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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쓰임 받는 그릇 (고후 4:7, 딤후 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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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 받는 그릇 (고후 4:7, 딤후 2:20-22)  

예수님은 바울을 거꾸러뜨리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삼았을 때 행9:15을 보면 바울 자신을 그릇이라고 하였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였다. 어떤 그릇이라 하였는가?  

1. 질그릇이라 하였다. (고후4:7)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질그릇이라고 하는 고백은 겸손한 자기 성찰에서 나온 것이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토기다. 금이나, 은이나 나무라는 재질로 만들어지지 못한 토기로서 이 참된 의미는 연약성을 뜻하는 것이다. 질그릇은 헬라어로 스쿠오스(Skeuos)라 하는데 깨지기 쉬운 육체적 약함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몸에 질병의 가시를 안고 사는 바울로서 육체라는 것은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였다. 멀쩡한 사람이 질병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가오면 바울은 부서질 것 같은 인생을 자주 경험하였다. 그래서 자신을 쉽게 깨어지는 질그릇이라고 하는 것이 제일 적합한 표현인 듯 하다. 
  

2. 하나님이 창조한 그릇이라 하였다.

그릇은 저절로 빚어지거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릇은 언제나 흙을 만지는 토기장이의 손에 의해 모양이 완성된다. 그릇은 만드시는 토기장이에게 항의할 수 없다. 순전히 토기장이의 머리 속에 담긴 형상의 설계도에 의해 그릇이 되어진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이 토기장이시다. 우리는 만들어졌다. 내 얼굴이 잘 생겼든, 못 생겼든지 성형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릇은 빚어주신 분께 불평할 수 없다. 

롬9:20~21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 딤후3:20에서도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라는 것은 만드시는 분, 하나님의 손에 의해 빚어진 그릇이라는 창조 신앙의 고백이 전제된 것이다. 내 인생의 창조자, 내 인생에 설계도를 디자인하고 그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고백이 되는 셈이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다.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운 최고의(시8:5) 그릇으로 만드셨다. 
  

3. 그릇은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가치가 나타난다.

귀한 금 그릇도 독약을 담고 있으면 독 그릇이 되고 천한 나무 그릇도 보약을 담고 있으면 보약 그릇이 된다. 그릇의 재료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담고 있느냐는 것이 그릇의 가치를 높인다. 바울은 분명 보배를 그릇에 담았다고 하였다. 즉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지만 복음이라는 보배, 사람을 살려내고 자유케 하는 빛나는 보배를 지닌 보물 그릇이라고 하였다.

인생은 그릇이다. 그러나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그릇을 다루고 보호하는데 차별을 가져온다. 보물이 담겨 있는 그릇이면 보물함이다. 정말 소중하게, 가치있게 다루게 된다. 

요사이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는 책을 읽었다. 주인공인 김혜영 씨는 134cm의 작은 키로 척추 장애를 지닌 여성이다. 그런데 그 여성이 14살때 월급 3만원에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어린이가 편물을 14시간씩 짜면서 직업훈련원에 다녔다.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대학교를 검정고시로 합격하고 지금은 미국 컬럼비아대학 석사 학위를 받은 국제사회복지사가 되었다. 

KBS 이금희 아나운서는 2011년 6월 14일에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멘트로 생방송을 마쳤다. “때로는 존재 자체만으로 기적을 믿게 하고 존재 자체만으로 희망을 품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국제사회복지사 김혜영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김혜영은 정신 질환을 앓은 어머니, 술에 취하여 자신을 벽으로 내던지고 이후 스스로 자살해 버린 아버지, 그 불행의 틈바구니 속에서 척추 장애인이 되고 키가 자라지 않고 식모로, 편물장이로 인생을 개척해 간 여인이다. 김혜영 씨가 오늘 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의 보잘 것 없는 키와 인물 때문이 아니다. 그의 그릇 속에 담겨진 삶에 대한 비전과 열정, 최선을 다한 삶 때문이다. 그녀는 아프리카에 자원 봉사자로 나아가 14년간 자원 봉사를 하였다. 그의 그릇 속에 담긴 삶의 마인드가 아름답기에 그 보배의 찬란함으로 인해 박수를 받는 것이다. 

그릇의 가치는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삼손이란 인간은 금 그릇, 은 그릇 같은 귀한 그릇이었으나 여자에 빠져 그릇 속에 담고 있는 것이 정욕이었다. 성공할 인생이 실패한 인생이 된 데는 담아야 할 보배를 분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릇의 생김새, 그릇의 크기, 그릇의 재료 등 이런 것들 때문에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 담은 인생이 되면 소중하고 주목 받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딤후2:21은 귀히 쓰는 그릇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귀히 쓰는 그릇이든, 천히 쓰는 그릇이든 자기를 깨끗케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깨끗해야 소중한 것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그릇을 누가 쓰겠는가? 요강 그릇을 쓸 수 있는가? 불로 녹여 깨끗하게 만들면 쓰여지게 된다.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

첫째, 피하라. (딤후2:22上)

딤후2:22上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여기서 피할 것은 청년의 정욕이다. 이것은 방종, 이기적 야심, 혈기, 고집 센 교만, 그리고 변덕스러운 충동을 뜻한다. 청년의 정욕이란 성숙하지 못하여 나오는 것을 피하라는 것이다. ‘피하다’는 헬라어 퓨고는 도주하여 안전을 누리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가족이 헤롯의 진노를 피하여 도망쳤을 때, 모세가 바로의 진노를 피하여 도망쳤을 때 사용된 단어다. 즉 영적인 위험을 당하지 않도록 도주하라는 것이다. 죄를 달콤하게 보지 말고 바로와 헤롯의 진노 같은 혈기와 충동질로 올라오는 정욕을 타협하거나 그대로 보려하지 말고 가능한 도주하라는 것이다. 죄를 짓게 하는 것에서 도망하라. 그것이 피하라는 뜻이다.

  
둘째, 함께 하라. (딤후2:22中)

딤후2:22中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신앙이란 함께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일 때 나도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되고 깨끗한 삶이 이루어진다. CM(속회)는 함께 하는 현장이다. 신앙은 혼자서 고독하게 세워나가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하는 성도의 만남과 교제는 중요하다. 깨끗하게 되는 지름길은 다른 성도와 같이 호흡하려는 것이다. 성도들이 회사에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유혹에 넘어진다. 대처하는 방법도 모르고 극복하는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를 올바르게 따르는 성도와 함께 교제한다. 함께 신앙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 만나게 된 성도가 부정한 명령을 이겨낸 것, 신앙적으로 행동한 것을 통해 나도 그렇게 살도록 결단하게 된다. 깨끗하게 살려면 교제의 대상이 중요하다. 운동을 해도, 취미 생활을 해도, 교회의 청소를 해도 순전한 마음(Pure Heart)을 지닌 성도와 함께 하라. 그러면 탈이 없다.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살 수 있다.
  

셋째, 따르라. (딤후2:22下)

딤후2:22下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하였다.

‘따르라’는 말은 헬라어로 디오코다. 디오코의 뜻은 ‘추격하다’ 이다. 열정을 가지고 절대 놓칠 수 없다는 확신에 차서 끈질기게 추구한다는 뜻이다. 성도는 깨끗해지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의를 따르라. 믿음과 사랑, 화평을 놓치지 말라. 전력을 다해 의를 추구하라. 믿음을 추구하라. 두 가지 갈림길이 요구될 때마다 ‘내가 사랑을 추구하는가, 화평을 추구하고 선택하는가?’ 하며 자문하고 끈질기게 신앙인의 삶의 길로 가라. 참 신앙은 삶을 드리는 것이다. 

삶을 드리고 헌신할 때 받는 축복은 거룩하다. 죄는 관여하지 못한다. 의를 따르는 이가 불의를 저지를 수 없고 믿음을 따르고 있으면서 불신에 목욕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삶, 화평을 만드는 삶을 위해 부지런히 헌신하면 그 순간 미워하는 삶, 싸우고 분쟁하는 삶을 동의할 수 없다. 죄를 이기고 깨끗하게 되는 삶은 ‘디오코’의 삶이다. 의를 끈질기게 따르는데 있다.   

우리는 예수의 보혈로 원죄와 자범죄를 씻김 받는 것으로 깨끗하게 되었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보혈로 덮힘 받은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피하고, 함께 하고, 따르는 이 세 가지의 구체적인 생활의 삶이 나타나야 한다. 교회는 이제 신앙의 삶을 사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하나님이 빚어내려는 그릇은 바로 깨끗한 그릇이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그릇은 깨끗하게 된 그릇이다. 깨끗하면 쓰임 받고 깨끗하면 리더가 되고 깨끗하면 축복이 된다. 

교회창립 97주년을 맞이하여 건강한 교회, 자랑스런 존귀한 교회가 되자. 깨끗한 삶을 지향하라. 금년 5월 28일부터 영적 리더자 학교를 연다. 한 사람당 12만원이 들어가지만 6만원의 등록비를 내고 8회에 걸쳐 온종일 훈련을 받는다. 교회창립 100주년을 맞이할 교회가 나라와 가정, 지역 사회에 복이 되기 위해 깨끗한 리더가 되는 훈련 학교다. 쓰임 받는 그릇이 되는 토기 학교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생애를 목표로 삼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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