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명위해 살면 하나님이 다 하신다 (출 4:18-26)

첨부 1


사명위해 살면 하나님이 다 하신다 (출 4:18-26)

사람은 심한 고생을 한 번 겪고 나면 참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죠. 또 자라나는 아이들도 심하게 병치레를 하고 나면 그만큼 성숙해 진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기들이 병치레를 하면 듣기 좋은 말로 또 하나 배우려 하는 것이라고 말씀들을 합니다. 또한 사람들 중에 때로는 ‘죽을 뻔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죽을 뻔한 경험을 해 보신 분이 계십니까? 인생을 살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하면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 저도 몇 번의 죽을 뻔한 경험을 했습니다. 6~7살 때, 주일날 교회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죽을 뻔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살았습니다. 중학생 때 팔당댐 아래의 교회에 여름 수련회를 갔는데 강 한 복판의 모래사장에서 놀다가 댐 수문을 열어 수위가 급격히 불어날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했습니다. 

군대에서 제대 3일 전, 교육을 받고 제대 신고를 하려고 사단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습니다. 그 외에도 더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날 수 없는 심각한 질병으로 심장이 3번이나 정지하는 일을 겪기도 했고,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참 질긴 목숨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계실 것입니다. 

모세는 평생에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첫 번째 죽을 고비는 태어나자마자 겪었던 애굽의 사내아이 말살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번성하자 위기를 느낀 애굽의 왕이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중 사내아이는 무조건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 때문에 모세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뻔했습니다. 그 서슬 퍼렇던 죽음의 고비를 모세는 부모의 사랑으로 석 달을 숨겨진 채 키워지다가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애굽 공주의 양자로 입적되어 생명을 부지하게 됩니다. 

두 번째 죽을 고비는 모세가 장성한 후에 자기 형제들이 고역하는 것을 보러 나가서는 동족인 히브리 사람을 치는 애굽 사람을 보고 분이 나서 쳐죽여 버리고 말았을 때입니다. 그 사실이 발각되면서 바로가 모세를 잡아 죽이려하고 하는 통에 모세는 바로의 손아귀를 피해 미디안으로 피신했었습니다. 세 번째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 오늘의 본문의 내용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해방의 사명을 받아 가족들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가던 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신 것입니다. 

(24절)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오늘 본문 이전의 앞의 내용들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사명을 맡기시는 장면인데, 계속해서 모세가 변명을 하고 자신은 못 가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표적까지 보여주시면서 믿고 가라고 하시자 이번에는 뭐라고 합니까? 자기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화를 내시면서 말 잘 하는 ‘네 형 아론’을 붙여주시겠다고 하시고 또 ‘내가 너와 네 형 아론과 함께 있어서 너희가 행할 일을 가르쳐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생각해 본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말 잘 하는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의 사람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쓰신다”, 할렐루야! 따라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나를 쓰시는 것입니다. 이제 모세가 순종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변명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거부하던 모세가 말씀에 순종하여 움직입니다. 먼저 그의 장인에게 가서 말합니다.

(18절)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모세가 장인에게 말하는데, 솔직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려고 간다고 말을 못합니다. 다만 애굽에 있는 형제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고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왜 사실대로 말을 못하는 걸까요?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니까 혹시 장인이 허락을 안 할까봐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상도 속담에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40년을 머슴처럼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처가에서 늘 기죽어 있었고 조용히 지냈습니다. 그냥 장인이 하라는 대로 해왔습니다. 그러면서 눈치를 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소심하게 말했는데 장인이 가라고 허락한 것입니다. 모세의 장인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마도 모세가 어떤 특별한 일을 위해 가는 것을 알고 허락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말씀, (19절)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대적들이 다 죽었다는 말씀을 듣고 크게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하면서 걱정을 했을 것입니다. ‘장인이나 처갓집에서 허락할까?’, ‘애굽에서 아직까지도 나를 죽일 놈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야?’,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습니다. 장인이 쉽게 허락하고, 또 애굽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은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출발을 합니다. 

(20절)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다는 표현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떠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네가 애굽으로 가거든 내가 일러준 이적을 다 행하라 그러나 바로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22~23절)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드려진 장자인데, 바로가 보내지 않으면 대신 애굽의 장자를 다 죽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비장한 각오를 하고 모세는 가족과 함께 애굽을 향하여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길을 가던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24절)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려고 가는 중인데,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을까요? 성경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대목 중의 한 장면입니다. 다음 말씀을 봅니다. 

(25~26절)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이 말씀에서 모세의 아내 십보라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십보라는 미디안 제사장 일곱 딸 중에 장녀였습니다. 남자들이 없던 집안의 장녀로서 결혼 전부터 목축(양치기)을 하면서 집안을 돌보고 동생들을 이끌었으니 강한 리더십이 있고, 거칠고 강하고 드센 성격의 여자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도중에 하나님이 치셔서 모세가 병들어 죽어가는 상황이 닥쳤을 때의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여기에서 ‘발’은 성기의 부드러운 표현입니다. 그러한 제스쳐를 취하며 ‘당신은 피로 산 남편’이라고 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출18:2~3)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보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두 아들을 데리고 왔으니”, 중간에 모세와 십보라가 갈등이 있었기에 십보라가 친정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모세) ‘그런 모습 보이려면 돌아가요’, (십보라) ‘흥! 가라면 못 갈 줄 알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친정에 돌아온 딸을 보고 장인 이드로가 타일러서 데리고 모세에게 온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봅니다. 비록 모세가 믿음이 강한 것은 아니었어도 히브리 사람의 정체성이 있었기에 아들을 낳았을 때, 아들에게 할례를 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여호와 신앙이 없는 거친 아내, 십보라가 ‘어디 내 아들의 소중한 곳에 칼을 대려고 해요?’하면서 우기고 반대했습니다. 

더군다나 가는 도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하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모세는 할례받지 못한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아내를 설득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할례가 필요하니까... 그래도 십보라가 거세게 반대했습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모세의 앞길을 십보라가 막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을까요? 십보라 때문에 모세는 모세대로 고민했고, 아마 하나님도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에게 할례를 주어야만 하는 모세의 고민은 할례를 막는 장애물을 제거함으로 사명을 떳떳하게 감당케 하려는 아버지의 고민이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실까요? 하나님께는 모세밖에 없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결국, 모세를 죽이려는 퍼포먼스(연극)로 40년의 문제를 한순간에 해결하신 것입니다. 죽인다는 위협을 통해서 훼방자, 십보라의 고집을 꺾고 할례를 시행케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집안에서의 또 하나의 기적입니다. “아이고, 하나님, 내가 졌습니다. 할례시키면 되잖아요?”, 그리고는 다 자란 아들을 오라고 해서 칼을 들고 할례를 행했습니다. 

여러분, 부부관계는 행복한 동역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열심히 하는데 아내가 방해하고, 반대로 아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초를 칩니다. 

여러분, 남편들은 아내가 없으면 못 삽니다. 아내가 먼저 가면 남편이 초라해 보이고, 남편이 먼저 가면 아내는 생생해 집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여러분, 아내의 얼굴은 남편의 영성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부부는 동역의 관계여야 합니다. 결혼 초창기에 주위에서 코치를 합니다. ‘결혼 초창기에 잡아라’, 잡기는 무엇을 잡습니까? 잡으려면 운전 핸들이나 잘 잡으시기 바랍니다. 부부는 함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주신 사명을 끌어 안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애굽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사명위해 살면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명위해 살면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것을 믿고 인정해야 합니다. 

1)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모든 일이 되는 것 아닙니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이 하셔야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면 됩니다. 

회사에서는 사장 마음에 들어야 인정받고 진급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정말 모처럼 등산을 했습니다. 교회 목회자들과 직원들이 대관령의 선자령이라는 곳으로 다녀왔습니다. 세찬 바람이 부는 가운데서도 다녀오니까 얼마나 상쾌한지 모릅니다. 선자령 능선위에 오르니 풍력발전기가 수 십 개가 있는 데 참 장관이었습니다. 풍력발전기는 바람개비 같은 것이 바람을 맞으며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람개비는 바람 부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면 힘차게 돌듯이, 우리도 하나님 향해 서 있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서 있는 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의 바람이 불어와서 일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2)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은 내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내 것(건강, 물질, 시간, 행복, 여유) 다 챙기고, 하나님의 일은 시간 날 때 겨우겨우 하면 하나님도 나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도 우리 일에 최선을 다하십니다. 모세가 생명 걸고 나서니 하나님도 힘을 다해 모세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사명위해 살면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그러나 사명위해 살지 않으면 갈수록 힘들어집니다. 십보라(문제)가 계속 어렵게 합니다. 

출17장에 보면 르비딤에서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아말렉과 기브온 골짜기에서 싸울 때, 산꼭대기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잡은 손을 들면 승리하고 내려오면 패배합니다. 여기에서 여호수아가 싸우는 현장은 ‘보이는 세계’이고, 모세의 기도하는 손이 올라가는 산꼭대기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역사가 보이는 세계를 움직입니다. 따라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 일에 있습니다. 믿음, 기도, 사명에 대한 순종, 하나님과의 관계, 등 보이지 않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그 일에 힘쓰면 보이는 세계는 하나님이 싸워주십니다.

“사명위해 살면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지난 수요일, 박철희 선교사님이 ‘기적의 체험’이라는 제목으로 간증해 주셨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어도, 하나님 주신 사명위해 나아가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명위해 살면 하나님도 우리를 모세처럼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그러면 다 된 것 아닙니까? 

찬송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지금 여러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살면 사명자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본질적인 것을 내려놓고 본질을 회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사명을 위해 사십시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살아서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해 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