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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짐을 서로 지라 (갈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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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서로 지라 (갈 6:2)
  

심령부흥회와 특별 새벽기도회, 두 차례의 성회를 통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큰 은혜를 받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신 33:29절에 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인용하여 저는 이렇게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성도들이여,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복된 환경 가운데서 은혜 받을 기회를 많이 가진 성도들이 누굽니까?” 금번 부흥회 강사 문영찬 목사님과, 특별새벽기도회 강사 이광훈 목사님을 통하여 큰 은혜를 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 외에도 장경동 목사님을 비롯하여 채의숭 장로님 등 전국적으로 유명한 목사님이나 간증 자들을 초청하여, 큰 은혜를 받았던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또한 부족한 종이 증거한 말씀을 통하여, 공급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도 적지 않은 줄로 믿습니다. 5년 10년이 가도 특별 집회 한 번 할 수 없는 농어촌 교회와 미자립 교회들을 생각할 때, 도대체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리고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요람인 송정 중앙 교회 예배당은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 교회처럼 넓은 주차장과 아름다운 성전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이, 한국 교회 성도들 가운데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 모든 은혜들을 생각할 때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라는 찬송가는, 바로 우리 송정 중앙교회 성도들이 즐겨 불러야 할 찬송가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한 가지 몹시 아쉬운 것은, 두 차례의 성회에 참석하지 못한 성도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무관심이나 사모하는 마음이 없어서 외면하는 성도들도 많은 듯싶어, 안타까운 마음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의 소원은 모든 자식들이 한 결 같이 다 잘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담임 목사인 제가 바라는 것은, 교회는 반드시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기 마련인데,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성도들이 알곡 신자가 되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천국창고에 들어갔으면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해와 달의 영광이 다르고, 해와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별의 영광이 다르듯이, 성도들이 받을 상급과 영광도 분명히 다르다고 했는데, 저는 우리 송정 중앙 교회가 장차 하늘나라에서 해와 같은 영광을 누리게 될 성도들을 많이 배출하는, 신앙의 명문 교회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 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했습니다. “짐을 서로 지라” 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이 말씀의 일차적인 의미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신앙 공동체로서 상호 협력하고 보완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갈 것을 강력하게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빌 2:2-4절의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의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는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그러면 “짐을 서로 지라”고 할 때 그 ‘짐’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합니까? 그것은 당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범죄에 빠뜨렸던 ‘시험거리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도를 근심과 염려에 잠기게 하는 것들도 포함합니다. 성도 혼자서 그러한 짐들을 지게 되면, 그 무게에 짓눌려서 헤어 나오기 힘들 수도 있는데,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돕고 협력함으로 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한편 ‘지라’는 말은 ‘들다’ ‘짊어지다’란 뜻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특별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고 할 때, 그리고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된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귀한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주의에 빠져 공동체적 신앙을 잃어가고 있습니까? 

자기의 십자가를 지거나, 다른 사람의 짐을 나누어지는 일에 얼마나 무관심합니까? 많은 짐을 지고 오르막길을 가는 마차의 뒤를 조금 밀어 줌으로, 언덕을 쉽게 넘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때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슬픔과 좌절에 빠진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은 이런 면에서도 짐을 서로 나누어지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이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곧 우리가 송정중앙교회 성도들로서 서로 져야 할 짐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2007년 3월 1일 착공하여, 2008년 8월 24일에 감격스런 입당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입당 직후인 그 해 10월 리먼 부러더스 사태로 말미암은 국제 금융 위기가 발생하여 환율이 폭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대출을 받았던 시점은 원 엔 환율이 9:1 또는 10:1일 때였는데, 국제 금융 위기로 한 때는 15,6:1까지 폭등을 하였고, 그 때 얼마나 가슴조이며 애가 탔는지 여러분들은 아마 짐작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도 14:1이 되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모든 일을 민주주의적으로 하다보니까, 예배당 대지를 구입할 때 비밀이 새어나가서 13억 이상의 손해를 보게 되었으며, 대지의 일부를 주유소 부지로 팔려고 할 때, 교회이기 때문에 한 번 약속한 매입자에게 신의를 지키려다가 결국은 3년 가까이 끌면서 포기하는 바람에, 땅 값 하락과 엔화 폭등으로 20억 이상의 손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러한 일들이 없었더라면, 우리 교회처럼 수월하게 성전을 지은 교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뜻밖의 사건들로 인하여, 만부득불 성도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성전 건축 헌금에 동참해 주실 것을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좋지 않은 것을 저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이 얼마나 미안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언제고 경제가 어렵지 않을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소천하신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도 지금 신축죽인 성전 건축을 독려하면서 ‘경제는 항상 어려웠다.’고 같은 말을 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경제 사정이 몹시 어려울 때에도 피땀 흘려서 성전을 건축하였고, 심지어는 I M F 때에도 성전을 건축한 교회들이 있었으며, 우리 교회도 구 예배당의 주차장을 구입했던 시기가 바로 I M F가 닥쳤던 1997년도였습니다. 이와 같은 한국 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나라는 또 이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않았겠는가 생각도 해봅니다.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전 건축을 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 때 결단하여 성전건축을 하지 않고, 지금 하려고 한다면 얼마나 더 힘들겠습니까? 그리고 성전건축을 아무나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누구도 성전건축을 할 수 없습니다. 성전건축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다윗 왕은 성전건축을 하고 싶은 소원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모든 보물과 물질을 다 준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군인이라. 피를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그래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건축 하는 일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도만이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왜 성전건축에 동참하는 일이 감사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기회를 주셨기에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로부터 받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건축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큰 역사인 것입니다. 성전건축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무 공로 없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릅니다.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부활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 건축에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요, 축복 중의 축복인 줄 믿습니다. 

또 왜 성전 건축헌금에 동참하는 일이 감사합니까? 그것은 하늘나라에 우리의 보화를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그렇습니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나라에 보화를 가지고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 건축에 우리의 보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쳐진 보화는 영영히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 땅위의 재물은 절대로 영구하지 못합니다. 돌고 도는 것이 돈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십시오. 목회를 하다보면 집이 좁고 누추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심방을 피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러나 이 땅위의 집에서 우리가 살면 얼마나 오래 살겠습니까? 좋은 집에서 살건 누추한 집에서 살건, 불과 몇 십 년 살면 땅위에서의 생활은 모두 끝이 납니다. 

대신 하늘나라에서 여러분이 살 집은 영원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아름다운 믿음과 헌신과 봉사로 말미암아 황금보석의 재료로 하늘나라의 집을 짓기도 하고, 어떤 성도들은 그들의 불충과 인색함으로 실로 보잘것없는 하늘나라의 집을 짓기도 할 것입니다. 가난한 성도라도 그가 힘껏 건축헌금을 할 때, 과부의 동전 두 푼을 보고 가장 많은 헌금을 했다고 하신 주님이신지라, 그러한 성도들에게 만일 집을 상급으로 주신다면 분명히 크고 화려한 집을 상급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물질과 힘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색함으로 겨우 체면치례나 한 사람들에게는,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고 절대로 속일 수 없는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가장 초라한 집을 주실 것이며, 그래서 영원토록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건축헌금에 대한 미담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여러 해 전 기독신문에 게재된 ‘일억을 바친 성도’라는 칼럼의 내용입니다. 30대 초반의 G집사님이 가족과 함께 면담을 요청해 왔다. 약속시간을 잡고도 궁금한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왜 가족이 다 함께 오려고 할까?” “타지로 이사를 가나?” “어디가 아픈가?” 담임 목사실로 들어온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중하게 봉투 두 장을 내 앞으로 내어놓았다. 하나는 십일조였고, 하나는 건축헌금이었다. 봉투에 금액이 적혀있지 않았다. G집사 내외가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말해서 조급증이 났다. 듣고 보니 그 액수가 5000만원씩 1억 원이었다. 

목회하면서 젊은 성도로부터 이렇게 큰 액수의 헌금을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G집사가 대학에서부터 지도교수와 함께 농약연구소를 차려 멤버로 함께 일해 왔는데, 그 연구소가 주식회사로 성장하게 되었고, 그 회사에서 개발한 환경친화적 농약이 각광을 받게 되어 주식이 엄청나게 올라서, 스톡옵션으로 받은 것이 큰돈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혼한 지 4년 남짓한 G집사는 여성처럼 참하고 깨끗한 피부를 가졌는데, 외모뿐 아니라 그 믿음이 너무 아름다웠다.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같이 와 그 헌금을 내어놓으며 하는 말이, 열심히 일했지만 생각 이상의 복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어, 십일조와 함께 십의 이조로 건축헌금을 가져왔다고 했다. 건축헌금의 이유는 주일학교부터 자라 지금까지 믿음을 키워주신 우리 교회에 감사해서, 후진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드린다고 했다. 그들은 지금 전세를 살고 있다. 인생을 시작하는 그들에겐 그 돈이 앞날의 큰 자본이 될 것인데, 아낌없이 가져온 것이다. 1억이란 큰돈이 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름다운 믿음이 더욱 귀한 것이었다. >

다음은 우리 교회 이웃에 있는 신성 교회 안 권사님의 아름다운 간증입니다. 이 안 권사님은 영세민 독거노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안 권사님은 신성교회당을 건축할 때 2천만 원을 헌금하고, 그 후 주차장을 마련할 때 또 2천만 원을 헌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권사 은퇴를 기념하여 20만원의 금일봉을 드렸는데, 그것마저 헌금으로 바쳤다고 합니다. 노후를 돈에 의지하려고 하는 분이라면, 이분보다 돈이 더 필요한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안 권사님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래서 통장이 제로상태라고 합니다. 이 권사님은 하나님을 위해 바쳤지만, 사실은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 지혜로운 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클 줄로 믿습니다.

그런가하면 참으로 불행한 사건도 있습니다. 1994년 서울에서 일어난 한약상 살해사건의 전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23세 된 박한상군은 남들이 갈 수 없었던 미국 유학길에 올랐지만, 1년 후에 귀국하여 1백억 원대의 부모재산을 노리고, 먼저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하고 다음에 아버지를 난자한 후, 집에 불을 질러서 화재로 위장하려 했던 사건입니다만, 결국 부모의 재산을 노린 패륜아의 범행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 희대의 살인범 박한상의 집안은 기독교 집안이고, 아버지는 교회의 장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당 건축을 할 때 돈이 아까워서 100만도 헌금하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눈깔사탕이라고 하는 커다란 왕사탕이 있었지요? 그 눈깔사탕을 입에 넣으면 한 입 가득 차는데, 그 사탕이 아까워서 입에 넣고 빨았다가 때 묻은 손으로 꺼냈다가, 또 넣었다가 빨았다가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들의 사탕 먹는 것을 보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들의 마음을 한 번 시험해 보려고 “아들아, 그 사탕 나 좀 다오!” 했습니다. 

그럴 때 세 종류의 아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아들은 “엄마는 어떻게 준 것을 또 뺐어?” 그러면서 안 뺏기려고 줄행랑을 치는 녀석이 있고, 어떤 아들은 눈깔사탕이 그렇게 큰데도 불구하고 안 뺏기려고 아드득 아드득 깨물다가 혀를 깨무는 녀석도 있고, 어떤 아들은 엄마가 달라니까 아깝지만, 사탕을 사다주신 엄마가 달라는데 줘야지. 그러면서 ‘아’ 하며 엄마의 입에 넣어주는 기특한 아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자식들입니다. 

그 세 자식 중에 엄마가 누구를 가장 사랑하겠습니까? 그래요. 맞습니다. 엄마가 눈깔사탕 10개를 사왔는데, 3개 주고 봉지에 7개가 남았습니다. 남은 것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엄마의 입에 ‘아’ 하고 넣어준 아들에게 “넌 봉지채 가져라.”고 주었습니다. 어떤 아들이 불평할 수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누가 복을 더 받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성도가 더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잘 하려면 인생이 짧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생 7. 8십년 이라고 하는 것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머물 동안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것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부흥성가가 있습니다. 

♪토지 많아 무엇해 나 죽은 후에, 삼척광중 일장지 넉넉하오며, 의복 많아 무엇해 나 떠나갈 때, 수의 한 벌 관 한 개 족하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다만 쌓아두려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지난 주간 최근 우리 교회에 몇 달 동안 출석하던 분이 세상을 떠났는데, 하나 밖에 없는 딸도 장례식에 오지 않겠다하고, 동생도 오지 못하겠다고 해서 우리 부교역자들끼리 장례식을 치렀으며, 내일은 암 수술을 하고도 술 먹고 담배피우다 세상을 떠난 여인의 장례식을 치르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두 사람 이상의 단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곧 공동체인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를 때 일반상식 문제 가운데 ‘십시일반’이라는 사자 성어가 무슨 뜻인가를 설명하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엉터리 답을 기록했던 적이 있습니다. 

‘十匙一飯’이란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의 밥을 모으면, 한 그릇이 된다는 뜻입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모든 말들이 다 합심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는 말들입니다. ‘짐을 서로 지라’ 저는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께서 어려운 중에서도 기꺼이 귀한 일에 동참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자손들 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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