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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적 경제부흥 십계명(2) (잠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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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경제부흥 십계명(2) (잠 10:22)

성경적 경제부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또 찾으시며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십시오. 본문과 잠 22:4 말씀이 실제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본문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잠 22:4입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하나님이 주신 경제부흥을 경험한 두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우리교회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모리가나 주식회사의 사장인 면목제일교회 조기원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1990년, 약 22년 전 신촌 세브란스병원 중축 공사장에서 목재 철거작업을 하던 중 목재가 무너지면서 철근들이 솟아 있는 곳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병원에 실려가 6시간 30분 동안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온 몸이 철근에 찔려 장이 세 군데나 파열되었고, 한 군데는 수술을 할 수 없어서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절망한 그는 ‘하나님만이 나를 살리실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다행히 생명은 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치료받고, 새 사업으로 축복도 받는 기적을 바라고 산동네의 교인이 50명 밖에 안 되는 조그만 교회로 새벽예배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새벽예배가 끝나면 교회 청소를 했습니다. 또 집집마다 전도지와 주보를 나눠주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교회 성전 건축을 할 때에도 빚을 내어 5천만 원 헌금을 했습니다. 22년 전 5천만 원이면 아주 큰돈입니다. 주위의 친척들과 이웃들이 그에게 ‘예수에 미쳤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나를 통해서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로부터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아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기가 안쓰러워 동의보감을 읽으며 탈모증에 대한 것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검정콩과 검정참개 등의 검정 색소를 지닌 곡식을 갈아서 6개월간 복용을 시켰더니 다시 솜털처럼 모발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탈모증을 치료하는 제품을 개발하여 사업을 하라는 뜻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毛(모)리가나’라는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일본, 미국에 상표 등록을 신청하고 특허출원도 했습니다. 시제품을 일본에 보내어 복용하게 했는데 6개월 만에 효과를 보았다며 연속으로 잡지에 기사가 나고, ‘모리가나’ 열풍이 일어났습니다. 일본, 미국, 전국에서 바이어들이 찾아와 천만 달러를 수출했습니다. 

명동과 남대문 등지에도 관광객들이 찾아와 ‘모리가나’를 찾았습니다. 건강도 주시고, 재물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충성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조기원 장로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경제부흥을 경험한 분입니다.

또 한 분 소개하겠습니다. 요즘 우리가 저녁에 0시부터 2시까지 기도회를 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벤처기업 ‘JW바이오'의 박영호 사장님입니다. 

국민일보에 ‘크리스쳔 CEO’ 라는 섹션란에 실린 내용입니다. 타이틀은 “제 최고의 마케팅 전략은 기도죠”입니다. 믿음이 없는 분이라면 “뭘 갖다 붙일 것이 없어 마케팅 전략에다가 기도를 갖다 붙이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박영호 사장은 경북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대구 외국어대 전임교수로 임용됐습니다. 그는 교수가 될지 아니면 사업가가 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매일 저녁 0시부터 2시까지 1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물었습니다. 결국 응답을 받고 2002년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크리스쳔 기업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벌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쓰고 싶었습니다. 기도하며 맨손으로 투자자 50여명 모았습니다. 30억 원 투자의 모든 과정을 기도로 풀어갔습니다. 그는 향후 마케팅 전략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기도!’라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결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OK 싸인 하시면 그 일이 OK됨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결재를 받는데 전심을 기울인 것입니다. 그는 기도하며 성경적 경제부흥을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주일부터 잠언서를 중심으로 성경적 경제부흥 10계명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1-3계명을 말씀드렸습니다. 1.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라(잠22:4). 2.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라(잠 3:9,10). 3. 부지런히 일하라(잠 12:27)
   
오늘은 성경적 경제부흥 4-6계명을 살펴보겠습니다. 


4. 관리(계획)을 잘하라(잠 21:5). 
   
성경적 경제부흥을 경험하려면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우리 둘째 아들이 1학년 때 매일 천 원씩 용돈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하은이가 저에게 한 주에 1만 원씩 용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날 하은이를 테스트하기로 마음먹고 1만원을 용돈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1만원을 받은 하은이가 밤이 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온 동네를 뒤져서 아들을 찾았습니다. 어디서 찾았겠습니까? 오락실입니다. 아들은 1만원을 관리할 능력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받으면 그것이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적 경제부흥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탕자가 실패했던 대표적인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아버지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아버지가 자기에게 준 유산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에게 받은 재산을 잘 관리했다면 돼지 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탕자의 실패의 원인 중에 하나는 관리의 실패입니다.
   
요셉이 7년 흉년 중에도 애굽에 양식이 넘치게 했고, 주변 나라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것의 비밀은 관리입니다. 애굽에 7년간 풍년이 들었을 때 곡식의 5분의 1을 거두어 저장했습니다. 풍년 중이라 세금을 20%나 거두었지만 국민들은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 이후 7년간 흉년이 들어서 추수 할 수 없을 때에 관리해 두었던 양식을 풀어서 사람들을 먹여 살렸던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을 받고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은 돈을 계획성 있게 쓰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꼭 쓸 돈, 쓸 돈,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돈, 안 쓸 돈 등을 알고 거기에 맞게 처신했습니다.
   
관리를 잘 하기 위한 지혜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용 카드 사용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 당장 현금내지 않는다고 카드 사용하기를 즐긴다면 그는 마귀한테 속아서 머지않아 빚을 지게 될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카드남발이 신용불량자를 생산한다고 판단해서 신규카드 만드는 것을 제한한다고 합니다. 물건을 카드 할부로 구입하면 매달 지불액이 얼마 안 된다고 절제 없이 소비하면 안 됩니다.
   
배고플 때는 쇼핑하지 말아야 합니다. 배가 고프면 욕구불만이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배가 고픈 상태에서 쇼핑을 하면 과소비를 하게 됩니다. 어떤 지혜로운 사람 쇼핑을 하기 전에 배를 먼저 채우고 쇼핑을 한다고 합니다.
   
일확천금을 노리지 말아야 합니다. 도박을 해서 돈을 따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 생각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복권을 사서 큰돈을 얻을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사에 의하면 복권에 당첨되어 큰돈이 생긴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해 졌다고 합니다.
   
불필요한 것은 구매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은 TV홈쇼핑 채널이 많이 생겼습니다. 홈쇼핑이나 신문에 실린 광고는 소비자를 유혹하게끔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도 홈쇼핑 방송을 보고 있으면 구매하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어납니다. 요즘은 홈쇼핑 방송에서 나오는 물건도 좋은 것이 많다지만 간혹 방송을 시청할 때 받았던 느낌과 실제 물건을 받아본 후 물건의 질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홈쇼핑을 통해서 바지 몇 벌을 샀습니다. 바지 3벌인가를 몇 만원에 아주 싸게 구입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물건을 받아보니 도저히 입을 수 있는 바지가 아니었습니다.
   
물질 관리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성경 잠 21:5입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부지런만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경영을 해야 합니다. 경영이란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계획을 세워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수입이 얼마인지 거기에 맞춰서 지출 예산을 짜야 합니다. 먼저 헌금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가장 먼저 십일조를 떼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선순위가 확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각종헌금을 구별시켜야 합니다.
   
빌 4:19에서 말씀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의 채우심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먼저 드릴 것을 구별시켜야 합니다.
   
고정 지출 즉 집세라든지 세금, 공과금 등을 계산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만 얼마라도 저축해야 합니다.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노후 대책을 세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노후 대책은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노후가 준비 된 분들은 준비된 만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이 분명한 분들 가운데는 ‘곧 주님 오실텐데 저축은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사고나무를 심는다는 심정으로 노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반드시 있지만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개미에게 지혜를 배우라고 말합니다. 개미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잠 6:6-8을 보면 여름 동안에 겨울을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는 것입니다. 미국의 갑부였던 록펠러는 자신의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0%는 십일조로 바치고, 10%를 저축하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유동적인 것, 음식이라든지 오락, 여행 등을 짜는 데는 수입 지출이 맞지 않으면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잠 21:20입니다.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지혜롭게 관리를 하십시오. 그래야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있는 대로 다 써버리면 정작 필요할 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의 사명이 있습니다. 눅 16:8에 보면 청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주인에게 칭찬을 듣습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소유가 아니라 관리입니다. 원칙적으로 내 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잠시 맡겨주신 것입니다. 내 돈을 내 맘대로 쓴다고 생각하면 큰 죄입니다. 그것은 비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들을 잘 관리하는 지혜로운 청지기들이 되어야 합니다. 


5. 구제를 하라(잠 11:24,25).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기독교 신앙의 3대 경건 생활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입니다. 이 세 가지는 다 귀한 것인데 그 중에 구제는 성경적 경제부흥의 비결입니다.
   
우리가 구제를 힘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몇 가지 이유를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구제는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입니다.

잠 11:25입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성경에 나오는 나눔의 법칙은 신기합니다. 나누면 없어져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풍족해집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거두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잠 19:1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시는데 원금만 갚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자까지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제하면 풍족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의 일입니다. 큰 아들이 제게 컴퓨터를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그 아이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끈질기게 저에게 요구합니다. 저는 아이가 원하는 컴퓨터를 사주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아빠는 네 컴퓨터를 사줄 능력이 없어. 하나님께 기도해봐” 

제 말을 들은 아들은 제 앞에서 잠간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더니 “아빠 하나님이 4학년 되면 주신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4학년이 되었을 때 아들이 받은 응답대로 성남에 사시는 집사님 한분을 통해서 응답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집사님은 이사할 때 쓰려고 모아둔 300만원을 우리 아들 컴퓨터 사는데 쓰라고 저에게 주었습니다. 저는 그 돈을 받는 순간 ‘150만원은 컴퓨터를 사고, 나머지 150만원은 친구교회에 헌금해라’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를 판매하는 집사님이 저에게 “큰 아들에게만 컴퓨터를 사주고 작은 아들을 사주지 않으면 작은 아들이 상처를 받습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집사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성령의 감동에 불순종하고 집사님의 말대로 큰 아들과 작은 아들 모두에게 컴퓨터를 사주었습니다. 얼마 후 제 친구 교회에서 저를 부흥회 강사로 초청을 해서 제가 부흥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저에게 다시 감동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난 번 150만원을 이 교회에 건축 헌금하라는 감동을 주었는데 네가 불순종하였다. 이제 이번 부흥회 때 네가 그 교회를 위해서 500만원을 헌금해라” 150만원을 순종했으면 거기서 끝났을 텐데 불순종하니 500만원을 하라고 다시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저는 할 수 없이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500만원을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때는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씨앗으로 삼아서 풍성한 열매를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 당시 형편이 힘들었지만 말씀에 순종해서 500만원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하나님은 제가 드린 500만원을 씨앗으로 사용하셔서 14배로 갚아주셨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어떤 분이 제게 2천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그분이 보낸 돈을 시골교회를 세우는 일에 사용했고 나머지는 선교사님들에게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그 다음 해에도 2천만 원을 보내주었고, 또 그 다음 해에는 3천만 원을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그 돈을 힘든 주의 종들과 선교사님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작은 것을 심게 하시고 큰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먼저 심게 하시고 그 심은 것을 씨앗으로 삼아서 풍성하게 공급해 주셨던 것입니다.
   
둘째, 구제는 하나님과의 소통의 문을 열어줍니다.
   
은혜를 체험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과의 소통이 막히는 것처럼 답답할 때가 없습니다. 은혜 체험이 분명한 사람들은 다른 어려움이 좀 있어도 하나님과 소통이 잘 되면 내적인 상쾌함이 있고 새 힘이 넘치지만 하나님과 불통하게 되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소통을 방해 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는 일에 인색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성경 잠 21:13입니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우리가 어려운 사람의 도움을 거절하면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구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분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도르가입니다. 그녀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특별한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여인이 그런 특별한 은총을 입은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행 9:36입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하나님은 그 여인의 선행과 구제를 기억하시고 그 여인이 죽자 베드로를 보내셔서 죽음 가운데서 살려주셨습니다.
   
행 10장에 보면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가 구제를 통해서 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방인 세계에 복음의 문을 여는 귀중한 도구로 사용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내시고 고넬료에게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고넬료와 고넬료가 초청한 사람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다가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처럼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초대교회 성도들은 너무나 확실한 성령의 나타남 때문에 이방인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고넬료가 환상 중에 천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천사가 그에게 한 말입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 10:4) 구제는 하나님과 소통의 문을 열어줍니다.
   
셋째, 구제는 이 땅에서의 축복만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의 질을 결정해 줍니다.
   
마 25장에 보면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그 비유의 공통점은 세상 종말에 관한 내용입니다. 세 번째 비유는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이 세상이 종말을 고한 후 모든 인류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됩니다. 양과 염소입니다. 양에 속한 사람들은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돌아보므로 주님을 돌아본 사람들이고 염소에 속한 사람들은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돌아보지 않으므로 주님을 돌아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전자에 속한 사람들은 복 받을 자들이며 창세로부터 예비 된 영원한 천국을 상속 받게 됩니다. 후자에 속한 사람들은 주님을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이 비유만을 놓고 볼 때 구제를 잘 한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구제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 6:3,4입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 말씀은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 구제를 잘 한 사람들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상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결국 구제는 영원한 세계에서의 자신의 생활의 질을 결정해 주는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넷째, 구제는 참된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 진짜 사랑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늘에서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만 하셨다면 우리는 구원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이 성육신 하시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말로만 사랑하면 안 됩니다. 적극적인 구제 활동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 약 2:15,16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헐벗고 굶주린 형제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말만으로는 안 됩니다. 몸에 쓸 것을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구제가 참된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어느 교회 권사님 한분은 매학기 마다 교인 중에 10가정을 찾아가서 한 가정에 300만원씩 장학금을 준다고 합니다. 대학생 공부시키는 것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한 집에 대학생이 둘만 되어도 가장의 허리가 휘청하잖습니까? 그런 집 10집을 찾아가서 학비에 보태라고 300만원씩 보태주니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에도 이런 분들이 많이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구제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과 교회는 밭입니다. 가시나무 심어놓으면 나도 찔리고 내 아들도 찔리고 손자도 찔립니다. 사과나무 심어 놓으면 나도 사과를 따먹고 내 아들도, 내 손자도 사과를 따먹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따라 구제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줍니다. 

저는 칠곡에 부흥회를 갔을 때 그 교회 목사님의 양복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목사님은 초봄에 난로에 누러 쭈그러든 겨울 양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제가 부흥회가 끝난 후 서울에 올라와서 새벽기도를 하는데 성령의 음성을 들렸습니다. “네가 권목사 양복을 한 벌 해 주어라” 

마침 칠곡에 계시던 권목사님이 서울에 오셔서 저는 권목사님을 저희 교회로 오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준비해 둔 50만 원을 권목사님에게 드렸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은 양복을 심은 저에게 양복을 거두게 하셨는데 3배로 거두게 하셨습니다. 

권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3명의 손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첫 번째 오신 분은 제가 입을 미색 양복을 한 벌 들고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제 몸매가 표준형이 아닙니다. 좀 특별한 체형입니다. 그런데 마치 맞춤처럼 제 몸에 딱 맞는 양복이었습니다. 두 번째 저를 찾아오신 분은 봉투에 50만원을 넣어가지고 오셔서 “목사님 양복해 입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오신 손님은 롯데 백화점에 가서 제가 원하는 양복을 골라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양복 한 벌 값을 드리고 세 번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체험은 우리의 신앙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며 하나님과 더 풍성한 관계로 들어가게 만들어줍니다.
   
지방에서 목회하시다 지금 서울에서 목회를 크게 하시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 목사님께서 어려우실 때 영양실조에 걸려 얼굴이 노리끼리했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집사님께서 목사님께 해 드리라며 귀한 닭 한 마리를 목사님 댁으로 가져 오셨습니다. 사모님께서 감사하며 그것을 받아 폭 고아서 목사님께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일 년에 한 번이나 겨우 먹는 귀한 닭을 먹으려 하는데 “먹을 것을 좀 주시오. 배가 고픕니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여니 아주 험하게 생긴 걸인이 서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속으로 ‘거지가 하필 이때 오냐?’라고 생각하는데, 성령님께서 ‘너는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이런 것 먹을 수 있지만 저 거지는 언제 먹겠느냐?’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들어오시오. 마침 여기 닭 한 마리가 있으니 같이 먹읍시다.”라고 했더니, 걸인이 들어와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니 양손에 닭다리를 들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먹는지 삽시간에 다 먹어버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습니다. 

걸인이 “잘 먹었습니다.”하고 나가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 목사님께서 따라 나가보았습니다. 그 목사님 댁이 외딴 곳에 있어 1km 반경 안에는 집이 한 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혹시 화장실에 갔나 하고 화장실에 가 보아도 없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교회로 돌아와 ‘하나님, 참 이상한 일입니다.’라고 하는데, 마음에 평안이 넘치고 기쁨이 샘솟듯 솟아났습니다. 그 때부터 성경을 읽으면 해석이 잘 되고 설교를 하면 행복이 넘쳐나고 교회도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닭 한 마리를 대접하고 그렇게 큰 복을 받으신 것입니다. 성경적 경제부흥을 원하시면 구제하십시오. 


6. 절약을 하라(잠 21:20). 
   
구두쇠들만 모여 사는 마을에 허씨 가문이 있었는데, 그 가문에서 며느리를 보았습니다. 그 며느리도 구두쇠였는데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살림을 헤프게 산다고 쫓겨났습니다. 며느리가 억울해 하며 친정으로 가고 있는데,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아주머니들이 물었습니다. “아니, 새댁. 왜 가? 왜 가는 거야?”, “아주머니들, 이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나요? 살림을 헤프게 한다고 시아버님이 저를 친정으로 가라고 하셨어요. 친정에 가서 배워 가지고 오라고 하셨어요.”, “새댁이 어떻게 했는데?”, “제가 어제 찹쌀을 팔러 읍내 장에 갔는데, 고깃간에서 마지막 남은 고기라고 자꾸 사 가라고 하지 뭐예요?”, “아이고, 그래서 그것을 샀구먼.”, “사다니요? 제가 누구입니까? 손으로 그 고기를 막 만진 후에 집으로 달려와서는 냄비에 물을 받아 손을 씻어서 그것으로 국을 끓여 아버님께 드렸지요. 그랬더니 아버님께서 꾸중을 하시잖아요.”, “왜?”, “손을 가마솥에 씻었으면 온 식구들이 며칠 간 고깃국을 먹을 텐데 냄비에 씻어서 한 끼밖에 먹지 못했다고 친정에 가서 배워 오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새댁의 말이 끝나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 수 더 떴습니다. “싸다 싸. 동네 우물에 손을 씻었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먹을 텐데, 냄비에 씻고 말아? 그러니 쫓겨났지.” 참 굉장한 구두쇠 마을입니다.
   
여러분! 부자가 3대를 못 간다고 하죠? 서양 속담은 좀 더 고상하게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의미는 같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벌면 아들은 명예를 바라고 손자는 예술을 즐긴다” 결국 아버지가 번 돈을 아들과 손자가 낭비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속담이 실제인 것을 목격했습니다. 저희 교회가 오금동에 있을 때 건물주는 아버지가 오금동에서 농사를 짓다가 지역이 개발되면서 부자가 된 땅부자입니다. 아버지에게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그 재산을 관리하지 못하여 결국은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하는 일 없이 돈을 썼습니다. 식구 수대로 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규모 없이 돈을 쓰더니 결국은 몇 개나 되던 빌딩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 가족이 절약하며 살았다면 지금도 큰 부자일 텐데 일하지 않고 낭비하다가 망한 것입니다.
   
성경 잠 21:20입니다.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여기서 ‘미런한 자는 이것을 삼켜 버리느니라’는 말은 낭비한다는 말입니다. 낭비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돈은 있다고 펑펑 쓰면 안 됩니다. 꼭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머지는 절약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사용되게 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모범을 보인 분이 요한 웨슬레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그리스도인의 경제관’이라는 설교에서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열심히 돈을 버십시오. 둘째, 할 수 있는 한 돈을 모으고 저축하십시오. 셋째, 할 수 있는 한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투자하십시오.
   
요한 웨슬레는 자기가 설교한 대로 살았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헌금 생활의 점진적 변화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놀랍습니다. 회심 첫해에 그의 연간 수입이 30파운드였는데, 그는 생활비로 28파운드(93%)를 쓰고, 헌금은 2파운도(7%)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둘째 해에 연간 수입이 60파운드였는데, 생활비로 28파운드(47%)를 쓰고, 헌금은 32파운드(53%) 드렸습니다. 셋째 해에는 연간 수입이 90파운드였는데, 생활비로 28파운드(31%) 사용하고 헌금은 62파운드(69%) 드렸다고 합니다. 넷째 해에는 연간 수입이 120파운드, 생활비로 28파운드(23%) 사용, 헌금은 92파운드(77%) 드렸다고 합니다. 말년에는 연간 수입이 1,430파운드였는데, 생활비로 30파운드(2%), 헌금은 1,400파운드(98%)를 드렸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그는 많이 번다고 펑펑 쓰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필요한 만큼만 썼던 분입니다.
  
우리가 절약해야 하는 이유는 모우기 위함이 아니라 필요할 때 쓰기 위함입니다. 절약한다고 모든 것에 인색하면 안 됩니다. 쓸 때는 확실하게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마땅히 써야 할 곳에도 인색하면 수전노인 것입니다.
   
미국의 존 머레이는 검소한 생활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아끼고 절약해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어떤 할머니 한 사람이 존 머레이에게 구제금을 요구하러 갔습니다.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낡아서 학교를 새로 짓는 구제위원회의 위원으로써 부자인 존 머레이씨에게 찾아 간 것입니다. 서재에서 글을 읽던 머레이는 촛불 2개를 켜놓고서 글을 읽고 있다가 할머니가 오니까 하나를 훅 꺼버립니다. 그 할머니가 ‘아이구 이 깍쟁이 봐라. 나 만나서 이야기 하는 동안에 촛불 2개 중에 하나를 꺼버리니 이 사람에게 무슨 구제물자 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기왕 왔으니 말을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머레이에게 말했습니다. “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낡아서 새로 짓기 위해서 위원회에서 모금을 하러 왔습니다.”, “아~ 모금 해드려야죠.” 그러면서 당장 수표를 끄집어내어서 5만 달러를 적습니다. 할머니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5만 달러나 주십니까? 내가 들어오니까 촛불 2개 켰다가 하나를 불어 버리는 양반이 어떻게 5만 달러를 줍니까?” 하니까 허허 웃으면서 “책을 읽을 때는 눈이 잘 안보이니까 촛불 2개가 필요하지만 대화할 때는 촛불 하나만 있어도 대화할 수 있지 않습니까? 두개 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나는 이렇게 근검절약해서 모은 돈을 좋은 일을 위해서 쓴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자기의 생활에 근검절약한 사람이 남의 일에도 많이 구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흥청망청 다 써버리면 남에게 도와줄 돈이 없지 않습니까?
   
경제부흥을 시킨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아주 인색할 만큼 절약합니다. 써야 할 곳에는 아낌없이 쓰지만 자신에게는 자린고비처럼 절약합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는 백만장자가 된 후에도 싸구려 여관에 묵었습니다. 비서가 물었습니다. “회장님의 아들은 비싼 호텔에서 묵는데 왜 회장님은 사구려 여관에서 묵습니까?” 카네기가 대답했습니다. “아들이야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니 절약할 수밖에 없지”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회사까지 걸어서 출근 했고, 해외 출장을 갈 때에는 신발 한 켤레와 옷 한 벌을 입었고, 메모지는 이면지를 이용할 정도로 검소하고 절약 했다고 합니다. 부지런하고 검소한 분이었습니다.
   
IMF 때 세계인들은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경제수준보다 자신들을 높게 본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씀씀이가 분수에 넘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우리들은 실질적은 자신의 경제수준보다 씀씀이가 큰 것이 문제입니다. 남들 따라 명품 옷 입고, 명품 가방 들어야 뭔가 된 것 같은 허세를 버려야 합니다. 통장은 마이너스인데 절약하지 못하고 겁 없이 지출하는 잘못된 생활태도를 고쳐야 합니다.
   
세계 10개국 4천여 개 월마트 매장에서 매주 1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장을 보고, 130만 명 이상의 직원들이 생계를 잇고 있답니다. 대단한 기업이지요. 전문가들은 월마트의 성공 요인은 도덕적인 기업가 정신, 건설적인 경영 전략과 직원들의 의욕을 북돋는 수평적 리더십, 효율적인 경영 승계가 어우러져 월마트의 성공의 원인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는 억만 장지인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경영 승계 후에도 아침식사를 도너츠 가게에서 때우고 손수 픽업 화물차를 몰며 연쇄점에 물건을 배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부지런하고 검소한 창업주의 정신이 있었기에 그런 기업이 가능한 것입니다.
   
존 F. 케네디는 대통령 출마 당시 부자 아버지 덕으로 선거자금을 많이 썼습니다. 기자가 그에게 너무 낭비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내 돈으로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대답했습니다. 케네디의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원칙적으로 내 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잠시 맡겨주신 것입니다. 내 돈을 내 맘대로 쓴다고 했던 케네디의 가문은 몰락했고, 비극의 가정이 됐습니다. 성경적 경제부흥은 절약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시다. 지난 주일에는 성경적 경제부흥 1-3계명을 말씀드렸습니다. 1.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라. 2.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라. 3. 부지런히 일하라 오늘은 4-6계명을 살펴봤습니다. 4. 관리(계획)을 잘하라. 5. 구제를 하라. 6. 절약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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