간 자국은 항상 보였으나 분명 램프는 다시 회복된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제구실을 다 했다. 

무너진 세계는 언제나 금간 자국을 가지고 있어 우리로 하여금 과거를 떠 올리게 만든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어머니가 램프에 사용하셨던 접착제와 같은 것이어서, 다시 붙은 부분을 때로는 원래보다 더 견고하게 붙여 준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다시 기회를 주시는 은혜입니다. 깨진 램프처럼 죄짓고, 실수하고 무너져 내린 사람들을 부르셔서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더욱 주를 위해 귀히 쓰임 받게 해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금간 자국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접착제로 더 견고하게 회복된 부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놋뱀은 바로 우리를 다시 든든하게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놋뱀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실수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주저앉았더라도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놋뱀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모세가 장대 위에 달아놓았던 바로 그 놋뱀이 특별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의 행동이 특별했기 때문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당시 장대에 높이 달렸던 놋뱀은 그 자체로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손쉽게 만들어 달 수 있었던 것이 놋이었기 때문에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달았기에 놋뱀인 것입니다. 나무로 만들 수도 있었고, 흙으로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치유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놋뱀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음으로 놋뱀을 쳐다 본 사람들의 행동 그 자체로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무엇을 쳐다본다고 온 몸에 퍼진 독이 해독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치유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저들의 행동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저들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었을까요? 한 마디로 믿음 때문입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저들을 고친 것입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물린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놋뱀을 쳐다보자 해독이 되고 저들이 살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하셔서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믿음으로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셨던 십자가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를 사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놋뱀의 능력은 다름 아닌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그 놋뱀도 별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도 믿음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놋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약속대로 다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놋뱀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