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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울의 첫 인상 (삼상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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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첫 인상 (삼상 9:1-)

사무엘상 9장은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처음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는 장입니다. 사람의 만남에 있어서 첫 인상을 대단히 중요한데 사울의 첫 인상은 어떠했을까요. 사울의 첫 인상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대단히 긍정적이고 인상적이었습니다. 

1. 유력한 집안의 사람 

본문 1절을 보십시오.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이 구절을 통해서 보면 사울은 가문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족보를 중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울이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호감을 가질만한 충분한 요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2. 준수한 사람 

사울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을 뿐만 아니라 준수한 소년이었습니다다(2절). 준수하다는 말은 잘생겼다는 말보다는 한 차원 더 나아간 말입니다.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인상도 좋다는 말입니다. 준수하다는 말에는 사울에게 교양도 있었고 사울의 인격도 나무랄데 없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울이 인간성도 훌륭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인간성은 그 얼굴에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은 관상쟁이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까 부분적으로 관상쟁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간성 뿐만 아니라 신앙까지 적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의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탁월한 외모를 가진 사람 

사울은 얼굴이 준수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키가 농구 선수처럼 컸습니다(2절). 당시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습니다. 남자에게 있어서 키가 크다는 사실은 얼굴이 준수하다는 사실보다 더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키는 남성미를 나타내는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울은 얼굴보다는 큰 키로 인해서 탁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사려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 

그러나 사울의 정작 탁월한 점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탁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려깊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암나귀들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위해서 그것들을 사방으로 찾다가 더 찾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염려할 것 같아 찾는 것을 단념하려는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5절). 

그가 암나귀 찾는 일을 단념하려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외모에 걸맞는 굳건한 의지를 뽐내고도 싶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다니는 사환이 보는 데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기상을 뽐내기보다 아버지가 염려하는 것을 더 신경썼습니다. 이런 자세는 사려깊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자세입니다. 

나는 이 자세가 오늘날 가장 필요한 자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세상철학이 교회까지 퍼져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인 사고방식"보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훨씬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자기 중심적인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냐, 아니면 전체를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중심적인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행동이 나에게는 긍정적인 행동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지극히 부정적인 행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고려하지 않고 "긍정적인 자세"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 중에는 이 땅에서 열심히 긍정적으로 살지만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는 부정될 사람도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긍정을 위하여 남의 눈에 눈물을 나게 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어떤 교인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적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은 예배 시에 긍정적인 신앙이 아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배우고 나서 예배가 끝나고 나서 버스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는 데에도 너무나 긍정적이었습니다. 같은 교인이라는 사실을 서로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자녀들은 저녁을 혼자 차려 먹으면서 그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부정하고 있고, 남편은 반쪽을 잃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면서 그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나에게 "긍정"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부정"이라면 "나의 긍정"을 되짚어 보고 "같이 동참할 수 있는 긍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나의 긍정"을 잠시 뒤로 미루는 작업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크리스챤이 취해야 하는 가장 바람직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정 우리 크리스챤들이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할 사고방식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화합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려깊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5. 헌신의 원리를 아는 사람 

사울이 아버지를 염려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사환이 말했습니다. "이 근처에 훌륭한 선견자가 있으니 그분에게 물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 말이 그럴듯하게 들려서 바로 실천에 옮기고 싶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어 사울이 사환에게 물었습니다. "그분에게 드릴 물건이 있느냐?" 

그는 무엇을 취하려고 생각하기 전에 드릴 생각부터 먼저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은 바로 이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는 이 자세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절대적인 역할을 합니다. "취하려는 관계"로 인간관계를 맺는 경우 그 관계는 항상 시험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그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드리려는 관계"로 인간관계를 맺으면 절대로 시험에 드는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는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수시로 시험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먼저 드리려는 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절대 시험이 없습니다. 시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곧 하나님이 나를 왕의 지위로 올려주실 것입니다. 내가 그 지위에 올라갔을 때 사울처럼 타락하느냐 아니냐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드린다고 할 때 많이 드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취하려는 자세보다 드리려는 자세가 먼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사실상 사환의 손에 있었던 은 한 세겔의 4분의 일은 많은 돈이 아닙니다(8절). 

한 세겔은 오늘날 약 11.4그램입니다. 그리고 금 한 돈은이 3.75그램입니다. 그러므로 은 한 세겔은 약 3돈이고, 은 한 세겔의 4분의 1은 약 0.75돈입니다. 은 1돈이 채 안되는 0.75돈은 오늘날 얼마쯤 할까. 대략 보아도 요즘 시세로 약 1만원 남짓하는 돈입니다. 결코 많은 돈이라고 할 수 없는 돈입니다. 그러나 적은 돈이라도 드리려는 자세와 드리는 자의 정성을 하나님은 평가하는 것입니다. 

6.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 

그리고 사울은 누구에게라도 배우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환이 선견자에게 가서 묻자고 제의했을 때 사울은 노예나 다름없는 사환의 말에 대해서 "네 말이 옳다!"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연령과 상관없이, 환경과 상관없이, 나의 이익관계와 상관없이, 그리고 지연 및 학연과 같은 연줄과 상관없이 우리는 진리에 순응할 줄 아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준비된 자였고 자질이 있는 자였습니다. 진정 하나님이 높이는 축복을 얻고자 한다면 얼굴과 몸가짐 관리를 잘 하고, 남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사려깊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며, 취하려는 자세보다 드리려는 자세를 갖추는 헌신의 원리에 정통하고, 하나님 말씀과 영적 원리에 순종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이왕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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